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 극우가 온다
정민철 지음 / 페이지2(page2)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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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이와 정치 이야기로 크게 다툰 적이 있다. 한밤중에 집을 나가겠다고 한 아이에게 지금 나가면 들어올 생각을 하지 말라며 소리쳤다. 그때 아이는 군 제대 후였고, 제대하자마자 시작된 코로나19로 학교도 온라인 수업이라 집에만 머물러 있었다. 나는 나대로 회사 사정이 안 좋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아들아이와 나는 서로 들이받을 핑계만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1990년대엔 386, 2010년대엔 586 지금은 60대 중반이니 686세대라 해야 되나? 아무튼 나는 1020세대가 꼰대의 대명사로 여기는 세대다. 1990년 대 후반에 태어난 연년생으로 아들과 딸을 둔 아빠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 2001년생 정민철 세대 커뮤니케이터에 따르면 나와 다툴 당시 아들아이는 군대에서 선임들 그리고 주말마다 보는 스마트폰으로 박탈감과 억울함을 키웠을 것이다. 여성이 약자인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라 군대에 있는 자신에게 그 운동장은 오히려 역차별의 운동장이었다. 적은 더 이상 북한이 아니다. 페미니스트, 다문화 무임승차자, 그리고 이들을 옹호하는 민주당 586기득권이다. 이런 이유로 페미니스트에 가까운 여동생, 민주당을 감싸고도는 686세대인 아빠가 적이 된 셈이다.

'피해자 서사가 완성되는 순간, 그들의 혐오 발언은 '공격'이 아니라 '정당방위'가 된다. (p. 123)'

나는 나대로 아이가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여겼다. 아이 마음을 바꾸어보려고 구구절절 설명을 늘어놓았다. 공정을, 평등한 세상을, 올바른 역사관을 가지라고 말이다. 생존 경쟁에서 살아갈 궁리를 이리저리 찾아보던 아이가 볼 때 나는 '설명충'이다. 그러니 말이 안 통하고 부딪칠 수밖에 없다.


'단 3일, 72시간 만에 순수하게 찬양을 듣고 싶었던 16세 소녀의 유튜브는 극우 노인들의 태극기 집회 현장과 똑같은 풍경으로 변해버렸다. (p. 167)'

크리스천 가정의 아버지로서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내 딸아이가 3일 만에 알고리즘에 따라 동성애 반대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수호하는 것이라며 신앙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면? 그리고 좌파 정치인 비판을 공산주의 사탄 세력이라고 규정하고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라고 여긴다면? 설득할 방법이 없어 당황스럽다. 종교적 확신은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딸아이의 동성애 반대 입장은 단호하다.


최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한 20대의 긍정 평가는 50퍼센트대로 전 연령층과 비교할 때 제일 야박하다. 심지어 20대 남자의 긍정 평가는 43퍼센트다. 미국,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에 전쟁 책임을 두고도 전 연령에서 미국의 책임이 크다고 답했지만 20대만 세 나라가 비슷하게 책임이 있다고 응답했다.

20대의 극우 성향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유럽을 비롯해 전 세계적인 추세라고 한다. 그럼에도 희망적인 소식은 미국,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쟁 때문인지 그동안 불문율처럼 침묵했던 유럽이 이스라엘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헝가리 총선에서는 16년 동안 집권했고 미국이 지원했던 극우 정당이 참패해 정권이 좌파 연합으로 넘어갔다.

물론 이 책이 정치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저자는 나 같은 기성세대에게 당신들이 방심한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내 아이들과 그 친구들이 원래부터 극우 성향을 가졌겠나. 당연히 아니다. 그들이 놓인 환경 때문이다. 산업화, 민주화를 이룬 부모 세대, 하지만 아이들에게 경쟁심을 심어줘 혐오의 세상으로 몰아간 세대이기도 하다. 그러니 '시민 농사'에 실패했음을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아들, 딸아이 둘 다 이제 서른을 앞에 두고 있다. 저자는 이제라도 밥상머리에 앉아 아이들의 박탈감을 인정하고 안아주라고 조언한다.

'오해를 걷어내면 그 자리에 연민이 남는다. 가려져 있던 연민이 드러나면 혐오는 멈춘다. 나는 그 기적을 믿는다. (p. 254)'

큰 아이는 직장 따라 독립해서 일 년에 두세 번밖에 얼굴 보기도 힘들다. 딸아이도 직장 생활하랴 친구 만나랴 바쁘다 보니 같이 밥 먹는 일이란 하늘에 별 따기다. 밥상머리에 앉아 대화 나눌 시간이 없다. 아들아이와 다퉜을 때 왜 아이의 입장에서 서서 살펴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이 아쉬움마저 나눌 시간이 없어 더 아쉬움이 쌓인다.

두 아이 스스로 자신에 대한 그리고 타인에 대한 연민을 찾기를 바랄 뿐이다. 혐오와 억울함, 피해자 코스프레의 자리를 연민이 차지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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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룽 2026-05-07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신이 진정 크리스천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시고 자녀분들을 자랑스럽게 여기십쇼.
 
하루 30분 DeFi 코인 투자 1 : 입문 - 스마트폰 가상화폐 앱 세팅 ㅣ 하루 30분 DeFi 코인 투자 1 1
방유성.지상범.안승일 지음 / 무블(무블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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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이재명 대통령의 국민주권정부는 투기 이익을 환수하는 등의 부동산 정책을 흐지부지하다가 끝낼 것 같지 않다. 부동산이 더 이상 재테크 수단이 아니란 걸 뜻한다.

요즘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는 등 유가 불안이 커지는 악조건에도 우리나라 주식 시장은 버티고 있다. 분석에 따르면 외국자본이 아니라 국내 투자자들에 의해 버티는 것이라고 한다. 자금이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이동하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청년들은 코인 투자에도 눈길을 돌리는 듯하다. 하지만 나 같은 퇴직자에게 코인은 여전히 두려움의 대상이다. 한몫 잡겠다고 주식에 투자했다가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과 붕괴로 돈을 날린 경험이 있다면 그 불안감은 더 커진다.


DeFi 관련 투자를 하는 방유성, 블록체인 개발자로 일하는 지상범, 야핑, 에드작, DeFi 등을 공부하는 안승일, 세 명이 공저한 <하루 30분 DeFi 코인 투자 1: 입문>는 투자 수단으로 암호화폐를 권하는 책이다. 투자를 통해 자산과 자본이 돈을 버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암호 화페가 제격이란 설명이다.

'미국 달러와 연동되어 환율 리스크를 해지하는 효과가 있고,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가 제도권 금융으로 편입하려는 움직임 속에 안정성과 신뢰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p. 6, 책을 읽기 전에)'

이 책은 투자에 꼭 필요한 앱을 다운로드해 활용하는 방법을 소개하는 입문편으로 매뉴얼인 셈이다.

이 책에서는 DeFi 투자법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자세히 설명한다. 1장과 2장에서 암호화폐 시장 전반을 소개하고 3장에서 5장에 걸쳐 국내외 거래소에서 계좌를 만들고, 송금하고 투자하는 과정을 실제 실행되는 앱 이미지를 통해 설명한다. 그리고 퍼팽의 유튜브 숏츠 QR코드가 있어 영상을 보며 손쉽게 따라 할 수 있다.


나처럼 코인 투자에 두려움이 앞서고, 용어들이 낯설어 DeFi 투자의 초기 진입장벽을 버거워하는 투자자들에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이 책에서는 CeFi와 DeFi 중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하나를 버리자는 식이 아니라, 각각이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지 비교하고, 본인에게 맞는 투자 상품을 찾는 과정에 도움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p. 42)'

투자를 할지 말지 그리고 어떻게 투자할지 그 방향을 잡는 것을 각자의 몫이다. 부동산을 대체할 새로운 투자 수단을 찾고 있다면, DeFi 코인 투자의 문턱을 넘기 전에 이 책을 활용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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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ㅣ 실존과 경계 9
다자이 오사무 지음, 서혜영 옮김 / 니케북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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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거나 카페에서 커피 마신 후 나오다가 주차장에 비싼 차가 여럿 주차돼있는 걸 보면 아내에게 실없이 한마디 하곤 한다.
"저 사람들은 뭘 해서 돈을 벌어 저렇게 좋은 차를 몰고 다닐까?"
나만 사는 게 팍팍한가? 참 궁금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인간실격>은 화자인 '나'가 한 남자를 찍은 사진 세 장을 보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 장은 오바 요조의 유년 시절, 또 한 장은 학생 시절, 마지막 사진은 나이를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기괴한 모습으로 어떤 특징이 없는 표정으로 '죽음의 냄새가 나는 얼굴'이다.

'부끄러움 많은 일생을 살아왔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란 것이 뭔지 종잡을 수 없습니다. (p. 18)'

도호쿠 지방 시골에서 태어난 요조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어린 요조는 사람들에 대해서 불안과 두려움을 느낀다. 두려움은 요조에게 광대짓을 하게 만들었다. 사람들과 잘 지내기 위해 요조는 웃기는 행동을 하는 어릿광대라는 가면을 쓰기로 한다.
'그리고 저는 이 어릿광대 연기라는 한 가닥 선으로 겨우 인간과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p. 25)'

미술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아버지 뜻에 따라 고등학교에 진학한 요조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다. 데생 연습을 하던 화실에서 여섯 살 많은 미술학도 호리키를 만났고, 같이 다니면서 술과 담배, 윤락녀, 전당포 등 퇴폐적인 생활과 더불어 좌익 사상까지 배운다. 긴자 카페주점에서 삶에 염증을 느끼면 살아가던 호스티스 쓰네코를 알게 되고 둘은 동반 자살을 한다.
'여자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저만 살아남았습니다. (p. 112)'

동반자살 사건으로 고등학교에서 퇴학 당한 요조는 무명 화가로 생계를 이어가다가 3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딸과 살고 있는 시즈코를 만나 동거를 시작한다. 시즈코와 딸의 대화를 엿들은 요조는 자신이 두 사람의 행복에 방해가 된다는 걸 깨닫고 그 집을 떠난다.

교바시 스탠드바에 정착한 요조는 근처 담배 가게 아가씨 요시코를 만나 그 순수함에 반해 다시 동거를 시작한다. 요시코는 자신의 집을 드나들던 장사꾼에게 성폭행 당한다. 요조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삶에 대한 괴로움은 요조를 알코올과 마약의 세계에 빠뜨린다. 죽고 싶을 뿐이다. 다시 자살을 시도한 요조는 요시코를 포함한 네 사람에 의해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인간 실격. 이제 저는 완전히 인간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p. 219)'


내가 세상 사람들과 다를지도 모르다는 생각은 두려움을 가져온다. 두려움을 떨쳐버리고자 내 모습을 가면으로 감추고 세상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다. 가면 속 나는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 역시 나와 같은 생각으로 가면을 쓰고 세상 속으로 들어온 사람들이다. 그들 역시 가면 뒤에서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는다.

사람을 의심할 줄 모르는 요시코가 오히려 용서받아야 할 죄인이 되는 사회다. 요조는 '신에게 묻는다. 신뢰는 죄인가? (p. 195)'

모든 불행은 거부하는 능력이 없는 데서 비롯된다. 거부하면 상대방과 나 사이에 균열이 생길 것 같아 겁난다. 거부하는 순간 그 사회에서 나만 홀로 가면을 벗고 살아야 한다. 모든 것이 혼란한 세상, 미치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 사람들이 정신병원에 나를 가두는데도 저항하지 못한다. 다시 '신에게 묻는다. 무저항은 죄인가? (p. 218)'

정신병원에 입원한 나, 그런 운명마저 타인의 결정에 따른 것이니 나는 인간으로 실격이다. 하지만 스스로 인간 실격이라는 판단을 내리는 나야말로 인간 실격이 아닐까?

'세상이라 함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사람들의 집합을 말하는 걸까요. 도대체 그 '세상'이라는 것의 실체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
'그건 세상이 용서하지 않을 거야.'
'세상이 아니야. 네가 용서하지 않는 거잖아?'
'그런 짓을 하면, 세상에 큰 봉변을 당할 거야.'
'세상이 아니야. 너잖아?'
'곧 세상에서 매장당할 거야.'
'세상이 아니야, 매장하는 건 너잖아?' (pp. 155, 156)'

나의 두려움은 세상의 비난에서 생긴 것이 아니다. 비난하는 건 가면을 쓴 한 사람 한 사람 개개인일 뿐이다. 그러니 세상이라 함은 내가 인식하는 주변 사람들이 세상인 셈이다. 가면을 쓴 개인들이 모인 세상, 한 사람 한사람 가면을 벗으면 그들 개인은 더 이상 날 비난하지 못한다. 그들 역시 세상 사람들과 다를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면을 쓰고 세상 속으로 들어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이란 자격도 가면을 쓴 내가 세상이 만든 것인 양 만든 것이고, 인간 실격 여부의 판단도 내가 내린 것이다.


주차장에서 어떻게 사는지 내가 궁금해한 저 많은 사람들, 한 명 한 명 그 사정을 들여다보면 나와 다르지 않다. '세상 사람들은 나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에 가면을 쓸까 말까 고민하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다. 비슷한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사는 것도 마찬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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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세포의 진화 - 진화가 알려 주는 암 극복의 새로운 아이디어
아테나 액티피스 지음, 김정은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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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일흔 살을 앞두고 형님은 사십 대 중반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두 분 다 살아야 할 삶이 남았는데, 그 끝까지 가지 못했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이유로 아내는 나도 간암으로 고생하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다.

'우리는 암으로 죽지 않더라도, 암과 함께 죽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p. 134)'


암에 이르는 모든 체계의 협력을 연구하는 암 생물학자, 아테나 액티피스의 <암세포의 진화>는 암에 관한 책이다. '암이 어디에서 왔고 왜 존재하며 왜 그토록 완치가 어려운지에 관한 책이다. (p. 7. 머리말>'

이 책의 특징이라면 진화를 바탕으로 자연 선택에 초점을 맞춰 암을 살펴본다는 점이다. 그래야 암의 복잡한 특성, 특히 진화는 암을 억제하는 몸을 좋아하는 반면 증식이 빠르고 물질대사가 왕성한 암세포의 특징을 선호하는 진화적 역설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암은 우리의 일부다. 단세포 생물에서 다세포 생물로 진화하는 순간부터 암은 존재했다. 다세포 유기체로서 첫걸음을 뗄 때부터 암은 있어 왔다. '우리는 암과 함께 태어나서 암과 함께 죽는다. 그리고 암과 함께 살아간다. 암은 자궁에서 무덤까지 우리 삶의 일부다. (p. 87)'

우리 몸은 30개 조에 달하는 세포로 이루어졌다. 세포들은 서로 협력하고, 진화하고, 에너지를 소비하고, 계산하고, 유전자를 드러내고, 단백질을 생산한다. 이러한 세포의 유기적 행동은 거의 10억 년에 걸친 다세포체의 진화를 통해 만들어졌다. 진화가 협력하는 세포 사회를 만든 셈이다.

그러나 세포 간의 협력이 깨질 때가 있다. 통제에서 벗어나 얌체 행동 cheating을 하는 세포가 있는데 바로 암이다. 암은 자원을 남용하는 등 우리 신체의 환경을 망가뜨리면서 무절제한 복제를 한다. 이런 행동은 정상적인 세포보다 진화적으로 유리하다. 하지만 몸의 건강과 생존 가능성을 손상시켜버린다.

진화로 암 억제 시스템도 갖추었다. 이제까지 생명체가 성공적인 삶을 사는 이유다. 하지만 다양한 이유로 100퍼센트 통제하기는 어렵다. 이를테면 암을 완전히 억제하면 할수록 번식력이 낮아진다. 부모로부터 받은 유전자끼리 전투를 벌이는 것도 또 하나의 이유다.

그렇다면 어떻게 암을 통제하고 치료해야 할까. 암과 전쟁이라도 벌이듯 완전히 암을 제거할 때까지 싸워야 할까? 불행하게도 그건 불가능하다. 암은 우리가 동원하는 모든 치료법에 반응하며 진화하는 다양한 세포 집단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암은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이 아니다. 암과 싸우는 것은 진화라는 필연적 과정과 싸우는 걸 의미한다. 진화 과정을 상대로 절대 이길 수 없다. 암의 진화도 우리 몸속에서 일어나는 생태적 변화 과정이고 앞서 말했듯이 다세포 협력에 암체 짓 하며 무임승차하려는 과정일 뿐이다. 그래서 암의 진화를 멈출 수 없다. 다만 그 과정을 늦추거나 방향을 바꿀 수 있을 뿐이다.

'암이 우리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적응이 필요한 이 예측 불가의 상대와는 장기적인 전략적 상호 작용을 준비하는 것이 우리에게 훨씬 더 낫다. 암을 콕 집어서 제거할 마법의 약을 언젠가 찾아낼 거라는 그릇된 희망에 매달리기보다는 진실을 마주하고 암과 함께하는 불확실한 미래를 받아들이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p. 289)'


내 친구, 내 친구의 아내분 그리고 또 가까운 지인 여럿이 암과 투병 중이다. 아니, 암과 함께하는 중이다. 나 또한 가족력이 내게 현실이 되어 모습을 드러낸 암세포와 동행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고 진화에 기대어 암과 잘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 우리 인류가 생존한 것도 진화 덕분이니 말이다.

많은 열량을 소비하는 반면 적게 움직이고, 화학 발암물질이 주변에 가득하고, 생식 호르몬 수치는 높아졌고, 수면방해에 노출되어 사는, 지금 우리 일상의 변화는 너무 빨리 진행됐다. 진화가 미처 대처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니 암과 잘 지내며 기다리다 보면 암을 훌륭히 치료할 방법을 진화가 결국은 만들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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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날의 문장 수집 - 마음으로 눌러쓰는 예술가들의 첫 문장
부이(BUOY) 엮음 / 부이(BUOY)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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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야 한다, 날들이 텅 빈 채로 흘러가지 않도록."
1892년 3월 9일 태어난 비타 새크빌 웨스트의 작품 <십이일간의 여정> 속 문장이다.

한평생 '비타'라고 불렸다. 비타는 영국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작가이자 정원 디자이너로도 알려졌다. 시싱허스트에 조성한 정원은 20세기 영국 정원 디자인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비타는 성역할이 엄격히 구분되는 시대임에도 남성 복장을 하고 여성과 연애를 했다고 한다. 버지니아 울프와 만나 우울증에 시달리는 울프를 위로하며 교감했다. 울프의 작품 <올랜도>의 실제 모델이 비타이다. 말년에 암을 앓다가 내가 태어나기 바로 1년 전인 1962년 6월에 생을 마감했다.


나는 양력으로 6월에 태어났다. 음력 생일을 지키다보니 생일이 해마다 달라져 아이들이 아빠 생일을 기억하기데 애를 먹는다. 나와 생일이 같은 토마스 하디는 영국 태생으로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별들은 가끔 우리 집 그루터기 사과나무의 열매들 같아 대개는 아름답고 온전하지만, 더러는 병들어 있지. - <더버빌가의 테스>


매일 아침 필사로 하루를 시작한다. 비타가 말했듯 시간을 건너온 문장을 쓰면서 하루를 채우려는 다짐이다. 텅 빈 채로 하루를 보내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 내게 남았다.

오늘은 누가 태어났을까. 그는 어떤 문장을 남겼을까. 누군가 태어났기에 하루를 그의 글로 채운다. 나, 나도 누군가의 하루를 채우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야할텐데. 그래야 내 생일날만이라도 날 기억해 줄텐데. 적어도 우리 가족에게만이라도 그런 존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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