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 여행 내 삶이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이재형 지음 / 디이니셔티브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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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풀어헤치고 매섭게 파고드는 프로방스 계절풍 '미스트랄'. 항상 손에 들려있는 파스티스, 식탁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포도주. 피터 메일의 프로방스 일 년 살기 기록 <아피! 미스트랄 (효형출판)>에서 읽은 프로방스의 풍경이다.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에서 얘기했다시피 파리에서 나를 괴롭힌 우울증은 예술의 힘으로 서서히 치유되었다. 하지만, 내 마음 한 켠에는 늘 프로방스의 푸근한 날씨와 눈부신 태양, 시리도록 파란 바다, 높은 언덕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마을들, 끝없이 펼쳐진 보라색 라벤더밭, 5월이면 온 산야를 붉게 물들이는 개양귀비 꽃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프로방스의 풍경은 다시 돌아오라고 끊임없이 나를 부추겼다. (p. 6)'

그런가 하면 이번에는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 (디 이니셔티브)>에서 파리에 대한 지식, 예술 작품들과 그 작품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풀어놓는 글 솜씨로 파리에 빠져들게 만들었던, 프랑스에서 30년 가까이 살아온 저자 이재형을 따라나선 프로방스 예술여행이다.


'1888년 2월 2일, 반 고흐는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15시간을 여행한 끝에 아를에 도착했다. 그는 이제 프로방스의 강렬한 빛과 눈부시게 선명한 하늘, 투명한 공기 속에서 꽃을 피운 과실수와 협죽도, 보라색 땅, 올리브나무의 은빛, 실편백나무의 진한 녹색을 그리게 될 것이다.
그는 동생 테오에게 이렇게 편지를 써 보냈다.
"난 새로운 예술의 미래가 프로방스에 있다고 믿어." (p. 14)'

프로방스 여행 첫 번째 여행지는 고흐가 고갱을 기다리던 곳인 아를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아를은 축제의 도시, 문화의 도시이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이우환 미술관도 이곳에 있다.


아를을 시작으로 이재형 작가와 여행하게 될 프로방스의 도시와 마을은 아름다운 풍경만큼이나 제각각의 매혹적인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부족한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르 코르뷔지에는 수직마을을 생각해냈다. 마르세유의 행복주택단지는 70년이 지났지만 정상적으로 그 기능을 다하고 있다.

에르메스와 샤넬, 루이비통 등 고급 부티크들이 즐비한 생트로페, 이곳은 한산한 어촌이었다. 1956년 여기서 촬영된 브리지트 바르도 주연의 영화 〈신이…여자를 창조하셨다〉가 세계적으로 흥행하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고, 프랑수아즈 사강의 첫 작품 <슬픔이여 안녕?>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세 살짜리 딸과 바캉스 중이던 스물여덟 살이었던 프랑스 여배우 시몬 시뇨레는 생폴드방스의 황금 비둘기 식당에서 얼마 전 에디트 피아프와 헤어진 가수 이브 몽탕과 만난다. 둘은 한눈에 서로에게 끌렸다. 생폴드방스는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를 간직한 곳이다.

마티스와 샤갈이 사랑한 예술의 도시 니스, 하늘로 올라가는 니체의 산책로가 있는 곳 에즈, 세잔의 영혼이 깃든 생트빅투아르산이 있는 곳은 엑상프로방스다. 바농에는 프랑스 농촌에서 가장 큰 독립서점이 있고, 피카소에게 영감의 원천이었던 연인 도라 마르는 정신병원을 나온 후 메네브르에서 죽을 때까지 혼자 살았다.

'해가 서산마루에 뉘엿거리면 고르드의 돌집들은 빨갛게 물들고 저 아래 계곡은 초록 바다로 변한다. (p. 216)'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고르드다.

마지막 여행지는 고대 건축가들의 놀라운 기술을 보여주는 증거, 50킬로미터에 달하는 수도교 있는 곳 아비뇽이다. 그리고 아비뇽 남동쪽 몽파베 마을의 공동묘지 정신병자 구역은 로댕의 연인 카미유 클로델의 일흔여덟 살 인생, 마지막 종착지이기도 하다.


파리가 그렇듯 이렇게 사연이 많은 곳이 있을까? 라벤더, 해바라기, 지중해의 눈부신 햇살, 수많은 예술가들이 매력을 느낀 곳 프로방스. 피터 메일은 이곳이 너무 좋아 집을 덜컥 사버렸다. 이재형 작가와 함께 프로방스로 향하는 열차에 올라타보자. 반 고흐가 '예술의 미래가 있다'라고 믿고 파리에서 아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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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 허스토리 - 왜 경제학의 절반은 사라졌는가?
이디스 카이퍼 지음, 조민호 옮김 / 서울경제신문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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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를 젠더 이데올로기의 관점으로 설명하는 강은주의 <우리의 첫 미술사 수업, 이봄>은 미술에서 여성이 소외됐음을 고발하며 미술사 보기에 페미니즘 방법론이라는 새로운 틀을 추가해 준다. 미술뿐만이 아니었다.

페미니스트 경제학자, 경제학 철학자, 역사가인 이디스 카이퍼는 경제학에서 여성의 목소리와 경제적 헌신이 어떻게 사라졌는지를 <이코노믹 허스토리>를 통해 소개한다.

'조앤 로빈슨과 로자 룩셈부르크 자신들은 인지하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학문 현장에서 그들의 위치가 여성의 경제적 견해, 경험, 관심사, 이해관계 등에 관한 글을 쓴 다른 여성 늘 마땅히 받아야 할 학계의 관심을 놓친 다른 여성들의 빛을 가린 셈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뀌는데 수십 년의 세월이 걸렸다. (p. 20)'

이 두 여성은 여성을 드러내지 않은 덕분에 경제학에서 이름이 알려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남성 지배적 경제 전통에 순응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 책은 조앤 로빈슨과 로자 룩셈부르크의 빛에 가려진 그리고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에 대한 경제학을 썼다는 이유로 철저히 무시당하고 잊힌 여성 경제학자, 여성 경제 저술가 102명의 이야기다.


여성이란? 알다시피 '젠더'가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을 뜻하지 않는다. 남성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닌 양육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사용하는 '여성'의 정의는 '타고난 생물학적 젠더와 젠더 정체성이 일치하는 시스젠더(cisgender) 여성을 지칭하고 있다. (p. 31)'

또 하나, 전 세계의 여성을 하나의 단어 '여성'으로 묶을 수 있을까? 여성 개개인은 국가, 계층, 피부색, 교육, 연령, 건강, 종교, 신체 능력에서 다르다. 관심사도 다르고 쌓은 경험도 다르다. 그러니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떤 분야가 됐든 여성을 소외시키는 건 옳지 않다.

게다가 일부 여성의 경우 '교차성(intersectionality)'이 더해지면 소외와 차별이 강화된다. 이를테면 나이 어린 여성, 장애가 있는 여성, 흑인 여성이 그렇다.


경제학은 가정경제, 즉 오이코노미아(oikonomia)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근대에 이르러 화폐, 가격, 시장, 거래 등이 주요 경제적 요소를 자라잡게 되면서 남성 개인이 중심이 되는 공적 영역의 생산성과 부를 경제학으로 정의했다. 정치경제학의 창시자인 애덤 스미스가 경제학을 가정경제에서 분리시켰다.

주류 경제학이 남성 편향의 이론으로 발전해 온 결과, '권력과 주체성 그리고 재산권'에서 경제 행위 주체로서 여성을 젠더화한 해석으로 소외시켰다. 박탈된 '교육'의 기회는 여성에게 정신의 식민화를 안겨줬다. '부와 여성의 관계'에서조차 젠더화했다.

'이 시대의 도덕은 중상류층 여성들에게 돈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거나 임금 노동을 할 일자리를 구하지 않는 게 바람직한 태도라는 의식을 한층 강화했다. 여성이 돈에 관심을 두면 여성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도덕적으로 몰락하게 되고 급기야 삶을 망친다는 논리였다. 간호와 같은 일은 여성이 보수를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임할 때 숭고한 행위로서 도덕적 옹호를 받을 수 있었다. (p. 178)'

'생산', '분배', '소비'에서 여성은 많은 역할을 감당해냈지만 무시당했다.

'매리 컬리어가 이 시 <여성의 노동>에서 제기한 문제, 즉 남성은 열심히 일하고 집에서 쉴 수 있으나 여성 대부분은 밖에서 일하고도 집에서 가사와 육아 노동을 해야 하는 문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p. 198, 197)'

돌봄 노동을 비롯한 가정에서 이뤄진 여성의 생산 활동이 화폐화, 시장화되면서 혼란이 왔다. 정부와 경제학자들은 당황했다. 무임금 노동이었던 생산활동에 비용 부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생산적 활동이 아닌 노동으로 정의됐던 여성의 일이 국가 정부의 직무와 책임으로 넘어오면서 '정부 정책'이 필요해졌다.


페미니즘 관점으로 경제학을 바라보니 여성을 배제한 가부장적 가치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경제학의 초점을 성별뿐만 아니라 인종, 계급, 나이, 장애 등 여러 정체성으로 확대한다면? 경제학이라는 시각이 다양해질 것이다. 차별과 배제로 기울어진, 반쪽자리 경제학의 역사는 새롭게 다시 쓰일 것이다.

'공유된 가치가 다른 가치를 보이지 않게 만드는 행태에 대응하는 방법은 더 광범위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래야 지금껏 공유된 가치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고, 가려졌던 가치를 가시화할 여러 견해를 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p.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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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실험 - 추상화 같은 사랑의 모든 풍경
이기진 지음 / 진풍경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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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뭐~ 읽을 책 없나'하고 찾길래 그림 많고 글자 수 적은 책을 좋아하는 터라 이 책을 권했다. 책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아내가 먼저 읽도록 한 것이 실수였다. 책장을 몇 장 넘길 때마다 원망의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며 한숨과 함께 눈가가 촉촉해지면서 내뱉는 말... "연애하고 결혼했어야 하는데..."

늦은 나이이기도 했고 결혼을 반드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꽉 찬 상태에서 누님의 친구 소개로 아내를 만났다. 융건릉 갈까요?라는 소리에 호감 표시인 줄 알았고 만난 지 2개월 만에 결혼했다.


저자인 이기진 교수를 처음 알게 된 건 방송 프로그램 '유퀴즈'에서였다. 씨엘이 자퇴하고자 했을 때 딸을 믿고 흔쾌히 승낙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씨엘의 말도 그랬다. '아빠는 노라고 한 적이 없어요.' 그래서 이번에도 자신을 믿고 지지해 줄줄 미리 알았다고 한다.

씨엘 아빠 이기진 교수의 알록달록한 그림과 함께 펼쳐진 연애의 풍경 그리고 그 묘사는 방송에서 그를 보고 상상한 그대로였다. 솔직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연애 감정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땀 한 땀 기억을 소환해 퍼즐 같은 글을 담았다. 연애를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는 동안 항상 애틋하고 그리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몰입했던 것 같다. 글쓰기를 마치고 한동안 상실의 느낌이 왔으니. 항상 시작과 끝은 있다. 연애처럼. (p. 6)'


끝이 없다면 연애라 할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연애를 하고 연애를 끝낸 사람이다. 끝난 연애 이야기만을 할 수 있다. 그러저러했노라고. 가슴 아프다고. 아직도 잊지 못하겠노라고. 연애 중이라면 누군가에게 사랑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둘만이 간직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랑도 우주의 다양한 별처럼 빛나기도 하고 서늘하게 죽어가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생겨났기' 때문에 죽어간다는 것이다. (p. 19)'

아내처럼 연애를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볼 수 있다 (물론 물어보지 않았고 물어보더라도 솔직하게 대답하지 않을 것이니 진위 여부를 알 수는 없지만). 연애해 보지 않았다고 연애 감정이 없을까? 아니다 짝사랑이란 게 있으니 얼마든지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연애 감정은 누구나 간직하고 있다.


'"지금 뭐 해?" 이 말을 듣게 되는 순간부터 두 사람 사이의 비밀도 사라진다. (...)
"나한테는 너밖에 없어." 이 말을 듣는 순간 사라진 자유는 달콤한 사랑으로 보상받게 된다. 사랑 속에 자유가 머무는 그 순간이 '화양연화' 아니었을까. (p. 64, 65)'

충분히 연애할 만한 시간이 물리적으로 부족했을 뿐 아내와 연애를 생략하고 결혼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연애의 실험>을 읽어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2개월 동안에도 많은 연애 감정이 있었다. 구속에 따르는 불편함도 느꼈고, 만나고 집에 들어와 긴 전화 통화로 같은 공간에 있지 않지만 같은 시간을 사는 경험도 했다. 사소한 다툼도 있었고, 둘만의 대화법도 생겼고, 그리움도 있었다. 우리 둘만이 할 수 있는 연애를 했다.

'연애야말로 가장 복잡한 인간관계에 속한다. 지구상에 같은 사람 없듯이 같은 연애는 없다. 연애는 세상에서 해답이 없거나 다양한 해답이 존재하는 관계의 문제일지 모른다. (p. 114)'

다만 러브스토리의 완성인 이별이 없었을 뿐이었다. 결혼을 했으니 말이다. 아내가 느끼는 연애에 대한 아쉬움은 이별이 없어서일 것이다. 그래서 2개월간의 연애는 연애가 아니었다는 생각을 아내는 하지 않았을까? 이별이 있어야 아픔이 있고, 미련이 남고, 연애의 감정에 몰입하게 한다. 아내와의 짧은 연애에 이별이 빠졌다.


'반짝반짝 빛나는 청춘의 연애가 가장 찬란한 건 당연하다. 연애 세포도 노화한다. 젊은 시절 연애를 미뤄 뒤늦은 나이에 주위를 둘러보면 사람도 없지만 무뎌진 창을 들고 전쟁터에 나가듯 불리해진다. 사랑 때문에 목숨처럼 소중한 것을 내놓을 수 있는 시기는 그리 길지 않다. (p. 136)'

이 책을 읽으며 누군가 떠올랐다면? 혹은 아무도 떠오르지 않았더라도 두 경우 모두 비극이란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표현한 연애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내가 "연애하고 결혼했어야 하는데..."라는 말에 이어서 내 눈을 보며 나에게 건넨 말이다.

대답하지 않았다. 무슨 의미일까? 아내는 어떤 대답을 기대했을까? 아니 대답을 기대하는 질문이 아니었을지도. 그 질문이 자신의 감정의 상자를 여는 열쇠였는지도...

모처럼 연애 감정이 뭉글뭉글, 가슴이 설레는 그런 시간을 가졌다. 이기진 교수의 <연애의 실험> 덕분이다.

'어둠이 더 내리고, 맥주 한 잔을 더 시켰다. 갑자기 누군가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온다. 마치 어디서 본 사람 같다. 분명 아닐 것이지만 어쩐지 익숙한 얼굴이다. 고개를 숙여 맥주를 마시고 다시 문 쪽을 바라보았다. 찰나의 순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사라져 버린 것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오지 않은 사람이었을까? (p.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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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에서 싸운 일본인 - 일급비밀 공개로 드러난 일본인의 한국전쟁 참전 기록
후지와라 가즈키 지음, 박용준 옮김 / 소명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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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서 속에서 한국전쟁에 간 일본인이 한반도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선명하게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p. 11)'

이 이야기의 시작은 미국에 보관되었던 1급 극비 문서가 세상에 드러나면서부터다. 1.033쪽의 방대한 보고서는 미군을 따라 한국전쟁에 참전한 일본인 70명을 심문한 기록이다. 저자 후지와라 가즈키는 이 문서를 바탕으로 일부 생존자들과 유가족, 주변인을 중심으로 취재했다.

한국전쟁 전에 그들은 누구였는지, 어떻게 참가하게 됐는지, 어떤 임무를 수행하고 이용됐는지, 이 같은 사실을 감출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한국전쟁에서 싸운 일본인>은 이러한 실상을 밝히는 논픽션이다.


한국전쟁은 2차대전 패전 이후 일본의 경제난을 한 번에 해결하는 모멘텀이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요시다 시게로 총리가 "이제 일본은 살았다!"라고 외쳤을 정도였다. 일제강점기를 겪은 사실만으로도 불쾌하기 짝이 없는데 한국전쟁에 일본인 가담했다는 사실은 충격이다.

당시 일본은 주권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로 미 군정하에 놓여있었다. 미군의 필요와 요구에 따라 일본인들이 참전했다. '설마 그랬을까?'라고 우리가 생각하는 건 일본 평화헌법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무기를 손에 들 수 없었다. 이런 일본 국내법 위반이 미국이 일본인의 한국전쟁 참전 사실을 철저히 은폐한 이유이기도 하다.

더더욱 우리나라에 이러한 사실이 제대로 알려질 수 없었던 건 우리의 한국전쟁에 대한 인식 때문이다. 우리는 국군과 미군 그리고 유엔군의 희생으로 전쟁을 기억한다. 또한 전쟁 중 벌어진 민간인 학살도 기억하는데, 일본인의 참전은 일제강점기에 이어 전쟁 중 민간인 학살에 일본이 가담한 역사적 사실이 된다. 한국전쟁에 일본인 등장 자체가 기분 나쁘다.


'정병욱은 일본인의 한국전쟁에서의 통역을 '일본인, 일본어의 참전', '전장에서의 식민지 질서 재생', '식민주의의 그림자'로 표현하며, 식민지 시기 '국어'로 강제되었던 일본어에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5년 만에 매달려야 하는 한국인들의 처지를 언급하였다. (p. 371)'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소속된 일본인들은 미군의 통역을 담당하며 참전했다. 이로 인해 언어 간에 위계가 생겨버렸다. 한국어는 영어, 일본어에 이어 가장 아래에 자리했다. 한국인들은 정보를 제공했고 때에 따라 호소해야 할 일이 잦았는데, 일본인에게 해야 하다 보니 한국어 대신 일본어를 사용했다.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언어의 차별적인 구조와 역할이 한국전쟁에서 재현된 것이다.

전쟁에 참가한 일본인들이 한국에서 일본어를 사용하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아 외국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할 정도였다. 일본인이 느낀 우월감, 편안함의 반대편에서 일제강점기를 겪은지 몇 년도 되지 않아 전쟁터에서 일본어를 들으며 한국어의 위계를 다시 실감하는 한국인들의 당혹감과 불안감은 어떠했을지 상상하기도 싫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일본인들의 희생을 우리는 어떻게 정의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그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는 것이 마땅할까? 하지만 대한민국과 일본, 두 나라 간의 역사적 관계를 고려할 때 객관적 접근은 그리 쉽지 않다. 이를테면 전쟁에서 희생당한 일본인의 명예 회복이 일본에서는 야스쿠니 신사에 묻히는 일일 텐데, 우리 입장에서 야스쿠니 신사는 A급 전범이 있는 곳이다. 일본인의 한국전쟁 참전 평가조차도 과거사가 가로막는다. 한일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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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클래식 - 나는 클래식을 들으러 미술관에 간다 일상과 예술의 지평선 4
박소현 지음 / 믹스커피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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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여행 중 당연히 벨베데레 궁전에 갔었고, 100년이 넘도록 한 번도 이곳을 벗어나지 않았다던 클림트의 대표작 <키스>를 감상했다.

'남자는 여자의 뺨에 키스하고 여자는 황홀한 듯 눈을 감은 채 볼에 붉은 홍조를 띠고 있다. 꽃으로 뒤덮인 절벽 끝에서 무릎을 꿇은 채 남자의 정열적인 키스를 받는 여자는 행복해 보이지만 불안해 보인다. 사랑의 본질을 꿰뚫듯 가장 빛나는 순간에 깃든 불안을 이중적으로 묘사했다. 남녀가 입은 옷의 무늬도 각각 둥글고 직각으로 대조적으로 그려져 여성성과 남성성을 극대화했다. (p. 221, 222)'

클림트의 여성편력에 실망한 에밀리는 그를 떠나지만, 클림트의 계속된 애원에 그의 곁으로 다시 돌아온다. 에밀리는 그의 죽음을 지켰고 친자소송과 유산 문제까지 현명하게 해결함은 물론, 클림트 사후 명성에 해가 될만한 편지나 엽서들을 없애버린다.

클라라 슈만의 삶이 에밀리와 무척이나 닮았다. 슈만을 향한 사랑 때문에 자신의 재능을 포기한 클라라, 브람스의 구애도 모른척하고 슈만의 아내로 남아 자신의 생을 슈만이 남긴 작품을 널리 알리는데 모두 바쳤다. 클림트의 <키스>, 슈만이 작곡해 클라라에게 바친 <헌정>에서 우리가 읽게되는 러브스토리는 사랑하는 이를 위한 두 여인의 희생이다.


'"Trato de aplica colores como las palabras dan forma a los poemas, como las notas dan forma a la música (나는 단어가 시를 만들고 음표가 음악을 만들어내듯, 색을 입혀보려 한다)."
주안 미로가 남긴 말처럼 음악과 미술, 시 등 예술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 연결선을 찾아 나선 여정이 행복하고 풍요로웠다. (p. 7)'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비올리스트 박소연은 <미술관에 간 클래식>에 가장 사랑받는 서른 명의 화가와 음악가를 이어 그들의 작품 속에 숨겨진 흥미로운 스토리를 담아냈다.


아름다운 선율이 가득한 리하르트 바그너의 <탄호이저> 3막 2장, 죽음을 각오한 엘리자베트의 영혼이 구원받기를 바라는 아리아 '저녁별의 노래'와 오버랩되는 아리아는 정신병원 창문으로 별을 바라보면서 죽음에 이른 고흐의 아름답고 슬픈 작품 <별이 빛나는 밤>이다.


프리다 칼로의 <벌새와 가시 목걸이를 한 자화상>과 뒤 프레에게 헌정된 자크 오펜바흐의 <자클린의 눈물>은 어떻게 이어질까.

스물한 살의 천재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는 세계적인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 다니엘 바렌보임과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하지만 희귀병으로 근육이 마비된 뒤 프레는 스물여덟 살의 젊은 나이에 은퇴하며 투병생활을 한다. 그 와중에 외도한 남편 바렌보임으로부터 버림받기까지 한다.

'"평생 나는 2번의 대형 사고를 겪었는데, 첫 번째는 나를 부서뜨린 전차였고 두 번째는 바로 디에고다. 두 사고 중 디에고가 더 끔찍했다."라고 회고한 칼로의 기록이 남아 있듯, 그녀는 자신의 육체에 갇혀 겪는 고통보다 2번의 이혼과 재결합을 반복했던 디에고와의 애증을 더욱 고통스러워했다. (p. 260, 261)'

하반신 장애와 근육조차 움직이지 못하는 무서운 질병으로 육체에 갇힌 프리다 칼로와 뒤 프레. 이 둘에게 사랑하는 이들로부터 버림받는 고통이 더해졌다. 두 여인은 서로 마주 보며 그 모습을 듣고 본다.


각 챕터마다 QR을 찍어 저자가 들려주는 음악을 들으며, 서른 개의 작품이 서로 이어진 스토리를 읽는 책 <미술관에 간 클래식>, 눈과 귀가 즐거운 시간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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