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 킹덤 - 15세기 후반에서 현재까지 러시아의 민족 만들기와 제국을 향한 탐색
세르히 플로히 지음, 허승철 옮김 / 글항아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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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어디에서 시작하고, 어디에서 끝나는가? 그리고 러시아 국민을 이루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것은 러시아의 영원한 질문이다.

1520년대, 몽골의 지배에서 벗어나 키이우 루시(키예프 루스)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모스크바 공국의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통치자에 대한 새로운 가계도를 만들어냈다. 이반 뇌제가 아우구스투스 로마 황제의 후손이라는 주장은 국내에서는 그를 다른 공후급 지배층과 구별 시켜주었고, 국외에서는 그를 서구 통치자들과 같은 반열에 올려주었다. 또한 볼가강 유역 칸국들의 정복은 그의 지정학적 입지를 향상시키고 황제라는 주장에 실체를 제공해주었다.

새로운 모스크바의 정체성은 교회를 통해서도 진행되었다. 예언되었던 1492년의 세계 종말이 오지 않자 러시아 교회는 새로운 위계질서로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 비잔티움 정교회 제국이 모스크바 공국으로 대체되었고, 비잔티움 황제는 모스크바 공국의 차르가 대신했다. 콘스탄티노플은 새로운 로마이고, 모스크바는 새로운 콘스탄티노플이었다. 16세기 초가 되면 모스크바는 제3의 로마를 자처한다.

모스크바가 제3의 로마라는 비유는 모스크바 사람들의 세계관에 거대한 변화를 불러왔다. 차르는 비잔티움 몰락 이후 남은 유일한 정교회 황제이고, 모스크바 공국 교회는 다른 어느 정교회보다 우위에 있게 되었다. 제3의 로마로서 모스크바는 대외 정책을 공세적 전략으로 전환했다.

17세기 중반 차르는 소루시(우크라이나)와 백루시(벨라루스)를 대루시(모스크바 공국)에 편입시켰지만 이들은 자신을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소루시와 백루시의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이 대루시의 정체성과 구별된다고 생각했고, 모스크바 공국의 엘리트들은 자신들을 민족적 관점에서 생각한 적이 거의 없었다.

이들 집단이 자신들을 하나의 민족으로 생각하는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1709년 스웨덴과의 전투 승리를 기념하는 행사에서 서구화 주창자인 키이우신학교 학장 프로코포비치는 차르의 통치 영역 전체를 '러시아'라는 전 민족적 이름으로 불렀다. 프로코포비치는 표토르 대제의 주요 이념가가 되었고, 표토르 대제와 그의 가신들은 이제 민족적 담론을 완전히 습득하여 조국과 민족, 공공선을 강조했다.

모스크바 공국이 러시아 제국으로 탈바꿈하는 18세기 동안 공통의 '전 러시아' 역사 담론과 '전 러시아' 제국 언어가 형성되었다. 이후 러시아의 팽창주의적 정체성 확장이 계속되면서, 전제정치, 정교회, 민족은 러시아 제국을 통합하는 세 가지 중침축으로 자리 잡는다. 그러나 '러시아 민족'이라는 우산에 가려진 여러 민족들의 문제는 그 후로도 계속 지속될 터였다.

그로부터 수백 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갈등과 긴장 속에서도 계속 하나로 묶여 지내왔고, 그것은 우크라이나의 의지와는 별로 관련이 없었다. 러시아 제국부터 소비에트에 이르기까지 세계 정세와 전략적 이해에 따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때로는 강하게 장악하기도 하고, 때로는 느슨하게 풀어주기도 하지만, 단 한 번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일부라는 생각을 버린 적이 없었다. 그 생각은 소련이 해체되고, 우크라이나가 독립 국가로 탄생한 이후에도 여전히 지속되었다.

2014년 소치 올림픽 폐막 4일 뒤 푸틴 대통령과 그의 군대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분할하고 크림반도를 합병한다. 이는 우크라이나의 핵무기를 러시아에 이양하는 대가로, 러시아, 미국, 영국으로부터 우크라이나 영토를 보장 받은,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위였다. 이 침략의 근저에는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이 한 민족이라는 러시아의 민족 정체성이 있었다. 크림 합병에 앞서 수 개월 동안 푸틴은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은 같은 민족이라고 거듭 강변했다. '우리는 한 민족이다.'

그러한 생각은 러시아 혁명 시기 백군 지휘관이었던 안톤 데니킨 장군의 회고록에서 명징하게 드러난다. '반동적이든 민주적이든, 공화정이든 전제정이든, 어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가 떨어져 나가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집착은 현재의 러시아 대통령 푸틴의 '러시아세계' 개념에 그대로 이어진다. '러시아세계는 러시아어와 러시아 문화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러시아에 살든 국경 밖에 살든, 단결 시킬 수 있고 단결 시켜야 한다.'

소련 멸망 후 새롭게 탄생한 러시아는 '자유주의적 제국주의' 국가였지만, 2008년 조지아를 침공하면서 러시아는 이미 자유주의적 제국 대신 군사적 제국을 선택하였고, 이제 러시아세계는 푸시킨과 러시아어와 연관되기 보다는 수많은 사상자와 난민을 낳은 영토 약탈과 연결되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갈등은 러시아와 서방의 관계 뿐 아니라 근대 러시아 민족 형성에 있어서도 중요한 분기점이다. 이 갈등이 러시아의 영원한 질문에 내놓은 답은 아주 분명하다. 거대 러시아 민족이라는 제국 시대의 구상은 이제 사라져버렸고, 아무리 많은 피와 돈을 쏟아부어도 그것을 되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러시아 민족의 미래와 이웃들과의 관계는 중세 키이우 국가의 상상적인 동슬라브 단일성이라는 잃어버린 낙원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연방의 국경 안에서 근대적 시민 국가를 형성하는 데 있다. 이것이 영국 제국 같은 과거 제국의 중심부나 독일 같은 근대 민족국가가 밟아온 길이다. 두 국가는 자국 밖의 영어권, 독일어권 국가와 고립 지역의 독립을 인정했다. 러시아가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한다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새로운 냉전 혹은 이보다 더 끔찍한 상황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저자의 불길한 예언은 그대로 들어맞는다. 2022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다시 침공했고, 전쟁과 죽음은 2026년 3월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 참혹한 비극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러시아 사회 내부가 자유와 평등을 기반으로 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민주주의 사회로 탈바꿈해야 한다.

그것은 러시아 뿐만 아니라 전 인류에게도 마찬가지다. 나날이 심해져 가는 폭력과 전쟁 속에서 우리를 구해줄 수 있는 것은, 자유와 평등과 박애라는 인간의 존엄성과 보편적 권리에 대한 존중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때 '인간'은 나와 같은 집단, 같은 민족, 같은 국가만의 인간이 아니라, 나와 다른, 내가 싫어하는 사람까지 포함하는, 글자 그대로의 모든 인간종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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