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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상실 - 해결되지 않는 슬픔이 우리를 덮칠 때
폴린 보스 지음, 임재희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8월
평점 :
이 책 <모호한 상실>의 저자 폴린 보스는 임상심리전문가로 4,000명 이상의 가족을 상담하면서 '모호한 상실' 이론을 정립했다.
'모호한 상실에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첫 번째는 생사 여부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들에 의해 실체는 없지만 심리적으로 존재한다고 인지되는 경우이다. (...) 두 번째 유형은, 실체는 있지만 심리적으로 부재하는 경우다. (p. 29)'
상실은 완벽하게 사라진 상태다. 죽음이 대표적이다. 실제 대상도 없고 슬픔에 잠기긴 하지만 애도의 환경 속에서 슬픔을 이해받고 위로를 얻어 심리적으로도 그 대상이 사라졌음을 인정한다. 그런데 '모호한 상실'은 실체와 심리에서 상실의 경계가 모호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 죽음이 확실하지 않은 실종, 이민, 입양, 알츠하이머, 기억상실, 정신질환 등이 모호한 상실의 경우에 해당한다. 나 그리고 우리와 너무도 가깝게 내 가족 또는 주변에 있는 것들이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사건에 유독 감정이입이 계속되고 있는 건 그 배에 타고 있던 아이들이 큰 아이의 또래여서이다. 그 당시에도 자식 같은 아이들의 죽음이어서 남 일 같지 않았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 가슴속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작별을 고하지 못하고 불가사의하게 사라진 사람들은 계속해서 생존자들과 그 이후 세대 사람들을 따라다닌다. (p. 67)'
해결되지 않은 슬픔이어서 유가족에게 아이들 죽음은 '모호한 상실'이다. 시체 팔이 그만하라는 모진 말을 서슴지 않는 자들, 그들이 주는 모욕을 참고 견디는 이유는 어떤 식으로라도 모호한 상실을 끝내고 싶은 마음에서다.
'사고 원인이 무엇이며, 왜 아이들을 구조하지 않았는지...' 상황을 명확하게 설명해 주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뭉개버린다. 이 모호함이 밝혀지지 않는 한 유가족의 트라우마는 계속될 것이다. 급기야 아이들의 죽음이 외부 요인에 의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은 자신의 탓으로 몰아가 아픔은 더욱 깊어진다.
이들 가족들은 교육받은 대로 생각했다. 세상은 합리적이고 정의롭다고 말이다. 그런 세상이 비웃으며 이들을 조롱한다. "왜 인생에 권선징악, 인과응보만 있는 줄 알까?" 어느 영화의 대사를 읊조리면서... 이들 유가족들은 모호한 상실을 언제까지 가슴에 안고 살아가야 하나.
'상실과 모호함 모두 인간 경험의 핵심 요소이며, 이 둘이 종종 '모호한 상실'로 합쳐지는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p. 302)'
'모호한 상실'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저자 폴린 보스가 제시하는 치유의 방법은 '모호한 상실'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함께 살아가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 확실한 건 없다. 대신 모호함 투성이다. 그런 세상 속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세상을 공평하고 정의로운 곳으로 바라보면 모호한 상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 열심히 일하고 도덕적인 사람이면 누구나 성공하고 행복할 거라 여기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내가 겪는 모호한 상실의 원인이 내가 무능해서, 게을러서, 부도덕해서가 아니다. 좋은 사람에게도 나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그 원인이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면 모호한 상실에서 비롯된 트라우마 속에서 계속 세월호 유가족들은 살아가야 하나,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외부적으로는 원인을 밝히는 노력을 하고 동시에 내면적으로는 죽음을 마주하고 받아들여 의미를 찾아야 한다. 그들 가족 그리고 우리에게 모호한 상실은 이어질 것이다. 일상임을 인정하고 감수하며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