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태도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 삶의 태도를 단단하게 만드는 명문장 필사 ㅣ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필사
김한수 지음 / 하늘아래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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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로 하루를 시작한 지 세 달이 넘었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필사 책이 다섯 권이나 된다. 그동안 내게 없었던 일상이다. 글을 써 내려가며 눈길은 물론 몸이, 생각이 글에 머무는 시간을 새로 갖게 됐다.

책이 좋아 출판 편집과 글을 쓰는 김한수의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태도는 질문에서 시작된다>를 필사할 때만큼은 스스로 질문하려고 애쓴다.

'지금의 삶을 어떤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무엇을 당연하게 넘기고 있는지, 무엇을 자주 미루고 있는지, 그리고 오늘의 선택에 얼마나 책임지고 있는지를... (p. 4 들어가는 말)'

나 자신에게 질문하는 일이 낯설고 불편하지만, 그런 정직한 질문인 나의 삶을 단단하게 만든다니 말이다.


강한 사람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사람의 마음이 단단하다. 이런 사람은 엘리너 루스벨트가 말했듯이 '당신의 동의 없이는 그 누구도 당신을 하찮게 만들 수 없다. (p. 13)'

관계 속에서 내 중심을 지킨다면 단단한 관계를 지킬 수 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때 삶을 앞으로 나아간다. 삶의 품위도 쌓아온 성취보다는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달려있다. 이를테면 감사...
'감사는 일어난 일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것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p. 67)'

나답게 살아가는 태도는 어떤 것일까? 함께 살아가는 태도, 시간과 함께하는 성장, 실패와 함께 살아가는 태도, 필사라는 새로운 습관을 내가 지녔듯 습관으로 나를 세우는 태도도 궁금하다. 혼자만의 시간은 어떻게 대해야 할까?

'작은 기쁨과 감사로 삶을 단단하게 세우는 태도는 더 많은 것을 얻기보다 이미 주어진 것을 인식하는 태도, 일상의 사소함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며 자기 삶을 조용히 지탱하는 방식에서 시작된다. (p. 209)'


이 책 속의 많은 글을 쓰며 내게 묻는 질문 끝에 나는 무엇을 얻게 될까. 선뜻 이해할 수 없는 글도 있을 것이고 외우고 외워 간직한고 싶은 글도 있을 것이다. 도저히 질문이 떠오르지 않을 수도 있고.

'이 책이 당신의 하루를 완벽하게 만들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루를 조금 더 정직하게 바라보는 시선은 남겨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p. 227 다시 삶으로 돌아가며... )'

좀 더 이른 나이에 정직한 질문을 하며 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짙게 남지만, 이제부터라도 내게 펼쳐질 삶만큼은 당당하게 결정한 나의 선택들로 쌓아가게 되기를... 필사하며 질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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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층에서 본 거리 - 다섯손가락 이두헌 노래글
이두헌 지음 / 이은북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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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가슴에 꼭 껴안고 다니던 두꺼운 전공 서적의 표지를 훔쳐보며 학과를 알아냈다. 가방이 엄연히 있는데 왜 책은 꼭 가슴에 끼고 다녀야 했는지 모를 시절이었지만, (p. 24)'

여자라도 대학에 치마를 입고 다니지 않던 시절, 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이두헌처럼 가슴에 껴안은 책을 보고 불문학과란 걸 알아냈다. 마침 집이 같은 인천이라서 운이 좋으면 전철에서 만날 때가 있었다. 어느 날 수업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그 학생을 만났다. 쫓아갔다. 같은 역에서 내렸다. 기회란 생각에 다가가 말을 건넨다. 불행하게도 그 학생은 나란 존재를 전혀 몰랐다. 그래서인지 날 보는 표정이... 가관이었다. 냅다 뛰어 도망가 버렸다.

그날이 수요일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보다는 '빨간 원피스'가 더 묘한 기분에 휩싸이게 만든다.


'노래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가 없다면, 듣는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또 하나의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노래를 만든 사람에게도 짧은 이야기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요? (p. 9 프롤로그)'

나와 비슷한 시대를 살아온 이두헌의 노래 이야기는 나를 과거의 이곳저곳으로 데려다 놓았다. 어찌 이리 사연이 많을까? 그래서 그가 만든 노래도 많은가 보다. 노래마다 간직한 사연, 이두헌 정도는 아니지만 그 사연 하나하나마다 나의 사연도 떠올랐다.

이두헌이 <이층에서 본 거리>만큼이나 어두웠던 시대에 청춘을 보냈다. 공부해서 장학금을 받아야 하는데 대학 캠퍼스는 나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최루탄 터지는 광경을 도서관에서 창 너머로 내려다보며 갈등했었다. 검은색도 흰색도 아닌 자신의 회색 삶의 비겁함을 유언장에 남겨놓은 채, 어느 여학생이 학교 건물에서 뛰어내렸다는 뉴스를 들었다. 내 갈등이 비겁함이 부끄러워 군대로 도망쳤다.

'시위가 매일같이 벌어지던 대학 시절, 이층에서 내려다보는 거리는 방관자였던 비겁한 내게 너무나 비참한 풍경이었다. 무자비하고 잔인했던 독재의 시절, 이층 창 어딘가에서 유인물이 뿌려지고, 곧이어 3층에서 또 뿌려졌다. 그렇게 높이를 바꿔가며 알리고 싶었던 진실이 길바닥에 나뒹굴던 시절이었다. (p. 77)' 청춘의 색깔이 회색인 시대를 이두헌과 함께 살았었다.

독재는 내 판단이 의미 없음을 뜻하는 것이다. 풍기 문란으로 삼청교육대에 끌려가던 시절이 그랬다. 어떤 것이 풍기 문란인지는 독재자와 그 하수인들이 결정했다. <전자오락실에서>처럼 금지된 곡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음반은 사전 심의를 거쳤고 음반 마지막 트랙은 건전가요가 차지했다.

'떡볶이와 라면마저 어른들의 잣대에 따라 불온한 것이 되던 시대. 그 와중에 전자오락실은 참 애매한 공간이었다. 새로운 문물이 늘 그렇듯, 금지하려는 자와 금지당하는 자 사이에 아직 암묵적인 법령이 만들어지기 전이었다. (p. 82)' 결정권이 내게 없던 시절에 이두헌과 나는 같은 고민을 하며 지나왔다.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 작은 누님은 교회 꽃꽂이를 도맡았다. 처음 누님이 다니던 꽃집 겸 꽃꽂이학원에 꽃을 가지러 가던 날이 기억난다. 서른 나이에 분위기 있는 여인을 꽃꽂이선생님으로 상상했던 탓인지 좀 설렜다. 펑퍼짐한 몸매의 아줌마가 나를 반겼다. 동생이냐며 <안개꽃> 꽃말을 알려줬다. '고운 마음'. 안개꽃의 꽃말이 많지만 난 '고운 마음' 하나만 기억한다.

'꽃집 주인이 장미 곁에 안개꽃을 끼워 팔기로 한 그 최초의 결심은 누구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일까? (...) 우리는 안개꽃이 일약 스타가 된 시대를 건너왔다. 이유도 없이 안개꽃에 주목을 보내고, 그 가녀린 꽃송이에 찬사의 시를 읊던 이상한 세상이 잠시 도래했었다. 곁에서 조용히 분위기를 완성하는 조연 같은 꽃. 생긴 것답게 꽃말도 '순수'인, 감히 내가 판매량에 일조했다고 믿는 장미의 영원한 무수리. 내게 안개꽃은 그저 고작 그런 꽃이었다. (p. 215)' 안개꽃이 일약 스타가 된 시대도 이두헌과 같이 건너왔다.


이두헌은 에필로그에서 '다 말해 버렸다'고 고백한다. 더 할 말이 없는 건 아마 오늘뿐일 거라며... 각각의 사연 끝 QR에 담긴 이두헌의 노래와 함께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할 말을 다 해버렸다는 말을 듣고 나니... 난 이제야 할 말이 생각난다. 이두헌이 데려다 놓은 나의 과거가 또렷하게 생각나기 시작했다.

'"시시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살아보니 세상엔 그냥 가슴만 아린 그리움이 많았다. (p.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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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광장 - 12.3 계엄부터 탄핵까지 광장을 지킨 사람들
꼴찌PD 지음 / KONG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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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날 달 말, 윤석열이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2024년 12월 3일과 그 이후를 생생한 현장 기록으로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 <란 12.3>이 개봉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 여러 작품을 만든 이명세 감독이 연출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것들을 모아 영상기록으로 남긴 것이 <란 12.>이라면, <어떤, 광장>은 25년 동안 다양한 영상 작업을 해온 1인 미디어 꼴찌PD가 '이름 모를 춤꾼의 발끝과, 길바닥에 주저앉아 시를 읽는 낯선 시인의 입술과, 캔버스 없이 아스팔트 위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손끝을 향해. 발로 뛰고, 눈으로 담고, 가슴으로 기록한 결실 (추천하는 글, 고경일 풍자화가)'이다. 사진과 글로 <어떤, 광장>을 채웠다.

영화 <란 12.>과 <어떤, 광장>은 닮았다. 평범한 시민들이 혁명적인 역사를 만든 사실을 증언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윤석열의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만큼이나 황당한 일은 이듬해 3월 7일 오후 5시 무렵, '윤석열 구속 취소'라는 속보였다. 2024년 12월 14일 토요일 (그날 책 친구 모임이 있어 함께 투표 결과를 지켜봤기에 기억이 생생하다) '가 204표'로 힘겹게 탄핵 통과됐는데,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는 건 아닌지 불안이 커졌다. 공포심마저 들었다. 윤석열이 구속된 지 51일이 지났지만 그 내란 세력은 여전히 죽지 않고 살아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광장에서 차가운 입김과 함께 울려 퍼진 노래, 각자 자기만의 언어와 해학을 담아 만들어 들고나온 깃발들, 남태령 강추위 속에서 밤샘하는 농민들과 청년들을 위해 등장한 난방 버스, 영하의 추위와 눈보라 속에서 은박지를 몸에 두르고 윤석열 체포 촉구 시위를 하던 키세스 군단... 광장을 지켜온 시민들의 노력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12.3 내란의 밤으로부터 1년 5개월이 지난 이 시간,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있다. 내란에 동조했던 자들이 선거 후보자로 등록하는 뻔뻔함을 드러냈다. 정권이 바뀌고 내란을 주도한 자들이 구속됐는데도 내란 세력을 여전히 그다음을 모색하고 있다.

윤석열 구속 취소 후 2025년 4월 4일 탄핵 결정 나기까지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뉴스 검색을 하며 얼마나 마음 졸이며 지냈었나. 하루하루 불안한 일상에서 벗어나, 시인과 촌장의 <풍경> 속 노랫말처럼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을 되찾기를 얼마나 소망했었나.


<어떤, 광장> 속 글과 사진을 읽으며 머릿속 깊숙이 저장돼 그동안 잊고 지냈던 장면을 하나씩 꺼내보았다. 기억하고 또 기억해 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기억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기록해야 한다. 영화로 책으로 모든 것을 동원해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2026년 2월 중순, 12.3 계엄을 막아낸 대한민국 시민들이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기록한 것은 단순한 영상과 메모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했던 고귀한 시민들의 시간이었다는 사실을. 그 깨달음은 나에게 깊은 자부심으로 다가왔다. (에필로그)'

노벨평화상이 수상이 기록의 마무리가 되려나? 여기저기 기록으로 남겨놓아야만 기억하고 또 기억해 낼 수 있다.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역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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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거래소 ㅣ 루프테일 소설선
나희정 지음 / 루프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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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기술은 언제나 인간을 위협했다. 위험에서 벗어나려면 그 기술을 통제하는 방법을 생각해 내야만 했다. 마차가 다니던 길에 자동차가 등장했을 때도 위험했다. 신호등을 통제 방법으로 생각해 내 위험을 줄였다.

하루가 다르게 AI 기술이 발전한다. 몇 달 사이에 불가능했던 것이 가능해질 정도로 AI는 빠르게 진화한다. 전쟁에 AI가 등장하면서부터 인류는 AI에게 위협을 느꼈다. 이렇게 하라고 명령하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라면 하면 저렇게 하던 AI를 이젠 AI 스스로 뭘 할지 궁금해하며 쳐다보는 시대가 됐다.


'감정거래소 광고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하루 10분, 감정 추출 센터에서 당신의 감정을 자산으로 바꾸세요. 평온은 더 깊어지고, 기쁨은 더 단단해지며, 슬픔조차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됩니다." (p. 9)'

2026년 서울, 2035년에 개발된 인간 감정을 추출하는 'E-익스트랙션 E-extraction' 기술이 상용화되면서부터 사람들은 더 이상 가슴속에 감정을 담아두지 않고 거래했다. 천재 엔지니어 강혜린이 감정거래소를 만들 때 같이 탄생한 AI 노바가 감정 등급을 매기고 분류했다.

'A등급: 평온, 희망, 열정 - 보존 대상
B등급: 기쁨, 슬픔 - 거래 가능
C등급: 분노, 불안, 절망 - 폐기 대상 (p. 166)'

강혜린의 아들 도윤은 폐기 대상 감정인 분노만을 만든다. 값싼 분노를 되풀이해 팔면서 삶을 지탱했다. 한편 한이수는 평온을 만든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자신을 위해 평온을 만든 적은 없다. 그 평온은 언제나 정해진 주인에게 팔렸다.


KAIST 출신 변호사 나희정은 소설을 통해 감정이 화폐가 된 미래 사회를 보여준다. 감정이 계급이 된 디스토피아다. 자신의 감정을 팔고 타인의 감정을 산다. 부정적인 감정은 폐기하고 긍정적인 감정만 남아있을 때 언뜻 다들 행복하게 평온해 보이지만 분노가 없는 건, 삶의 적이다.

'"체념하면 편해. 적응하고, 포기하고, 또 굴복하면 편하잖아. 그래, 나는 편했어."
그는 잠시 말을 삼켰다가, 다시 천천히 꺼내놓았다.
"분노라는 감정은, 무언가를 바꾸고 싶어서 생기는 감정이더라. 불편함을 느껴야 하고, 그래서 살겠다고 목소리를 내야 세상이 바뀌는 거였어. 분노를 잃어버리고 나니까 그걸 알았어. (p. 127)'

분노는 부당함에 대한 화다. 그뿐만 아니라 분노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관계의 문제다. 관계가 끊어지거나 어려운 처지로 내몰렸을 때 분노한다. '나 좀 살려주세요' '당신과 연결되고 싶어요'라는 격한 반응인 셈이다.

인간 감정의 가치를 판단하는 AI 노바를 보면서 강혜린은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한다. 그래서 아들 도윤의 감정 데이터를 조작한다. 분노를 생성하도록, 그 분노를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프로그래밍한다.

카를 융은 '어둠을 인식하지 못하는 자는 빛도 인식할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감정의 세계도 같은 이치다.

불안과 기쁨, 분노와 평온... 모든 감정이 살아나 공명을 이뤄내 감정을 더 이상 분류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서야, 사람들 각자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나누며 살아가는 세상을 되찾았다. 무지개처럼 오색의 온갖 색깔의 감정이 살아있는 세상이다.


AI와 달리 인간과 맞먹는 아니 뛰어넘는 지능으로 스스로 학습하고 추론하는 AGI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제까지 그래왔듯이 또 새로운 기술이 인간을 위협한다.

AGI를 통제하는 방법으로 엄마처럼 인간을 보살피는 존재로 AI를 학습하는 걸 시도하고 있다는 뉴스를 들었다. 왜 엄마일까? 엄마만 가진 다양한 감정 때문이 아닐까? 사랑하고, 때론 혼내고, 기뻐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엄마와 아이 사이에서만 생기는 여러 감정, 그 감정만이 해답이란 생각 때문이 아닐까?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
저는 오래 감정을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감정을 길들이려 했습니다. 정원의 잡초를 뽑아내듯, 불필요한 것들을 잘라내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뽑아도 뽑아도 다시 돋아났습니다.
그러다 마지막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뽑아내려 한 것들은 모두, 각자의 정원에서 피어난 꽃들이었습니다.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세요. 당신의 모든 감정은 당신이고, 당신의 것입니다. 느끼세요. 온전히. 진실하게. 그것이 인간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p. 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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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절사회 - 손익계산이 되어버린 인간관계, 연결 불가능성의 시대에 관한 탐구
이승연 지음 / 어크로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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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국무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요새 소풍도 수학여행도 안 간다는데 안전사고 날까 하는 위험과 그 관리 책임을 묻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냐'라고 물으면서 '구더기 생길까 장독을 없애면 안 된다. 수학여행은 평생 기억으로 남고 배운 것도 많았다'라고 말했다.

요즘 학교에서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는 사법화돼있다. 뭐든 법적으로 해결하려 한다. 소풍이나 수학여행 중 사고가 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대한 형사 책임을 교사에게 묻는 판결이 잇따르다 보니 각종 행사를 폐지하는 학교가 늘어난다고 한다.

미국의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는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공간을 휴식과 사생활의 공간인 가정을 제1의 장소, 생산과 의무의 공간인 직장이나 학교를 제2의 장소, 그리고 사람들이 스스로 모여 즐겁게 교류하는 곳을 제3의 장소, 이렇게 셋으로 구분했다. 소풍, 수학여행, 체험학습 등도 제3의 장소에 넣을 수 있다.

제3의 장소가 없어지면 사회적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레이 올든버그는 개인의 고독감이 심해진다고 주장한다.


98년생 사회학자 이승연 역시 <손절사회>에서 레이 올든버그처럼 개인의 외로움을 이야기한다. 현대사회는 외로움이라는 유행을 경험하는 중이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고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신자유주의가 바라보는 인간은 상품이다. 자기 계발과 모니터링을 통해 가치를 높여 값을 잘 쳐주는 곳을 찾아 끊임없이 헤맬 수밖에 없는 인간, 그런 인간이 의미 있는 관계를 맺는 것은 사치이자 장애물이라고 신자유주의는 말한다.

일상의 문제를 심리학과 정신의학의 치유적 세계관으로 해석하는 것이 현대 문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이런 치유문화 역시 자기만족을 위해, 좋은 기분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을 관리하라고 강조한다. 최우선 과제가 자아의 건강을 방어하는 것이다 보니 타인마저 자신의 감정적 삶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버린다.

더 심각한 것을 자아보다 관계를 먼저 생각하는 태도를 자존감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치유적 시각이다. 고통을 나누는 것마저 자신을 챙기지 못하는 미련함으로 손가락질한다.

외롭다고 한다. 외로움을 인정하면 할수록 서로 의지해야 하지만 우리 스스로 깊이 있는 관계로부터 도망간다. 왜 그럴까?

''손절'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현상이 보여주듯 요즘은 인간관계를 단절하라는 조언이 흔한 시대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보면 이토록 외로운 사람이 많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p. 14)'

각종 SNS나 미디어 매체에 전문가들이 등장해 인간관계를 손익계산서로 따져보라는 조언한다. 또한 유해한 사람과 관계를 끊어 더 이상 감정적 투자를 하지 말라고 끊임없이 설득한다. 자기 계발을 통해 노오력 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며 행복 서사를 들려준다. 불행하다고? 나의 노력이 부족한 탓이다. 내 책임이다.


저자는 타인이 진정으로 손절해야 할 대상인지 묻는다. 과연 다른 인간은 내 고통의 원인일 뿐일까? 더불어 살다 보니 힘들 수밖에 없다. 타인으로부터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는 고통 앞에 손을 내밀고 연대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본능이라고 말한다.

'인간을 진정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 것은 "나는 특별하다"고 끊임없이 되뇌는 자아와의 대화가 아니라, 나를 고유하고 특별한 존재로 대하는 타인의 경청하는 눈빛이다. (p. 349)'

저자가 내민 결론은 경청이다. 인간은 상품이 아니다. 우리 모두 고유의 이야기를 가진 존재다. 그 이야기는 듣는 사람이 있을 때 세상으로 나와 완성된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는 결국 누군가, 혹은 무언가의 말 걸기에 대한 우리 자신의 응답이기도 하다. (p. 350)'

타인은 손절 대상이 아니라 우리에게 이야기를 전해주는 존재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경청하는 존재이기도 하고. 나이 어린 98년생 저자 이승연이 우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다.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능력은 고통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위대한 선물이다. (p.351)'


아이들이 결혼할 나이가 됐다. 걱정하는 마음에 배우자로 어울리지 않는 성격을 매체에 등장하는 심리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에게 전해준다. 그런 사람은 만나지 말라고. 손절을 권하는 셈이다.

퇴직 후 불편하거나 내게 도움이 되는 않는 관계는 정리했다. 모임에서 돌아온 아내가 불만을 내놓으면 그 모임을 끊으라고 조언한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 시간을 소모하기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말을 덧붙인다.

저자 이승연이 내게 말한다.
"그런 관계를 정신 건강을 해치는 유해한 관계로 너무 성급하게 판단해 손절하는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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