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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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나는 시, 소설, 그림, 조각, 음악, 그 무엇이건 간에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이 인간이 고안해낸 그 어떤 장벽도 초월한다는 믿음으로 이 책을 썼다. (p. 6, 지은이의 말)'

퇴직 무렵, 그동안 읽지 못한채 책꽂이에 꽂아놓은 책이나 읽어보자는 생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블로그 대문에도 써놓았듯이 내게 앞으로 남은 생을 책으로 채워보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우연찮게도 책을 읽는 세계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내 친구가 되주었다. 두려움이라는 장벽이 퇴직 후 내 삶을 가로막고 있었지만 그들이 있어 그 장벽을 넘어 살아가는 중이다. 책이 맺어준 인연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영국해협 채널제도 건지섬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작가 줄리엣 에슈턴 앞으로 배달된다. 그 편지는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의 멤버 도시 애덤스가 찰스 램의 <엘리아 수필 선집> 앞표지 안쪽에 적힌 줄리엣의 주소를 보고 보낸 것이다.

'그래서 당신에게 부탁드립니다. 런던에 있는 서점 이름과 주소를 좀 보내주시겠습니까? 찰스 램의 작품을 우편으로 주문하려 합니다. (...) 그의 유쾌하고 기지 넘치는 글을 읽다 보니 찰스 램이 인생에서 엄청난 슬픔을 겪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pp. 18, 19)'

이를 계기로 줄리엣은 건지섬과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에 호기심을 갖게된다. 북클럽 회원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면 그들이 어떻게 전쟁의 폐허 속에서 견뎌냈는지 알게되고 그 이야기를 <타임스> 컬럼에 소개하기로 결심한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은 모저리 부인의 초대로 돼지고기 파티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가다 통행금지에 걸려 그 상황을 모면하려는 엘리자베스 메케너의 임기응변으로 탄생한 북클럽이다. 두 명의 회원들 제외하고 책을 가까이 했던 사람은 북클럽 가운데 아무도 없었다.

'통행금지령을 어겨서 정말 죄송합니다. 건지섬 문학회 모임이 있었어요, 오늘은 <엘리자베스와 그녀의 독일식 정원>에 대해 토론했는데 정말 유쾌한 시간을 보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책이죠, 혹시 읽어보셨나요? (p. 51)'

서간문 형식의 소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의 편지에는 건지섬 사람들이 독일군 점령하에 받은 상처가 담겨있다. 불안, 갈등, 질투, 굶주림 등 참혹한 현실, 그 가운데 사랑이 꽃피기도 하지만 이별의 아픔도 있다.

엘리자베스로부터 시작된 북클럽은 고아가 된 그녀의 아이 킷을 돌봐주는 등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보살핌과 우정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 유머와 따뜻함이 있어 더한 감동을 준다.


책이 맺어준 인연들과 다양한 채널로 책모임을 갖고 있다. 우선 그들과 평어를 사용하면서 나이라는 장애물을 뛰어넘었다. 차려입고 외출도 한다 (가끔 아내와 함께). 그들 덕분에 웃기도 한다. 나이든 사람과 말상대를 해주니 수다도 떤다 (꼰대 소리 듣지 않으려고 조심하지만 잘 안된다).

이 책이 탄생한 배경에도 '문학회'가 있다. 메리 앤이 1980년 건지섬을 다녀온 다음 20년이 지난 후 글쓰기 모임 회원들의 글을 쓰라는 재촉이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의 씨앗이 됐다. 책과 책이야기를 나누는 북클럽에는 놀라운 힘이 있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회원들이 절망적인 전쟁의 한가운데에서도 진정한 유대의 힘을 보여줬듯이.

'건지섬 주민들이 독서를 은신처 삼아 독일군 점령기를 견뎌냈듯이 (p. 433, 애니 배로스가 메리 앤 섀퍼를 기억하며)' 나도 책을 사랑하는 책 친구들,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 친구들, 책을 같이 읽는 책 친구들의 유대의 힘에 기대어 '60 이후의 공간을' 책읽는 기쁨으로 견뎌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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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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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는 1891년 미주리 주 중부 분빌 마을 근처의 작은 농가에서 태어났다. (p. 9)'
나는 1960년 초반에 한강을 사이에 둔 북한 접경 지역의 경주 김씨 집성촌에서 태어났다.

'윌리엄 스토너는 1910년, 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했다. 8년 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강사가 되어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단에 섰다. 그는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했으며,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 중에도 그를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p. 8)'

나는 1980년 초반에 대학에 입학했다. 민주화운동 시위가 한창이어서 대학에는 매캐한 최루탄 냄새가 한가득인 때였다. 졸업 후 기업에 취업해 나름 열심히 일했지만 내가 원하던 직위까지는 올라가지 못한 채 정년퇴직했다. 그래서 회사 동료들 가운데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가난한 스토너는 학자가 될 환경은 아니었지만 영문학 교수 아처 슬론의 인정을 받아 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모르겠나, 스토너 군?" 슬론이 물었다. "아직도 자신을 모르겠어? 자네는 교육자가 될 사람일세."
(...)
"그런 걸 어떻게 아시죠?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이건 사랑일세, 스토너 군." 슬론이 유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는 사랑에 빠졌어. 아주 간단한 이유지." (p. 31, 32)'

가장 연한 파란색 눈을 가진 이디스는 스토너를 사로잡았다. 하지만 결혼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결혼이 실패작임을 깨달았다. 딸아이를 돌보는 일은 무척 기뻤다. 모든 사랑을 딸에게 주었다. 딸과 행복도 잠시였다. 이디스가 둘 사이를 갈라놓았다.

학교에서는 장애를 가진 로맥스 교수가 스토너를 곤혹스럽게 했다.
'나이 마흔셋에 윌리엄 스토너는 다른 사람들이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이미 배운 것을 배웠다. 첫사랑이 곧 마지막 사랑은 아니며, 사랑은 종착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p. 272)'
로맥스는 스토너와 캐서린의 사랑마저 깨뜨려 버렸다.

사랑하는 딸 그레이스의 결혼생활에도 불행이 찾아왔다. 아들이 태어났지만 그레이스 남편은 아이를 보지도 못하고 전장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아버지가 가없어요.” 그레이스의 목소리가 들려서 그는 다시 정신을 다잡았다. "아버지가 가없어요. 편안한 삶이 아니었잖아요."
그는 잠시 생각해 본 뒤 입을 열었다. "그랬지. 하지만 나도 편안한 삶을 원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엄마와 제가… 우리 둘 다 아버지를 실망시켰죠?" (p. 381)'

스토너는 남들이 보기에 실패작처럼 보일 자신의 삶을 뒤돌아본다. 우정을 원했지만 친구 한 명은 전쟁에서 무의미한 죽음을 맞이했다. 결혼을 통해 다른 삶과 연결된 열정을 느끼고 싶었지만 서툴러서 열정이 죽어버렸다.

캐서린을 사랑했다. 아쉽게도 마지막에 스토너는 그 사랑을 포기하고 캐서린이 혼돈 속으로 걸어가는 걸 지켜보기만 했다. 학교 강단에 서고 싶었고 그 사명에서 온전한 순수성과 성실성을 꿈꿨다. 하지만 시시한 일들에 정신을 빼앗겨버렸다.

'그는 지혜를 생각했지만, 오랜 세월의 끝에서 발견한 것은 무지였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그는 생각했다. 또 뭐가 있지?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p. 388)'
스토너는 자신의 책을 펼쳐 손가락에서 힘이 빠질 때까지 책장을 넘기다 영원한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스토너의 인생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내가 살아온 삶도 한 장 한 장 넘겼다. 우리들 대부분은 여유롭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난다. 우연한 기회에 인연이 되어 뜻하지 않았던 분야의 일을 한다. 사랑에 실패해 쓴맛을 보기도 하고 뒤늦게 남몰래 해야만 하는 사랑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결혼해 가정을 이룬다. 결혼을 후회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이만하면 잘한 결혼이라는 생각도 한다. 아이와 사이가 좋은 시절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시절도 간혹 있다. 아이가 힘들어할 때 안쓰러운 마음으로 지켜본다.

직장에서는 내 앞 길을 막는 꼴통 같은 상사를 만나 괴로움을 겪기도 하지만 뒤돌아보며 애써 별일 아니었다고 스스로 위로한다. 진정한 친구라고 할만한 몇 명의 친구가 남아있는 건 참 좋은 일이다.

특별하지도 위대하지도 않은 평범한 나의 삶과 스토너의 삶이 무척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내 인생에서 만났던 사람들, 그들은 날 어떻게 볼까? 나름 내가 하는 일에 성실하게 임했고 애정을 갖고 열정을 쏟아부었다. 일에서 의미를 발견하기도 했다. 살면서 만난 여러 불행과 슬픔을 제법 잘 견뎠다. 스토너처럼.

영웅적 서사에 익숙해 그런 삶을 성공으로 본다면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룬 게 없으니 나는 실패한 삶일 수도 있다. 스토너처럼.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p. 390)'
하지만 스토너가 죽음에 이르러 생각해낸 이 질문을 나도 떠올려보면, 무엇이 진정 옳은 삶이고 아름다운 삶일까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삶을 누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견뎌냈고, 물리쳐 승리한 삶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물러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할까?' 죽음에 이르렀을 때 스토너의 삶이 내 삶에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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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소리가 들려 - 청소년이 알아야 할 우리 역사, 제주 4·3 마디북 청소년 문학 1
김도식 지음 / 마이디어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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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년생인 두 아이가 고등학생 시절 모처럼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떠났다. 첫 방문이었다. 2박 3일 일정으로 해안을 따라 제주도를 한 바퀴 돌았다. 바람이 참 많은 곳이었다. 참 아름다운 곳이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때까지 제주 4.3을 몰랐었다. 그 아름다운 곳에 혹여나 아이들이 해를 당할까 봐 제주 4.3을 쉬쉬하는 부모들이 살고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었다.


김도식 동화 작가의 <바람의 소리가 들려>는 청소년들이 알아야 할 역사 가운데 제주 4.3을 다룬 이야기다. 이때 제주도민은 29만 명, 그들 중 10분 1인 약 3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제주 토박이 수혁과 옥희, 그리고 육지에서 이사 온 준규는 꼬마 삼총사다. 이 셋은 산속에서 모험 놀이를 하던 중 바람 소리가 들리는 동굴을 발견한다. 해방된 후 제주도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건국을 둘러싼 진영 논쟁에 휩싸인다. 1947년 3.1절 기념행사가 끝나갈 무렵 총격으로 희생자가 발생한다.

'"경찰이 아이를 치었다!"
놀란 기마 경관이 제주경찰서로 도망갔고, 도망가는 경관 뒤를 흥분한 군중들이 쫓아가기 시작했다. 경찰서 앞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경찰들 사이에서 누군가, 방아쇠를 당겼다.
탕!
잠시 뒤, 다른 경찰이 또다시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p. 64)'

이후 제주도에서는 무장대를 찾아 나서는 토벌대의 피비린내 나는 학살이 시작된다. 군인이 된 수혁은 토벌대와 함께 산속으로 피해 숨은 준규를 쫓는다. 마침내 수혁은 어릴 때 모험 놀이하다가 발견한 바람 소리가 들리는 그 동굴에서 준규를 발견한다.

제주 4.3은 이들 셋의 젊음을 짓밟았다. 사랑도 엇갈리게 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세월이 흘러 이들의 상처는 아물지 않은 채 그대로였지만, 상처를 감싸줄 우정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간 많은 문학 작품이 4·3사건의 비참한 실상을 고발하고 인간의 내면과 실존의 문제를 다루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서로를 끌어안는 젊은이들의 사랑과 우정을 다룬 작품은 드물었다. 나는 빛바랜 흑백 사진 뒤에 숨겨진 청춘들의 이야기, 시대의 수레바퀴에 짓밟힌 그들의 눈부신 젊음을 알리고 싶었다. (p. 219, 작가의 말)'


우리 가족이 처음 제주도에 여행 갔을 때 고등학생이었던 두 아이는 제주 4.3을 몰랐다. 아빠가 몰랐으니 당연하다. 지난해 봄, 딸아이에게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권했다. 이제라도 늦었지만 제주 4.3을 제대로 알고 그 아픔을, 제주도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알려주지 않은 채 오랫동안 가슴에 품었던 아픔을 마주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소녀가 바람에 나부끼는 옷깃을 감싸며 넌지시 물었다.
"얘, 우리 할아버지가 그러는데 제주도 올 때마다 한 번씩 엄숙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어야 한다. 예전에 아주 슬픈 일이 있었대. 너도 그거 알아?"
소녀의 말에 소년은 아는 듯 모르는 듯 고개만 주억거렸다. (p. 217)'

수혁과 준규, 옥희가 묻힌 제주도에서 그들의 손주들이 언덕에 올라가 꿈결같이 펼쳐진 푸른 바다와 아름답게 핀 붉은 동백꽃을 보며 옷깃을 여미듯, 우리 아이들도 제주도에 갈 때면 아니 가지 않더라도 4월이 되면 한 번쯤 애도하는 마음으로 옷깃을 여며주길 바란다. 그리고 그 뼈아픈 비극의 역사가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도록 제주 4.3과 영원히 작별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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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을 부탁해 - 우리가 미처 몰랐던 화장실에 관한 43가지 놀라운 이야기들
구론산바몬드 지음, 루미 그림 / 홍림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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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두 달 늦게 태어난 (싫었을 텐데 어릴 때부터 항상 오빠라고 불렀던) 사촌 누이동생이 풀어놓는 화장실 에피소드가 있다. 어릴 적 한 방에 모여서 밤늦도록 만화책도 보고 수수께끼 책 갖다 놓고 서로 문제를 내보곤 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오빠(여섯 살 터울 나의 형)가 말을 건넸다고 한다. '너 오줌 안 마렵냐?' 대문 밖 뒷간에 가는 것이 무서워 안 마렵다고 하면 조금 있다가 또... 계속... 듣다 보면 오줌이 마려워졌단다.
"단단히 마음먹고 일어서면 오빠가 한 마디 했어."
'갔다 올 때 물 좀 떠와~'
"얼마나 얄밉던지... ㅋ"

밤에 화장실 갈 때면 챙길게 많았다. 우선 큰맘 먹어야 했고. 국방색 기역 자 플래시, 화장실 문 앞을 지킬 동생이 됐든 누구 한 사람. 그리고 '아직 거기 있지?'라는 말을 반복해야 했다. 그때 뒷간은 빨간색, 파란색 휴지를 주는 귀신이 사는 곳이었다.


누구나 재밌는 화장실 이야기 하나쯤은 있다. <화장실을 부탁해>는 그런 화장실에 얽힌 내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화장실과 관련한 문화를 비롯해 문명사, 환경문제, 인권문제 그리고 화장실의 미래 기술까지... 흥미진진한 43가지 에피소드를 읽다 보면 어느새 화장실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누리는 안온한 배변이 있기까지의 지난한 역사가 거대한 인류사와 궤를 같이 한다는 깨달음에 이르렀을 때, 화장실은 배변하는 곳 이상의 그 무엇이 되어 나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p. 8)'

한때 종교적인 이유로 인간의 배설물을 불결하다 여겨 건물에 화장실이 없었다. 그래서 왕을 비롯해 5,000명 이상이 머물던 베르사유 궁전조차 휴대용 변기를 사용했다.

29세에 요절한 전위 예술가는 자신의 배설물을 담은 깡통 90개를 만들어 '예술가의 똥'이라는 제목의 작품을 팔았다. 현재 깡통의 가치는 3억이 넘는다고 한다.
'만초니가 이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부를 과시하기 위해 무엇이든 사려 했던 예술품 수집가들에 대한 비판과 풍자였다. (p. 108)'

고대 로마에서는 오줌을 구강세정제로 사용하는 등 한때 오줌은 비누로, 주방 세제로, 염색제로 사용됐고 보양식이기도 했다.
'오줌을 더러운 것으로 취급했던 민족은 정작 더러운 삶을 살았고, 오줌의 가치를 알고 잘 활용했던 민족은 번성했다. (p. 146)'

나사에서 벌어진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다룬 영화 <히든 피겨스>에서 화장실은 차별의 수단으로 이용된다. 유색인종 화장실은 800미터나 떨어진 다른 건물에 있다.


지난해 10월 광화문과 여의도 일대에서 개신교를 중심으로 한 '동성 결혼 합법화'와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집회가 있던 무렵이었다. 딸아이는 화장실 출입을 문제 삼아 차별금지법 반대 주장을 펼쳤다. 딸아이는 성소수자와 함게 화장실 사용하는 걸 두려워했다. 성소수자의 인권도 남녀로 구분된 화장실 문 앞에서는 딸아이 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의 불쾌한 시선이 두려워 발길을 멈춘다.

미국을 비롯한 영국, 캐나다, 스웨덴 등 여러 나라에서 '모두의 화장실'을 도입해 겉으로 드러나는 성별로 화장실 이용 자격을 주는 규범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2022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대학 최초로 성공회대학교가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설치했고, 카이스트가 그 뒤를 이었다.

''성 중립 화장실'은 완전히 밀폐되고 독립된 공간에 성별, 장애 특성, 동반자 유무 등에 따른 편의시설을 구비해 놓은 형태다. 다시 말해 화장실의 남녀 구분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성별 분리 화장실에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성 중립 화장실을 하나 더 설치하는 것이다. (p. 203)'

이분법에 갇힌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이 사라지고 불평등을 개선하려는 인권 의식이 높아지면 '모두의 화장실'은 딸아이의 걱정을 없애주고 모두가 안전하게 화장실을 이용할 수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수세식 변기를 만들어 화장실을 집안으로 들여놓았듯이, 획기적인 기술이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화장실을 만들어 모든 문제를 해결할지도 모르겠다.

'모두의 화장실'도 시간은 걸리겠지만 언제가 장애인 화장실 설치와 같은 절차를 밟아 상용화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래야 우리 딸아이도 성소수자에 대한 생각이 바뀔 테니까 말이다. 제3의 성, 제4의 성도 존재하는 성적 정체성에 대한 포용도 가능해질 것이다.

화장실의 변화가 편향에서 포용으로 확장하는 정도를 가늠한다. 그런 의미에서 '모두의 화장실'은 곧 인권 확대의 과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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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젓한 사람들 - 다정함을 넘어 책임지는 존재로
김지수 지음 / 양양하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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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놈 참 의젓하게 생겼다" "의젓한 사람이 돼야지" 어릴 때 제법 듣던 말이다. 그때 날 보던 사람들은 내가 의젓하게 클 거라 기대했던 모양이다. 요즘은 '의젓하다'란 말을 듣기 어렵다. 사라진 말인가 싶기도 하다.


언어로 세상을 잇는 인터뷰어 김지수 기자가 '의젓한 선물'을 독자들에게 선사했다. 인터뷰집 <의젓한 사람들>에는 의젓한 마음을 가진 사람, 의젓한 인생을 산 사람 각각 7명씩, 14명의 의젓한 사람들의 인생이 담겨있다.

'첫 신호탄을 쏘아 올린 사람은 기독교 영성가 김기석 선생이었다. '타인에게 의젓한 존재가 되어보라'는 그의 말은 이 인터뷰집 전체를 엮는 언어의 금실이다. (p 12)'

의젓함이란 키워드로 열넷 인생을 묶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들 의젓한 사람들은 '다정함'에서 더 나아가 책임을 피하지 않는 의지적 자아로 이동한 삶을 살아냈다.


순례자 김기석은 '타자에게 의젓한 존재'가 되어보라는 하나님의 권유를 들었다. 그는 하나의 존재가 아닌 '함께의 존재'로 의젓한 삶을 살았다. 가수 양희은은 '도무지 모르겠다'라는 말을 툭툭 던지며 힘 빼고 노래 부르듯 삶에서도 그렇게 힘을 뺐다. 작곡가 진은숙은 물 흐르듯 흘러가며 오늘 하루 최선을 다했다.

매일 포기하고 싶었던 배우 박정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조금 강해 버티며 살고 있다. 기업가 플뢰르 펠르랭에게 의젓함은 능동적으로 삶에 뛰어드는 것이고, 내과 의사 가마타 미노루에게는 스스로 할 일을 하는 것이 의젓함이었다.

국민 시인 나태주의 의젓함 비결은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않는 삶이었다. 경제학자 러셀 로버츠는 완벽함보다는 그럭저럭 괜찮은 삶을 선택했고, 작가 마크 맨슨은 중요하지 않은 것을 향해 '꺼져'라고 외치며 신경 끄기에 집중했다.

의사결정 전문가 애니 듀크는 그만두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반면, 경로로 바꾸는 것에는 주저하지 않았다. 목수 마크 엘리슨에게 완벽함은 타협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다. 신경과학자 리사 제노바에게 의젓한 삶이란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그런 좋은 것을 기억하는 것이고, 내 인생을 제일 잘 아는 내가, 내 부고를 쓸 수 있는 인생이 부고 전문기자 제임스 R. 해거티가 말하는 의젓함이다.


열네 가지 다양한 의젓함을 읽었다. 각자 살아낸 삶으로 의젓함을 보여준 열네 분의 의젓한 삶을 보며 자연스레 떠오른 속말은 '나는 의젓한가...' 어렸을 때 내게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했을까? 그 누구보다도 세상을 일찌감치 떠난 어머니, 그리고 몇 해 전 백세를 사신 아버지가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하다.

얄팍한 내 이익을 놓치지 않으려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책임의 가볍고 무거운 정도를 따져 조금이라도 무겁다 싶으면 수차례 외면했다. 부끄럽다 느꼈어야 했지만 오히려 뻔뻔함을 내세웠다. 열네 분의 삶처럼 당당하게 의젓함을 보여주지 못했다. 삶을 바라보는 철학의 부재, 빈 수레를 끌고 여기까지 왔다는 허탈함을 살아온 인생보다 남은 인생이 훨씬 적을 때에야 비로소 느꼈다.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이제라도 빈 수레를 보았으니까. 얼마나 채울 수 있을까? 수례를 끌 때 약간은 벅차다는 생각이 들 정도면 좋겠다. 그래서 아내를 비롯한 가족에게라도 의젓함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모님의 응원에 힘입어서...


'잃은 만큼의 아들딸을 또 낳았다는 건, 그 상처에 머물지 않고 삶을 이어갔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게 욥의 아름다움입니다. 납득할 수 없는 현실이 닥쳐도 삶을 계속하는 것, 아니 새롭게 시작하는 것, 초연하게.
뭉클하네요.
그게 인간의 위대함입니다. (p. 43, 순례자 김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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