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의 고수 - 신 변호사의 법조 인사이드 스토리
신주영 지음 / 솔출판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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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우영우 변호사가 다양한 사건을 맡아 해결해 가는 이야기의 한 에피소드 원작이 담긴 신주영 변호사의 에세이 <법정의 고수>이다.

'이 책 <법정의 고수>는 그런 역사적인 판결이나 사건을 다루지는 않았다. 교통사고나 사기 등 사건 자체는 매우 평범하고, 주위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p. 20, 21)'

흔히 이웃으로부터 들었을법한 사건들을 다룬다. 내가 피해자 또는 가해자일 수도 있고, 목격한 일일 수도 있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그 사건 속에서 신주영 변호사는 관계자와 주변 인물들의 인격, 그들이 가진 가치관에 좀 더 주목한다.

'결국 승리는 개인이 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관점이 승리한다. 어떤 경우는 선입견과 편견이 깨지고 가해자였던 사람이 피해자임이 드러나기도 한다. 또 어떤 사건에서는 판단하고 처벌하기보다는 이해하고 화해하는 방향으로 분쟁이 해결되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역사적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더라도 한 개인사에는 그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p. 21)'

사건의 본질을 어느 측면에서 바라봐야 하는지, 그 사건의 의뢰인을 변호하면서 변호사들이 갖춰야 할 덕목은 무엇인지, 사건을 유무죄를 판단하는 판사들을 무엇에 더 가치를 두어야 하는지... 여러 가지를 탐색해 보게 하는 법정 에세이다.


요즘 '법과 원칙에 따라...'라는 말을 많이 하는 분이 계시다. '법대로 하자!'라는 말을 자주 하는 사람들 을 보면 뭔가 법의 잣대로 자신이 유리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다. 아니면 법을 잘 알아서 그 법을 이용(악용?) 할 줄 아는 사람들이거나.

'법과 원칙'보다 상처를 만져주는 일을 우선시하는 것이 법의 임무가 아닐까?
'누군가 자신의 심정을 대변해 주는 것만으로도 당사자의 오랜 한은 한결 가벼워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범죄를 일으키는 근원에는 상처가 있고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범죄의 유혹을 뿌리칠 힘을 갖기 위한 첫 단계다. (p. 57, 58)'

'법과 원칙'보다 당사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는, 그것이 법의 역할이지 않을까?
'재판은 아프다. 원래 판단判斷하는 것은 칼로 자르는 것이니까. 하지만 정의롭고 합리적인 판결은 당사자들을 속 시원하게 한다. 그것은 패소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충분히 납득이 되는 판결이라면 패소하고도 만족할 수 있다. 분쟁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시원함은 승자 못지않게 누린다. (p. 222)'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7,8화 소덕동 이야기는 <법정의 고수> 4장, 5장, 6장 '높고 단단한 벽, 그리고 계란들'을 바탕으로 각색한 에피소드다. 각색할 수밖에... 드라마와 현실은 다르니 말이다.

이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기며 내가 기대한 건 통쾌한 이야기였다. 법꾸라지 같은 악한 자들의 법 악용을 법을 이용해 물리치는 기적 같은 그런 결말. 우리 주변의 있을법한 이야기 <법정의 고수>는 현실이었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드라마였다.

현실에서 기적 같은 스토리는 역시 드문 일이다. 기적의 사전적 뜻대로...
현실에서 기적이 드문 것을 알기에 법을 악용하는 자들은 끊임없이 등장하고... 그래도 가끔은 기적이 있으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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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어리의 웅변
빌 프랑수아 지음, 이재형 옮김 / 레모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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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 생물들은 어떻게 소통할까? 세계를 어떤 감각으로 받아들일까? 우리의 삶, 우리의 감정과 비슷할까? 나는 이 수수께끼를 풀고 싶어서 과학자가 되었다. (p. 11, 12)'

어린 시절 빌 프랑수아는 바다가 들숨을 쉴 때, 파도 가장자리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한 줄기 빛이 눈길을 사로잡았고 궁금해서 그 물체에 다가갔다. 정어리를 만났다. 정어리와의 만남은 빌 프랑수아에게 바닷속 생물들의 삶에 얽힌 신비로움을 향한 열정은 물론 더 먼바다로 이끌었다. 그리고 지구의 70퍼센트나 차지하는 바다, 그곳에 사는 매력 넘치는 생명체들이 그에게 다가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프랑스 최고의 이야기꾼이자 과학자 빌 프랑수아의
'<정어리의 웅변>은 바다와 역사, 과학과 전설의 세계 저 깊은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내려갈 것이다. (p. 13)'


스펙터클한 바닷속 영상의 자막은 향기의 언어로 작성된다. 잠수하면서 코를 막아 바다 가득한 그 냄새를 우리가 맡지 못할 뿐이다. 해양생물들의 대화는 색깔, 전자기장, 물의 진동, 페로몬 등 다양한 파동과 경로를 통해 이루어진다. 바다가 침묵하는 줄 알지만, 많은 소리로 가득 차 있다. 물은 공기보다 밀도가 높아 소리가 더 잘 전달되고 상상 이상으로 그 소리는 멀리 간다.

'비늘은 물고기의 역사다. (...) 물고기의 비늘에는 그가 살아온 삶이 요약되어 있다. 만일 비늘 하나가 뽑히면 제로 상태에서 새로운 비늘이 자라기 시작한다. 이 비늘은 물고기의 역사를 다시 시작한 다음, 자신의 과거를 베끼지 않은 속편을 써나갈 것이다. (p. 53)'


신비로운 삶을 간직한 물고기들

물고기들에게 서식하는 기생충과 죽은 피부, 식사 찌꺼기를 제거하는 청소놀래기는 새로운 고객과 단골을 구별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청소하러 온 물고기의 대기 줄이 길 때는 처음 온 고객과 오랫동안 청소하지 않은 고객을 먼저 청소해 줌으로써 단골을 만들어 간다.

지구에 사는 동물 가운데 가장 똑똑한 문어는 생존 방법을 교환하는 등 평생 지식을 축적하고 서로 공유하기도 한다. 아쉽게도 이들은 공유한 지식을 다음 세대에 전할 수 없어 인류에 견줄만한 문명을 이루지 못했다. 알을 낳아 보호하던 암컷은 새끼가 부화하기 직전에 쇠약해져 죽음으로 새끼에게 자신의 지식을 전하지 못한다. 어린 문어는 모든 지식을 스스로 발견해야 한다.


'8세에서 12세 사이의 어린이 910명에게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는 심지어 그들 중 20퍼센트가 텔레비전에서 본 물고기라 불리는 동물과 접시에 담긴 생선가스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p. 136)'

투명한 팩에 담긴 생선 덩어리에만 관심이 있을 뿐, 그 생선이 바다 어느 곳에서 왔는지, 어떻게 살아가는지 생각해 본 지 오래다. 바다 생물과의 관계가 끊어져 간다.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아이들에게 물고기 이야기를 못하게 한다.


현대 과학과 리얼리즘은 실제로 존재했을지도 모를 전설적인 바다 생물들을 우리의 상상 속에서 낭만 속에서 쫓아낸다. 지식이 쌓일수록 말이다. 은빛 피부에 푸른색 반점 그리고 용의 돌기 같은 것이 삐죽삐죽 솟아난 산갈치. 11미터까지 자랄 수 있고 수직으로 헤엄치는 산갈치가 전설 속의 큰바다뱀이었을지도 모른다.


'혀의 법칙'을 동맹의 조건으로 한 인간과 범고래가 펼치는 고래사냥, 먹히지 않으려는 정어리 떼와 이를 먹으려는 참치들이 벌이는 바닷속 이야기는 한편의 대서사시다.

'바다의 거울이 되는 것. 정어리들은 그것만이 참치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점을 알았다. 풍경 속에 녹아드는 것, 그저 주위의 반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 참치들은 방금 정밀하게 보정된 자외선 파장에서 강렬한 파란색 줄무늬를 비춰 정어리들의 시야를 흐리게 했다. 눈부신 섬광이 있었다. (p. 241)'


어쩌면 참치들의 공격을 피하려 사투를 벌이다 정어리 떼에서 떨어져 홀로됐을지도 모를 정어리, 파도가 그를 밀어내 어린 빌 프랑수아에게로 보낸 정어리...

'그리고 기적처럼 목숨을 건진 정어리가 바다의 자유와 위험을 향해 다시 떠나려는 순간, 정어리는 아이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아이가 자신을 따라오게 이끌어야겠다고 결심했다. (p. 246, 247)'

보이지 않는 곳이어서, 쉽게 갈 수 없는 곳이어서 바닷속 생명체에 무관심했다. 그들의 신비롭고 아름다움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제 정어리에게 들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주는 빌 프랑수아의 <정어리의 웅변>에서 바다와 역사, 과학과 전설의 세계 저 깊은 곳의 이야기 속으로 떠나보자.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에도 관심을 가져보자. 지구에서 같이 살아가는 더 이상 남이 아닌, 쉽게 볼 수 없는 바닷속 생명체들 세계 이야기에...

'정어리는 있는 힘을 다해 헤엄치면서 자신의 비늘에 그대로 복제해둔 장면들을 회상했다. 돌고래들의 놀이, 대형 선박의 선체, 멀리 떨어진 섬의 바위들, 기이한 바다거북들… 정어리는 너무나 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은밀한 이야기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p.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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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한 글쓰기 - 스트레스 없이, 생산성 있게 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매뉴얼
졸리 젠슨 지음, 임지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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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사람들, 좀 더 구체적으로 학술적 글쓰기를 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책이다. 대상이 그렇다 하더라도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적용 가능하다.


'생산성 있는 글쓰기는 스트레스는 낮고 보상은 큰 상황에서 마음에 드는 연구 과제와 연관된 글을 자주 쓸 때 가능하다. (p. 221)'

생산적인 글쓰기를 위해 우선, 글쓰기에 뒤따르는 불안감을 길들이는 방법으로 '연구 과제 상자 만들기', '감정 환기 파일을 쓰기', '매일 최소 15분 동안 글쓰기' 세 가지를 제시한다. 다소 낯선 '감정 환기 파일'은 적대감, 원망, 글을 쓰려고 할 때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을 적는 파일이다.

다음으로 시간 · 공간 · 에너지의 확보다. 시간 확보는 하루를 실제로 어떻게 보내는지를 기록함으로써 가능하다. 공간은 '기꺼이 닫아 놓을 수 있는 문'만 있으면 된다. 글쓰기를 마지못해 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에너지원이라 여길 때 에너지는 확보된다.

글쓰기를 방해하는 미신들, 이를테면 글을 쓰면서 경험하는 모순, 두려움, 불안이라든지 필생의 대작을 써야 한다는 덫, 바쁘다는 핑계, 적대적 독자에 대한 두려움, 남과의 비교, 완벽한 첫 문장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 자료 준비라는 함정 따위들을 파악하고 깨부수는 것이 그다음 방법이다.

글 쓰는 기세를 유지하고, 글 쓸 때 혼자 쓰지 말고 도움 주고받을 것을 주문하며 그 방법도 제시한다.


한 권의 책까지는 아니더라도 책을 읽고 짧은 글을 남기는 것조차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글쓰기를 시작하기가 두렵고, 적은 분량이라도 끝내고 나면 자신의 글이 초라하고 자신이 없다. 이때 우리가 흔히 마주하곤 하는 장애물들 모두를 들춰냈고 이에 대한 대처 방법이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한 글쓰기>에 담겼다.

개인적으로 완벽한 자료 수집에 집착하는 편이어서 '16장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자료가 필요한가'를 공들여 읽었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자료 하나를 빠뜨려서가 아니라 자료를 잘못 해석하기 때문이다. 자료를 잘 선택하고, 인용하기로 한 관련 자료를 숙지하자. (p. 113)'

많은 자료를 수집하기보다는 자료의 오용을 더 경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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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고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인환 옮김 / 페이퍼로드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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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즈 사강. 본명은 '프랑수아즈 꾸아레'였지만 첫 작품 <슬픔이여 안녕>을 읽은 아버지가 가족의 성을 쓰는 걸 반대해 '프랑수아즈 사강'을 필명으로 활동했다.

천재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중학교에서 퇴학당한 후 앙드레 지드, 카뮈, 랭보, 셰익스피어, 플로베르, 스콧 피츠제럴드, 헤밍웨이 등 많은 책을 읽기 시작했고, 열아홉 살에 병상에서 6주 만에 <슬픔이여 안녕>을 발표하여 비평가상을 수상했다.

'우리는 종종 책이 아닌 작가를 읽는다는 표현을 쓴다. 작가의 존재가 작품을 압도할 때, 혹은 그의 모든 작품이 그만의 고유한 세계로 연결될 때, 작가의 이름은 하나의 장르가 되기도 한다. 프랑수아즈 사강이 그렇다. - 소설가 신유진 (p. 325)'

장르가 된 프랑수아즈 사강. 소설 같은 삶, 아니 삶 자체가 소설이다. 술, 담배, 속도광, 마약 중독, 도박... 일탈로 점철된 삶. 시몽이 폴에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말하듯 사강의 소설은 사강의 삶은 우리에게도 같은 말을 건네며 슬며시 우리의 안색을 살피며 하는 권유가 아니라, 우리 소매를 강하게 잡아당겨 일탈로 이끈다.


'나는 어두운 우리의 침실 안으로 몰래 들어갔다. 인도산 천이 둘러쳐진 아주 여성적인 방이었다. 방 안에는 여느 때처럼 감미롭고도 짙은 로랑스의 체취가 감돌았다. (p. 11, 첫 문장)'

가난한 음악가 뱅상은 부유한 상속녀 로랑스의 사랑 고백을 받고 결혼한다. 결혼 7년 차에 접어든 어느 날 뱅상은 그가 작곡한 <소나기>가 대히트를 쳐서 이백만 달러나 되는 큰돈을 저작권료로 손에 쥐게 된다. 이를 계기로 뱅상은 로랑스와의 관계를 돌이켜본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그녀가 가난뱅이인 나와 결혼했던 것이다. 그녀는 내가 연약한 남자여서 자기를 속이는 짓을 못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항상 그녀가 소유자이고 나는 그 소유물이었다. 그녀는 나를 사랑한 적이 없었고 오로지 소유하고만 있었던 것이다. (p. 157)'

금전적 성공이 뱅상에게 가져다준, 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주변의 시선에서 자신의 남자다움이 일깨워져 주체적인 삶을 시도하며 로랑스에게서 벗어나려 하지만 뜻대로 되질 않는다.

'한심한 일은 나의 의지와는 정반대로 내가 행복하다는 사실이었다. 난생처음으로 나는 공교로운 삶의 행복과 기쁨을 맛보았다. 7년 동안 나는 모험에 대한 취향이 거세당한 채, 속박 속에서 살아온 것이 분명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가졌던 확실한 장점들 - 쾌활함, 믿음직스러움, 낙관적인 성격 - 을 잃어버렸다. 그 세 가지 천성적 장점은 점차 다른 것들 - 양보하기, 빈정대기, 무관심 -로 길든 성격으로 바뀌었다. (p. 176, 177)'


사랑은 여러 갈래이다. 아니 사랑은 하나인데 사랑하는 방법, 사랑은 갖는 수단이 여러 갈래인가?

뱅상과 로랑스의 관계는? 사랑인가? 아님 한쪽의 일방적인 욕심인가? 로랑스만의 사랑인가? 뱅상은 로랑스를 사랑하지 않았나?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왜 로랑스의 돈이라는 고삐에서 빠져나오지 않는 선택을 했을까? 7년 동안이나? 비겁함뿐이었나?

뱅상을 향한 로랑스의 사랑은? 뱅상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황금으로라도 그를 붙잡고 싶었던 잘못된 수단을 동원한 욕심만 가득한 사랑이었을 뿐이었을까? 뱅상이 떠났을 때, 로랑스가 선택한 죽음은? 진정한 사랑을 잃느니 못 살겠기에 한 선택이지 않을까? 욕망뿐이 선택이었을까?

프랑수아즈 사강의 사랑에 대한 물음은 <황금의 고삐>에서도 이어진다. 사랑이란 감정을 세세히 쪼개어 하나하나 질문한다.


프랑수아즈 사강만이 가진 세밀하고 감각적인 심리 묘사, 그의 글에서 표현되는 심리 변화를 읽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프랑수아즈 사강에게 빠져드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당신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아.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행복을 빌어주는 것이고, 그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기를 좋아하는 것이야. 그런데 당신은 나를 당신 옆에 붙들어 두고만 싶다고 당신 입으로 말했어. 당신은 내가 당신 옆에 있을 적에 내가 행복한지에 대해선 깡그리 무시하지.

맞아요. 네, 정말이에요! 당신을 내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 거예요? 당신이 맛보는 건 단지 사소한 불행과 사소한 걱정거리, 답답함과 짜증뿐이죠. 그건 당신이 별로 재미있게 놀 줄을 몰라서이거나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를 꺼리기 때문이죠. 하지만 나는요, 당신이 고개를 돌릴 때마다 내 가슴엔 비수가 꽂히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건 허무감이자 애끓는 아픔이죠. 난 벽에 머리를 찧고, 내 손톱의 살을 뜯어낸다고요. 난 당신이 무서워요. 여보, 당신이 무섭다고요. 당신은 이해하지 못해요.

그녀의 이야기는 내 호기심을 끌었다. 그것은 바로 묶여있는 자기 먹이에 파고드는 비너스였다. 불행하게도 삶이란, 적어도 일상적인 삶은 보다 더 하찮은 감정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p. 298, 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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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행복 대신 불행을 택하기도 한다
김진명 지음 / 이타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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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로 한 인간의 삶과 그의 삶이 주장하는,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가늠하는 일은 즐거움이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서이다. 특히 김진명이어서, 첫 에세이여서 더 즐겁다.


몇 가지 그의 생각을 들여다보자.

독서에 대한 그의 생각은 악서와 양서를 구분하기도 어렵고 둘 다 읽는 게 무엇보다 우선한다. 또한 독서는 문리를 트이게 해 형이상학적 복합 사고를 가능하게 능력이 있다고 본다. 그 능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독서의 시기가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

'인간의 삶에는 여러 길이 있고 어떤 길에도 다 의미가 있다. 하지만 독서와 사색을 할 시기를 놓치고 난 인생은 어떤 성공을 거둔다 해도 아쉽기만 하다. (p. 49)'

인문학이란 잘 돌아가도 문제요. 그렇지 않아도 문제요. 항상 문제가 있다고 전제하고 질문하는 참견하는 학문으로 정의한다.

'왜 그렇게 잘 돌아가는 거요? 그렇게 잘 돌아가서야 쓰겠소? 그토록 일이 잘 되는 데는 필시 무슨 문제가 있을 거요. 이런 이상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마치 훼방 놓는 것 같은 학문. 이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p. 50)'

김진명 작가가 제시하는 세상을 잘 살아가는 세 가지 비결... 무조건 남을 위해 사는 것, 내면의 세계를 가지는 것, 마지막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 그걸 찾아 평생 간직하고 실행하며 세상을 천국으로 바꾸며 사는 것이다.


의미가 있다면 때로는 행복 대신 불행을 택하는 인간만의 힘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어머니로서 자식에 대한 원초적 본능을 초월하면서까지 이타적인 삶을 산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처럼, 본능적인 쉬운 길을 거부하고 깨달음이란 무엇인지 어려운 길을 택하여 삶을 통해 실천한 부처처럼...

때로는 행복 대신 불행을 택하는 아름다운 사람, 그들은 세상도 아름답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도 살맛 난다.
군부독재 치하 엄혹한 시절에 공포를 이겨내며 이를 악물고 입 다문 용기를 보여준 33헌병대원들, 세상의 셈법은 잊고 좋아하는 분을 만났다고 선뜻 밥값을 내는 사람들, 오랜만에 만난 돈 없는 전우를 측은하게 여기기보다는 대등한 관계를 보여주며 자존심을 지켜주는 친구...

나는 왜 <고구려>를 쓰는가? 그 이유에서 김진명 작가의 역사관은 역사 왜곡에 타협이나 순간의 타이름은 절대 없다는 단호한 입장이다. 과거 우리 역사의 사실 근거를 중국 사사에서 찾는 황당무계한 일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음 역력히 드러난다.


역시 그의 삶을 투영하는 글에서 만만치 않음을 느꼈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성깔 같은 것 말이다. 마치 큰 붓으로 한 획을 과감한 긋는듯한 글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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