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는 왜 아프리카에 갔을까 - 거짓 관용의 기술
리오넬 아스트뤽 지음, 배영란 옮김 / 소소의책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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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신대륙에 당도한 유럽인들은 자연과 공존하던 선주민들을 학살하고, 선주민들이 공유하던 자원과 자연을 사유화했다. 그리고 그 자연을 팔아 부와 절대 권력을 차지한다.

식물의 '종자'는 수천 년간 인류가 함께 일구고 가꿔온 작업의 결실이다. 어느날 갑자기 몬산토라는 화학기업이 등장해 종자에 '약간의 변형'을 가했다는 구실로 종자에 대한 모든 독점적 권리를 가로챈다.

컴퓨터 산업의 태동기, 거의 모든 것이 오픈 소스 체제였던 시절, 빌 게이츠는 모두가 공유하던 컴퓨터 기술에 자신의 기술을 가미하여 특허를 출원했고, 공공재처럼 사용되던 초기 컴퓨터 기술들을 자신만의 것으로 사유화한다.

2000년, 성공과 부의 상징이 된 빌 게이츠는 게이츠 재단을 설립하고 돌연 자선사업가로 변신한다. 이제 빌 게이츠는 세상에서 가장 너그럽고 관대한 사람이 되었다.

게이츠 재단에서 후원하는 많은 사업은 중요하고 긍정적인 효과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이런 유용한 공익 사업이 숲을 가리는 나무들이라는 점이다. 초특급 거대 부호들이 관용의 탈을 쓴 자선사업을 통해 보건, 환경 등의 분야를 장악하고, 자신들이 편승한 신자유주의 체체를 강화하고, 불투명한 자금 구조를 통해 더욱 배를 불리는 '자선 자본주의'의 민낯을 가리는.

'자선 자본주의'라는 신조어는 빌 게이츠에 의해 생겨났다. 이는 억만장자들이 자신의 성공 수완을 기부 활동에 접목시켜, 빈곤 구제에 시장 원리를 도입한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오늘날 자선 자본주의는 호화로운 빌라나 전용기처럼 '슈퍼리치 클럽'에 들어가는 또 하나의 새로운 상징이다. 세계화된 경제에서 가장 번창하는 사업인 기부 사업은 교육 정책, 세계 농업, 보건 분야에서 억만장자들이 전대미문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컴퓨터 운영체제와 소프트웨어에 대한 독점으로 막대한 부를 구축한 빌 게이츠의 사업 방식은 그의 재단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빌 게이츠는 생물 자원을 이용하여 다국적기업이 특허를 출원하는 '생물 해적 행위'를 옹호함으로써 빈곤국에 대한 의료 혜택 접근을 제한했고, 재단은 인권과 노동권을 유린하고 환경을 훼손하며 조세 회피 정책으로 극심한 비판을 받는 많은 기업들에 투자한다. 재단은 자신들이 투자한 이들 업체들의 사업에 재단 기부금을 제공하여, 기부하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회수한다.

빌 게이츠는 녹색 혁명을 주장하며, 자유로운 종자의 사용을 불법화하고 그 씨를 말리기 위해 활동한다. 특허받은 종자를 사용하도록 NGO와 자선 기관에 권고하고, 각국 정부가 지적 소유권을 제정하도록 압력을 넣는다. 그러나 녹색혁명의 폐단은 인도의 사례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토양이 메마르고, 생물다양성이 빈약해지고, 기후 온난화가 초래되고, 농민은 빈곤해진다. 농민들은 자신들의 씨앗을 버리고 기업이 판매하는 씨앗과 화학비료까지 구매해야 한다. 몬산토는 수많은 농민들을 자살하게 만들었다.

보건 분야는 게이츠 재단에서 특히 관심을 갖는 분야다. 빌 게이츠는 백신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게이츠 재단은 효과적인 예비책 정도만 있으면 개선될 수 있는 만성질환과 아동 사망 관련 연구 지원은 등한시하면서, 에이즈와 소아마비 연구에만 우선권을 부여했다. 게이츠 재단의 막대한 보조금은 보건의료 체계를 왜곡시키고 있고, 빌 게이츠가 세계 보건 시장을 장악하게 만들어준다.

자선 자본주의 사업가에게 돈을 버는 것과 자선 사업을 하는 것은 이율배반이 아니다. 재단과 기업이 서로 뒤섞여 투자에 기부의 옷을 입힘으로써 생기는 이득이 무엇이건, 한 가지는 분명하다. 빌 게이츠는 기부를 시작한 뒤 이전보다 더 부유해졌다는 점이다. '포브스'에 따르면 빌 게이츠의 개인 자산은 2011년 560억 달러에서 2015년 789억 달러로 증가했다.

초국적인 권력을 가진 게이츠 재단의 활동은 그 어떤 민주적 통제도 받지 않는다. 빌 게이츠와 그 아내 멀린다 게이츠, 그리고 워런 버핏 세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는 게이츠 재단은 그 막대한 자금력으로 학자들과 NGO와 언론의 입을 막고 있고, 전 세계 보건 사업과 여러 나라의 정부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외부 감시도 받지 않는다.

막대한 권력을 손에 쥔 게이츠 재단은 반드시 독립된 기관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민간 재단 같은 자선 단체의 영향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현재 상황에서 이 같은 주의와 경계는 더욱 필요하다. 수익에 집착하는 거대 기업이 정말로 빈곤과 불평등을 물리치고 사회 경제 정의를 추구하는지 예의 주시해야 한다.

우리는 빌 게이츠라는 인물 한 사람을 넘어서서 소수의 대부호가 어마어마한 권력을 쥐고 있는 '자선 자본주의' 관행 자체를 경계해야 한다. 빌 게이츠와 마크 저커버거의 온화한 얼굴 뒤에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환경을 유린하여 축적한 부가 숨어 있다.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들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주범은 돈이 가장 많은 사람들이다. 빈곤을 없애기 위한 실절적인 대책은 부자 한 사람의 자비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존엄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2,30년 전, 많은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에게 빌 게이츠는 '선한 사람의 대명사'는 아니었다. 나를 포함한 많은 개발자들에게 그는 탁월한 프로그래머가 아니라 약삭빠르고 뻔뻔한 장사꾼으로 인식되었다. 돈을 주고 사들인 Dos 프로그램으로 IBM을 이용해 개인용 PC 시장을 장악한 후, 애플의 '매킨토시'를 본따 'Windows' OS를 만들어 PC 시장을 독점한 영악한 사업가.

독점한 Windows OS에 끼워넣기를 통하여, 인터넷 시대를 선도한 넷스케이프를 몰아내고,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그래픽 브라우저 시장의 새로운 지배자로 만든 반칙 기업가. 불법 독점으로 기업 강제 분할의 위기에 몰려있던 탐욕스러운 부자.

빌 게이츠의 대척점에서 'GNU 선언문'을 발표하고 '자유소프트웨어재단(FSF)'을 설립해 '카피레프트' 운동을 주도하여 마구잡이 지적 재산권에 저항했던 리차드 스톨만을 모든 개발자가 선호했던 것은 아니지만, 아이디어 도용과 지적 재산권에 대한 탐닉과 철옹성의 독점으로 부의 제국을 설립한 빌 게이츠를 경시하는 개발자들이 아주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상황은 많이 바뀌어 있다. '최후의 해커'라 불리던 탁월한 프로그래머 리차드 스톨만은 '소아성애' 관련 발언으로 배척받는 등 입지가 좁아졌고, 기업 강제 분할의 위기에서 살아남은 '제국의 황제' 빌 게이츠는 '당대 최고의 기부천사'로 사람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 인식의 근저에는 지적 재산권에 대한 대중의 많은 인식 변화가 있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오래전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에 제한을 둠으로써 돈을 벌어들이는 행위는 프로그램이 사용되는 범위와 방식을 제한하기 때문에 유해한 것이다. 이는 인간들이 프로그램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전체적인 풍요로움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선언하며 나를 감동시켰던 GNU의 정신은 지금 세상에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흘러간 옛 노래로 들릴 것 같다.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은 '모든 지적 소유권은, 그것들이 어떻든지 그를 허용함으로써 사회 전체에 이득이 된다고 여겨져서, 사회가 허용할 때만 정당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지적 재산권을 창작자의 천부적인 권리라고 인식하고 지지한다. 사용자와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이런 변화된 세상에서 특허와 지적 재산권을 희롱하며 자신만의 부유한 성을 쌓은 빌 게이츠는 풍요로운 부자 기업가로 존경을 받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철학을 고수한 리차드 스톨만은 현실 모르는 기인으로 경시되는 것 같다. 이제 세상은 포식자만을 존경하고 추앙한다. 그렇게 세상은 바뀌었고, 나는 바뀐 세상이 서글프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바뀌고, 사람이 변하였어도 변할 수 없는 원칙이 있다. 그것은 '게이츠가 후원하는 교육과정을 밟은 기자가, 게이츠의 보조금을 받는 학자들이 수집하고 분석한 자료를 근거로, 게이츠가 돈을 대는 신문에, 게이츠가 지원하는 보건 관련 프로젝트에 관해 쓴 기사를 읽는' 세상을 우리가 그대로 따라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현실을 바꾸지는 못할지라도, 나는 내 눈으로, 내 판단으로, 내 원칙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어쩌면 그것은 이 난폭한 세상에 한없이 무기력하게 남아 있는 나 자신에 대한 작은 위로일 지도 모른다.

예전에도 말했지만, 책은 또 다른 책을 부른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몬산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졌다. 이제 나는 '몬산토 - 죽음을 생산하는 기업'과 '에코사이드 - 글리포세이트에 맞선 세계 시민 투쟁기'를 보관함에 집어 넣는다. 그렇게 시선을 넓혀간다. 내 눈으로 보기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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