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소리가 들려 - 청소년이 알아야 할 우리 역사, 제주 4·3
김도식 지음 / 마이디어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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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년생인 두 아이가 고등학생 시절 모처럼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떠났다. 첫 방문이었다. 2박 3일 일정으로 해안을 따라 제주도를 한 바퀴 돌았다. 바람이 참 많은 곳이었다. 참 아름다운 곳이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때까지 제주 4.3을 몰랐었다. 그 아름다운 곳에 혹여나 아이들이 해를 당할까 봐 제주 4.3을 쉬쉬하는 부모들이 살고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었다.


김도식 동화 작가의 <바람의 소리가 들려>는 청소년들이 알아야 할 역사 가운데 제주 4.3을 다룬 이야기다. 이때 제주도민은 29만 명, 그들 중 10분 1인 약 3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제주 토박이 수혁과 옥희, 그리고 육지에서 이사 온 준규는 꼬마 삼총사다. 이 셋은 산속에서 모험 놀이를 하던 중 바람 소리가 들리는 동굴을 발견한다. 해방된 후 제주도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건국을 둘러싼 진영 논쟁에 휩싸인다. 1947년 3.1절 기념행사가 끝나갈 무렵 총격으로 희생자가 발생한다.

'"경찰이 아이를 치었다!"
놀란 기마 경관이 제주경찰서로 도망갔고, 도망가는 경관 뒤를 흥분한 군중들이 쫓아가기 시작했다. 경찰서 앞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경찰들 사이에서 누군가, 방아쇠를 당겼다.
탕!
잠시 뒤, 다른 경찰이 또다시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p. 64)'

이후 제주도에서는 무장대를 찾아 나서는 토벌대의 피비린내 나는 학살이 시작된다. 군인이 된 수혁은 토벌대와 함께 산속으로 피해 숨은 준규를 쫓는다. 마침내 수혁은 어릴 때 모험 놀이하다가 발견한 바람 소리가 들리는 그 동굴에서 준규를 발견한다.

제주 4.3은 이들 셋의 젊음을 짓밟았다. 사랑도 엇갈리게 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세월이 흘러 이들의 상처는 아물지 않은 채 그대로였지만, 상처를 감싸줄 우정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간 많은 문학 작품이 4·3사건의 비참한 실상을 고발하고 인간의 내면과 실존의 문제를 다루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서로를 끌어안는 젊은이들의 사랑과 우정을 다룬 작품은 드물었다. 나는 빛바랜 흑백 사진 뒤에 숨겨진 청춘들의 이야기, 시대의 수레바퀴에 짓밟힌 그들의 눈부신 젊음을 알리고 싶었다. (p. 219, 작가의 말)'


우리 가족이 처음 제주도에 여행 갔을 때 고등학생이었던 두 아이는 제주 4.3을 몰랐다. 아빠가 몰랐으니 당연하다. 지난해 봄, 딸아이에게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권했다. 이제라도 늦었지만 제주 4.3을 제대로 알고 그 아픔을, 제주도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알려주지 않은 채 오랫동안 가슴에 품었던 아픔을 마주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소녀가 바람에 나부끼는 옷깃을 감싸며 넌지시 물었다.
"얘, 우리 할아버지가 그러는데 제주도 올 때마다 한 번씩 엄숙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어야 한다. 예전에 아주 슬픈 일이 있었대. 너도 그거 알아?"
소녀의 말에 소년은 아는 듯 모르는 듯 고개만 주억거렸다. (p. 217)'

수혁과 준규, 옥희가 묻힌 제주도에서 그들의 손주들이 언덕에 올라가 꿈결같이 펼쳐진 푸른 바다와 아름답게 핀 붉은 동백꽃을 보며 옷깃을 여미듯, 우리 아이들도 제주도에 갈 때면 아니 가지 않더라도 4월이 되면 한 번쯤 애도하는 마음으로 옷깃을 여며주길 바란다. 그리고 그 뼈아픈 비극의 역사가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도록 제주 4.3과 영원히 작별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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