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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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퇴직 후 내가 꾼 악몽은 다니던 직장이 나오는 꿈이었다. 그 꿈은 몇 년 동안 이어졌다. 그렇게 분했다. 성실했고 남이 보지 않더라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늦게까지 일했으며 나름 실적을 개선하기도 했다. 평생을 회사를 위해 일했는데 그런 내가 이런 대우를 받으며 퇴직해야 했나. 억울한 세상을 살았다는 생각이 머리를 채웠다.


<비둘기>는 하루 동안 벌어지는 사건이다.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은행 경비원 조나단 노엘의 복잡하게 얽혀있는 마음의 갈래를 한 올 한 올 정교하게 풀어냈다.

'샤랭통에서 살았을 때, 1942년 7월쯤이었다고 생각되는 어느 여름날 오후 낚시를 갔다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 천둥 번개가 치더니 소나기가 한바탕 내린 날이었다. 그는 후끈한 열기와 빗물에 젖어 있던 아스팔트 위를 신발을 벗고 신나게 물웅덩이 속을 첨벙거리며 맨발로 걸었다.... (p. 6)'

집에 돌아와보니 어머니가 없었다. 며칠 후 아버지도 사라져 버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어린 누이동생과 함께 생면부지의 친척 아저씨 집에서 농사를 거들며 살았다. 파란만장한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오니 누이동생마저 없었다. 결혼했지만 4개월 만에 사내아이를 낳은 아내는 과일 장수와 눈이 맞아 떠났다. 좋지 않은 일은 겪은 조나단 노엘은 사람들은 믿을 수 없었다. 평화롭게 살려면 그들을 멀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첫눈에 반한 사랑 같은 파리의 작은방을 얻었다. 보금자리로 여기며 은행 경비원을 살아온 조나단, 연말에 8천 프랑만 내면 그 방을 영원히 소유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비둘기 사건이 발생하기 전인 1984년 8월 어느 금요일 아침까지의 상황이었다. (p. 14)'

출근하려고 방문을 연 조나단은 복도에 나타난 비둘기 한 마리를 발견하고 눈이 마주치자 공포를 느낀다. 조나단은 그날 끔찍한 하루를 겪게 된다. 30년 동안 흐트러짐 없던 그만의 경비원을 자세를 잡을 수 없었다. 공원에서 만난 거지의 태평스러운 인생을 보니 화가 났고 질투가 일었다. 공원 벤치 나사에 걸려 바지마저 찢어졌다.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작은 공간에서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아무에게도 침해당하지 않고 지내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살았다. 세상을 나에게 왜 이러는가. 50대 남자의 작은 바람조차 들어주지 않는가.

'그리고 그것은 범죄가 도덕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행동으로 실행하거나 혹은 말로도 생각을 '내뱉을 능력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참아내는 사람이었다. (p. 90)'

복도에 비둘기가 있는 집으로 돌아갈 용기가 나질 않아 허름한 호텔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된 조나단은 내일 자살할 결심을 하고 잠에 빠져든다. 그러다가 아침에 도시 전체가 폭발해 버릴 것만 같은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천둥소리를 듣는다.

''도대체 사람들이 왜 안 오는 걸까? 왜 나를 구출해 내지 않지? 왜 이렇게 쥐 죽은 듯이 조용한 거야? 다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지? 다른 사람들이 없으면 나 혼자서는 절대로 살 수가 없단 말이야!' (p. 105)'


그래도 그 직장에서 한평생을 보내며 아이들 학비를 보탰다. 35년 동안 직장 생활한 덕에 쥐꼬리만하지만 연금도 받는다.

무엇보다 조나단이 공원에서 만난 거지처럼 남들이 자 지켜보는 가운데 엉덩이를 까고 용변을 보지도 않는다. 집에 화장실이 두 개나 있다. 줄 서거나 눈치 보면서 용변을 보지 않아도 되니 최소한의 자유는 누리고 산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 살아온 게 천만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는 않아도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거나 지나온 삶을 억울해하거나 후회할 이유도 없지 싶다.

고작 비둘기에 놀라자빠져 악몽을 꾸는 셈이다. 그 비둘기 때문에 직장 생활의 수고를 송두리째 날려버릴 수는 없다. 소리쳐 도움을 청하면 내게 다가올 가족, 친구도 있다. 하찮은 비둘기 따위에 왜 정성스럽게 한 장 한 장 벽돌 쌓듯이 쌓아 올린 견고한 삶이 무너질까. 소유하려는 집착이 원인이다.


옷을 입고 호텔을 나선 조나단 노엘은 빗물 웅덩이 한가운데서 어느 여름날 집으로 돌아올 때처럼 이 웅덩이 저 웅덩이를 찾아 철벅거렸다.

'정말 신나는 짓이었다. 그는 어린아이들이 하는 그런 지저분한 유희를 다시 되찾은 대단한 자유라도 된다는 듯이 즐겼다. 플랑슈 가에 도착하여 집의 대문을 들어서고, 잠겨 있는 로카르 부인의 숙소를 잽싸게 지나 뒷마당을 가로지르고, 좁다란 뒤 계단을 올라갈 때도 그는 여전히 활기찼고 행복해했다. (p. 108)'

조나단이 어릴 때처럼 웅덩이 물을 철벅거리며 자유를 누리듯, 내 마음속에 품고 있던 여러 가지 회사 생각이 다른 것들로 채워져 내가 다니던 회사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조나단이 자살할까 봐 마음 졸이며 읽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조나단이 복도에 다다랐을 때 비둘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시푸르뎅뎅하고 축축하고 번들거리는 똥도, 바들바들 떨리던 작은 깃털도 보이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회사가 나오는 악몽을 더 이상 꾸지 않는다. 얼마나 다행인지. 퇴직 후 억울함에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도 않았고 소중한 삶을 무너뜨리지도 않아서.

''너는 이제 끝장이야!'라고 소리를 꽥 지르는 것 같았다.
'너는 이제 늙었고 끝났어. 기껏 비둘기한테 놀라 자빠지다니! 비둘기 한 마리가 너를 방안으로 몰아넣고, 꼼짝 못 하게 만들고, 가두어 놓다니! 조나단, 너는 이제 죽은 목숨이야. 설령 지금 당장 죽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곧 그렇게 될 거야. 네 인생은 실패한 거야... ' (p. 19)'

비둘기는 또 내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한갓 새에 지나지 않은 비둘기일 뿐이다. 곧 날아가 버릴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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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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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내가 꾼 악몽은 다니던 직장이 나오는 꿈이었다. 그 꿈은 몇 년 동안 이어졌다. 그렇게 분했다. 성실했고 남이 보지 않더라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늦게까지 일했으며 나름 실적을 개선하기도 했다. 평생을 회사를 위해 일했는데 그런 내가 이런 대우를 받으며 퇴직해야 했나. 억울한 세상을 살았다는 생각이 머리를 채웠다.


<비둘기>는 하루 동안 벌어지는 사건이다.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은행 경비원 조나단 노엘의 복잡하게 얽혀있는 마음의 갈래를 한 올 한 올 정교하게 풀어냈다.

'샤랭통에서 살았을 때, 1942년 7월쯤이었다고 생각되는 어느 여름날 오후 낚시를 갔다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 천둥 번개가 치더니 소나기가 한바탕 내린 날이었다. 그는 후끈한 열기와 빗물에 젖어 있던 아스팔트 위를 신발을 벗고 신나게 물웅덩이 속을 첨벙거리며 맨발로 걸었다.... (p. 6)'

집에 돌아와보니 어머니가 없었다. 며칠 후 아버지도 사라져 버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어린 누이동생과 함께 생면부지의 친척 아저씨 집에서 농사를 거들며 살았다. 파란만장한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오니 누이동생마저 없었다. 결혼했지만 4개월 만에 사내아이를 낳은 아내는 과일 장수와 눈이 맞아 떠났다. 좋지 않은 일은 겪은 조나단 노엘은 사람들은 믿을 수 없었다. 평화롭게 살려면 그들을 멀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첫눈에 반한 사랑 같은 파리의 작은방을 얻었다. 보금자리로 여기며 은행 경비원을 살아온 조나단, 연말에 8천 프랑만 내면 그 방을 영원히 소유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비둘기 사건이 발생하기 전인 1984년 8월 어느 금요일 아침까지의 상황이었다. (p. 14)'

출근하려고 방문을 연 조나단은 복도에 나타난 비둘기 한 마리를 발견하고 눈이 마주치자 공포를 느낀다. 조나단은 그날 끔찍한 하루를 겪게 된다. 30년 동안 흐트러짐 없던 그만의 경비원을 자세를 잡을 수 없었다. 공원에서 만난 거지의 태평스러운 인생을 보니 화가 났고 질투가 일었다. 공원 벤치 나사에 걸려 바지마저 찢어졌다.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작은 공간에서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아무에게도 침해당하지 않고 지내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살았다. 세상을 나에게 왜 이러는가. 50대 남자의 작은 바람조차 들어주지 않는가.

'그리고 그것은 범죄가 도덕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행동으로 실행하거나 혹은 말로도 생각을 '내뱉을 능력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참아내는 사람이었다. (p. 90)'

복도에 비둘기가 있는 집으로 돌아갈 용기가 나질 않아 허름한 호텔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된 조나단은 내일 자살할 결심을 하고 잠에 빠져든다. 그러다가 아침에 도시 전체가 폭발해 버릴 것만 같은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천둥소리를 듣는다.

''도대체 사람들이 왜 안 오는 걸까? 왜 나를 구출해 내지 않지? 왜 이렇게 쥐 죽은 듯이 조용한 거야? 다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지? 다른 사람들이 없으면 나 혼자서는 절대로 살 수가 없단 말이야!' (p. 105)'


그래도 그 직장에서 한평생을 보내며 아이들 학비를 보탰다. 35년 동안 직장 생활한 덕에 쥐꼬리만하지만 연금도 받는다.

무엇보다 조나단이 공원에서 만난 거지처럼 남들이 자 지켜보는 가운데 엉덩이를 까고 용변을 보지도 않는다. 집에 화장실이 두 개나 있다. 줄 서거나 눈치 보면서 용변을 보지 않아도 되니 최소한의 자유는 누리고 산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 살아온 게 천만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는 않아도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거나 지나온 삶을 억울해하거나 후회할 이유도 없지 싶다.

고작 비둘기에 놀라자빠져 악몽을 꾸는 셈이다. 그 비둘기 때문에 직장 생활의 수고를 송두리째 날려버릴 수는 없다. 소리쳐 도움을 청하면 내게 다가올 가족, 친구도 있다. 하찮은 비둘기 따위에 왜 정성스럽게 한 장 한 장 벽돌 쌓듯이 쌓아 올린 견고한 삶이 무너질까. 소유하려는 집착이 원인이다.


옷을 입고 호텔을 나선 조나단 노엘은 빗물 웅덩이 한가운데서 어느 여름날 집으로 돌아올 때처럼 이 웅덩이 저 웅덩이를 찾아 철벅거렸다.

'정말 신나는 짓이었다. 그는 어린아이들이 하는 그런 지저분한 유희를 다시 되찾은 대단한 자유라도 된다는 듯이 즐겼다. 플랑슈 가에 도착하여 집의 대문을 들어서고, 잠겨 있는 로카르 부인의 숙소를 잽싸게 지나 뒷마당을 가로지르고, 좁다란 뒤 계단을 올라갈 때도 그는 여전히 활기찼고 행복해했다. (p. 108)'

조나단이 어릴 때처럼 웅덩이 물을 철벅거리며 자유를 누리듯, 내 마음속에 품고 있던 여러 가지 회사 생각이 다른 것들로 채워져 내가 다니던 회사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조나단이 자살할까 봐 마음 졸이며 읽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조나단이 복도에 다다랐을 때 비둘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시푸르뎅뎅하고 축축하고 번들거리는 똥도, 바들바들 떨리던 작은 깃털도 보이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회사가 나오는 악몽을 더 이상 꾸지 않는다. 얼마나 다행인지. 퇴직 후 억울함에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도 않았고 소중한 삶을 무너뜨리지도 않아서.

''너는 이제 끝장이야!'라고 소리를 꽥 지르는 것 같았다.
'너는 이제 늙었고 끝났어. 기껏 비둘기한테 놀라 자빠지다니! 비둘기 한 마리가 너를 방안으로 몰아넣고, 꼼짝 못 하게 만들고, 가두어 놓다니! 조나단, 너는 이제 죽은 목숨이야. 설령 지금 당장 죽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곧 그렇게 될 거야. 네 인생은 실패한 거야... ' (p. 19)'

비둘기는 또 내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한갓 새에 지나지 않은 비둘기일 뿐이다. 곧 날아가 버릴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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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우면 종말 - 안보윤 산문
안보윤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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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선한 사마리아인 실험을 했다. 설교 발표까지 남은 시간에 따라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돕는 행동에 큰 차이가 났다. 시간이 촉박한 참가자는 10% 정도만 도왔지만, 시간 여유가 있는 참가자는 63%나 도왔다.

'나라면 우산을 받쳐 들고 그와 함께 차도를 걸을 수 있었을까. 아니, 그전에 나는 그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급행열차가 오는 시간에 맞춰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뛰어오르기 일쑤인 나는, 핸드폰 속 좁은 화면을 응시하느라 주변을 거의 둘러보지 않는 나는 아마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약한 사람만이 약한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세계에 나는 살고 있으니 말이다. (pp. 87, 88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


퇴직한 다음에야 비로소 나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동 청소하시는 분과 처음 인사를 나눈 것도 그즈음이다. 이젠 제법 친해져 말도 주고받는다. 차 타고 획획 지나쳤던 한강 산책로, 이제서야 걸으면서 숨어있던 계절을 발견했다. 우리 동네에 '이런 게 있었나?' 싶은 것들도 눈에 띈다.

안보윤 작가 말마따나 퇴직 전까지 나는 시간을 뭉텅뭉텅 잘라가며 보냈다. 벌써 4/4분기네. 서른 살이 되었고 마흔 살, 쉰 살이 됐다. 다 큰 아이들이 학창 시절을 아내만 간직할 뿐 내 기억에 남은 건 달랑 몇 장면뿐이다.


<외로우면 종말>은 가만히 하루를 들여다보는 안보윤의 첫 산문이다. 가만히 보니 시간 속에서 작가 자신을 발견한다. 가족, 친구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보인다.

비겁했던 나, 친구를 봄의 반대편으로 밀어냈던 나, 사람을 미워하는데 에너지를 썼던 나. 나를 다독여 주고 싶은 하루도 있었다.

틀에 맞춰진 친절함은 없지만 타인을 성실히 보살피는 이웃, 큰 사고를 당해 억울한 텐데 사고를 일으킨 노인을 걱정하는 단단한 마음을 가진 친구, 내일의 나를 위해 오늘 할 일이 없어 빙글빙글 도는 사람들.

'진리가 뭐야, 엄마? 아이가 발가락을 꼼지 대며 다시 물었다. 변하지 않는 거야. 약속하는 거? 약속은 깨질 수도 있잖아. 진리는 안 변하는 거야. 절대 안 변한다고, 매일매일 똑같다고 믿을 수 있는 거. 아이가 살그머니 웃으며 말했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 같은 거?" (p. 187 당연하다는 착각)'

엄마와 아이에 사이에 달그락달그락 소란이 있었겠지만 사랑하는 마음을 갖기까지 부단히 노력했을 나날들. 춥거나 덥게 지내질 않길 바라는 마음에 매일 날씨를 알려주는 가족. 그 모습에서 아주 작은 쉼표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니 회복이란 무언가를 부러 뜨리고 이어 붙이듯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손을 뻗어 기울어진 바를 다잡아 나가는 과정 전체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p. 170 한밤의 산책자들)'

산책할 때 만나는 칠십 대 초반의 엄마와 삼십 대 아들이 있다. 지적 장애가 있는 아들과 매일 걷는다. 눈이 오든 비가 오든 빼먹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잰걸음으로 아들을 뒤따라가는 엄마를 볼 때마다 아내와 나는 기도를 한다. 아들이 꾸준히 나아지기를.

가만히 안보윤의 시간을 보며 나의 시간도 가만히 들여다본다. 예전 같으면 바쁘게 지나쳤을 것들, 사람들.

아이스크림을 사가지고 오다가 땀에 젖은 채 청소하시는 분을 만났다. 아내가 아이스크림 하나를 드시라면 건넸다. 이 세상에 있는 줄 꿈에도 몰랐을 활짝 웃는 모습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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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인 계획
야가미 지음, 천감재 옮김 / 반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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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바나 료스케는 나카야마 출판에서 천재 미스터리 소설 편집자로 통한다. 잘나가던 다치바나는 담당한 작가가 플롯을 도용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단행본 논픽션부로 쫓겨난다. 그러던 어느 날, 다치바나는 알 수 없는 사람으로부터 살해 협박 내용이 담긴 원고를 받는다.

'프롤로그
드디어 이 순간이 왔다.
나는 당신을 죽일 겁니다.
절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p. 39)'

사실 다치바나는 열한 살에 술에 찌들어 손찌검을 일삼는 아버지를 죽였다. 아들을 보호하려다 대신 온몸에 멍투성이가 된 어머니도 죽였다. 편들어 줄줄 알았던 어머니가 오히려 아버지를 두둔하며 뺨을 때렸기 때문이다. 그때 마침 큰 지진이 일어나는 바람에 증거가 사라져 아무 일없이 지나갔다.

'나는 어떻게 죽일까? 하는 구체적인 수법 외에 어째서 범죄자로 성장하는 걸까? 하는 측면을 여러 각도에서 고찰하는 것을 좋아했다. (p. 175)'

그 이후에도 미스터리 소설 편집자답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는 살인, 자신이 죽는 순간까지 자기 왜 죽는지 모른 채 죽음을 맞이하는 아름다운 살인을 계획하며 꿈꾸며 살인을 두 차례 더 했다.

마침내 다치바나는 자신을 완벽하게 죽이려는 자를 찾아 나선다. 오히려 그자를 죽이려는 완벽하고 아름다운 살인을 계획한다.


웹툰 원작의 드라마 <살인자O난감>에서 이탕(최우식)은 우발적으로 첫 살인을 저지른다. 공교롭게도 살인을 가리키는 증거가 우연히 모두 사라진다. 이런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났고, 자신이 죽인 사람들 모두 죽어마땅한 자들임을 알게 된다. 우발적 살인은 이탕의 능력이 되고 정의가 된다. 살인을 정당화한다.

'대다수는 객관적으로 볼 때 '그런 우연이 어디 있어?' 하고 의심한다. 바로 그것이야말로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는 아름다운 살인에 필요한 조건이다. 이 세상에 100퍼센트 완벽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어떤 우연으로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계획이 파괴되는 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겹치는 우연에 극한으로 집착함으로써 다른 사람이 보더라도 들키지 않는다는 아름다움이 생긴다. (p. 195)'

마침내 자신을 죽이려는 자를 찾아낸 다치바나는 그가 세운 완벽하고 아름다운 살인 계획을 실행한다. 하지만 우연하게도 정말 우연하게도 그의 살인을 목격한 의외의 사람이 나타난다. 다치바나의 살인 계획은 완벽하지 않았다. <살인자O난감>의 이탕에게도 우연은 계속되지 않는다. 이탕의 살인 역시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궁극의 살인'이란 뭘까요? (...)
... 간단합니다. 답은 심플하죠.
범인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살인, 이게 내가 내린 답이에요. (pp. 291, 292)'

다치바나의 아들에게 아버지는 살인자가 아니다. 어릴 때 놀이터에서 같이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의 눈에 아들은 스스로 여러 가지 놀이를 발견해 놀았다. 외발로 서서 깡충깡충 뛰는 놀이를 즐겼다. 꽃을 좋아하는 아들은 길가에 핀 꽃을 꺾어 꽃병을 꾸미기도 했다.

다치바나의 아들은 한 발로 서서 발끝에 체중을 싣고 뛰는 놀이를 가장 좋아했다. 나무 뒤를 뒤져 빈 껍데기도 아니고 살아있는 것도 아닌 것들을 30분 동안 작은 산이 될 때까지 모아놓고 외발뛰기를 한다. 으적, 으적, 콰직. 으적, 으적, 콰직. 감자칩을 밟아 뭉개는듯한 느낌이 좋다. 아버지가 몹시 흐뭇해했던 것을 기억한다.


살아있지만 사회에서 배제시킴으로서 사회적 생명을 빼앗는 살인, 가해자도 피해자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벌어진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뒤바뀌기도 해서 가해자와 피해자 구별이 안되는 살인이기도 하다. 살인. 혐오, 학대, 무관심, 가스라이팅, 차별 등이 살인도구로 쓰인다.

유괴해서 죽이고, 강간하고 죽이고, 강도질하고 죽이는 등 이기적인 욕구로 벌인 살인은 아무리 우연이 겹치더라도 완벽할 수도 아름다운 수도 없다. 완벽하고 아름다운 살인은 없다.

그렇지만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르는 아름다운 궁극의 살인은 있다. 여기저기서 벌어진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궁극의 살인이라도, 정의를 앞세운 살인이라도 살인은 살인이다. 벌받아 마땅한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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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
차인표 지음, 제딧 그림 / 해결책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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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 할머니를 기억하시나요?
훈 할머니는 열여섯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에 의해 위안부로 강제 징용되어 캄보디아로 끌려가셨다가, 지난 1997년 잠시 한국에 오셨던, 작은 키에 크고 고운 눈을 가진 할머니입니다. (p. 232, 작가의 말)'

우리나라 이름 이남이, 일본 이름 하나코 그리고 반세기를 훈이란 이름으로 캄보디아에서 살았다. 한국인 이남이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훈 할머니, 그 누구에게도 사과와 보상을 받지 못했다.


일제 강점기 백두산 기슭의 호랑이 마을, 촌장 댁 손녀 박순이와 호랑이 사냥꾼 용이 그리고 미술학도인 일본군 장교 가즈오, 세 젊은이의 이야기다.

'봉긋 솟아 있는 이 언덕은 잘가요 언덕입니다. 예부터 호랑이 마을 사람들이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모이는 작은 언덕이지요. (p. 12)'

일찍 엄마를 잃은 순이는 엄마 별이 자신을 돌봐준다고 여긴다. 백호가 덮치는 바람에 용이도 어머니와 동생을 잃었다. 순이는 웅이에게 밤하늘에 떠있는 엄마 별을 보여주지만 용이는 백호를 잡고야 말겠다는 복수심에 순이가 가리키는 엄마 별을 찾지 못한다.

가즈오는 홀로된 어머니를 남겨두고 전쟁에 참여한다. 어머니가 걱정돼 틈날 때마다 편지를 보낸다. 호랑이 마을에서 마을 사람들과 잘 지내던 가즈오는 어느 날 위안부를 강제로 징집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전 엄마라는 이름으로 죽고 싶어요. 한 아이가 아닌 여러 아이들의 엄마. 아이들이 울 때 업어 주고, 아플 때 어루만져 주고, 슬플 때 안아 주고, 배고플 때 먹여 주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평생 살다가 아이들과 헤어질 때쯤 되면… 아이들도 엄마라는 이름을 갖게 되겠죠." (p. 124)'

이역만리 전쟁터로 끌려가면 순이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죽지 못할 것이다. 몸과 마음을 철저히 유린당한 순이는 어느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은 채 죽을 것이다. 가즈오의 마음이 무겁다. 가즈오의 조국 일본이 역겨운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가즈오는 생각한다.

7년 만에 호랑이 마을로 돌아온 용이는 순이를 지키다가 한쪽 다리를, 가즈오는 목숨을 잃는다.

'"순이 씨,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당신 나라에 와서 전쟁을 해서 미안합니다. 평화로운 땅을 피로 물들여서 미안합니다. 꽃처럼 아름다운 당신을 짓밟아서 미안합니다. 순결한 당신의 몸을 찢고, 그 아름다운 두 눈에 눈물 흘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p. 219)'


70년 만에 필리핀의 작은 섬에서 발견된 순이는 여든아홉 살 쑤니가 되어 고향 호랑이 마을로 돌아왔다. 하지만 30여 년 전, 미사일 기지가 들어서면서 호랑이 마을은 없어졌다. 쑤니 할머니는 한국인 순이의 삶과 함께 고향을 잃었다.

캄보디아 오지에서 살고 있던 훈 할머니는 일본군 장교 현지처로 살았지만 일본군이 물러나면서 혼자가 됐다. 위안부였던 사실을 숨긴 채 캄보디아 남자와 결혼해 자식 셋을 낳았지만 술주정뱅이 남편과 결혼 생활이 오래가지 않았다. 아들은 크메르루주에 납치돼 생사를 모른다.

55년 만에 고국 땅을 밟은 훈 할머니는 한국인 이남이로 살기 위해 영구 귀국했지만, 넉 달 뒤 말도 통하지 않아 외롭게 지내던 끝에 훈 다시 캄보디아로 돌아갔다. 훈 할머니도 한국인 이남이의 삶과 함께 쑤니가 고향을 잃었듯이 고국을 영영 잃어버렸다.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와 일본 아베 내각은 위안부 문제에 최종적으로 합의했다. 합의문에는 일본 정부가 10억 엔을 출연,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한다는 내용도 포함했다. 두 나라 정부는 위안부라는 과거사가 골치 아픈 문제라고 여겼고 빠른 해결이 필요하다는데 생각을 같이했다.

'"어떤 사람이 몇 년에 한 번씩 우리 집에 찾아왔어요. 덩치는 커다란데, 다리가 한 짝밖에 없는 남자였지요. (...) 혹시 나중에라도 할머니를 만나면 이 나뭇조각을 꼭 전해 달라면서 맡기고 갔어요."
쑤니 할머니가 말없이 나뭇조각을 받아 듭니다. (...) 나뭇조각 뒷면에 작은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따뜻하다, 엄마별. (pp. 230, 231)'

용서해야만 별을 볼 수 있다. 용이는 누굴 용서했기에 따뜻한 엄마별을 비로소 볼 수 있었을까? 엄마와 동생 목숨을 앗아간 백호? 아니면 순이를 빼앗아간 일본군들까지?

'"용이야, 이제 그만 백호를 용서해 주면 안 되겠니?"
"......"
용이가 다시 침묵합니다. 소리 없이 울고 있는 것입니다. (...)
"난 네가 백호를 용서해 주면, 엄마별을 볼 수 있게 될 것 같아." (...)
"모르겠어. 용서를... 어떻게 하는 건지." (...) "상대가 빌지도 않은 용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pp. 194, 195)'

어쩌면 용서하는 것과 용서를 구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지 아닐까? 주체가 서로 다르다. 용서를 구하는 것과 상관없이 용서할 수 있다. 다만 용서를 구하며 사죄할 때는 진정 어린 마음이어야 한다. 진정성은 끊임없이 용서를 구하며 사죄하는 것만으로 보여줄 수 있다.

쑤니와 훈 할머니 모두 한국인 순이와 이남이로 살았어야 할 삶을 잃었다. 고향도 고국도 잃었다. 그런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는 일이다.

합의의 법적 구속력이 무슨 소용인가. 언제까지 배상금을 얻어내려는 속셈이냐니, 돈으로 해결될 일인가. 서둘러 처리할 골칫거리도 물론 아니다. 이제 그만 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냐는 말이야말로 닥쳐야 할 소리다. 잊어야 할 일인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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