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실험 - 추상화 같은 사랑의 모든 풍경
이기진 지음 / 진풍경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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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뭐~ 읽을 책 없나'하고 찾길래 그림 많고 글자 수 적은 책을 좋아하는 터라 이 책을 권했다. 책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아내가 먼저 읽도록 한 것이 실수였다. 책장을 몇 장 넘길 때마다 원망의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며 한숨과 함께 눈가가 촉촉해지면서 내뱉는 말... "연애하고 결혼했어야 하는데..."

늦은 나이이기도 했고 결혼을 반드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꽉 찬 상태에서 누님의 친구 소개로 아내를 만났다. 융건릉 갈까요?라는 소리에 호감 표시인 줄 알았고 만난 지 2개월 만에 결혼했다.


저자인 이기진 교수를 처음 알게 된 건 방송 프로그램 '유퀴즈'에서였다. 씨엘이 자퇴하고자 했을 때 딸을 믿고 흔쾌히 승낙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씨엘의 말도 그랬다. '아빠는 노라고 한 적이 없어요.' 그래서 이번에도 자신을 믿고 지지해 줄줄 미리 알았다고 한다.

씨엘 아빠 이기진 교수의 알록달록한 그림과 함께 펼쳐진 연애의 풍경 그리고 그 묘사는 방송에서 그를 보고 상상한 그대로였다. 솔직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연애 감정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땀 한 땀 기억을 소환해 퍼즐 같은 글을 담았다. 연애를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는 동안 항상 애틋하고 그리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몰입했던 것 같다. 글쓰기를 마치고 한동안 상실의 느낌이 왔으니. 항상 시작과 끝은 있다. 연애처럼. (p. 6)'


끝이 없다면 연애라 할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연애를 하고 연애를 끝낸 사람이다. 끝난 연애 이야기만을 할 수 있다. 그러저러했노라고. 가슴 아프다고. 아직도 잊지 못하겠노라고. 연애 중이라면 누군가에게 사랑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둘만이 간직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랑도 우주의 다양한 별처럼 빛나기도 하고 서늘하게 죽어가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생겨났기' 때문에 죽어간다는 것이다. (p. 19)'

아내처럼 연애를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볼 수 있다 (물론 물어보지 않았고 물어보더라도 솔직하게 대답하지 않을 것이니 진위 여부를 알 수는 없지만). 연애해 보지 않았다고 연애 감정이 없을까? 아니다 짝사랑이란 게 있으니 얼마든지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연애 감정은 누구나 간직하고 있다.


'"지금 뭐 해?" 이 말을 듣게 되는 순간부터 두 사람 사이의 비밀도 사라진다. (...)
"나한테는 너밖에 없어." 이 말을 듣는 순간 사라진 자유는 달콤한 사랑으로 보상받게 된다. 사랑 속에 자유가 머무는 그 순간이 '화양연화' 아니었을까. (p. 64, 65)'

충분히 연애할 만한 시간이 물리적으로 부족했을 뿐 아내와 연애를 생략하고 결혼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연애의 실험>을 읽어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2개월 동안에도 많은 연애 감정이 있었다. 구속에 따르는 불편함도 느꼈고, 만나고 집에 들어와 긴 전화 통화로 같은 공간에 있지 않지만 같은 시간을 사는 경험도 했다. 사소한 다툼도 있었고, 둘만의 대화법도 생겼고, 그리움도 있었다. 우리 둘만이 할 수 있는 연애를 했다.

'연애야말로 가장 복잡한 인간관계에 속한다. 지구상에 같은 사람 없듯이 같은 연애는 없다. 연애는 세상에서 해답이 없거나 다양한 해답이 존재하는 관계의 문제일지 모른다. (p. 114)'

다만 러브스토리의 완성인 이별이 없었을 뿐이었다. 결혼을 했으니 말이다. 아내가 느끼는 연애에 대한 아쉬움은 이별이 없어서일 것이다. 그래서 2개월간의 연애는 연애가 아니었다는 생각을 아내는 하지 않았을까? 이별이 있어야 아픔이 있고, 미련이 남고, 연애의 감정에 몰입하게 한다. 아내와의 짧은 연애에 이별이 빠졌다.


'반짝반짝 빛나는 청춘의 연애가 가장 찬란한 건 당연하다. 연애 세포도 노화한다. 젊은 시절 연애를 미뤄 뒤늦은 나이에 주위를 둘러보면 사람도 없지만 무뎌진 창을 들고 전쟁터에 나가듯 불리해진다. 사랑 때문에 목숨처럼 소중한 것을 내놓을 수 있는 시기는 그리 길지 않다. (p. 136)'

이 책을 읽으며 누군가 떠올랐다면? 혹은 아무도 떠오르지 않았더라도 두 경우 모두 비극이란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표현한 연애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내가 "연애하고 결혼했어야 하는데..."라는 말에 이어서 내 눈을 보며 나에게 건넨 말이다.

대답하지 않았다. 무슨 의미일까? 아내는 어떤 대답을 기대했을까? 아니 대답을 기대하는 질문이 아니었을지도. 그 질문이 자신의 감정의 상자를 여는 열쇠였는지도...

모처럼 연애 감정이 뭉글뭉글, 가슴이 설레는 그런 시간을 가졌다. 이기진 교수의 <연애의 실험> 덕분이다.

'어둠이 더 내리고, 맥주 한 잔을 더 시켰다. 갑자기 누군가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온다. 마치 어디서 본 사람 같다. 분명 아닐 것이지만 어쩐지 익숙한 얼굴이다. 고개를 숙여 맥주를 마시고 다시 문 쪽을 바라보았다. 찰나의 순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사라져 버린 것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오지 않은 사람이었을까? (p.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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