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미술관 -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 이야기
이유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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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차별과 혐오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지만 오래전부터 그림 속에도 있었다. 이유리의 <기울어진 미술관>은 그림이 품고 있는 여성, 인종, 장애, 소수자, 아동, 노인, 가난한 자들에 대한 다양한 양상의 차별과 혐오를 꺼내놓는다.

'마티스가 그랬던가. "그림은 책꽂이에 있는 책과 같다"고. 책이 책장에 꽂혀 있을 땐, 고작 몇 단어의 제목만 보일 뿐이다. 그림이 품고 있는 풍부한 세계를 알리기 위해, 앞으로도 책꽂이에서 그림을 꺼내어 독자들에게 직접 펼쳐 주는 '친절한 손'으로 살고 싶다. (작가 소개 중에서)'


표지의 그림은 게르다 베게너의 1928년 작 <하트의 여왕>이다. 그림 속의 모델은 게르다의 남편인 풍경화가 에이나르 베게너다. 게르다는 약속을 깨뜨린 모델 대신 남편에게 포즈를 취해달라고 부탁했다. 스타킹과 높은 구두를 신는 순간, 남편 에이나르는 릴리(여성성)의 존재를 각성했다. 이후 에이나르는 아내 게르다의 동의하에 릴리 엘베(여성)로 살기로 한다.

'그럼에도 릴리는 주눅 들지 않았다. '정상적으로 살라'는 시대의 폭력에 맞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과감하게 드러냈다. 〈하트의 여왕> 속 릴리는 '나의 본 모습으로 사는 것이 바로 정상성'이라고 온몸으로 말하는 듯하다. (p. 69)'

릴리는 주류가 선호하지 않는 정체성의 표현을 자제하는 행동 즉 '커버링 Covering'에 맞서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좇아 살았다.


피터르 얀선스 엘링가의 <네덜란드의 집의 내부>에는 청소하는 하녀가 나온다.
빅토리아 여왕 시절, 그림에 등장하는 하녀와 같은 해나 컬웍이 있었다. 중산층 변호사 아서 먼비를 만났고 연인이 되었다. 겉보기에는 집주인과 하녀의 관계 같았지만 둘은 깊은 유대관계를 지속하다가 19년이 지난 후 비밀 결혼을 했다. 일찍이 먼비가 청혼했지만 컬웍이 거절했다. 대신 여는 하녀처럼 바닥을 쓸고, 음식을 만들고 빨래를 하며 지냈다. 왜 그랬을까?

열악한 처우였지만 하녀는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았지만, 아내가 한 하녀와 똑같은 가사노동에는 어떤 대가도 없었기 때문이다. 저평가된 노동, 아이 돌봄과 같은 집안일은 여성이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외에도 대리모, 자궁 혐오, 가부장제, 모성애와 어린이다움 강요, 전염병으로부터 비롯된 혐오, 노화를 죄악시하는 것, 소수민족 폭력, 도시개발로 내동이쳐지는 빈민, 동물권, 예술가 후원과 자선을 빙자한 부자들의 위선, 예술의 힘을 악용하는 권력자들, 환경오염 문제까지 그림에서 여러 가지를 드러내놓으며 고발한다.

'이 책은 의도치 않게 시대를 증언한다. 화가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했겠지만, 필연적으로 자신이 살던 시대의 공기를 작품 안에 담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p. 8)'


'자동차 사고로 부상당한 남자아이가 있다. 아이 아버지가 크게 다친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고, 아이는 곧장 수술실로 보내졌다. 그런데 수술실에 들어온 의사가 아이를 보더니 이렇게 말한다. "난 이 아이를 수술할 수 없습니다. 얘는 내 아들입니다." (p. 129)'

어떻게 된 거지?
하며 잠시 혼란스러워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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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를 남자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문직 종사자는 남성일 거란 생각, 노동시장 내 성차별을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다는 증거다.

남들에게만 손가락질 할 일이 아니다. 나도 모르게 차별과 혐오를 지니고, 일상에서 나도 모르게 차별과 혐오를 행사하고 있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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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아트 컬렉팅 - 내 삶에 예술을 들이는 법
이소영 지음 / 카시오페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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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등이 실제본인 책을 받아들어 펼쳤다. 180도로 깔끔하게 펼쳐진다. 작품 사진이 많아 저자의 요청으로 요즘 보기 드문 누드 제본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세심한 배려가 듬뿍 담긴 소장각의 책이다.

책의 부제처럼 내 삶에 예술을 들이고 싶다면? 이소영의 <처음 만나는 아트 컬렉팅>을 펼쳐 읽으면 된다. 미술을 친근하고 쉬운 글로 소개하는 아트 메신저 이소영은 200여 점의 미술품을 소장한 15년 차 컬렉터다. 15년간 쌓은 경험과 노하우, 아트 컬렉팅의 모든 것을 현실적이고 실제적으로 조언한다.


나도 아트 컬렉팅을 시작할 수 있을까? 초보 컬렉터로서 입문에 앞서 궁금해할 만한 질문의 답을 STEP 1에 모아놓았다. 아트 컬렉팅이란 무엇인지, 재테크와 무엇이 다른지, 그림의 장르별 설명과 초보 컬렉터는 어떤 장르의 그림이 좋은지 등등...

'아트 컬렉팅'은 그림을 사고 수집하는 것이다. (...) 사는 것에서 나아가 그림을 잘 보관하고 수집까지 해야 진정한 '아트 컬렉터'다. 신기한 것은 내가 아트 컬렉팅에 관해 믿는 몇 가지 속설이 있는데, 바로 '미술품을 한 점도 안 사본 사람은 있어도, 한 점만 사본 사람은 없다'라는 말이다. 그림을 사는 것은 시작하는 것이 어렵지 한번 시작하면 계속하게 된다. 그래서 아트 컬렉팅, '미술품 수집'이라는 단어가 생긴 것이다. (p. 41)'

STEP 2에서는 갤러리, 미술관, 아트 페어, 경매 등 미술시장을 파헤치고, STEP 3에서는 취향을 찾는 방법과 미술 작품을 깊게 감상하는 즉, 안목을 기르는 법을, 마지막으로 STEP 4에서는 지속적인 아트 컬렉팅을 위한 컬렉션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과 보관, 미술품 대여 등 심지어 작품이 파손됐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까지 세심히 알려준다.

작품 감상부터 소장까지 쉽고 알차게 설명한 초보 컬렉터에게 바이블인 책이다.


재테크 욕심에 책을 집어 들었지만 읽고 나서 좀 머쓱해졌다.
'그러나 예술에 대한 수익은 '물건 자체의 본질적인 즐거움' 또한 포함된다. 아트 컬렉팅의 투자 수익에 대해 말해야 한다면 작품 자체의 물리적 가치가 오르는 것과 그것을 소장하고, 보고, 향유하는 소유권의 즐거움까지 합쳐서 생각해야 옳다. (p. 14)'

저자의 소장품 중 영국 작가 제이슨 마틴의 작품 <Aa yet untitled>에 담긴 추억을 소개한다. 작품을 보는 순간 한눈에 매료되었지만 5000만 원이 넘는 작품가에 고민하던 중 남편이 예물이나 혼수용 가전제품 대신 작품을 사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내가 만약 결혼 준비에 돈을 더 썼더라면 지금처럼 부부가 함께 그림 앞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대화를 나누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소장한 미술품은 작품을 샀을 때의 스토리가 함께 저장되어 컬렉터의 삶에 꾸준히 아름다운 대화와 추억을 선사한다. (p. 75)'

머쓱해진 이유는 아트 컬렉팅을 재테크 수단보다는 그림을 소장하여 향유하고 덤으로 추억을 즐기는 대상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유튜브 <알릴레오북스>에 유홍준 교수가 출연해 자신의 저서 <안목 眼目> 속에 등장하는 이병직, 박병래, 손재형 컬렉터의 스토리를 소개했다. 일제강점기에 손재형이 일본으로 후지츠카를 찾아가 세한도를 찾아온 이야기는 그림 속에서 하나의 인생을 보는 듯했다. 유홍준 교수는 안목에 대해 이렇게 덧붙였다.
'예술을 보는 안목은 높아야 하고, 역사를 보는 안목은 깊어야 하고, 현실 정치, 경제, 사회를 보는 안목은 넓어야 하고, 미래를 보는 안목은 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 이소영은 이렇게 말한다. '그림을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보게 되고 볼 줄 알면 소장하게 된다'라고. 안목이 높아지면 소장하게 된다. 자기감정을 속이지 않고 보다 보면...
'일단 전시를 많이 보세요. 보는 만큼 안목이 성장합니다. (p. 263)'


이 책에도 소개됐지만 지난 9월 2일(금)부터 닷새 동안 코엑스에서 국내 아트 페어 키아프(Kiaf)와 공동으로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Frieze Seoul)이 열렸다. 이 행사는 5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지속될 예정이다.

'강의에서 나는 "한 작가의 작품을 사는 것은 그 작가가 세상을 보는 시선에 공감하는 일이다"라고 자주 이야기하는데 (p. 133)'

아트 컬렉팅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재테크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을 몰라도 살아가는데 별지장은 없다. 하지만 안목을 높여 작가의 시선에 공감하며 풍성한 감정을 느끼면서 사는 인생이 더 낫지 않을까? 앞으로 4년 동안 영국에 가지 않고도 아트페어 프리즈에 갈 기회도 생겼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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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락의 아내
토레 렌베르그 지음, 손화수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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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 사이로 피가 흘렀다. 이 하나를 손바닥 위에 툭 내 뱉었다. 하루 종일 세차게 내리치던 비는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그쳤다. (p. 9, 첫 문장)'

노르웨이 문학의 거장 토렌 렌베르그의 소설 <톨락의 아내>는 악성종양으로 죽음을 앞둔 톨락이 아내 잉에보르그를 그리워하는 추억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톨락은 아들 얀 비다르와 딸 힐레비를 기다리고 있다. 21년 전, 아내 실종 사건, 그 의문의 진실은 아이들에게 고백하려고 한다.


'나는 톨락. 잉에보르그의 남편이다. 나는 과거에 속한 사람.
여기는 내 자리이며,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하고 싶지 않다. (p. 10)'
목재소를 운영하는 톨락은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는 과거에 얽매어 살아가는 사람이다. 침묵에 익숙하고 성격이 거칠었다. 많은 이들도 그를 산 채로 살갗을 벗겨내 산 채로 불속에 던져버리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사랑하는 아내 잉에보르그가 있다.

아내 잉에보르그.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녀를 좋아했다. 항상 밝았으며, 호기심이 많았고 주변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했다. 목재소에서 일하고 있던 톨락에게 그녀가 먼저 다가왔고 결혼했다.

'곧 그들이 올 것이다. 힐레비와 얀 비다르.
불같은 내 딸과, 느긋하지만 집요한 내 아들. (p. 19)'
톨락은 아이에게 좋은 아빠가 아니었다. 아이들은 항상 잉에보르그가 보살폈다.

톨락에게는 힐레비와 얀 비다르보다 언제나 입양한 아들 오도가 우선이었고 사랑으로 보살펴야 하는 대상이었다. 오도는 성인이 되어도 여전히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는 그런 아이다.


소설 내내 톨락의 시선으로 톨락의 독백이 이어진다. 소설의 실제 시공간은 어느 날 밤, 톨락의 집뿐이다. 독백은 짧은 문장으로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자신과의 화해를 위한 갈등이다.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데는 무척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사람들은 결국 스스로와 화해하기 마련이다.
살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내가 과거에 행했던 모든 일과 과거에 보았던 모든 것과 과거에 만났던 모든 사람들이 차례차례 눈앞에 스친다. 하나도 빠짐없이. 좋든 싫든. 바로 그때, 우리는 스스로와 화해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p. 55)'


아이들도 성장하여 떠나고 아내가 사라진 후 세상과 등지고 사는 톨락의 곁에 남은 건 오도뿐이다. 톨락의 아내가 실종된 사건의 발단도 오도로부터 시작됐다. 어느 날 톨락을 찾아온 오세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톨락의 자식이다. 오도에게서 톨락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래서 오도를 건드리는 사람은 누구도 용서할 수 없다.

'오도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자기만의 눈으로 바라보고 이해한다. (p. 206)'
집 앞 들판에 아내 잉에보르그를 묻은 것도 오도와 함께였다.

아내 잉에보르그는 오도를 친절하게 대하고 정성을 다했지만, 언젠가부터 지적 장애아인 오도를 보살피는 일에 아내는 지쳤다. 아내는 톨락의 시선을 피했고 밝고 긍정적이던 잉에보르그의 가슴속에 분노와 울분이 쌓이기 시작했다. 아내의 그런 모습에 톨락은 슬픔과 절망에 빠졌고 급기야 톨락 마음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주체할 수 없는 분노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내를 주먹을 때려 숨지게 했다.

'나는 살인자가 아니다. 사랑으로 가득 찬 남자일 뿐. (p. 115)'
한순간 참지 못했던 분노로 평생 아내를 그리워하며 후회와 악몽의 삶을 살아간다.


톨락은 아내를 한없이 사랑했다. 그런 아내라 할지라도 자신의 모습을 가진 오도를 얼간이 취급하고 그를 쫓아내고 싶어 하는 것은 허용할 수 없었다. 오도에 대한 지나친 사랑은 톨락과 힐레비, 얀 비다르와의 관계도 악화시켰다. 상처가 됐고 그 상처는 아버지를 향한 원망으로 이어졌다. 한편으론 톨락은 아내를 그에게서 앗아 간 오도와 관련된 일 모두를 증오하기도 한다.

톨락은 딸 힐레비와 아들 얀 비다르에게 아내 실종 비밀을 알려주어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아이들에게 어머니의 다른 면 즉, 오도에게 불친절했던 모습을 알려주었을 때 아이들이 어머니에게 실망하는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똑같은 일이라도 과거와 현재의 눈으로 바라볼 때 서로 다르게 보일 수 있다고 스스로 설득하는 톨락, 그때는 지금과 같이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자신에게 고백한다.

죽음의 문턱에서 아이들에게 진실을 고백하는,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선택을 했지만, 톨락 그는 죽음 맞이할 때까지도 여전히 이 세상에 속해 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내 이름은 톨락.
나는 과거에 속한 사람이다.
나는 이 세상 어느 곳과도 걸맞지 않는다. (p. 260)'


짧은 호흡으로 일관된 문장과 단락은 우리를 몰입으로 이끈다. 결과를 예상하면서도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고집과 단절로 점철된 인생의 톨락, 그의 독백 속의 세밀한 심리 변화 묘사, 이 모두가 이 소설의 매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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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경제학자들 - 노벨 경제학자들에게 배우는 최소한의 생존 경제학
조원경 지음 / 페이지2(page2)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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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경제 전문가인 저자는 '경제학자들의 경제학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26인을 식탁 위로 불러냈다.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가 어떻게 작동하고, 우리 삶 속에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말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시각을 통해 그들의 주장이 오늘날 우리 경제와 삶에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다각도로 살펴볼 계획이다. 세계의 석학들이 케인즈가 꿈꾸었던 세상과 현실의 괴리를 좁혀 줄 것이란 일말의 희망을 갖고, 각박해진 우리의 삶에 위로가 되는 경제적 혜안을 독자들과 함께 고민하고 싶다. (p. 7)'

저자는 경제를 어렵게 느끼는 우리들에게 26인의 시각을 매우 흥미롭고 쉽게 설명한다. 다섯 개의 장, 다섯 개의 주제에서 각 주제마다 경제학자 한 명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면...

1장은 '삶과 경제의 영혼' 대한 이야기다. 신고전파의 대부인 폴 새뮤얼슨은 소유와 욕망이라는 두 가지 요소로 행복을 정의하며, 욕망에서 비롯되는 탐욕을 경계하라고 말한다.

2장은 전통 경제학 관점에서 '우리가 직면한 도전'을 다룬다. 코로나19 이후 우리는 인플레이션이라는 도전에 직면해있다. 미국 연준은 금리 인상이란 카드를 해결책으로 꺼내들었다. 대표적인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통화량을 늘리는 통화정책으로 강조했다. 그의 의견이 인플레이션 시대에 살아남는 방법이 될 수 있을까?

3장은 주제는 '경제와 윤리'다.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인간의 비합리성과 이를 바탕으로 한 의사결정 성향 즉, '손실 회피 성향'과 '민감성 반응', '상이한 준거 기준'을 들어 슬기로운 경제생활을 이야기한다.

4장은 '국가 만들기'다. 신케인즈주의자인 폴 크루그먼은 성공한 기업인이 국가도 잘 경영할 수 있을까의 문제에 기업체를 운영하는 것과 거시경제 정책을 만드는 것은 너무 다르다는 이유를 들어 'No'라고 답한다.

5장은 '기술과 혁신'을 주제로 다룬다. 여성 최초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엘리너 오스트롬은 공유지 딜레마를 공동체 자치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을 요즘 핫한 이슈인 인터넷 등등의 '공유경제' 문제로 확장해 해결책을 찾아본다.


자본주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경제는 삶과 너무 밀접하다. 그래서 더욱이 어렵다는 핑계로 경제를 외면할 수 없다. 고정된 수입으로 살아가는 우리네들에게 인플레이션을 달갑지 않다. 팬데믹으로 인플레이션이 심화된 시대를 살아내야만 하는 우리에게 26인의 이야기는 더없이 값지기만 했다. 삶과 경제를 고민하는 우리에게 마치 경제를 쉽게 가르치듯 교양과목처럼 설명하는 책 <식탁 위의 경제학자들>이었다.

'이 책에 실린 26편의 경제 이야기를 통해 세계경제에 대한 임시처방들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이해했다. 우리의 조급한 마음 자세가 석학들의 올바른 목소리를 왜곡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식탁으로 대별되는 대중의 삶을 두고 경제학자들은 한목소리로 합창하고 있다. 대중의, 대중에 의한, 대중을 위한 '경세제민'의 본질로 돌아가라고. (p. 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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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부터 일만 광년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지음, 신해경 옮김 / 엘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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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나이가 61세 되었을 때 비로소 여성 작가임이 밝혀졌다. 본명은 앨리스 브래들린 샐던. 51세에 SF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화가, 예술 비평가라는 이력 외에 군 정보원, CIA 정보원 등의 직업을 가졌던 팁트리는 여성작가라고 주목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

팁트리 삶의 마감이 안타깝다. 의붓딸은 자살했고, 알츠하이머로 고생하던 남편이 죽음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남편을 총으로 쏘고 자살했다.


<집으로부터 일만 광년>은 열세 편이 담긴 팁트리의 단편집이다. 작가의 SF 세계관의 서사와 상상력이 어마어마하다.

(구원)
미래에도 누구를 위한 구원인지 모를 구원을 앞세워 선교사들이 먼저 온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난다. 종파 간의 전쟁도 벌어지고...
'"역사에서도 그래요?" 피바디 부인이 물었다.
"그렇지는 않죠. 확실히 옛날에는 아니었어요. 종파 간 분쟁에 걸려든 가난하고 미개한 이교도들은 그냥 고통받다가 끝났어요. 그건 그렇고, 우연히 십자군이 지나는 길에 있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됐는지, 읽어 본 사람 없어? 우린 그걸 놓치고 있었어. 지금껏" (p. 153, 154)'

(고통에 밝은)
'그는 고통의 방식들에 밝았다. 그래야 했다. 아무것도 못 느꼈으니까. (p. 159)'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로 개조되어 이용당하지만, 그래도 지구는 그리운 곳, 가고 싶은 곳이다.

(허드슨베이 담요로 가는 영원)
러브스토리는 SF 세계에서도 슬프다. 연인의 죽음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시간도약을 하는 롤리, 사랑하는 연인을 지키려는 마음은 가슴 아프다. 과거가 현재 상태에 영향을 주는 '이력현상'이 연인들의 사랑을 방해한다면?
'이미 역설들이 사회의 어딘가에 축적되고 있다고. 아마도 대체 시간선? 어쩌면 시간-독립적 이력현상? 물론 역설은 잘못됐다. 역설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역설이 일어난다면 - 누구에게 항의해야 할까? (p. 308, 309)'

(수영장이 비면 나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테라식 성간 계몽 운동을 핑계로 어린 소년이 낙후된 행성에 와 만행을 저지르며 조롱한다. 현실에서도 무수히 자행되는 행태들이다. 문명인들의 시각이 항상 옳다는 생각은 교만일 뿐이다.
'"자! 저는 지금껏 테라식 성간 계몽 운동의 보잘것없는 연결고리로서 여러분께 봉사해왔어요. 제가 여러분의 고유한 문화 현장의 속도를 너무 가속화하지 않았기를 바랄 뿐입니다. (p. 334)'

(세일즈맨의 탄생)
지구인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색, 음악, 향이 다른 행성엔 치명적이다. 행성 간의 화물을 전송하는 세일즈맨의 고민이다. 하긴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유럽인들이 가져온 세균과 바이러스에 면역력이 없어 목숨을 잃었으니... 돈만 된다면 위험에 처하든 말든 무엇이든지 팔아 제치는 자들은 미래에도 여전할 것인가?


열세 편에 걸친 팁트리의 상상력은 역사, 사랑, 철학 등 모든 주제를 망라한다. 현대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계몽을 앞세워 폭력을 일삼는 제국주의적 사고와 부의 축적과 이익을 위해서는 전혀 배려하지 않은 몰염치, 욕심을 비판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미래에도 계속될지도 모를 소수인 약자들, 젠더 문제도 그의 상상 속에 소재로 빠지지 않았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일만 광년이란 범위로 미레 세계는 확장될 것이다. 더 멀리 가면 갈수록 그곳에서의 외로움은 변치 않는 감성으로 남아, 집을 그리워하며 결국 귀환을 꿈꾸고 마는 미래의 인류다.


SF 소설의 재미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스토리를 제대로 쫓아가며 읽어야 그 맛을 제대로 느낀다. 하지만 팁트리가 구축한 신나고, 통쾌하고, 엉뚱하기 그지없는 SF 세계관은 나로서는 도저히 쫓아가기가 버겁다. 팁트리의 상상(특히 '테라여, 그대를 따르리라, 우리의 방식으로'에 등장하는 수많은 우주 생명체들)을 이미지로 그리기가 힘겨웠다. 그래서 다른 이들이 보다 재미를 덜 느꼈다는 생각에 미련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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