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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팥쥐전
조선희 지음, 아이완 그림 / 노블마인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탁월한 이야기꾼, 그녀의 새로운 이야기 모던 팥쥐전.
옛날부터 동화책이나 전래동화를 참 좋아했다. 물론 집에 동화전집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일테지만, 어려서부터도 그다지 활동적인 성격이 아니었던 나로서는 그림책만큼 좋은 친구도 없었다. 물론 그런 동화책을 읽으면서 나는 늘 궁금했다. 대체 왜 착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당하고 살아야하는건가? 라는 생각. 물론 아주 꼬꼬마때야 이런 생각을 하진 못했겠지만, 어느순간 불현듯 그런 생각을 하게 됐던것같다. 대체 얘들은 왜이렇게 착해빠진거야? 라는 못된 생각...
이를테면 내가 정말 제일 분노하며 이를 갈고있는 동화 - 인어공주. 어째서 인어공주는 부모언니 다 버리고 그저 인간나부랭이에게 반해 사람을 홀릴만큼 매력적이라는 목소리를 내주고 고통을 동반한 다리를 얻었으며, 자신이 그를 구했다고 말도 하지 못한채 그저 바라만 보며 걸을때마다 아픔을 주는 그 다리로 화려한 춤을 췄던걸까? 왜 마지막까지 언니들을 외면한채 부모를 버리고 한순간 물거품이 되어 바다로 떠나야했던것일까? 그 왕자의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모든것을 포기하게 만든채 식구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게 만들었던 것일까?
이야기가 좀 많이 샜는데, 결과적으로 이 책이 마음에 들었던 점도 바로 이런 점이다. 가려웠던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준다. 착한 주인공은 더이상 필요없다. 바보같이 당하기만 하는 언니 오빠들도 이젠 비켜야한다. 자신의 인생은 남이 보기에 악착같아 보일지언정 결과적으로 스스로 쟁취해야 하는거다. 혹 상대방에게 파고들 틈이 없다면 타인을 흔들어 놔서라도 틈새를 공략해야만 한다. 옛날처럼 착하기만 하다고 해서 하늘이 도와주고 땅이 도와주는 일따위는 없는거다.
그뿐만이 아니라 책의 스토리 자체와 분위기 자체의 오싹함도 무척이나 큰 매력이다. 평소 선혈이 낭자한 장르소설을 섭렵하며 웬만해선 열린 창밖의 어둠이 무섭지 않았으나, 이 책은 어쩐지 창문 너머로 무언가가 스윽 하고튀어나올것만 같아 그 오싹함이 예사롭지 않았다. 어쩌면 단순히 이 나이 먹어서까지 귀신이 무서운걸지도 모르지만, 한순간 심장이 쿵! 하고 발등으로 떨어지며 식은땀이 쫘악 나는것처럼 책의 어느 구절을 읽다보면 한순간 내 몸의 체온이 솨아...하며 급격히 식어내려가는걸 느낄때가 있다. 서늘함, 오싹하리 만큼 차가운 그 서늘함이 너무 반가운 책!
아..무섭다. 오싹하다. 그 오싹함과 서늘함이 정말 멋지다. 그녀의 이야기 내공은 일본작가들과 비교하는것 자체가 무척이나 실례이지만, 온다 리쿠 특유의 몽환적이고 기묘하던 환상동화들 보다 훨씬 더 한국적인 분위기의 몽환적인 호러와 그리고 기묘한 전래동화의 이야기가 너무나도 흥미로웠다.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는 작가의 이야기 내공. 전작에서 느껴지던 달달함과 사랑스러움으로 무장됐던 캐릭터와 스토리와는 달리 이번 작품에서 전혀 새로운 이야기로 오싹함이 전율하게 한다. 책을 읽는 늦은 저녁 깜깜한 창밖으로 보이는 어둠이 소스라치게 무서워 소름끼치게 만드는 그녀의 내공! 오죽하면 내가 늦은 밤 책을 읽다가 덮어버렸을까. 그녀의 섬뜩하고 기묘한 기묘한 이야기에 한여름 더위가 시원하게 물러간다.
평소 기묘한 이야기나 기담 혹은 동화 들을 좋아하시던 독자분들이시라면 모던 팥쥐전 부담없이 아니, 오히려 무척 즐겁게 읽으실수 있으실거라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요즘 한창 개봉중인 인셉션과 비슷한 모티브의 단편을 읽으면서 어찌나 놀랬던지, 작가의 상상력이 정말 최고이신듯! 책 속 글귀와 이미지의 절묘한 조화에서 느껴지는 서늘함을 마음껏 만끽해보시길 추천하고 싶다. 전작인 판타지소설 프리가 에서도 충분히 작가님을 애정하고 있었지만, 이번 작품으로써 나는 확실히 작가님 팬이 되버린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