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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읽는 세계사 - 하트♥의 기원부터 우주로 띄운 러브 레터까지 1만 년 역사에 새겨진 기묘한 사랑의 흔적들 ㅣ 테마로 읽는 역사 10
에드워드 브룩 히칭 지음, 신솔잎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9월
평점 :
인류의 가장 오래된 입맞춤인 기원전 9000년경 아인 샤크리 연인상부터 남편과 아내의 결투 풍습, 하트의 기원, 데이팅 앱이라는 공개 구혼에 이르기까지, 사랑에 관한 풍성한 이야기의 구상은 곁땀에 젖은 사과 조각에 얽힌 풍습에서 비롯됐다.
19세기 오스트리아 지방에 살던 여성들은 겨드랑이 사이에 사과 조각을 끼운 채 춤을 춘 다음, 땀에 흠뻑 젖은 사과 조각을 자신에게 결혼을 청한 남자에게 내민다. 호감이 있다면 남자는 기뻐하며 그 사과 조각을 먹는다. 사랑 이야기,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은 험난함을 예고한다.
사랑이란? 사랑은 어떻게 해야 이룰 수 있을까? 이제까지 인류는 어떤 사랑을 해왔을까? 기상천외한 역사책을 주로 쓰는 에드워드 브륵 히칭의 <사랑으로 읽는 세계사>는 50가지 유물을 살펴보며 그 속에 담긴 사랑의 사연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2, 3세기경 <카마수트라>에서 이 책을 쓴 인도 철학자 바트야야나는 돈이나 제물을 위해 남성을 이용하는 데 불편해하지 말라고 여성에게 조언한다. 쓸모없는 남성을 떼어놓는 방법으로 "입술을 비틀며 비웃음을 보이고" "쿵쿵대며 걷고" "무시하는" 등의 행위도 소개해 놓았다.
17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까지 영국에서 불행한 부부들은 아내를 내다 파는 괴이한 관습을 택할 수 있었다. 아내를 사람들 앞에 세워두고 장점을 소개하며 공개 경매했다. 뭐 이런 일이 있나 싶지만, 웃음을 짓게 하는 해피엔딩 반전이 있다.
'괴이하게 느껴지지만 당시 여러 자료를 보면 이 관행은 실로 부부 모두에게 이롭게 작용했다. '낙찰자'는 보통 아내의 연인일 때가 많았기에 다들 자유를 얻고 자신의 행복을 찾아 떠나는 셈이었다. ( p. 138)'
에도 막부 시설엔 춘화가 인기 절정이었다. 정부는 춘화를 금지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춘화의 인기를 사그라들게 만든 건 에로틱한 사진술의 등장이었다. 결혼을 반대하면 둘은 더 불타오르지 않던가. 다른 연인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게 더 현명할지도.
사랑하는 이의 심장, 치아 그리고 머리카락을 장신구에 넣어 가지고 다니기도 했고, 부채로 은밀한 감정을 전달하기도 했다. 사랑은 밀어로 속살일 때 에로틱하다.
'여성이 손가락으로 부채 끝을 만지면 '당신과 대화하고 싶다'는 뜻이고, 부채를 빙그르르 돌리면 '우리를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는 경고, 한쪽 뺨에 가져다 대면 '사랑한다', 오른손에 부채를 쥐고 얼굴 앞에 두면 '나를 따라오라'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p. 281)'
기괴하고 충격적인 곁땀 사과 조각 이야기로 러브스토리를 시작했지만, 이 책의 마지막 스토리를 감동이다. 지구를 떠나 태양계를 지나가는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은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과 아내 앤 드루얀이다. 둘은 우주 탐사선 보이저 1호가 싣고 갈 골든 레코드에 담을 음악에 대해서 한 시간 동안 통화했다. 통화가 끝날 즈음에 드루얀은 칼 세이건에게 청혼했다.
'두 사람이 통화하고 이틀 후, 여전히 흥분에 들떠 있던 드루얀은 뉴욕의 벨뷰 병원에서 뇌전도를 녹음했다. "사랑에 푹 빠진 스물일곱 살 여성으로서 제 감정이 그 레코드에 담겨 있어요. 영원한 기록이죠. 적어도 향후 1억 년 동안은요. 제게 보이저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지울 만큼 대단히 강렬한 기쁨을 주는 존재예요." (p. 318)'
내 사랑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그 사랑을 그리워하고 싶어서, 당신들이 한 사랑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한다. 물론 그 사랑이 궁금하기도 하다. 사랑, 참 어렵다. 세월이 지나도 사랑, 잘 모르겠다. 그래서 사랑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은 멈출 수가 없다. 사랑을 상상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멈출 수 없다.
'볼테르가 말했듯, "사랑은 자연이 제공하고, 상상력이 수를 놓는 캔버스"다. 이 책은 그 예술의 캔버스 위에 수놓인 인류사의 가장 빛나는 장면들을 차분하게 따라간다. (p. 6, 추천사, 정우철 도슨트)'
1만 년 역사에 수놓은 사랑 이야기, 1만 년을 이어갈 것이다. 인간이 지구에서 사라져 우리의 사랑 이야기가 끝나더라도, 계속해서 우주탐사선에 실릴 사랑 이야기는 태양계를 넘어 끝없는 우주로, 항해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