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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젓한 사람들 - 다정함을 넘어 책임지는 존재로
김지수 지음 / 양양하다 / 2025년 6월
평점 :
"고놈 참 의젓하게 생겼다" "의젓한 사람이 돼야지" 어릴 때 제법 듣던 말이다. 그때 날 보던 사람들은 내가 의젓하게 클 거라 기대했던 모양이다. 요즘은 '의젓하다'란 말을 듣기 어렵다. 사라진 말인가 싶기도 하다.
언어로 세상을 잇는 인터뷰어 김지수 기자가 '의젓한 선물'을 독자들에게 선사했다. 인터뷰집 <의젓한 사람들>에는 의젓한 마음을 가진 사람, 의젓한 인생을 산 사람 각각 7명씩, 14명의 의젓한 사람들의 인생이 담겨있다.
'첫 신호탄을 쏘아 올린 사람은 기독교 영성가 김기석 선생이었다. '타인에게 의젓한 존재가 되어보라'는 그의 말은 이 인터뷰집 전체를 엮는 언어의 금실이다. (p 12)'
의젓함이란 키워드로 열넷 인생을 묶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들 의젓한 사람들은 '다정함'에서 더 나아가 책임을 피하지 않는 의지적 자아로 이동한 삶을 살아냈다.
순례자 김기석은 '타자에게 의젓한 존재'가 되어보라는 하나님의 권유를 들었다. 그는 하나의 존재가 아닌 '함께의 존재'로 의젓한 삶을 살았다. 가수 양희은은 '도무지 모르겠다'라는 말을 툭툭 던지며 힘 빼고 노래 부르듯 삶에서도 그렇게 힘을 뺐다. 작곡가 진은숙은 물 흐르듯 흘러가며 오늘 하루 최선을 다했다.
매일 포기하고 싶었던 배우 박정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조금 강해 버티며 살고 있다. 기업가 플뢰르 펠르랭에게 의젓함은 능동적으로 삶에 뛰어드는 것이고, 내과 의사 가마타 미노루에게는 스스로 할 일을 하는 것이 의젓함이었다.
국민 시인 나태주의 의젓함 비결은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않는 삶이었다. 경제학자 러셀 로버츠는 완벽함보다는 그럭저럭 괜찮은 삶을 선택했고, 작가 마크 맨슨은 중요하지 않은 것을 향해 '꺼져'라고 외치며 신경 끄기에 집중했다.
의사결정 전문가 애니 듀크는 그만두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반면, 경로로 바꾸는 것에는 주저하지 않았다. 목수 마크 엘리슨에게 완벽함은 타협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다. 신경과학자 리사 제노바에게 의젓한 삶이란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그런 좋은 것을 기억하는 것이고, 내 인생을 제일 잘 아는 내가, 내 부고를 쓸 수 있는 인생이 부고 전문기자 제임스 R. 해거티가 말하는 의젓함이다.
열네 가지 다양한 의젓함을 읽었다. 각자 살아낸 삶으로 의젓함을 보여준 열네 분의 의젓한 삶을 보며 자연스레 떠오른 속말은 '나는 의젓한가...' 어렸을 때 내게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했을까? 그 누구보다도 세상을 일찌감치 떠난 어머니, 그리고 몇 해 전 백세를 사신 아버지가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하다.
얄팍한 내 이익을 놓치지 않으려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책임의 가볍고 무거운 정도를 따져 조금이라도 무겁다 싶으면 수차례 외면했다. 부끄럽다 느꼈어야 했지만 오히려 뻔뻔함을 내세웠다. 열네 분의 삶처럼 당당하게 의젓함을 보여주지 못했다. 삶을 바라보는 철학의 부재, 빈 수레를 끌고 여기까지 왔다는 허탈함을 살아온 인생보다 남은 인생이 훨씬 적을 때에야 비로소 느꼈다.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이제라도 빈 수레를 보았으니까. 얼마나 채울 수 있을까? 수례를 끌 때 약간은 벅차다는 생각이 들 정도면 좋겠다. 그래서 아내를 비롯한 가족에게라도 의젓함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모님의 응원에 힘입어서...
'잃은 만큼의 아들딸을 또 낳았다는 건, 그 상처에 머물지 않고 삶을 이어갔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게 욥의 아름다움입니다. 납득할 수 없는 현실이 닥쳐도 삶을 계속하는 것, 아니 새롭게 시작하는 것, 초연하게.
뭉클하네요.
그게 인간의 위대함입니다. (p. 43, 순례자 김기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