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의 역사 - 설탕 알갱이 한 알에 담긴 달콤한 ‘야만’을 넘어서
이성규 지음 / 우물이있는집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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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젠틀맨'이라는 말은 '젠트리'라는 계급에서 비롯된 말이다. 젠트리는 귀족보다는 한 단계 낮았지만, 막대한 토지와 경제력을 소유한 상류층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 젠트맨들은 많은 경우 노예 무역상이었다. 영국에서는 인자하고 자선을 베푸는 신사들이 식민지에서는 노예들을 착취하는 대농장의 주인이었다. 이들은 설턍과 노예의 삼각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
유럽 선뱍들은 아프리카에서 노예라는 '화물'을 싣고 브라질이나 아메리카의 설탕 농장으로 향했다. 노예를 팔고 그 돈으로 설탕을 사서 리버풀, 리스본, 런던으로 와서 판매했다. 그리고 나서 의류나 면직물을 싣고 아프리카로 향했다.이들은 매 항해마다 돈을 벌었고, 노예 무역으로 이룬 막대한 부는 산업 혁명의 초석이 되었다.
설탕의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영국인들은 설탕에 중독되었다. 영국인의 1인당 설탕 소비량은 1700년 4 파운드에서 1890년 90 파운드로 증가했다. 그들은 설탕을 듬뿍 넣은 차를 마셨고, '커피하우스'가 생겨났다. 대화와 토론의 장소였던 커피하우스를 통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싹텄다. 또한 커피하우스는 증권거래소의 역할을 하여 로이드 보험사 같은 금융 회사들의 산실이 되었다.

설탕이 영국에서 산업 혁명의 밑거름이었다면,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의 밑거름이었다. 일본이 설탕 생산 기술을 습득하면서 사츠마 번 지역 중심으로 생산이 이루어졌다. 설탕 산업을 통해 막대한 세수를 확보한 사츠마 번은 군사력을 키우고 근대 공업의 기반을 조성할 수 있었다. 결국 사츠마 번이 막부를 쓰러뜨리면서 메이지 유신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는 정반대의 현실이 펼쳐졌다. 서부 아프리카 연안의 권력자들은 젊은 남성들을 카리브해나 아메리카의 식민지로 팔아치웠다. 이렇게 팔려간 노예들은 그야말로 참혹한 삶을 살아야 했으며, 그들을 팔아치운 권력자들 역시 결국에는 자신의 모든 부와 권력을 잃고 서구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된다.
흑인 노예들이 탑승했던 노예선은 지옥 그 자체였다. 노예들은 철저한 화물로 여겨졌다. 이들은 수심보다 낮아 춥고 축축한 배의 밑바닥에서 다른 노예들 사이에 끼여있었다. 길이는 1.5m, 폭은 28cm 정도의 공간에서 사슬에 묶여 숨 쉬기도 어려운 상태에서 몇 개월을 지내야 했다. 결국 노예들에게 병이 돌았고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흑인들은 설탕 농장의 노예로 투입되었다. 설탕 플랜테이션의 삶은 말 그대로 참혹했고, 이를 견디다 못한 노예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노예들은 사탕수수 원액이 펄펄 끓고 있는 솥으로 뛰어들거나 나무와 문에 목을 매달았다. 이들은 죽으면 영혼이 아프리카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설탕 생산이 가져다 주는 막대한 이익 때문에 카리브해 연안의 식민지들은 오직 사탕수수 생산을 위한 기지로 전락해 버렸다. 이러한 한 가지 작물에만 몰입하는 농업 형태를 '모노컬처'라고 부르는데, 이로 인한 폐해는 식민지 국가에 오래도록 싶은 상처를 남겼고, 이들 국가들은 현재까지 빈곤과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21세기 들어 '젠틀맨'들이 노예무역을 통해 얻은 막대한 부의 정당성에 의문을 표하며 배상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카리브해 연안 15개국으로 구성된 '카리콤'이 노예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영국, 프랑스,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등을 대상으로 2014년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현재까지도 진행중이다. 유대인 홀로코스트에는 손해 배상금이 지급되었지만, 흑인 노예 무역에 대한 배상금은 어느 누구도 지급하지 않았다.

많은 흑인 노예들은 잔혹한 삶을 다양한 방법으로 거부하고 투쟁해왔다. 자메이카에서는 탈출한 노예들이 모여 '마룬' 공동체를 구성하여 서구 제국주의 세력과 싸웠다. 영국은 끝내 마룬 빌리지를 토벌하지 못하고 평화협정을 맺는다.

프랑스 식민지 아이티에서는 흑인 노예들의 독립 혁명이 일어나 독립을 쟁취하고, 최초의 흑인 공화국 아이티가 탄생한다. 그러나 사탕수수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던 아이티 공화국은 서구 열강들에 봉쇄되어 기아에 시달리다 결국 프랑스에게 1억 5천만 프랑의 '독립배상금'을 약속하고 외교 관계를 복원한다. 노예무역과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아이티가 프랑스에 배상금을 지급 받는 대신, 프랑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게 된 것이다. 아이티는 지금까지도 이 거액의 배상금으로 인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사탕수수가 백인 농장주와 흑인 노예들하고만 연관되는 남의 얘기는 아니다. 사탕수수는 우리 하고도 연결점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의 최초 미국 이민자들이 1902년 제물포항에서 출발한 하와이 사탕수수 노동자들이다. 첫 이민을 시작으로 1905년까지 단기간에 7,000명에 이르는 조선인들이 하와이로 왔다. 이들 중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을 한 사람의 숫자는 약 5,000명이었다. 어린 아이들과 환자들을 빼고 나면 거의 모두였다.

이들 사탕수수 노동자들의 삶은 만만치 않았다.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의 참상이 이곳에서 그대로 재현되었다. 가혹한 노동조건 때문에 중국, 일본, 한국 순으로 대규모 이민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많은 이민 노동자들이 학대받거나 고문을 당했으며 수족이 절단되거나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에 죽었다. 아프리카 노예들과 마찬가지로 펄펄 끓는 솥에 뛰어들어 자살한 일도 있었다.

대부분 건장한 젊은 남성인 이들이 하와이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이들의 결혼이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결국 전문 브로커를 통해 오로지 신랑의 사진 하나만 들고 신부들이 태평양을 건너왔다. 이른바 '사진 신부'들이다.

사진 신부들은 교회를 통해 신식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많았다. 이들은 새로운 나라에 대한 환상을 품고 배를 탔지만, 그들을 불러들인 남편들은 나이가 너무 많았고, 평생 중노동에 시달린 사람들이어서 거칠고 억셌다. 그들의 환상은 참혹하게 깨어졌다. 이혼을 하는 경우도 많았고, 나이 차이 때문에 남자들이 일찍 죽는 경우도 많았다.

한국인 사진 신부들의 삶은 이처럼 각박했지만, 놀랍게도 그들은 조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하와이의 여성들은 1908년 '신명 부인회'를 시작으로 여러 단체를 만들어 활동했는데 1919년 3.1 운동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자 '부인 구제회'를 새롭게 출범시켰다. 이 조직을 통해 모금을 하고, 옷을 만들어 팔아 모은 자금까지 더해서 상해 임시 정부와 만주 독립군을 후원했다. 이들이 하와이에서 만든 독립 선언서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설탕은 생각해보면 매우 특별한 물질이다. 공장에서 정제된 설탕은 순도가 거의 100퍼센트에 가까울 정도로 순수하고, 눈부시게 하얗다. 형태도 균일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달콤'하다.

하지만 이런 매력적인 이미지 뒤편에는 잔혹한 대비가 자리한다. 흑인들은 납치, 강제 이주, 감금, 폭행, 살인을 겪는다. 백인들은 설탕 공예와 커피, 차와 같은 음식 문화를 넘어 민주주의와 산업혁명을 이루고 그 달콤함을 만끽한다. 이보다 더한 대비가 있을까.

설탕의 역사는 우리에게 착취와 폭력 그리고 획일성이 지배해온 '야만의 역사'를 보여주었다. 이제 우리는 설탕 알갱이 한 알에 담김 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착취와 폭력에 기대지 않는 새로운 문명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이 책 '설탕의 제국'은 부산 MBC의 PD가 지은 책이다. 자신이 수년을 준비하여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기반으로 펴낸 책이다. 저자는 '설탕'을 매개로 젠틀맨과 노예와 해적을 잇는 대하드라마를 만들고자 했다.

그가 제작한 다큐멘터리는 모르겠지만, 이 책이 그러한 의도를 충분히 살린 것 같지는 않다. 저자는 젠틀맨의 우아한 교양과 친절, 그 이면에서 1천만 명의 노예가 흘린 피땀, 그리고 이 사이에서 저항하는 해적을 그리고 싶어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저항하는 해적'이라는 설정은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작가는 '저항하는 해적의 이미지를 '마룬'과 '사략'에 투영한다. 탈출 노예의 공동체인 마룬이 저항을 상징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자유 공동체였던 마룬과 해적의 연관성을 나는 모르겠다.

반면 사략(私掠)은 해적 맞다. 이들은 국가에게 허가 받은 해적이다. 그러나 이들이 저항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이들은 사략선으로 약탈한 재물을 국가와 나누었다. 이들은 저항자라기 보다는 차라리 약탈자 아니었나?

당시 해적은 민주적인 공동체를 이루어 활동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설탕이나 아프리카 노예와 연관되어 보여주는 해적의 저항성은 미흡하다.

그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충분히 읽어볼 만 하다. 설탕을 통해 '달콤한 야만'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제국의 풍요롭고 우아하고 멋진 문화와 삶과 철학이 식민지 노예들의 피와 죽음을 밑거름으로 태어난 열매임을 알려준다. 그 풍성하고 찬란한 열매가 그들만의 것이 아님을, 인류의 양심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음을 이 책은 넌지시 알려준다.

게다가 이 책은 가독성이 뛰어나다. 다큐멘터리를 기반으로 만든 책 답게 깊고 복잡하게 얘기를 끌어가지 않는다. 목청을 높이지도 않는다. 세상을 담아낸 카메라의 메모리를 문장으로 풀어낼 뿐이다. 차분하고 담담하게 설탕이 흘러온 길을 흩는다.

게다가 텍스트로 부족하다면 영상이 기다리고 있다. 유튜브에서 '설탕의 제국'을 검색하면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다. 이 얼마나 쉽고 편안한 역사 입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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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만나는 아즈텍 신화 - 국내 최초 나우아틀어 원전 기반 아즈텍 제국의 신화와 전설 드디어 시리즈 9
카밀라 타운센드 지음, 진정성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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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멕시코 중부 지역에 존재했던 '아즈텍 문명'은 인간을 제물로 바쳐서 신을 찬양하고 기렸던 잔혹한 문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일부만 진실이다. 이는 아즈텍을 정복한 스페인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야기다. 스페인 침략자들은 정복을 정당화하기 위해 메쉬카를 비롯한 원주민 종족을 극도로 야만적이게 묘사했다.

이 책의 저자이며, 아메리카 원주민 역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인 '카밀라 타운센드'는 아즈텍 원주민들의 언어인 '나우아틀어' 문헌과 기록을 해독하여, 스페인 침략자들의 왜곡된 이야기가 아니라 아즈텍 원주민 자신들이 직접 쓴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이 책은 아즈텍이 식민지가 되기 이전에 전해지던 구전의 일부를 옮겨적은 나우아틀어 원전과, 잃어버린 전통에 대한 메쉬카 원주민의 고찰이 담진 자료를 기반으로 쓰여졌다. 이 책에서 지칭하는 '아즈텍'은 멕시코 중부에 거주했던, 나우아틀어를 쓰는 모든 종족을 가리킨다.



아즈텍 사람들은 종족의 주권과 유대를 중시했다. 이들은 작은 종족 단위로 공동체를 이루어 살았고, 작은 공동체가 모여 큰 공동체를 형성했다. 각 종족은 자치권을 누리는 동시에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어 평화롭게 공존했다. 아즈텍인에게 가장 중요한 공동체 단위는 '알테페틀'이었데, 이들은 구성원들의 의향에 따라 더 작게 나눠지기도 하고, 때로는 더 큰 공동체를 구성하는 등 유동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아즈텍인들은 1년의 달력 '시우포우알리'와 요일의 달력 '토날포우알리' 두 가지를 함께 사용했다. 그들에게 오늘의 세상은 이미 네 번 파괴되고 새롭게 탄생한 다섯 번째 태양의 시대이다.



아즈텍인들에게 신은 유한하고 변화무쌍한 존재이다. 그들에게 신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았다. 신성은 거대한 자연처럼 서로 뒤섞이고 어울리는 개념이었다. 예측하지 못한 변화와 혼란, 모든 인간이 의존하는 풍요로운 땅,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의 삶에 변화를 가져다 주는 창조력이 신의 섭리였다.



다른 문화권의 신화와 전설과 마찬가지로 아즈텍의 신화에서도 신들은 인간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고, 때로는 인간 사회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심지어 신은 영적 존재가 아니라 먼 과거에 실존했던 태초의 인간 중 하나일 뿐이기도 하다.

아즈텍인은 지상에서의 삶이 영원한 우주로부터 '빌려온' 것이기에 귀하고 소중하게 여겼다. 한편 그들은 인간이 동물을 기르고 그 목숨을 취해 고기를 얻는 것처럼, 인간의 생명을 희생해 신에게 그 육신을 바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즈텍 신화속 유명한 신들은 몸소 자기 희생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인간은 신처럼 용감한 존재가 아니었기에 아즈텍인들은 적들과 포로의 생명을 대신 바치는 방식을 택했다. 전투에서 승리한 뒤 적군을 희생시키는 것은 *메소아메리카 전역에 널리 퍼진 관습이었다.
* 메소아메리카 : 멕시코 중남부와 중앙아메리카 북서부 지역의 문명권을 통틀어 일컫는 말.(나무위키)



메소아메리카 여러 부족에게 죽음은 머나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살면서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되는 운명과 같았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피하기보다, 그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노래를 지어 불렀다. 살아남은 이들은 망자를 기억하며 4년간 기도하고 노래했다. 망자가 죽음의 땅인 믹틀란에 도달하기까지 4년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메쉬카족은 아즈텍 제국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가장 중요한 종족이다. 이들은 북쪽에서 내려와 정착하고, 치치메카족과 오랜 시간 동맹 관계를 맺으며 멕시코 분지에 도시국가 '테노츠티틀란'을 세웠다.



아즈텍 신화와 전설을 보면 생존을 위한 싸움과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이때 혼인 동맹과 결혼은 전쟁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아즈텍 제국에서 여성들은 사회적, 정치적 활동에 참여하며 능동적인 삶을 살았다.


아즈텍 설화는 메쉬카가 12세기 초 테노츠티틀란에 정착하여 16세기 초반 스페인 제국주의에 무너지기까지의 고난과 역경, 영광을 모두 보여준다.


아즈텍 사람들은 신을 받들었지만, 때로는 신에 저항하기도 했다. 영적으로 강력한 사람인 나우알리(마법사), 점성술사를 비롯한 전문가들인 틀라마티니, 티시틀(의사), 토날포우카(점쟁이), 틀라마카스키(제관) 등이 신과 소통하는 직업이었다. 이들은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었다.

아즈텍 제국의 인신 공양 풍습은 처음에는 신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한 제물로 시작되었지만, 나중에는 이웃 종족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한 책략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면서 점점 더 잔혹해졌다. 거기에 스페인 정복자들는 자신들의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인신 공양의 규모나 잔혹성을 지나치게 부풀려 악마화하였다.

그러나 아즈텍인들도 오늘날 우리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춤추고 노래하고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축제를 즐겼다. 희생제의 때면 관중들은 엄숙하게 희생자의 넋을 기리며 장엄한 춤을 추었다.

스페인 사람들이 멕시코에 정착하여 원주민들과 섞여 살기 시작하면서, 멕시코 원주민들은 서로 다른 두 종교, 아즈텍 종교와 유럽 가톨릭이 뒤섞여 공존하는 종교 생활을 시작하였다. * 원주민들이 '에르난 코르테스'를 돌아온 케찰코아 신으로 여겨 숭배했다는 이야기는 유럽의 식민주의적 상상력이 반영된 오류이다. 흰 얼굴의 신은 나우아틀어 원전이나 아즈텍 기록에 있었던 내용이 아니라, 스페인의 아즈텍 정복 이후에 기록된 내용이다. 원주민들이 가톨릭을 받아들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멕시코 중부 원주민들은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이면서도 옛 믿음을 굳건히 간직했다. 이들은 가톨릭 교리를 믿으면서도 지상에서의 삶이 소중하며 죽은 이들이 계속 살아 있게 하려면 의미 있는 방식으로 기억해야 한다는 아즈텍 신앙의 중심 사상도 잊지 않았다. 멕시코의 전통 신앙이 잘 드러나는 기념일이 바로 '죽은 자들의 날'이다.

스페인의 지배 이후 수 세기 동안 멕시코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문화와 언어를 보존하고, 심지어 되살리고자 노력해왔다. 멕시코의 나우아틀어 사용 인구는 현재 150만 명을 웃돌고 있고, 오늘날 메쉬카의 후손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계속해서 문화와 전통을 보존하고 있다.

멕시코 학자 에두아르도 델라크루즈는 나우아틀어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연구자이자 운동가, 작가이다. 그는 2016년 나우아틀어를 영어가 아니라 나우아틀어로 풀이하는 사전을 완성했다.

세계 곳곳에서 점점 설 곳을 잃거나 희미해져 가는 소수 민족의 문화를 보존하는 일은 인류 전체의 다양성을 보존하는 동시에, 자국 문화를 더 넓은 관점에서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모든 문화는 저마다의 독특한 특성과 의미, 지혜를 간직하고 있다. 다른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사고방식을 넓히고, 세계관을 확장해준다.

멕시코 선주민들이 침략자 코르테스를 신으로 여겼다는 이야기를 나는 '라틴아메리카의 열린 혈맥'이라는 책에서 접했다. 서구 제국주의의 라틴 아메리카 착취를 통렬히 고발한 이 책은1971년 출간된 책인데,. 국내에서는 '수탈된 대지'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금서 목록에 올랐다고 한다. '라틴아메리카의 열린 혈맥'이라는 이름은 2025년에 50주년 특별 스페인어 완역본으로 재출간되면서 붙여진 제목이다.

"목테수마는 케찰코아틀 신이 돌아왔다고 믿었다. 그 조금 전에 케찰코아틀 신의 귀환을 알리는 여덟 가지 전조가 있었다. (...) 그 신은 백인이고 수염이 많았다. 잉카의 양성 신인 우이라코차도 백인이고 수염이 많았다. 그리고 동쪽은 마야의 영웅적인 선조들의 출생지였다."(43쪽)

제국주의의 수탈을 고발한 이 책 때문에 우루과이에서 추방까지 당했다는 좌파 지식인 마저 '백인 신 코르테스' 얘기를 믿었던 것을 보면, 당시에는 이 얘기가 정설이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2020년 국내 출판된 '피와 불 속에서 피어난 라틴아메리카'(졸 찰스 채스틴 지음)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난 수 세기에 걸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코르테스는 곧 강림할 것으로 예언되어 있는 백색 피부의 신 케찰코아틀일 것으로 추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닌 것 같다. 에스파냐인들이 도착하고도 몇 십 년이 지나서야 생겨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미 수없이 되풀이되기는 했지만, 이제라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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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산업 - 홀로코스트를 초대형 돈벌이로 만든 자들은 누구인가?
노르만 핀켈슈타인 지음, 신현승 옮김 / 한겨레출판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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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Holocaust)는 '인간이나 동물을 대량으로 태워 죽이거나 대학살하는 행위'를 뜻한다. 그러나 오늘날 홀로코스트는 2차 대전 중 나치 독일이 저지른 600만명의 유대인 대학살만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통용된다. 그리고 이제 홀로코스트는 산업이다. 그리고 동시에 무기이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는 원래 유대인 게토와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 전쟁 종결 후 대략 10만 명 정도였다. 그러나 2000년 이스라엘 총리부에서는 '살아 있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거의 100만 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생존자가 줄어드는 대신 오히려 크게 늘어난 것은 생존자가 많을 수록 요구할 수 있는 배상 금액이 커지기 때문이다. 1951년 각종 유대인 단체들에 의해 설립된 유대인 보상청구연맹은 독일과 대략 600억 달러의 배상금을 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그 돈은 대부분 생존자에게 돌아가기 보다는 보상청구연맹의 관련자들에게 돌아갔다.

실제 강제수용소 생존자였던 저자의 어머니는 3,500 달러를 받았다. 저자의 어머니가 나치 박해에 시달리며 6년간 고생한 대가는 보상청구연맹 사무총장 사울 케이건의 12일치, 홀로코스트시대보험청구국제위원회 로렌스 이글버거 의장의 4일치, 홀로코스트 소송을 중재한 알폰스 다마토 전 뉴욕 주 상원의원의 10시간치 보수에 불과하다.

1990년대 들어 홀로코스트 산업은 노골적인 갈취자로 나서고 있다. 홀로코스트 산업은 홀로코스트 시대의 유럽 전역의 유대인 재산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1998년 7월 집단 소송을 통해 스위스 은행들에게 스위스 은행에 예치된 홀로코스트 휴면계좌에 대한 배상금으로 12억 5천만 달러를 받기로 합의한다.

이들이 이렇게 커다란 돈을 받게 된 것은 미국 대통령과 의회와 언론을 동원한 피해 부풀리기, 얼토당토않은 비방, 경제적 보이콧 위협, 여론 조작 덕분이었다. 그러나 유대인을 위해 스위스 은행에 지속적인 압력을 가해온 미국은 자신들이 저지른 아메리카 선주민 학살이나 아프리카 노예제에 대한 배상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이들은 미국 은행이나 이스라엘 은행에 예치된 홀로코스트 휴면계좌에 대해서는 모른 척 한다.

홀로코스트 산업은 스위스와 조정안을 성사시킨 후 독일의 민영 산업에 대해 200억 달러의 배상금을 요구하며 동일한 성공 전략을 전개했다. 결국 독일인들은 막대한 배상금 요구에 굴복했다. 그러나 보상청구연맹은 그 돈을 희생자가 아니라 다양한 특별 프로젝트에 사용했다. 스위스와 독일에서 성공한 보상청구연맹은 미국의 경제 제재라는 철권을 배경으로 동유럽과 오스트리아를 향한 갈취를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홀로코스트 배상 운동 시기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임기와 일치한다. 그의 선거자금의 절반은 유대인의 돈이었다. 영향력 있는 미국의 유대인 단체 및 개인들과 보조를 맞추었던 클린턴 행정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의 재산을 갈취한 것으로 여겨지는 유럽 각국으로부터 수십억 달러를 짜냈다. 그러나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에게는 쥐꼬리만한 금액을, 그것도 최대한 늦게 지급했다. 홀로코스트 배상 운동은 사실상 유럽 각국과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에 대한 '이중의 갈취'였다.

홀로코스트 산업은 1967년 6월의 아랍-이스라엘 전쟁 이후 탄생했다. 이른바 6일 전쟁에서 보여준 이스라엘의 압도적인 무력에 깊은 인상을 받은 미국은 이스라엘을 중동의 대리인으로 격상시킨다. 미국 주류 사회의 편입 만을 노리고 있었던 미국의 유대인 엘리트들은 이스라엘과 미국의 동맹 강화에 전력을 기울이고, 그동안 외면했던 나치 홀로코스트를 기억에서 다시 살려낸다.

이데올로기적으로 재무장된 홀로코스트는 이스라엘에게도, 미국의 유대인 엘리트들에게도 완벽한 무기가 되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침략 전쟁에 대한 비난도, 유대인 엘리트들의 계급 이익 보호를 위한 보수 정책에 대한 반대도 모두 반유대주의로 몰아세웠고, 이제 홀로코스트는 유대인에 대한 모든 비판을 불법화시키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미국의 상위 집단으로 성장한 유대인들은 나치 홀로코스트를 인류 역사상 견줄 데 없는 유일무이한 사건으로 만들었다. 홀로코스트가 유일한 것은 유대인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존재론적으로 특별하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는 절대적으로 유일무이한 역사적 사건이고, 이는 유대인에 대한 천년에 걸친 이교도의 끊임없는 증오의 결정판이다.

역시 나치가 저지른 50만 명의 집시 대학살과 수백만 명의 폴란드인 대학살은 홀로코스트가 아니다. 최소 수천 만 명 이상이 죽어간 아메리카 선주민 대학살도, 콩고에서 레오폴드 2세에 의해 죽어간 1천만 명의 아프리카인 대학살도,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저질러진 아시아 주민 학살도, 크메르 루즈의 킬링 필드도, 르완다의 제노사이드도 홀로코스트가 아니다.

미국에서 홀로코스트 관련 단체들은 100개를 상회하고, 일곱 개의 대형 홀로코스트 박물관이 있다. 그러나 미국 흑인 노예나 아메리카 선주민의 멸망을 기념하는 박물관은 전무하다. 총 17개 주에서 홀로코스트 프로그램을 교과목으로 지시하거나 추천하고 있으며, 많은 대학교들이 홀로코스트 강좌를 개설하고 있고, <뉴욕 타임스>에는 거의 매주 홀로코스트 관련 기사가 게재되고, 관련 학술 논문은 1만 편 이상이다. 반면 콩고에서 유럽 국가들에 의해 죽어간 1천만 명의 아프리카인에 관련된 학술 논문은 한 권 뿐이다.

미국은 해외에서 드러난 범죄 행위들을 부각시키기 위해 홀로코스트를 환기시킨다. 미국은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즈 대학살,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코소보에서 세르비아의 인종청소와 같은 적대국의 범죄를 비난하기 위해 홀로코스트를 동원한다. 그러나 미국이 개입된 범죄에는 홀로코소트를 등장시키지 않는다. 미국이 지원하는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대학살은 보도조차 하지 않고, 과레칼라의 마야 원주민 대량학살은 '누명'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홀로코스트 산업의 해부이자 고발장이다. 저자 '노르만 '핀켈슈타인'은 유태인 생존자의 아들이다. 그의 어머니도, 그의 아버지도 나치 강제수용소의 생존자다. 그의 부모를 제외하고 양가의 모든 가족들은 나치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는 홀로코스트 산업이 이스라엘과 미국의 범죄 정책 정당화에 사용되는 것에 분노했기 때문에, 홀로코스트 산업이 유대인이 겪은 고통이 아니라 유대인의 부의 증대에만 기여했기 때문에, 유대인 뿐만 아니라 인류가 겪은 다른 고통에도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이 책을 쓰게 되었다.

나치 홀로코스트의 비정상적인 상태는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둘러싸고 성장한 착취적인 산업에서 기이한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그것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홀로코스트 산업을 중단시키는 것이다. 사망한 자들을 위한 가장 고결한 태도는 그들의 기억을 간직하고 그들의 고통으로부터 배움을 얻으며, 마지막으로 그들을 편히 잠들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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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이중생활
알라 알카이시 지음, 서제인 옮김 / 글항아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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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는 사무치고 문장은 아름답다.

"매번 우리 사이의 거리를 가로지를 수 있는 어조를 찾아내려고 애썼습니다. 그 거리는 단지 지리상의 거리만이 아니라 언어 사이의 거리이기도 하고, 역사 사이의 거리이기도 하며, 말할 수 있는 것과 침묵 속에 전해야 하는 것 사이의 거리이기도 했습니다."

책을 펼치자마자 만난 온유하고 사색적인 문장에 마음이 들떴다. 그 문장은 나의 시야를 확장하고, 사유를 자극할 것을 예고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왠지 한강 작가의 따뜻하고 사려깊은 사유를 연상시켰다. 그렇게 반갑게 읽어가다가 뒤 따르는 글에 나는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이 책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얘기다.
그리고 언어에 대한 얘기다.

굶주림과 폭격과 죽음에 포위된 가자라는 재앙의 세계에서,
언어가 삶을 어떻게 담아내고 있는지,
언어가 영혼을 어떻게 담아두고 있는지를
얘기하는 책이다.

팔레스타인 사람이 아니면 쓸 수 없고,
언어에 삶을 건 사람이 아니면 쓸 수 없는 이야기다.
슬프고 차분하고 사색적이고 절망스러운 그러나 의지어린 목소리로 들려주는
가자의 삶과 언어에 관한 이야기다.

가자의 이야기는 굶주림으로 시작한다. "배고픔은 자신만의 언어를 키워낸다. 조용하게 사람을 갉아먹는 언어를, 그것은 극적으로, 혹은 요란하게 찾아오지 않는다. 그보다는 몸과 마음에 스며들어 둘 다 흐물흐물해지고, 구부러지고, 닮아 없어지게 만든다. 배고픔은 생각 위에, 기억 위에, 피부의 연약한 껍질 위에 먼지처럼 내려앉는다." 나는 비로소 실존을 알 것 같다.

글을 읽는 내내 먹먹하다. 문장은 연꽃같고, 사유는 선혈같고, 의지는 죽음같다. 나는 경험하지 못했고, 상상하지 못했던 세계 속으로 빠져든다. 배고프고 절박하고 해체되고 무너져가는 멀고 막연하고 흐릿한 세계가 문장으로 새롭게 구성되어 나타난다.

나는 먹먹한 가슴과 뜨거운 눈시울 속에서 감탄한다. 이것이 문장이 만들어내는 세계구나. 이것이 언어가 만들어내는 세계구나. 글이 생명을 얻어 스스로 존재하는 세계구나. 꿈처럼 막연하고 신기루처럼 흐릿한 현실이 사라지고 문장들이 눈에 새겨져 피를 따라 흘러 심장에 스며들고 뇌리에 박힌다. 그렇게 작가의 사유는 내 안에 숨쉬는 세계를 구축하고, 언어가 만들어낸 세계는 나의 현실을 전복한다. 글이 세계가 된다. 갑자기 그동안 읽었던 모든 글들이 허무해진다. 비로소 팔레스타인과 가자는 새로운 현실이 된다.

작가는 가자의 비명을 부르짖는데 나는 글을 얘기한다.
작가는 영혼의 해체를 절규하는데 나는 문학을 얘기한다.
그 괴리가 미안하고 슬프다.

많은 이들이 디아스포라를 말하지만
팔레스타인이야말로 디아스포라다.
가자에 갇혀 있어도,
가자를 떠나 있어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디아스포라다.
이들의 흔적은 언어로 남는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일제 식민 시대를 살아가며
빼앗기고 짓밟히고 끌려가고 죽어가고 저항하고 싸웠을
우리 선조들의 마음을
눈꼽만큼은 짐작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이 책을 읽던 와중에
한 밴드에서 서정주의 친일시에 관한 포스팅을 읽게 되었다.

서정주의 시어가 아름답다고?
서정주의 시가 형이상학적 깊이를 간직하고 있다고?
정말 그런가?

언어라는 것이 삶과 괴리될 수 있는가?
글이라는 것이 영혼과 무관할 수 있는가?
시라는 것이, 문학이라는 것이 그저 글자라는 기호의 조립에 불과한 것인가?
글자를 배치하고 배열하고 조합하면 저절로 글이 되는 것인가?

'글'을 좋아하고, 글에서 의미를 찾는 사람 중의 하나로서,
언어란 무엇인지, 글이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시가 무엇인지, 문학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굳이 대답은 필요 없다.
나는 이 책 '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이중생활'을 읽으면서 그 답을 얻는다.

이 책, '알라 알카이시'라는 팔레스타인의 젊은 번역가가 쓴,
아니 썼다기 보다
굶주림과 슬픔과 고통과 절망과 희망과 의지를
삶과 영혼에 한 줄 한 줄 새겨 놓은
이 글들을 읽으면서,
나는 저절로 알게 된다.
아름다운 글이 어떤 글인지,
깊이를 간직하는 글이 어떤 글인지

이 책은
가자라는 좁고 절망스러운 세계에서
언어가 가지는 의미에 대한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 속에 이미 내 질문에 대한 답이 담겨있다.

굶주린 삶은 언어로 세상을 담고, 해체되는 영혼은 언어로 존재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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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호랑이
네주 시노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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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그 순간은 시간 밖에 있고, 역사의 흐름에서 벗어나 있다. 부조리로 가득 차 있고 의미가 너무 복잡해서 어떤 서술로 그 순간을 설명하고자 해도 그럴 수가 없다."(47쪽)

뭔가 급하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그 말이 너무 많고 정리가 되지 않아 목구멍에 턱 걸리는 바람에 오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급하게 헉헉거리기기만 할 때가 있다. 이 책을 읽은 느낌이 그렇다. 뭔가 말을 쏟아내고 싶고, 무슨 말이든 토해내야 할 것 같은데, 스스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정리도 되지 않아 목에 탁 걸려 있는 그런 느낌. 말을 하려고 하면 할수록 말이 엉키고, 목이 막히는 그런 느낌 말이다.

이 책 '슬픈 호랑이'는 프랑스 작가 '네주 시노'가 지은 책이다. 출판사 책 소개에 의하면 '어릴 적 의붓아버지에게 지속적으로 성적 학대를 당한 저자가 쓴 자전 소설이자, 에세이, 회고록이다. 저자는 증언 문학이 지닌 기존의 문법을 파괴하고, 여러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읽는 이를 단숨에 몰입시키는 서술과 첨예한 지적 통찰이 함께 소용돌이치는 독보적인 작품이다.'

그렇다. 이 책은 어릴 적부터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당해온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펴낸 책이다. 영화나 드라마나 소설이나 뉴스에서 많이 접해온 이야기다. 너무나 자주 접해봤기에 익숙하다고 착각하면서도, 그 내용의 파괴력 때문에 실제로는 눈을 감고 귀를 닫은 우리들이 자칫 진부하고 상투적인 신파로 피해버리는 아동 성폭력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의 비겁하고 무책임한 선입견과 달리 이 책은 뻔하고 반복적인 눈물과 상처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들의 편견과 외면에 무시 당하는 피해자를 빼놓더라도, 이 책은 정해진 답을 향해 달리는 교과서나 참고서가 아니다. 이 책은 문외한이고 방관자이고 구경꾼인 우리가 미처 짐작도 할 수 없고, 상상도 할 수 없는 고민과 사유를 담고 있다. 사회가 피해자에게 바라고 요구하는 정체성을 넘어서는 한 인간으로서의 사색과 사유를 담고 있다. 그러면서 냉철하고 분석적인 시선으로 여러 문학 작품을 넘나든다.

뭔가 많이 떠들고 싶다. 그러나 내가 무슨 말을 떠들든 그것은 다 허공 중에 연기처럼 흩어질 것이다. 내 말은 다 헛소리가 되어 공허하게 부서질 것이다. 그보다는 작가의 말 몇 마디를 직접 소개하는 것이 나으리라. 그리고 떠들 시간에 차라리 작가의 사유를 곱씹고 되새기는 것이 나으리라.

그것이 내가 시작도 모르고, 끝도 모르고, 속도 모르고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얘기를 듣는 올바른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내가 구경꾼을 넘어서 목격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내가 방관자를 넘어서 증인이 될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내가 나 자신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섬뜩한 깨달음을 직시하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단순히 아동 성폭력의 피해자가 아닌 '네주 시노'라는 사람의 '슬픈 호랑이'를 소개하고 싶다.

"강간과 관련된 모든 일은 별도의 차원, 즉 이상한 차원에서 전개된다. 물리적으로는 삶의 나머지 부분이 전개되는 차원과 비슷하지만, 견딜 수 없을 만큼 선명한 또 다른 차원이 거기에 겹쳐진다." (67쪽)

"버지니아 울프가 쓴 대로, 우리가 어떤 사건에 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사건이 진짜 고통에서 떨어져 나와 비현실의 양상으로 있기 때문이다. 그 사건은 언어를 통해서 포착될 때에만 현실이 된다."(117쪽)

"그는 나라는 소녀에게 거부당하는 일을 견딜 수 없었다고 말했다. 내가 자기를 사랑하려 하지 않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고, 성행위야말로 나하고 접속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허위적이고 병적인 변명이었다."(151쪽)

"그들은 자기 자신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아이를 강간한 남자를 변호하기 위해 행했던 그 증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를 돕는다고 해서 그들에게 이익이 될 건 전혀 없었다. 그들은 그 점을 잘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증언에 나섰다"(155쪽)

"요컨대 고소 사건의 10%만이 중죄 재판소나 소년 법원에 공소 제기가 되었고, 강간에 대한 유죄 판결은 지난 10년 동안 4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10% 중의 10%, 실제로 그건 많은 게 아니다. 1백 건의 강간 사건 중에 단 한 건이 판결을 받는다는 뜻이니까 말이다."(194쪽)

"괴물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정상 상태에서 너무나 멀리 벗어나 있기에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고, 자신도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 그것이 괴물이 아닐까? 자기들의 발기된 성기를 자기네 아이들의 몸 속에 넣고, 아무도 듣지 못하도록 아주 작은 목소리로 그들의 귀에 대고 세상에 있는 그 무엇보다 그들을 더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그자들이 바로 괴물이 아닐까?"(207쪽)

"강간은 흔히 성적인 욕구를 참지 못하고 성관계를 강행하는 것으로 표현되지만, 사실은 힘이나 분노의 문제를 표출하기 위해 성행위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강간은 사이비 성행위이고, 성 본능이나 성적 만족과 관계를 맺기 보다 지위, 적의, 통제, 지배와 더 밀접한 관계를 맺은 성적 행동의 총체이다."(214쪽)

"내 의붓 아버지는 바로 그런 식으로 상황을 설명하려 했다. 무언가가 그에게, 우리에게 일어난 것이지, 자기가 뭔가를 하고 싶었다거나 의도적으로 계획한 게 아니라고. 자기는 그런 점에서 피해자라고, 가해자는 자기가 아니라 소녀라고, 자기와 함께 살면서 자기 안에서 그런 기계 장치 같은 게 작동하게 만든 소녀가 가해자라고"(237쪽)

"그들이 강간을 저지르는 것은 그들이 할 수 있기 때문이고, 사회가 그들에게 그 가능성을 주기 때문이며, 사람들이 허락을 했기 때문이다."(248쪽)

"아동에 대한 성적 학대는 한낱 시련이나 살다가 겪는 사고가 아니라, 존재의 근거 자체를 파괴하는 극도의 모욕이다. 한번 피해자가 되면 피해자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한번 피해자는 영원한 피해자인 것이다. 설령 우리가 그 역경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진정으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259쪽)

"강간과 관련해서는 승리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아니 어쩌면 아주 작은 것들이 있을 수는 있다. 서로 가는 길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나는 오로지 신뢰할 수 없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이에, 강간당했고, 모욕당했고, 배신당했다."(339쪽)

" 그 세계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여 있는 세계다. (...) 그 세계의 문턱에 머무는 법을 배우라. 그렇게 도전하라. 우리 운명들의 줄 위로 곡예사들처럼 걸어라. 비틀거릴 수는 있지만,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떨어지지 말라, 떨어지지 말라, 떨어지지 말라"(3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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