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인간입니까 - 인지과학으로 읽는 뇌와 마음의 작동 원리
엘리에저 J. 스턴버그 지음, 이한나 옮김 / 심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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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표지 날개의 저자 소개를 읽다가 내 눈을 의심했다. 뇌와 마음의 작동 원리를 주제로 한 <이것은 인간입니까>를 신경의학자이자 신경과학자인 스턴버그가 17세에 쓴 책이란다. 이 책에서 다루는 의식에 관한 불가사의만큼이나 불가사의한 일이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차머스, 라일, 크릭, 에덜먼, 커즈와일, 튜링, 민스키, 설, 잭슨, 다마지오, 데닛 그리고 드레이퍼스까지, 다들 굉장히 똑똑하고 박식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단 한 가지 관점에서조차 누구 하나 의견의 합치를 보지 못했다. 심지어 이 모든 주장이 부분적으로나마 틀렸을 가능성도 있다(실은 꽤 높다). 논쟁의 끝은 아직도 멀었다. (p. 233)'

위에 나열된 똑똑하고 박식한 인물들이 의견의 합치를 보지 못하는 논의는 '의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이다. 만일 뇌가 의식을 만든다면 이 책의 원제인 'ARE YOU A MACHINE?'라는 질문에 대답이 'YES'인 셈이 된다. 인공지능도 상상력과 창의성을 가질 수 있다. 인간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커진다.

인간들에게만 있는 경이로운 능력인 의식, 이 능력은 어떤 기술로도 만들어낼 수 없다고 믿는 인간에게는 충격이다. 물론 현재 인간의 의식에 관한 연구는 걸음마도 떼지 못한 단계에 불과해서 이 논쟁의 종지부를 찍으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ARE YOU A MACHINE?' 이에 대해 저자인 스턴버그는 마지막 장에서 자신의 의견을 내놓는다.

'이상의 모든 측면을 고려할 때 '우리는 기계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아니오'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기계적인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지만 기계는 아니다. (p. 233)'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서 오는 감각질이 모여 추론 능력의 근원인 세상에 대한 심적 모형을 형성하는데, 알고리즘은 규칙을 따를 뿐이지 규칙을 만들지는 못한다. 따라서 알고리즘으로는 결합된 감각질의 이 같은 심적 모형을 구현하지 못한다고 스턴버그는 주장한다.

스턴버그 역시 감각질의 존재 여부나 의식의 특성을 설명하는 이론까지는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자신의 의견에 한계를 인정한다.


<이것은 인간입니까>를 통해 스턴버그가 의도한 바는 (브랜다이스 대학교 철학과 교수 안드레아스 토이버도 해제에서 같은 의견을 내놓는데) 이 책에 소개된 박식한 인물들의 주장과 사고실험으로 독자들이 새로운 시각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ARE YOU A MACHINE?'이란 질문에 독자 자신만의 견해를 찾도록 하는 것이다. 정답을 알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야 하지만, 자신의 견해를 갖기 위해 질문하고 답을 하는 과정이 '의식'을 둘러싼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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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장소들의 지도 - 잃어버린 세계와 만나는 뜻밖의 시간여행
트래비스 엘버러 지음, 성소희 옮김 / 한겨레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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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과거의 지도에서 지워진 반쯤 잊힌 장소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그곳들은 대체로 옛 모습의 그림자이거나 단순한 폐허로 나타난다. 그림자든 폐허든, 여전히 이 장소들은 사라진 문명과 사회를 상징한다. 이 장소들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먼 훗날 이어질 발굴과 부활에 앞서 꼭 필요한 본질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수 세기 넘도록 무엇을 얼마나 많이 놓치고 있었는지 알아차릴 수 있다. (p. 8)'

여행책을 읽을 때 여행지의 모습도 궁금하지만 그보다 궁금한 건 그곳이 지도상에 어디인지가 제일 궁금하다. 지도를 보면 마치 내가 그곳으로 이동한 느낌을 갖기 때문이다. <사라져가는 장소들의 지도>는 모습과 위치, 이 두 가지를 사진과 지도를 알려주며 사라진, 사라져가는, 사라질 장소들로의 여행 이야기 풀어낸다. 우선 두어 페이지 책장을 넘기면 여행할 37곳의 위치를 한눈에 보도록 표시한 세계지도가 우리를 설레게 한다.


첫 번째, 고대 도시에서는 과거 전성기를 맞이했던 11곳의 도시들을 다룬다. 그 도시들의 몰락과 사라진 이유는 여전히 수수께끼다. 감췄던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는 지금, 도시들의 신비로운 궁금증은 더욱 증폭된다.

두 번째, 잊힌 땅에서는 자원 개발로 물속으로 사라져 더 이상 갈 수 없거나 사람들이 떠나버려 버려진 11곳의 장소, 우리들의 관심에서 잊힌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세 번째 여행지는 사그라지는 5곳이다. 유럽 열 개의 나라를 관통하는 다뉴브강은 80퍼센트를 잃었고, 사해의 수위는 매년 1미터씩 낮아진다. 캐나다의 슬림스강은 빙하의 후퇴로, 영국의 스킵시는 해안침식으로, 미국의 에버글레이즈는 바닷물의 침입으로 늪지와 다양한 생명체들이 사그라진다.

네 번째는 사라지는 장소 10곳이다. 녹는 빙하, 기온과 해수면 상승, 오염, 삼림파괴, 인간의 훼손 등으로 아름다운 자연과 유산 그리고 삶이 터전이 사라져간다.


여행작가 크래비스 앨버러와의 여행은 슬픈 여행이었다. 찬란하게 번영했던 도시들이 우리의 기억에서조차 희미해진 역사도 슬프고, 앞으로 사라져버릴 장소들이 미래 인류의 기억에서 지워질 것을 생각하니 이 또한 슬프다.

우리를 더더욱 슬프게 하는 건 사라져가는, 사라질 장소들의 원인 제공자가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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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
레이첼 카슨 외 지음, 스튜어트 케스텐바움 엮음, 민승남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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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자연에 관한 정의는 "자연은 이 세상에서 인간이 만들지 않은 부분이다"입니다. - 레이철 카슨 (p. 25)'

최근 몇 달 사이에 지인과 절친의 권유로 각각 2박 3일 일정으로 계곡 트래킹과 숲 야영을 다녀왔다. 인간의 손길이 덜 미친 자연을 만나는 일이었다. 계곡을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됐다. 걸으며 숲속의 나무와 바위, 흙냄새를 맡고 숨을 몰아쉬며 자연을 호흡하는 일 말이다. 숲속에서 머무는 것만으로 치유가 됐다. 아침을 제일 먼저 맞이하는 새소리와 숲속에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물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앉아 있는 일 말이다. 이 모두 자연에 기댈 때 자연이 선뜻 우리에게 내어주는 선물이다.

자연 속에서 오감을 활짝 열어 젖히며 받아들이는 순간만큼은 소리와 냄새, 경치는 내 것이 된다. "하지만 그 누구도 풍경을 소유하지 못한다. (...) 문서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p. 16)" 소유하려 들 때 자칫 파괴가 된다. 인간은 인간이 가진 힘을 자연에 남용하려 한다.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는 랠프 월드 에머슨이 1836년에 출간한 에세이 <자연 Nature>에서 시작됐다. 그는 강연에서 자연을 이렇게 말했다.

"자연은 하나의 언어이며, 우리가 새롭게 배우는 사실은 모두 하나의 새로운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전 속에서 해체되고 죽는 언어가 아니라 가장 중요하고 보편적인 의미로 통합되는 언어다. 나는 이 언어를 배우고 싶다. 그건 새 문법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언어로 쓰인 위대한 책을 읽기 위해서다." (p. 5)

환경보호 활동가, 시인, 생태학자, 작가, 과학 저술가, 기업가, 조경가, 동물복지 활동가, 농부, 원예가, 건축가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스물한 명이 에머슨이 칭하는 자연이라는 언어를 배우고 말한다.

자연의 가르침을, 극한 지대의 브리슬콘나무, 자연의 무심함, 바닷속 산호초, 연못, 철새들의 야간 비행, 생명체들에게 보금자리가 되어주는 오크나무, 반反정원, 도깨비토끼꽃의 치유능력 등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인류의 이기심과 그릇된 생존방식이 자연을 위협한다는 절박한 목소리와 인류의 미래를 위해 자연과 지속 가능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호소까지 이들이 말하는 언어는 그들만의 사유, 자연과 묻고 답하는 언어다.


인간이 힘과 기술로 지구 환경을 바꾸는 인류세人類世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의 저자들은 자연이 전하는 목소리를 들으라고 권한다. 자연을 위해, 우리를 위해, 자연과 인류의 조화를 위해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기를...

자연에 기댈 때 자연은 자연의 품을 기꺼이 우리에게 내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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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힘 (프레더릭 레이턴 에디션) - 최상의 리듬을 찾는 내 안의 새로운 변화 그림의 힘 시리즈 1
김선현 지음 / 세계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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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면서 예술과는 꽤나 거리가 멀었었다. 특히 그림은 더 그랬다. 뜻밖에 딸아이가 그림을 전공하면서 그림과 가까워지려 했고, 화가들의 치열한 삶과 그림 이야기를 제법 접하다 보니 이제 몇몇 작품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될 수 있는 대로 그림에 숨겨진 속내를 찾으려 오랫동안 그림에 머물곤 했던 결과다.


이제는 치료적 힘을 그림에서 느끼는 새로운 세계다. 많은 이들의 아픈 마음을 미술로 치료해온 김선현의 <그림의 힘>.

'제 신체에 꼭 맞춘 듯한 얇은 시폰의 옷을 입고, 웅크려 자고 있습니다. 이렇게 옆으로 누워 팔다리를 접고 머리를 무릎에 가까이한 자세는 엄마 배 속에 있는 태아의 자세로, 인간에게 무의식적으로 심리적인 안정감을 가져다줍니다. (p. 222)'

책 표지의 그림은 프레더릭 레이턴의 '타오르는 6월 Flaming June'이다. 마치 벨벳처럼 보드라운 표지의 질감을 손가락으로 느끼며, 그림에 눈을 고정한 채 마음으로 그곳에 오래 머물러본다. 밤잠과는 또 다른 짧은 낮잠, 꿀같은 휴식을 선물해 주는 편안한 쉼이 홍조 띤 얼굴에서 보인다. 그림 한가득 채워진 주황색은 따뜻한 위로를 덤으로 건네준다.


자유로운 감정을 일으키는 앙리 마티스의 작품, '폴리네시아, 하늘 Polynesia, the sky'과 '폴리네시아, 바다 Polynesia, the sea'의 파랑.
넓은 평원에 '서 있는' 말, 그 자체에서 쉼의 정서를 받는 에드가 드가의 '시골 경마장 At the Races in the Countryside'.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긴장을 누그러뜨리는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그네 The Swing'의 분홍색.
자연의 풀밭처럼 편안한 초록 바탕에 채도 대비가 가장 큰 빨간색 꽃들로 심리적 에너지를 주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꽃이 있는 농장 정원 Farm Garden with Flowers'.

목소리로 나오는 것이 울음에 더해 손과 얼굴, 어깨, 무릎, 온몸으로 울며 실컷 울게 만드는 조지 클로젠의 '울고 있는 젊은이 Youth Mourning'.
밀짚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초록색 잔디에서 낮잠 자는 모습의 스타브 카유보트의 작품 '낮잠 The Nap'은 복잡한 우리의 생각을 비우게 한다.


좋은 그림은 우리의 흐트러진 일상에서 최상의 리듬을 찾아내 내 안에서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낸다. 슬플 때, 어려움을 겪을 때, 지쳤을 때 나를 응원해 줄 힘을 하나 더 얻었다. 그림, 그림이 주는 소통과 치유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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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는 식물들 - 아직 쓸모를 발견하지 못한 꽃과 풀에 대하여
존 카디너 지음, 강유리 옮김 / 윌북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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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나는 인류의 삶에 끼어든 잡초에 대해, 그리고 잡초와 인간의 길고 복잡한 관계를 탐구해 보고자 한다. (p. 10)'

인간은 잡초를 인간의 잣대로 규정했다.
랠프 월도 에머슨은 '장점이 아직 발견되지 않은 식물'로, '제자리를 벗어난 식물'로 규정하는 옛말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으로는 우선 잡초를 없애야 하는 이유를 나열하고 그 목록에 부합하는 식물을 잡초라고 정의한다.

존 카디너는 '잡초'라는 말 자체가 잡초의 개념이기 때문에 정의가 어렵다고 이야기하면서 정의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로 잡초에게서 우리 인간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간은 공간을 잠식하고 자원을 독차지한다. 천성적으로 끼어들기 좋아하고 뻔뻔스러우며 경쟁심 많고 밉살스럽다. 어떤 사람들은 나쁜 냄새가 나고 어떤 사람들은 까탈스러우며 어떤 사람들은 못생겼다. 잡초도 비슷하다. (p. 18)'


<미움받은 식물들>에는 여덟 종의 잡초가 소개되는 데, 이들 잡초는 혐오 대상이면서 흠모의 대상이고, 무용지물이면서 필수적인 작물이며, 뿌리째 뽑아 없애야 할 대상이면서 농업에 유용한 유전적 보존 가치가 있는 자원이다. 이렇듯 잡초는 인간에게 양가감정으로 갖게 한다.

첫 번째로 다룬 민들레의 경우, 노란색 꽃의 매력과 하얀 솜털이 달린 씨앗이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며 즐기는 어린아이들에게 사랑스러운 대상이지만, 집 앞 잔디밭의 녹색 질서에 노란색 꽃은 어른들에게 오점일 뿐이다. 사회적 이미지라는 강박에 잔디밭의 민들레는 단정치 못함이며 무례한 모욕이며 이웃들이 싫어하는 대상이니 나에게도 미움의 대상이다.

여덟 번째로 소개되는 강아지풀은 가변적 휴면이 가능한 씨앗을 만들어내 다양한 환경에 대비, 전 세계에 가장 넓게 퍼졌다. 강아지풀 씨앗의 생리적 가소성이 유전자 조합에 적용된다면 이 불편한 잡초는 농업에 희망을 주는 가능성이 된다.


잡초의 개념 또는 대상은 인간이 농사를 짓기 시작하며 생겨났다. 잡초는 길러야 할 대상이 아닌 없애야 할 대상이다. 특정 작물만 키우는 경작으로 환경 교란이 되듯 잡초도 살아남아 길을 택했고 그 역시 환경 교란으로 이어졌다.

민들레의 생존전략은 납작하게 엎드리기다. 어저귀는 발아, 기름골은 물량공세, 플로리다 베가위드는 변신, 망초는 뒤통수치기, 긴이삭비름은 무엇에든 저항, 단풍잎돼지풀은 누구보다 빠르게, 강아지풀은 빈틈 파고들기가 살아남기 전략이다.

결국 인간은 잡초를 당해내지 못한다. 새로운 잡초 제거 방법과 새로운 작물 생산법이 등장하면, 잡초는 새로운 생존전략을 펼친 것이고 새로운 잡초가 등장할 뿐이다. 자연을 건드리는 자만을 내려놓고 기술에 대한 기대치를 내려놓으라는 교훈을 잡초가 인간에게 건넨다.


오늘날 인간이 잡초라 여기는 것들 모두 아름다운 꽃이었고, 작물이었고, 평범한 야생초였다. 어느 날 인간이 잡초라 정의하여 잡초가 된 식물들이다. 존 카디너는 잡초와 인간 사이의 애증을 새로운 시각으로 극복하기를 바란다. 그럴 때 잡초는 더 이상 인간에게 잡초가 아닌 신비로운 대상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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