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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랜도 ㅣ 머묾 세계문학 자아 3부작
버지니아 울프 지음, 정해영 옮김 / 머묾 / 2026년 6월
평점 :
버니지아 울프의 상상력에 박수를 논리 따위 버리고 뇌 빼고 읽으시죠. “올랜도”/도서제공 머묾에서 보내주셨습니다.
시간선이 혼재되어있는 소설입니다. 장르도 섞여있습니다. 귀족이 나오는 중세판타지인데 요즘 SF스타일이기도 합니다. 저는 ‘성’에 갇힌 시대를 살았던 버지니아 울프가 사회가 여성을 다루는 방식을 비판하여 그것이 잘못된 기준이라고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정절은 여성들의 보석이고 중심적인 장식물이며, 그래서 그들은 필사적으로 그것을 지켜내려 하고, 빼앗길 경우 죽음도 불사한다. 그러나 30년 넘게 남자로 살아왔고 게다가 대사까지 지낸 여자라면 아마 그런 일로 그렇게까지 움찔하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정말 소문대로 여왕을 품에도 안아보았고, 여왕보다는 신분이 낮은 귀족 여인 두어 명도 안아보았으며, 로시나 페피타라는 여자와 결혼까지 한 경험이 있는 여자라면 말이다.”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변한 게 없어.’ 그녀는 일어나서 창가로 가며 생각했다. ‘집도, 정원도 옛날 그대로야. 의자 하나 옮기지 않았고, 자질구레한 장신구 하나 팔지 않았어. 똑같은 산책로, 똑같은 잔디밭, 똑같은 나무들, 똑같은 웅덩이, 그리고 감히 말하건대 그 안에는 똑같은 잉어가 있어. 물론 지금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아니라 빅토리아 여왕이 왕좌에 있지만 무슨 차이가 있겠어...”
사랑을 받는 소년에서, 사랑을 하는 할 줄 아는 남성으로, 다시 상처받은 예술가에서 사랑받는 남성으로, 어느 날 갑자기 여성이 되어 남성으로 이룬 모든 것을 빼앗기고 결혼을 하고 평생 쓰던 시를 완성 한 후 아들을 낳고 나서야 수백 년 동안 이루고 싶었던 시집 출간을 해내고 모든 자아가 통합되는 경험을 한다는 것이 이 소설의 줄거리입니다. 남장과 여장을 오가며 생활하는 것부터가 TS물인데 이걸 그 시대에 쓰셨다니... 놀랍습니다. 게다가 성별이 혼란스러운 캐릭터가 이 작품에서 한명이 아닙니다? 이 장르의 특징이 성별변화를 통해 내적자아와 사회적 위치등을 표현하는 건데 원조가 여기 있었네요. 전개가 굉장히 혼란스러워서 처음 읽으시는 분들은 메모지가 필수인 작품인데 그 귀찮음을 뛰어넘을 정도로 문장이 아름답습니다. 주인공이 시를 쓰는 사람으로 설정된 이유가 이것 때문이 아닌가 싶고요.
“그는 항상 쥐 죽은 듯 고요한 순간에 왔다. 파도가 잔물결을 일으키고, 가을 숲속에서 얼룩얼룩한 나뭇잎이 그녀의 발 위로 천천히 떨어질 때. 표범이 미동도 하지 않고, 달빛이 물 위에 비치고, 하늘과 바다 사이에 어떤 것도 움직이지 않을 때. 그럴 때 그가 왔다.”
가독성이 좋은 편이고 두께에 비해 빨리 읽힙니다. 표지에 남성귀족의 의상과 여성귀족의 의상이 놓여있는 것도 상징적이어서 좋았고요. 고전문학에서 환상적인 신기루를 맛보고 싶다? 그렇다면 이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