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신화 신박한 정리 - 한 권으로 정리한 신들의 역사
박영규 지음 / 김영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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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고 이해하고 머릿속에 간직하려 할까? 그리스 로마 신화가 서양 문화를 이루는 데 한 축을 담당한 헬레니즘의 토대이며, 이 신화를 빼놓고는 유럽의 철학과 예술 그 어떤 것도 논할 수 없고 접근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유럽의 지명, 바다, 섬, 꽃, 나무, 별자리 이름 그리고 사상이나 현상의 유래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비롯된 것들이 부지기수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암투와 패륜, 욕망과 폭력으로 얼룩진 제우스와 그 가족 및 후손들의 행위를 신화와 문학의 이름으로 미화한 우상화 작업의 결정체다. (p. 11, 들어가며)'

그리스 로마 신화를 쓴 주요 작가와 작품을 살펴보면, 주로 이오니아 지방에서 활동한 유랑 시인 호메로스의 두 작품을 우선 들 수 있다. 기원전 13세기경 10년 동안 벌어진 트로이 전쟁 중 51일간 일어난 사건을 서술한 서사시 <일리아스>, 트로이 전쟁 영웅 오디세우스가 전쟁 후 귀향하는 10년 동안의 모험담을 담은 서사시 <오디세이아>가 그것이다.

우주의 기원부터 그리스 신들의 탄생 과정과 가계를 다룬 <신들의 계보>는 <신통기>라고도 하는데 기원전 7세기경 활동한 그리스 작가 헤시오도스의 대표작이다. 그밖에 그리스 비극의 대가 아이스킬로스, 시인 에우리피데스, 소포클레스를 꼽을 수 있다. 로마의 시성 베르길리우스는 그리스 신화를 로마 신화로 전환하는데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들으면 아는 이야기인데 해보라고 못하는, 헷갈리고 뒤죽박죽 복잡하게 얽힌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 등장인물도 많고 가족관계는 또 얼마나 꼬여있나. 우리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어렵게 여기는 이유다.

현재 다산학교를 설립해 대안 교육을 하는 저자 박영규는 역사, 문화, 철학, 종교 등 50여권의 책을 출간한 작가다. '한 권으로 읽는 역사' 시리즈로 알려진 작가답게 복잡하고 어렵게 여기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신선하고 박식하게' 정리했다.

우선 제우스와 그의 가족들이 신격화되는 과정을 서술했고, 제우스의 여인들, 제우스의 아들들. 제우스의 딸들로 구분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다음 제우스의 후손들이 이룬 왕가, 아르고호 원정대, 트로이 전쟁 이야기, 마지막으로 민간 전설에서 그리그 로마 신화로 흡수된 인물과 괴물을 다루었다.

이 책은 정리의 마법을 부리는듯하다. 여러 권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었어도 정리가 잘되지 않았는데 이제 좀 그리스 로마 신화가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신들의 가계도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이제부터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로 수다 좀 떨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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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인 어휘 생활 - 잘못 쓰고, 오해하고, 혼동하는 생활 어휘 바로잡기
김점식 지음 / 틔움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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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때였나? 확실치 않지만 그때 상황이 너무 인상 깊게 남아 문제만큼은 확실히 기억한다. 한문 시험, 향香자의 음과 훈을 써넣는 문제였다. 나를 비롯해 많은 아이들이 '냄새 향'으로 답을 적었고 답으로 해주면 안 되는지 선생님께 사정했다. 선생님의 대답은 '똥 냄새도 향기냐? 안돼!'였다.

한자를 배운 세대여서 제법 안다. 게다가 입사하고 몇 년 동안 기안을 비롯한 문서를 작성할 때 한자를 섞어 손글씨로 썼다. 한자를 많이 제대로 알지 못한다든지 악필은 회사 생활에 애로가 있던 시절이었다. 중학생 시절부터 미국에서 공부한 사원이 우리 팀에 있었는데 협조전 몇 줄 읽는데 한자어 뜻을 몰라 수없이 질문을 해댔다.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한문을 제법 배운 나도 한자 때문에 애를 먹었는데 한자를 사용하는 환경이 아니 곳에서 자랐거나 한자를 배우는데 등한시한 세대라면 그 어려움은 훨씬 심했지 않았을까?


한자와 인문학을 강의하는 저자는 문해력이 떨어지는 이유를 동영상을 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어떤 말이나 글을 느낌대로 의미를 파악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게다가 우리말에 한자어가 70퍼센트나 되는데 이를 한글로만 표기하는 하는 것도 문해력을 떨어뜨리는데 한몫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문해력을 높이는 마중물이 되도록, 흔히 쓰는 말인데 의미를 잘 모르겠거나 혼동하기 쉬운 사례 145개 뽑아 설명한다.


'개판開板이라고 쓰면 판으로 된 솥뚜껑을 열기 오 분 전이란 말이다. 한국 전쟁 당시 부산에서 피난민을 위해 무료로 음식을 제공하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개판오분전開板五分前"이라고 외치면 곧 뚜껑을 열어 배식을 시작한다는 말이다. (p. 16)'

개들이 멍멍 짖어대며 난리 난 상황을 이르는 말인 줄 알고 있었는데 개와는 아무 상관 없었다. 음식을 나누어 주기 전, 굶주린 피난민들이 마구 모여드는 데서 유래한 아픈 역사를 간직한 말이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구축'을 구조물을 쌓는다는 의미의 構築으로 알고 있었다. 영어로 살펴보면 뜻이 또렷해진다. " Bad money will drive good out of circulation." 몰아낸다는 뜻인 驅逐이다. 해군의 구축함도 같은 의미를 가진 한자 驅逐을 쓴다.

'기계체조器械體操란 결국 철봉이나 뜀틀 등의 기구를 사용하는 체조다. (p. 168)' 당연히 동력 장치가 있는, 우리 흔히 쓰는 단어인 機械인 줄 알았다.

이렇듯 음은 같지만 뜻이 다른 한자어인 경우 한자를 같이 써넣으면 의미가 명확해진다. 하지만 한자를 모르면 그것도 소용없긴 하다.

'미망인未亡人은 말 그대로 아직 죽지 않은(未亡) 사람이라는 뜻이다. 죽은 남편을 따라 죽었어야 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런데도 이 말이 과부寡婦보다 더 품격 있는 말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p. 244)'


우리글은 표음문자이다. 그렇다 보니 한자와 같은 표의문자에 비해 의미를 전달하는 데 단점이 있다. 한자문화권에 있으니 한글만 쓰는 것도 불편하다. 그러니 한자와 한글을 같이 쓰면 서로 장점을 누리고 단점은 보완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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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상실 - 해결되지 않는 슬픔이 우리를 덮칠 때
폴린 보스 지음, 임재희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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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모호한 상실>의 저자 폴린 보스는 임상심리전문가로 4,000명 이상의 가족을 상담하면서 '모호한 상실' 이론을 정립했다.

'모호한 상실에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첫 번째는 생사 여부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들에 의해 실체는 없지만 심리적으로 존재한다고 인지되는 경우이다. (...) 두 번째 유형은, 실체는 있지만 심리적으로 부재하는 경우다. (p. 29)'

상실은 완벽하게 사라진 상태다. 죽음이 대표적이다. 실제 대상도 없고 슬픔에 잠기긴 하지만 애도의 환경 속에서 슬픔을 이해받고 위로를 얻어 심리적으로도 그 대상이 사라졌음을 인정한다. 그런데 '모호한 상실'은 실체와 심리에서 상실의 경계가 모호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 죽음이 확실하지 않은 실종, 이민, 입양, 알츠하이머, 기억상실, 정신질환 등이 모호한 상실의 경우에 해당한다. 나 그리고 우리와 너무도 가깝게 내 가족 또는 주변에 있는 것들이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사건에 유독 감정이입이 계속되고 있는 건 그 배에 타고 있던 아이들이 큰 아이의 또래여서이다. 그 당시에도 자식 같은 아이들의 죽음이어서 남 일 같지 않았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 가슴속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작별을 고하지 못하고 불가사의하게 사라진 사람들은 계속해서 생존자들과 그 이후 세대 사람들을 따라다닌다. (p. 67)'

해결되지 않은 슬픔이어서 유가족에게 아이들 죽음은 '모호한 상실'이다. 시체 팔이 그만하라는 모진 말을 서슴지 않는 자들, 그들이 주는 모욕을 참고 견디는 이유는 어떤 식으로라도 모호한 상실을 끝내고 싶은 마음에서다.

'사고 원인이 무엇이며, 왜 아이들을 구조하지 않았는지...' 상황을 명확하게 설명해 주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뭉개버린다. 이 모호함이 밝혀지지 않는 한 유가족의 트라우마는 계속될 것이다. 급기야 아이들의 죽음이 외부 요인에 의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은 자신의 탓으로 몰아가 아픔은 더욱 깊어진다.

이들 가족들은 교육받은 대로 생각했다. 세상은 합리적이고 정의롭다고 말이다. 그런 세상이 비웃으며 이들을 조롱한다. "왜 인생에 권선징악, 인과응보만 있는 줄 알까?" 어느 영화의 대사를 읊조리면서... 이들 유가족들은 모호한 상실을 언제까지 가슴에 안고 살아가야 하나.


'상실과 모호함 모두 인간 경험의 핵심 요소이며, 이 둘이 종종 '모호한 상실'로 합쳐지는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p. 302)'

'모호한 상실'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저자 폴린 보스가 제시하는 치유의 방법은 '모호한 상실'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함께 살아가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 확실한 건 없다. 대신 모호함 투성이다. 그런 세상 속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세상을 공평하고 정의로운 곳으로 바라보면 모호한 상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 열심히 일하고 도덕적인 사람이면 누구나 성공하고 행복할 거라 여기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내가 겪는 모호한 상실의 원인이 내가 무능해서, 게을러서, 부도덕해서가 아니다. 좋은 사람에게도 나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그 원인이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면 모호한 상실에서 비롯된 트라우마 속에서 계속 세월호 유가족들은 살아가야 하나,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외부적으로는 원인을 밝히는 노력을 하고 동시에 내면적으로는 죽음을 마주하고 받아들여 의미를 찾아야 한다. 그들 가족 그리고 우리에게 모호한 상실은 이어질 것이다. 일상임을 인정하고 감수하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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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를 신은 세계사 - 신발로 살펴보는 세계의 역사와 문화 자음과모음 청소년인문 26
태지원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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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를 신은 세계사>는 중고등학교 사회 교사로 10년간 아이들을 가르친 저자가 자칫 지루해할 수 있는 사회 과목을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펴낸 여러 권의 책 중에 하나다. 신발을 주제로 한 세계의 역사와 문화 이야기다.


신발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구두하면 유리구두, 신데렐라다. 그런데 여러 버전의 신데렐라 이야기 중 그림형제의 신데렐라 이야기 속에 구두는 황금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저자는 '이야기 속에서 유리 구두는 나와 내가 아닌 사람을 구분하는 도구 (p. 61)'라고 해석한다. 신발을 꼭 맞아야 편안하다. 다른 사람이 주인공의 신발을 신으면 그 신발은 제 기능하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구두는 신데렐라를 증명하는 도구가 된다. (계모가 친딸을 왕비로 만들려는 욕심에 딸의 발가락을 잘랐다는 이야기는 잔혹동화 그 자체다.)

나같이 올드한 사람은 구두하면 신데렐라보다 이멜다가 먼저 떠오른다. 무려 21년 동안 독재를 했던 필리핀 대통령 마르코스의 부인이다. 샤넬, 페라가모 등 명품 브랜드의 구두를 무려 천 켤레 넘게 가지고 있었고, 매일 구두를 갈아 신었다고 한다. 하루도 같은 구두를 신은 적이 없다고 하니 이 정도면 중독이다. 소비를 하거나 물건을 사용할 때 만족감이 올라가다가 떨어지는 순간을 한계효용이라고 한다. 이 법칙에 예외인 경우가 바로 중독되었을 때다.

중국의 전족은 미의 기준이 발이 작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생겨났다. 전족용 신발 크기가 100~130 밀리 정도였다고 한다. 전족이 시작된 여러 설 중 하나로 여성의 사회 진출을 막기 위한 이유를 꼽는다. 발이 작아지면 걷기 힘들어 활동하기가 어렵다. 여성은 집 안에서 남성들을 즐겁게 해 주는 존재일 뿐이다. 이 풍습은 거의 천 년 동안 유지됐다.

신발은 저항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한열 기념관에 전시된 이한열 열사의 오른쪽 신발 한 짝은 1987년 민주화 운동을 상징한다. 연세대 2학년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자리에 운동화 한 짝이 남았고, 이를 발견한 학교 선배가 주워 가족에 전달했다.


그 밖에도 하이힐, 크록스, 녹조라떼 신발, 다뉴브강의 신발 동상, 간디의 신발...

신발은 욕망을 표상하기도 하고 정체성을 증명하는 도구로도 작용한다. 차별, 혐오, 전쟁과 같은 아픈 이야기도 담고 있다. 우리 일상인 평범한 신발에 담겨있는 역사와 문화 이야기를 <구두를 신은 세계사>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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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일본책 - 서울대 박훈 교수의 전환 시대의 일본론
박훈 지음 / 어크로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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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 이를테면 미국은 미국놈이라고 하지만 가끔은 뭐 미국 사람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일본은 반드시 일본놈이라고 한다. 아니면 왜놈.

스포츠도 다른 나라는 질 수 있다. 일본만큼은 안된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 1997년 축구 한일전, 도쿄대첩이라 불리는 경기에서 송재익 캐스터의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라는 멘트는 언제 들어도, 2010년 일본의 월드컵 출정식을 망친 시합에서 박지성의 '산책 골 세리머니'는 보고 또다시 봐도 통쾌하다. 아마 일본도 우리와 마찬가지일 거다.

<위험한 일본책>의 저자인 박훈 교수는 이런 심리를 멸시와 불신의 감정과 더불어 두려움과 피해의식이라는 콤플렉스가 묻어있다고 설명한다. 일본이라고 다르지 않다. 그들도 서양에 대한 콤플렉스보다 우리에게 더 심하고, 그걸 보상받기 위해서 한국만큼을 일본이 이겨야 한다는 심리를 갖고 있다고 분석한다.


사실 일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우리가 말은 많이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리 자세히 일본을 알지 못한다. 대부분 주워들었거나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현상만을 갖고 이야기한다.

'한반도와 일본열도는 지척 거리에 있지만, 그 지정학적 조건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큰 자연재해 없는 한반도는 지질학적으론 천국, 지정학적으론 지옥이며, 일본은 그 반대라 할 수 있다. (pp. 50, 51)'

나만 해도 일본 역사에 그리 밝지 않다. 두견새를 소재로 '노부나가는 울지 않는 두견새는 죽여야 한다고, 히데요시는 울게 해야 한다고, 도쿠가와는 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라고 하이쿠를 읊은 세 인물, 그리고 근대사도 (이 책에도 등장하지만) 일본 메이지유신을 이끈 사카모토 료마를 다룬 시바 료타로의 10권짜리 전집 <료마가 간다>를 읽고 대충 꿰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위험한 일본>을 읽고 그동안 잘못 알았던 사실들도 있음을 깨달았다. 섬나라라는 생각에서인지 일본은 오래전부터 해양강국이라 여겼는데 해양국가가 된 때는 메이지 시대 이후다.

또 하나 전쟁하면 임진왜란, 태평양 전쟁이 떠올라 일본 사람들이 전쟁의 참상을 잘 알겠거니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물론 원폭 투하로 도시가 벌판이 되긴 했다. 하지만 눈앞에서 적군이 이웃과 가족을 죽이는 전쟁의 참혹함은 겪지 않았다.


'이 책에서 지금까지 해온 주장의 결론은 전 세계인이 일본을 무시해도 한국인만은 일본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재팬 패싱'은 통쾌하기는 한데 우리 국익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 지금은 거꾸로 전 세계 아무도 일본을 무시하지 않는데, 한국만 무시한다. 물론 전 세계가 일본을 존경한다 해도 한국인은 그럴 필요 없다. 끝내 존경하지 않으나 그렇다고 무시하지는 않는 자세, 그게 대일 자세의 입각점이라고 나는 믿는다. (p. 253)'

박훈 교수의 주장이 이성으로는 이해되고 옳다고 생각한다. 한데 감정은 그렇지 않다. '반일이면 무죄'라는 사람들에게 욕먹을 각오까지 하고 쓴 일본론인데도 말이다.

'이렇게 보면 "이게 나라냐!"라며 비장하게 출발한 정부가 "이건 나라냐!"라는 냉소에 직면한 것도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pp. 233, 234)'

이 책을 읽는 시기가 잘못된 탓일까? 강제징용에 대한 우리 기업의 제3자 변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동해의 일본해 표기, 독도 문제, 독립운동을 한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한미일 군사동맹에서 위계상 맨 아래쪽에 있는 등 우리 정부의 일본에 대한 굴욕적 태도가 문제다. 저자가 제시한 일본을 바라보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데 장애물이 되어 가로막는다.


다음 세대에 일본과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까? 일제 강점기 문제를 풀어나가는 지혜로운 방법은 무엇일까? 박훈 교수도 말하다시피 위안부 피해자와 같은 인권문제와 달리 식민지 문제는 국제 사회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쉽지 않은 이슈다. 독일이 되풀이하는 사과도 전쟁 행위에 대한 반성이지 식민 행위는 아니다. 강대국들 모두 식민 지배를 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은 대단한 외교적 성과이고 한일 문제 해결의 실마리이다.

'일본 젊은이들은 한국 식민지 얘기가 화제에 오르면 "도대체 저런 선진국을 상대로 '감히' 일본이 어떻게 그런 짓을 했지?"라는 표정을 짓는다. 지금은 아마도 일본에 대한 한국 젊은이들의 선망보다, 일본 젊은 친구들의 한국 동경이 더할 것이다. (p. 140)'

우리 아이들도 더 이상 일본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 듯하다. 왜놈이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임진왜란 때의 조선은 물론 구한말의 조선도 아니다. 무조건 일본을 배척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희망을 걸어보는 이유다. 비판할 건 하면서도 같이 나가는 이웃나라 일본, 그렇게 일본을 바라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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