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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절사회 - 손익계산이 되어버린 인간관계, 연결 불가능성의 시대에 관한 탐구
이승연 지음 / 어크로스 / 2026년 4월
평점 :
어제 국무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요새 소풍도 수학여행도 안 간다는데 안전사고 날까 하는 위험과 그 관리 책임을 묻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냐'라고 물으면서 '구더기 생길까 장독을 없애면 안 된다. 수학여행은 평생 기억으로 남고 배운 것도 많았다'라고 말했다.
요즘 학교에서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는 사법화돼있다. 뭐든 법적으로 해결하려 한다. 소풍이나 수학여행 중 사고가 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대한 형사 책임을 교사에게 묻는 판결이 잇따르다 보니 각종 행사를 폐지하는 학교가 늘어난다고 한다.
미국의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는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공간을 휴식과 사생활의 공간인 가정을 제1의 장소, 생산과 의무의 공간인 직장이나 학교를 제2의 장소, 그리고 사람들이 스스로 모여 즐겁게 교류하는 곳을 제3의 장소, 이렇게 셋으로 구분했다. 소풍, 수학여행, 체험학습 등도 제3의 장소에 넣을 수 있다.
제3의 장소가 없어지면 사회적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레이 올든버그는 개인의 고독감이 심해진다고 주장한다.
98년생 사회학자 이승연 역시 <손절사회>에서 레이 올든버그처럼 개인의 외로움을 이야기한다. 현대사회는 외로움이라는 유행을 경험하는 중이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고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신자유주의가 바라보는 인간은 상품이다. 자기 계발과 모니터링을 통해 가치를 높여 값을 잘 쳐주는 곳을 찾아 끊임없이 헤맬 수밖에 없는 인간, 그런 인간이 의미 있는 관계를 맺는 것은 사치이자 장애물이라고 신자유주의는 말한다.
일상의 문제를 심리학과 정신의학의 치유적 세계관으로 해석하는 것이 현대 문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이런 치유문화 역시 자기만족을 위해, 좋은 기분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을 관리하라고 강조한다. 최우선 과제가 자아의 건강을 방어하는 것이다 보니 타인마저 자신의 감정적 삶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버린다.
더 심각한 것을 자아보다 관계를 먼저 생각하는 태도를 자존감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치유적 시각이다. 고통을 나누는 것마저 자신을 챙기지 못하는 미련함으로 손가락질한다.
외롭다고 한다. 외로움을 인정하면 할수록 서로 의지해야 하지만 우리 스스로 깊이 있는 관계로부터 도망간다. 왜 그럴까?
''손절'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현상이 보여주듯 요즘은 인간관계를 단절하라는 조언이 흔한 시대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보면 이토록 외로운 사람이 많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p. 14)'
각종 SNS나 미디어 매체에 전문가들이 등장해 인간관계를 손익계산서로 따져보라는 조언한다. 또한 유해한 사람과 관계를 끊어 더 이상 감정적 투자를 하지 말라고 끊임없이 설득한다. 자기 계발을 통해 노오력 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며 행복 서사를 들려준다. 불행하다고? 나의 노력이 부족한 탓이다. 내 책임이다.
저자는 타인이 진정으로 손절해야 할 대상인지 묻는다. 과연 다른 인간은 내 고통의 원인일 뿐일까? 더불어 살다 보니 힘들 수밖에 없다. 타인으로부터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는 고통 앞에 손을 내밀고 연대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본능이라고 말한다.
'인간을 진정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 것은 "나는 특별하다"고 끊임없이 되뇌는 자아와의 대화가 아니라, 나를 고유하고 특별한 존재로 대하는 타인의 경청하는 눈빛이다. (p. 349)'
저자가 내민 결론은 경청이다. 인간은 상품이 아니다. 우리 모두 고유의 이야기를 가진 존재다. 그 이야기는 듣는 사람이 있을 때 세상으로 나와 완성된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는 결국 누군가, 혹은 무언가의 말 걸기에 대한 우리 자신의 응답이기도 하다. (p. 350)'
타인은 손절 대상이 아니라 우리에게 이야기를 전해주는 존재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경청하는 존재이기도 하고. 나이 어린 98년생 저자 이승연이 우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다.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능력은 고통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위대한 선물이다. (p.351)'
아이들이 결혼할 나이가 됐다. 걱정하는 마음에 배우자로 어울리지 않는 성격을 매체에 등장하는 심리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에게 전해준다. 그런 사람은 만나지 말라고. 손절을 권하는 셈이다.
퇴직 후 불편하거나 내게 도움이 되는 않는 관계는 정리했다. 모임에서 돌아온 아내가 불만을 내놓으면 그 모임을 끊으라고 조언한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 시간을 소모하기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말을 덧붙인다.
저자 이승연이 내게 말한다.
"그런 관계를 정신 건강을 해치는 유해한 관계로 너무 성급하게 판단해 손절하는 것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