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에서 싸운 일본인 - 일급비밀 공개로 드러난 일본인의 한국전쟁 참전 기록
후지와라 가즈키 지음, 박용준 옮김 / 소명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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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서 속에서 한국전쟁에 간 일본인이 한반도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선명하게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p. 11)'

이 이야기의 시작은 미국에 보관되었던 1급 극비 문서가 세상에 드러나면서부터다. 1.033쪽의 방대한 보고서는 미군을 따라 한국전쟁에 참전한 일본인 70명을 심문한 기록이다. 저자 후지와라 가즈키는 이 문서를 바탕으로 일부 생존자들과 유가족, 주변인을 중심으로 취재했다.

한국전쟁 전에 그들은 누구였는지, 어떻게 참가하게 됐는지, 어떤 임무를 수행하고 이용됐는지, 이 같은 사실을 감출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한국전쟁에서 싸운 일본인>은 이러한 실상을 밝히는 논픽션이다.


한국전쟁은 2차대전 패전 이후 일본의 경제난을 한 번에 해결하는 모멘텀이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요시다 시게로 총리가 "이제 일본은 살았다!"라고 외쳤을 정도였다. 일제강점기를 겪은 사실만으로도 불쾌하기 짝이 없는데 한국전쟁에 일본인 가담했다는 사실은 충격이다.

당시 일본은 주권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로 미 군정하에 놓여있었다. 미군의 필요와 요구에 따라 일본인들이 참전했다. '설마 그랬을까?'라고 우리가 생각하는 건 일본 평화헌법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무기를 손에 들 수 없었다. 이런 일본 국내법 위반이 미국이 일본인의 한국전쟁 참전 사실을 철저히 은폐한 이유이기도 하다.

더더욱 우리나라에 이러한 사실이 제대로 알려질 수 없었던 건 우리의 한국전쟁에 대한 인식 때문이다. 우리는 국군과 미군 그리고 유엔군의 희생으로 전쟁을 기억한다. 또한 전쟁 중 벌어진 민간인 학살도 기억하는데, 일본인의 참전은 일제강점기에 이어 전쟁 중 민간인 학살에 일본이 가담한 역사적 사실이 된다. 한국전쟁에 일본인 등장 자체가 기분 나쁘다.


'정병욱은 일본인의 한국전쟁에서의 통역을 '일본인, 일본어의 참전', '전장에서의 식민지 질서 재생', '식민주의의 그림자'로 표현하며, 식민지 시기 '국어'로 강제되었던 일본어에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5년 만에 매달려야 하는 한국인들의 처지를 언급하였다. (p. 371)'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소속된 일본인들은 미군의 통역을 담당하며 참전했다. 이로 인해 언어 간에 위계가 생겨버렸다. 한국어는 영어, 일본어에 이어 가장 아래에 자리했다. 한국인들은 정보를 제공했고 때에 따라 호소해야 할 일이 잦았는데, 일본인에게 해야 하다 보니 한국어 대신 일본어를 사용했다.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언어의 차별적인 구조와 역할이 한국전쟁에서 재현된 것이다.

전쟁에 참가한 일본인들이 한국에서 일본어를 사용하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아 외국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할 정도였다. 일본인이 느낀 우월감, 편안함의 반대편에서 일제강점기를 겪은지 몇 년도 되지 않아 전쟁터에서 일본어를 들으며 한국어의 위계를 다시 실감하는 한국인들의 당혹감과 불안감은 어떠했을지 상상하기도 싫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일본인들의 희생을 우리는 어떻게 정의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그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는 것이 마땅할까? 하지만 대한민국과 일본, 두 나라 간의 역사적 관계를 고려할 때 객관적 접근은 그리 쉽지 않다. 이를테면 전쟁에서 희생당한 일본인의 명예 회복이 일본에서는 야스쿠니 신사에 묻히는 일일 텐데, 우리 입장에서 야스쿠니 신사는 A급 전범이 있는 곳이다. 일본인의 한국전쟁 참전 평가조차도 과거사가 가로막는다. 한일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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