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인 어휘 생활 - 잘못 쓰고, 오해하고, 혼동하는 생활 어휘 바로잡기
김점식 지음 / 틔움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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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때였나? 확실치 않지만 그때 상황이 너무 인상 깊게 남아 문제만큼은 확실히 기억한다. 한문 시험, 향香자의 음과 훈을 써넣는 문제였다. 나를 비롯해 많은 아이들이 '냄새 향'으로 답을 적었고 답으로 해주면 안 되는지 선생님께 사정했다. 선생님의 대답은 '똥 냄새도 향기냐? 안돼!'였다.

한자를 배운 세대여서 제법 안다. 게다가 입사하고 몇 년 동안 기안을 비롯한 문서를 작성할 때 한자를 섞어 손글씨로 썼다. 한자를 많이 제대로 알지 못한다든지 악필은 회사 생활에 애로가 있던 시절이었다. 중학생 시절부터 미국에서 공부한 사원이 우리 팀에 있었는데 협조전 몇 줄 읽는데 한자어 뜻을 몰라 수없이 질문을 해댔다.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한문을 제법 배운 나도 한자 때문에 애를 먹었는데 한자를 사용하는 환경이 아니 곳에서 자랐거나 한자를 배우는데 등한시한 세대라면 그 어려움은 훨씬 심했지 않았을까?


한자와 인문학을 강의하는 저자는 문해력이 떨어지는 이유를 동영상을 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어떤 말이나 글을 느낌대로 의미를 파악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게다가 우리말에 한자어가 70퍼센트나 되는데 이를 한글로만 표기하는 하는 것도 문해력을 떨어뜨리는데 한몫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문해력을 높이는 마중물이 되도록, 흔히 쓰는 말인데 의미를 잘 모르겠거나 혼동하기 쉬운 사례 145개 뽑아 설명한다.


'개판開板이라고 쓰면 판으로 된 솥뚜껑을 열기 오 분 전이란 말이다. 한국 전쟁 당시 부산에서 피난민을 위해 무료로 음식을 제공하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개판오분전開板五分前"이라고 외치면 곧 뚜껑을 열어 배식을 시작한다는 말이다. (p. 16)'

개들이 멍멍 짖어대며 난리 난 상황을 이르는 말인 줄 알고 있었는데 개와는 아무 상관 없었다. 음식을 나누어 주기 전, 굶주린 피난민들이 마구 모여드는 데서 유래한 아픈 역사를 간직한 말이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구축'을 구조물을 쌓는다는 의미의 構築으로 알고 있었다. 영어로 살펴보면 뜻이 또렷해진다. " Bad money will drive good out of circulation." 몰아낸다는 뜻인 驅逐이다. 해군의 구축함도 같은 의미를 가진 한자 驅逐을 쓴다.

'기계체조器械體操란 결국 철봉이나 뜀틀 등의 기구를 사용하는 체조다. (p. 168)' 당연히 동력 장치가 있는, 우리 흔히 쓰는 단어인 機械인 줄 알았다.

이렇듯 음은 같지만 뜻이 다른 한자어인 경우 한자를 같이 써넣으면 의미가 명확해진다. 하지만 한자를 모르면 그것도 소용없긴 하다.

'미망인未亡人은 말 그대로 아직 죽지 않은(未亡) 사람이라는 뜻이다. 죽은 남편을 따라 죽었어야 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런데도 이 말이 과부寡婦보다 더 품격 있는 말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p. 244)'


우리글은 표음문자이다. 그렇다 보니 한자와 같은 표의문자에 비해 의미를 전달하는 데 단점이 있다. 한자문화권에 있으니 한글만 쓰는 것도 불편하다. 그러니 한자와 한글을 같이 쓰면 서로 장점을 누리고 단점은 보완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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