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연구 - 비밀에 부쳐진 말들, 삭제된 존재의 배회, 트라우마의 체현
그레이스 M. 조 지음, 성원 옮김, 김은주 해제 / 동녘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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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는 우리의 DNA 안에 부호화되어 있다(...) 우리의 몸은 부모와 조부모들이 말할 수 없었던 것을 물려받는다. 과거는 물질적인 방식으로 우리를 빚어낸다.'(12쪽)


'양공주'는 미국인과 성적인 관계를 맺는 한국 여성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말이다. 양공주, 양키 갈보, 미군 색시, 양갈보, 양색시, UN 숙녀, 위안부, 기지촌 매춘부, 군인 신부. 미군 기지 근처의 술집에서 일하는 이 서구화된 여성은 공식적으로는 한국과 미국 정부 모두에게 멸시 당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미군에게 휴식과 오락거리를 제공하고 한국 경제에는 달러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격려받는다.


그들은 미국의 이해관계를 묶어둠으로써 자국을 위해 봉사하는 애국자인 동시에 반미 정치의 화염에 기름을 끼얹는 미 제국주의의 비극적인 피해자다. 이들의 노동은 국가의 외화 소득을 늘려주었지만 막상 이 여성노동자들 스스로는 빛이 눈덩이처럼 불어서 가혹한 환경 아래의 성노동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이 여성들은 한국의 예속 상태에 공모한다는 이유로 동포들의 증오를 자아내는 동시에 아메리칸 드림의 손길이 닿는 곳에 있다는 이유로 동포들의 질투를 유발한다. 한반도의 한국인들에게 혐오와 욕망을 자아내는 과잉 가시적인 대상인 동시에 한인 디아스포라의 집단 정서 안에 감춰진 그늘진 인물이다.

전쟁은 미군과 한인 여성이 빈번하게 성적 만남을 가질 조건을 낳았고, 이 가운데 일부는 1945년의 전쟁신부법에 힘입어 결혼과 미국 이민으로 귀결되었다. 이 만남 속에는 미군 지배, 전쟁의 폭력, 자애로운 미국이라는 폭력의 미화가 얽혀 있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국가적인 담론 속에 편입된 전쟁신부는 한국전쟁과 한미 관계의 트라우마에 관한, 그리고 자신의 과거에 관한 비밀을 묻어두어야 한다.

그들은 미군을 상대로 매춘 일을 했던 100만여 한인 여성의, 그리고 미군과 결혼한 10만여 한인 여성의 상징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집단 트라우마와 판타지에 겹겹이 둘러싸여 있는, 모든 것이 삭제된 유령 같은 인물이다. 그들에게는 뒤에 남겨진 모든 양공주들과 죽음을 통해 기지촌을 탈출한 이들 뿐만 아니라, 감춰진 그 자신의 과거가 유령처럼 들러붙는다.

미국 신부로서 양공주가 자기 몸 안에 있는 양갈보로서의 양공주를 억압할 때, 그는 자기 과거의 유령에 의해 배회당하고, 이 유령들은 여러 세대를 거쳐.대물림되어 가족사에 관한 앎의 틈새라는 형태로 자녀들을 배회한다. 그들이 그 자신에 관해, 그리고 자신이 상징하는 역사적 트라우마에 관해 간직하고 있는 비밀은 디아스포라 전체에 무의식적으로 전파된다.

이 책 '유령 연구'는 '양공주라는 상실과 창조성을 상징하는 인물이 어떻게 트라우마의 효과로부터 그 생명력을 얻게 되는가에 관한 이야기'이다. 저자는 그레이스 M. 조. 저자 자신이 미군 상선의 선원과 결혼하여 미국으로 이주한 양공주의 딸이다. 절은 시절 이 사실을 알게된 저자는 큰 충격에 빠졌다.

저자는 정체성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고, 그런 경험은 저자를 정신적, 지적으로 재구성하게 만들었다. 그 순간 이후로 저자의 목표는 '가족에 관한, 그리고 내가 태어난 나라와 나를 받아준 나라, 그리고 나의 관계에 관한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 그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저자의 대학원 박사 논문을 바탕으로 쓰여진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저자는 양공주 이야기의 진입점을 3곳으로 본다. 미군이 한반도에 발을 들인 1945년, 끝나지 않았으나 잊혀진 한국 전쟁이 시작된 1950년, 그리고 어쩌면 그보다 더 일찍, 일본군 위안부 징발과 함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이들 진입점 자체가 양공주라는 영적 힘을 가진 인물이 어떻게 트라우마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그 자신의 삭제를 통해 한인 디아스포라의 무의식에 어떻게 침투하게 되었는지, 개인적 트라우마가 제국주의와 국가주의에 의한 역사적, 공동체적 트라우마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암시한다. 그리고 이 책은 그 트라우마의 해체와 극복을 위한 노력이다.

저자는 이 책을 꽤 고통스럽게 썼다고 한다. '이 책을 쓰는 과정은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한국 내 미군 점령지에 물리적으로 가까이 가는 게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그 뒤에 나는 고통과 친구가 되었고 이후 작업을 하는 동안 그 고통을 길잡이 삼아 수차례 한국을 방문해서 내 정신과 DNA 속에 살아있는 역사에 대한 경의를 표했다.'

책은 오래 전에 지어진 책이다. 미국에서 책이 출간된 후 15년이 지나서 2025년 말에 한국어판이 나왔다. 저자의 한국어판 서문에 의하면 2022년 대법원은 한국 정부가 미군의 포주 역할을 하며 '치료 시설'에서 여성들을 가두고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했다고 주장한 전직 기지촌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2024년 여름, 활동가들은 한국에 마지막으로 남은 몽키 하우스(치료를 받은 여성들이 원숭이처럼 늘어졌기 때문에 붙은 별명)를 한미 동맹이라는 미명하에 학대 당한 여성들을 기리는 기념물로 보존하기 위해 동두천에서 천막 농성을 시작했다. 그리고 저자가 서문을 쓰는 시점까지 343일째 최전선에서 몸을 던지고 있다. 기억은 잊혀졌지만 삭제당하지 않는다. 유령은 대한민국에서도 배회하고 있다.

저자 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이 책을 제법 힘들게 읽었다. 내용의 역사성이 나를 아프게 만들기도 했지만, 저자의 글쓰기 방식도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책의 말미에 달린 해제는 '책을 구성하는 다섯 장은 일관되지 않은 서술에 따라 각기 다른 목소리와 서사들이 겹치고 서로 다른 장르적 형식이 뒤섞이면서 다층적이며 다중적인 글들의 겹을 만들어낸다.'고 표현한다.

그리하여 심층적이고 다층적이고 예리하고 역사적이고 해체적인 이야기가, 어휘는 학문적이고, 문장은 현학적이고, 서술은 연극적이고, 인용은 넘쳐나고, 동어는 반복되고, 은유는 과하고, 수사는 장황하다. 무식한 나에게는 그렇다.

어쩌면 그것은 다층적이면서 상충되는 여러 겹의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파편과 반복으로 엮어내는 실험적 글쓰기 방식'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덕분에 나는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하나의 고정적인 생각이 아니라 매 문장마다, 매 단락마다, 매 챕터마다 달라지는 파편 같은 생각을.

책을 끝까지 읽었지만 여전히 많은 것들이 미진하게 느껴진다. 나는 저자가 말하는 많은 것들을 알아듣지 못한 채, 이해하지 못한 채, 비껴가고 넘어갔다. 대신에 저자가 말하는 것들을 전체적인 맥락에서 직관적으로 느꼈다.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볼까 생각했지만, 지금 다시 읽어봤자 여전히 힘들고 애매할 거라는 것을 안다.

이 책을 다시 읽는 건, 내가 더 유식해진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언제 이 책을 다시 읽을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이대로 잊어버리기에는 아까운 책이다. 이 파편적이고 반복적인 이야기는 무지한, 아니면 무관심한 나를 자꾸만 밀어붙인다. 생각하라고. 그것이 이 책이 나에게 가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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