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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고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인환 옮김 / 페이퍼로드 / 2022년 6월
평점 :
프랑수아즈 사강. 본명은 '프랑수아즈 꾸아레'였지만 첫 작품 <슬픔이여 안녕>을 읽은 아버지가 가족의 성을 쓰는 걸 반대해 '프랑수아즈 사강'을 필명으로 활동했다.
천재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중학교에서 퇴학당한 후 앙드레 지드, 카뮈, 랭보, 셰익스피어, 플로베르, 스콧 피츠제럴드, 헤밍웨이 등 많은 책을 읽기 시작했고, 열아홉 살에 병상에서 6주 만에 <슬픔이여 안녕>을 발표하여 비평가상을 수상했다.
'우리는 종종 책이 아닌 작가를 읽는다는 표현을 쓴다. 작가의 존재가 작품을 압도할 때, 혹은 그의 모든 작품이 그만의 고유한 세계로 연결될 때, 작가의 이름은 하나의 장르가 되기도 한다. 프랑수아즈 사강이 그렇다. - 소설가 신유진 (p. 325)'
장르가 된 프랑수아즈 사강. 소설 같은 삶, 아니 삶 자체가 소설이다. 술, 담배, 속도광, 마약 중독, 도박... 일탈로 점철된 삶. 시몽이 폴에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말하듯 사강의 소설은 사강의 삶은 우리에게도 같은 말을 건네며 슬며시 우리의 안색을 살피며 하는 권유가 아니라, 우리 소매를 강하게 잡아당겨 일탈로 이끈다.
'나는 어두운 우리의 침실 안으로 몰래 들어갔다. 인도산 천이 둘러쳐진 아주 여성적인 방이었다. 방 안에는 여느 때처럼 감미롭고도 짙은 로랑스의 체취가 감돌았다. (p. 11, 첫 문장)'
가난한 음악가 뱅상은 부유한 상속녀 로랑스의 사랑 고백을 받고 결혼한다. 결혼 7년 차에 접어든 어느 날 뱅상은 그가 작곡한 <소나기>가 대히트를 쳐서 이백만 달러나 되는 큰돈을 저작권료로 손에 쥐게 된다. 이를 계기로 뱅상은 로랑스와의 관계를 돌이켜본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그녀가 가난뱅이인 나와 결혼했던 것이다. 그녀는 내가 연약한 남자여서 자기를 속이는 짓을 못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항상 그녀가 소유자이고 나는 그 소유물이었다. 그녀는 나를 사랑한 적이 없었고 오로지 소유하고만 있었던 것이다. (p. 157)'
금전적 성공이 뱅상에게 가져다준, 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주변의 시선에서 자신의 남자다움이 일깨워져 주체적인 삶을 시도하며 로랑스에게서 벗어나려 하지만 뜻대로 되질 않는다.
'한심한 일은 나의 의지와는 정반대로 내가 행복하다는 사실이었다. 난생처음으로 나는 공교로운 삶의 행복과 기쁨을 맛보았다. 7년 동안 나는 모험에 대한 취향이 거세당한 채, 속박 속에서 살아온 것이 분명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가졌던 확실한 장점들 - 쾌활함, 믿음직스러움, 낙관적인 성격 - 을 잃어버렸다. 그 세 가지 천성적 장점은 점차 다른 것들 - 양보하기, 빈정대기, 무관심 -로 길든 성격으로 바뀌었다. (p. 176, 177)'
사랑은 여러 갈래이다. 아니 사랑은 하나인데 사랑하는 방법, 사랑은 갖는 수단이 여러 갈래인가?
뱅상과 로랑스의 관계는? 사랑인가? 아님 한쪽의 일방적인 욕심인가? 로랑스만의 사랑인가? 뱅상은 로랑스를 사랑하지 않았나?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왜 로랑스의 돈이라는 고삐에서 빠져나오지 않는 선택을 했을까? 7년 동안이나? 비겁함뿐이었나?
뱅상을 향한 로랑스의 사랑은? 뱅상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황금으로라도 그를 붙잡고 싶었던 잘못된 수단을 동원한 욕심만 가득한 사랑이었을 뿐이었을까? 뱅상이 떠났을 때, 로랑스가 선택한 죽음은? 진정한 사랑을 잃느니 못 살겠기에 한 선택이지 않을까? 욕망뿐이 선택이었을까?
프랑수아즈 사강의 사랑에 대한 물음은 <황금의 고삐>에서도 이어진다. 사랑이란 감정을 세세히 쪼개어 하나하나 질문한다.
프랑수아즈 사강만이 가진 세밀하고 감각적인 심리 묘사, 그의 글에서 표현되는 심리 변화를 읽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프랑수아즈 사강에게 빠져드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당신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아.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행복을 빌어주는 것이고, 그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기를 좋아하는 것이야. 그런데 당신은 나를 당신 옆에 붙들어 두고만 싶다고 당신 입으로 말했어. 당신은 내가 당신 옆에 있을 적에 내가 행복한지에 대해선 깡그리 무시하지.
맞아요. 네, 정말이에요! 당신을 내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 거예요? 당신이 맛보는 건 단지 사소한 불행과 사소한 걱정거리, 답답함과 짜증뿐이죠. 그건 당신이 별로 재미있게 놀 줄을 몰라서이거나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를 꺼리기 때문이죠. 하지만 나는요, 당신이 고개를 돌릴 때마다 내 가슴엔 비수가 꽂히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건 허무감이자 애끓는 아픔이죠. 난 벽에 머리를 찧고, 내 손톱의 살을 뜯어낸다고요. 난 당신이 무서워요. 여보, 당신이 무섭다고요. 당신은 이해하지 못해요.
그녀의 이야기는 내 호기심을 끌었다. 그것은 바로 묶여있는 자기 먹이에 파고드는 비너스였다. 불행하게도 삶이란, 적어도 일상적인 삶은 보다 더 하찮은 감정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p. 298, 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