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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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잘못이 없고 나에게도 없지만 세상과 소통할 때 비로소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자체가 부조리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내가 경험한 가장 부조리한 집단은 군대였다. 회사보다 더했다. 80년 초반에 군 생활은 지금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부조리가 심했다. 군 생활 일상이 부조리였다. 간부들은 쌀과 부식, 기름 등을 빼네 팔아먹었다. 명령 대부분은 이걸 내가 왜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들이었다.

졸병 때 작업 나가기 위해 타고 갈 트럭을 기다리며 서 있었더니 지나가던 선임이 니들 뭐 하냐며 차가 올 때까지 쪼그려뛰기를 시켰다. 사단장이 오는 길에 바큇자국이 있으면 안 된다고 해서 차가 지나갈 때마다 빗자루질을 했다. 사단장은 헬기 타고 왔다. 군대 부조리는 밤새 이야기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회사도 만만찮다. 승진하려면 실력보다는 줄을 잘 서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무사히 제대하려면, 회사에서 잘리지 않으려면 침묵하거나 부조리를 당연한 일상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부조리를 인정해야 한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 한 통을 받았다. '모친 사망. 내일 장례식. 삼가 애도함.' 그건 아무 의미가 없었다. 아마 어제였을 것이다. (p. 16, 첫 문장)'

<이방인>은 이 첫 문장 하나면 충분했다. 첫 문장에 소설 모두를 담았다.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른 후 평상시와 같은 일상을 보낸다. 이웃 레몽과 별장에 놀러 갔고 거기서 또 만난 아랍인을 총으로 죽인다. 이 사건으로 뫼르소는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는다.


카뮈는 <이방인>을 이렇게 요약했다.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사형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 나는 단지 이 책의 주인공이 그 손쉬운 일을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을 선고받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p. 5 작가 서문)'

타는듯한 태양, 이마가 지근거렸다. 뜨거움에 서 있을 수 없었다. 바다는 무겁고 뜨거운 숨결을 실어 왔다. 불의 비가 쏟아지는듯해 긴장했고 손으로 권총을 꽉 움켜잡았다. 방아쇠가 당겨졌다. 우발적 살인이었다.

뫼르소는 묻는 말에 솔직하게 자기감정을 드러냈다. 어머니의 죽음에 슬픔을 느끼지 않은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맞추지 않았을 뿐이다.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들이 볼 때 뫼르소는 그들과 동떨어진 사회 부적응자다. 어머니가 죽었는데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살인을 했는데도 반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재판이란 사회적 시선은 뫼르소의 살인 행위보다 사람을 평가했다. 그 결과 우발적 살인은 계획적 살인으로 바뀐다.

거짓말을 거부하고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면 낯선 사람 '이방인'이 되는 사회다. 그 사회는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한다.

'그는 실재하는 것을 말하고, 그의 느낌을 숨기기를 거부함으로써 즉각적으로 사회는 위협을 느끼는 것이다. (p. 6 작가 서문)'


어차피 죽는 데 왜 살까? 죽음은 삶의 의미를 없애버린다. 어떤 가치가 나은 것이고 못한 것인지 죽음 앞에서는 그 기준마저 의미 없다. 이런 맥락에서 죽음만큼 부조리한 건 없다. 부조리한 죽음마저 애써 모른 체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종교에 기대어 다음 생의 구원을 소망하며 살 텐가.

'잠시 후에, 그녀는 내게 자기를 사랑하는지를 물었다. 나는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슬퍼 보였다. (pp. 56, 57)'

뫼르소의 삶은 모호하고 불확실했다.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음을 바로 앞에서 마주했을 때 뫼르소는 죽음을 피하지도 종교에 의지하지 않는다. 죽음을 받아들인다.

뫼르소가 이끌어 온 삶 내내 부조리했다. '그것이 내게 뭐가 문제인가? 다른 이의 죽음, 어머니의 사랑, 그의 하느님이 내게 문제라고 여긴 것, 우리가 선택한 삶, 우리가 고른 운명, 단지 하나의 운명은 내 스스로 고르는 것이기에, (p. 157)'

모두 죽는다.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을 수도 있다. 억울하게 어머니 장례식장에서 울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돼서 말이다. 뭐가 문제란 말인가.


삶뿐만 아니라 죽음마저 부조리한 세상,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바위를 언덕 꼭대기까지 올려놓은들 죽음처럼 어차피 바위는 굴러떨어질 텐데. 살아가는 것이, 바위를 밀어 올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자살해야 하나? 바위 올리기를 그만둬야 하나? 신이 주신 삶인데? 신이 내린 형벌인데?

뫼르소처럼 부조리한 삶과 죽음을 똑바로 쳐다보며 나를 가둬둔 것들에서 벗어나 보란 듯이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야 한다. 바위를 언덕 꼭대기까지 밀어 올리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죽지만, 굴러떨어지지만. 그래도 그래도 그런 삶에서 의미를 찾아내 반항해야 한다.

'"그는 거짓말을 거부한다… 그래서 어떤 영웅적 태도도 취하지 않고, 진실을 위해 죽음을 받아들이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서 <이방인>을 읽으면 크게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카뮈가 한 말이다. (p. 11, 역자의 말)'


그 뭣 같은 군 생활에서도 의미를 찾으려 했다. 그렇지 않았으면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거나 탈영했을지도 모른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의미가 시시때때로 바뀌긴 했지만, 그렇더라도 어떤 의미를 찾지 못했다면 정년퇴직은 꿈도 못 꿨을 것이다. 내가 찾은 의미가 뭔지 모르겠지만 시시할 것 같다고?

<이방인>을 읽은 나의 대답은 '시시한들... 뭐가 문제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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