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생각법 -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시대의 물음표 사용법
정철 지음, 김파카 그림 / 블랙피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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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픈AI CEO 샘 알트먼이 직접 챗GPT의 새로운 모델 'GPT-5'를 공개했다. 프랑스어를 배울 수 있는 웹 프로그램 개발을 명령하자 300줄 이상의 코드를 2분여 만에 작성하는 놀라운 수준의 성능을 보여줬다. 할루시네이션 오류도 줄였다며 박사급 전문가를 언제든 활용할 수 있게 됐다고 샘 알트먼은 말했다.


절반은 카피라이터 절반은 작가 정철의 '물음표 사용법'에 관한 '질문 에세이' <사람의 생각법>은 아래 글귀로 시작한다.

'누가 물었다.
문명이 나를 침범하는 걸 어느 선까지 용인해야 할까요?
기억력과 계산력은 문명에게 양보한다.
상상력은 양보하지 않는다.'
박사급 전문가 'GPT-5'에게 상상력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

저자는 카피라이터 또는 작가가 뭐 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고 한다. 그의 대답은 '질문하는 사람입니다.'이다. 또한 AI가 우리 인간을 대체하는 시대가 성큼성큼 다가서고 있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냐는 질문에도 같은 맥락의 대답을 한다. '옳은 질문이 아닌 다른 질문'을 하라.

질문은 생각을 자극한다. 상상력을 깨운다. 그런가 하면 AI가 내놓는 답을 받아먹는 것에 익숙해지면 질문을 건너뛴다. 생각을 생략한다.
'질문과 사유가 안겨 주는 통찰의 순간과도 영영 멀어지게 된다. (p. 14)'


인상 깊었던,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던 정철의 '다른 질문'을 살펴보면... 무릎을 탁 치게 하는, AI가 아무리 똑똑하다 한들 전혀 생각해낼 수 없는 대답을 '절반은 카피라이터 절반은 작가' 정철이 내놓는다.

상상력 백화점을 순례하며 떠오른 질문, "'같다'의 동의어는?"
같은 표정은 무표정과 같은 말이다. 그러므로 내 표정이 남들과 같다면, 도시의 풍경이 다른 도시와 같다면, 같다면... '같다는 건 없다는 것. 내 표정이 없으면 내 존재도 없다. (p. 25)'

엉뚱한 질문, "1%와 99%는 어떻게 다를까?"
1%는 0%에 99%는 100%에 가깝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둘 다 100%도 0%도 아니다.
'둘 다 저지를 수 있는 확률이고, 저질러도 되는 확률이고, 저지르기를 무수히 시도한 확률이다. 우리 조상이 확률 99% 이상일 때만 일을 저질렀다면, 너와 나는 오늘도 팬티 하나 입고 정글에서 나무를 타고 있을 것이다. (p. 73)'

무허가 철학관에 가서 한 질문, "손금은 왜 손바닥에 붙어 있을까?"
'운명을 좌우한다는 손금이 요 손바닥에 붙어 있는 건, 내가 만지는 것이 내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이야. (p. 105)'

위험한 질문, "꼬리가 길면 누구에게 밟힐까?"
아무도 모르게 반칙을 저질렀다 해도 나는 안다. 꼬리가 길면 나에게 밟힌다. 들킬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초조하다. '동물은 꼬리가 꼬리지만 사람은 초조가 꼬리다. 초조가 길면 밟힌다. (p. 151)'

한여름 퇴근길에 생각난 질문, "지능이 영리할까 본능이 영리할까?"
지능은 숫자에 매달리지만 본능은 수치보다 감각을 믿는다. 비과학적인 느낌과 경험을 믿는 본능은 과학의 한계 정도는 우습게 뛰어넘는다.

고요한 질문, "가장 깊은 상처는 누가 줄까?"
바로 '나'다. 내게 신경을 가장 덜 쓴다. 하물며 내게는 용서나 이해를 구할 생각조차 안 한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고, 받은 상처를 모를뿐더러 내 깊은 곳에서 그 상처가 곪는 것도 '나'는 모른다.

비공인 선생님을 만나 한 질문, "죽는 날까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죽음, 나는 죽는다는 사실! '왜냐면, 우리가 하는 걱정 대부분은 내가 영원히 살 거라는 착각이 저지르는 걱정이기 때문입니다. (p. 252)'

'절반은 카피라이터 절반은 작가' 정철의 마지막 질문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하라는 샘플이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 주인공 히라야마가 출근길에 카세트테이프로 듣는 노래는?"
이 질문은 낯선 질문이다. 날선 질문, 추억이 하는 질문, 이야기가 듣고 싶어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어떤 질문을 받고 싶은가. 그런 질문을 하고 있는가. 좋은 질문은 대답을 넘어 대화를 낳는다. (p. 259)'


주입식 교육을 받은 나의 학창 시절은 간혹 질문거리가 생각 나도 질문할 수 없는 근엄한 분위기였다. 그런 교육은 직장 상사에게 하는 질문은 권위에 맞서는 것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질문을 하지 않는다. 꼭 물어봐야 하는 상황에서도 아내가 물어보자고 졸라대도 절대 물어보지 않는다. 물어보는 걸 자존심과 연결 짓는다. 그리고 개고생한다.

무엇을 먹을 건지 질문하고 무얼 먹겠다고 대답해야 한다. 머리는 어떻게 자를 건지 질문받고, 결혼하자는 용기가 필요한 질문도 해야 하고. 질문이나 대답이 때론 인생의 전환점이 된다는 것도 안다. 인생 자체가 질문과 대답으로 채워진다는 걸 알면서도 질문하기를 주저한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AI 시대는 '당신은 뭐 하는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절반은 카피라이터 절반은 작가' 정철처럼 "질문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살아남는 시대다. '옳은 질문'을 생각하느라 질문하기를 주저할 틈이 없다. 남들과 '다른 질문'으로 삶을 꽉 채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AI에게 상상력을 빼앗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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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눈으로 본 근대 일본의 역사 - 메이지 유신부터 패전까지, 근대 일본의 도약과 몰락을 돌아보다
박훈 지음 / 어크로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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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이었다. 2002년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월드컵 개최하는 걸 보고, 두 나라가 친하고 역사적 관계도 좋고 공통점이 많은 것으로 오해했다는 외국인의 말을 유툽으로 들은 적이 있다. 그럴 수도 있겠다고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나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멀고도 가까운 일본, 아직도 두 나라는 관계 정립을 못했다. 일본만큼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생각, 일본놈이라 부르며 깔보는 태도, 이웃이긴 하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 일본에 대한 내 생각이다.

<위험한 일본책>을 읽은 지 2년 만에 다시 박훈 교수의 책을 읽었다. <한국인의 눈으로 본 근대 일본의 역사>, 부제에서 보듯이 '메이지 유신부터 패전까지, 근대 일본의 도약과 몰락'을 한국인 박훈 교수가 돌아보는 책이다.

<위험한 일본책>에서 저자는 내가 일본에 대해 가진 태도를 똑같이 일본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그렇더라도 우리 한국만큼은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본을 무시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장기적으로 우리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는 취지다.

당시 강제징용 제3자 변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동해의 일본해 표기, 독도 영유권 주장 등 우리 정부가 보여준 일본에 대한 태도가 워낙 굴욕적이어서 저자가 제시한 일본을 바라보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상당히 불편했다.

이 책에서도 저자는 일본에 대해 비슷한 관점을 유지한다. 19세기 구한말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가장 지리멸렬한 시기를 보낸 결과 식민지가 된 반면, 일본은 '죽음의 도약'이라 일컬을 정도로 역사상 기억에 남을 만한 대응을 해 근대화에 성공했다.

한국병합, 일본의 침략이라는 역사를 겪었다는 이유로 우리는 항상 일본을 악마화한다. 이런 맹목적인 적개심은 속은 후련할지 몰라도 청이나 러시아 세력에 대한 비판을 무디게 할 뿐만 아니라 구한말 무능한 위정자를 감싸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 근대사의 좌절을 모두 일본 탓으로 돌리는 건 수정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20세기 일본이란 도대체 무엇이었나? 이는 한국인에게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근현대 한국은 그들을 대상으로 배우고 저항하며, 당하고 이겨내며 만들어진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20세기 일본사는 낯선 대상이다. 밉고 불쾌해서 공부를 회피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선진국이 된 마당에 한국 시민도 20세기 일본을 냉정하게 직시할 때가 되었다. 일본을 바라보는 한국 시민의 시각이야말로 한국 사회가 어디까지 성숙했는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p. 235)'

민주화 과정에서 일본은 여러 제도의 타당성을 두고 뜨거운 논의가 이루어졌지만,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사색 없이 갑자기 얻은 것이니만큼 일본의 '자유민권 운동'을 되돌아보자는 저자의 주장도 의미심장하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지리상 이웃한 일본과 계속 냉랭한 관계를 가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맥락에서 일본을 제대로 바라보자는 주장과 근대 일본 역사를 잣대로 삼아 한국의 미래를 성찰해 보자는 박훈 교수의 통찰은 설득력 있다.

우리 아이들이 더 이상 일본을 두려워하지 않듯이 일본 청년들도 한국을 더 이상 멸시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러니 한국과 일본의 미래 세대는 박훈 교수의 주장대로 서로 상대방의 역사를 보며 스스로 성찰하는 훌륭한 동반자가 되지 않을까?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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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땀 소설향 앤솔러지 1
김화진 외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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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시절이었나? 향香자의 음과 훈을 묻는 시험 문제가 있었다. 나를 비롯한 제법 많은 아이들이 '냄새 향'이라고 적었다. 비슷하다고 생각해 맞는 답으로 해달라고 선생님께 사정했지만 단호하게 안된다고 했다. "냄새가 향기이면 똥 냄새도 향기냐?"


작가정신의 소설향 앤솔러지 시리즈 첫 번째 작품 <초록 땀>. '색'과 '향'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김화진, 문진영, 이서수, 공현진, 김희선, 김사과 여섯 작가의 소설과 에세이를 담은 책이다.

색이라는 주제...

우리는 무지개를 7가지 색깔로 본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문화권별로 6가지 또는 5가지 색깔로 무지개를 보기도 한다. 무지개 색깔이 6가지, 5가지라니, 우리가 볼 때 그런 인식은 어색해 이상하기까지 하다.

김화진의 <초록 땀>에서 '나'는 숨 쉴 때마다 혀를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른다. '숨 문제'가 있는 '나'는 사무보조 아르바이트 보영과 친해지면서 보영이 '초록 땀'을 흘린다는 비밀을 알게 된다. 보영은 초록 땀이 흐를 때마다 남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재빨리 손수건으로 닦아 숨긴다. 그런가 하면 초록 땀이 소원을 들어준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초록 땀을 유리병에 담아 판다. 보영이 남들이 이상하게 바라보는 '땀 문제'에 갇혀있지 않기로 마음먹자 '초록 땀'은 소원을 들어주는 '행운'이 된다.

이서수의 <빛과 빗금>에서 색은 정치를 상징하며 사람들 사이에 빗금을 그어놓는다. 하지만 색은 빛이 있어야만 드러난다. 빛이 없다면 색을 식별하고 분류할 없음을 사람들은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색보다 빛을 먼저 보라고."
승주가 도통 의미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빛이 뭔데?"
빛은… 빛은 단순한 밝음이 아니야. 입자나 파동, 광선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식상하지만 사랑과 온기라 표현할 수 있고, 식상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노려보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온기라고 말할 수도 있어. (p. 128, <빛과 빗금>)'

김희선의 <뮤른을 찾아서>에서는 색을 식별하는 빛마저 흡수해버리는 블랙이 있다. 블랙의 세계에서 할 일은 내 기억 속에 존재했을지도 모를 사라진 색깔, 흡수되지 않는 색깔, 뮤른을 찾는 것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항상 반사되는 빛, 즉 흡수되지 않는 빛이다. 거부당한 색을 보고 '사과는 붉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사과는 빨강을 제외한 모든 색이다. (다이앤 애커먼, <감각의 박물학>, 작가정신, p. 435)'

향이라는 주제...

'냄새에 대한 감각은 지극히 정확할 수 있지만, 어떤 냄새를 맡아본 적 없는 사람에게 그것을 설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 냄새는 침묵의 감각이고, 냄새에는 언어가 없다. (...) 우리는 숨 쉴 때마다 냄새 맡는다. 눈을 가리면 보이지 않고 귀를 막으면 들리지 않지만, 코를 막고 더 이상 냄새를 맡지 않는다면 우리는 죽을 것이다. (다이앤 애커먼, <감각의 박물학>, 작가정신, p. 19)'

"냄새가 선을 넘지"
영화 <기생충>에서 냄새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구분했다면 문진영의 <나쁜 여행>에서 냄새는 너와 나의 '구별 짓기'를 한다. 냄새로 누구는 밀어내고 또 다른 냄새를 가지고 내 품으로 뛰어드는 누군가는 끌어안는다.

공현진의 <이사>에서 정체 모르는 악취는 불안을 일으킨다. 맡아본 적이 없는 냄새이기에 냄새를 알 수 없어 불안은 공포가 된다. 드디어 언젠가 맡아본 냄새라는 걸 알아낸 해오는 그 냄새의 정체를 알지만 우진은 맡아본 적이 없는 냄새라 여전히 그 냄새를 알 수가 없다.
'우진은 해오와 같은 냄새 속에 있고 싶었다. 하지만 있지도 않은 냄새 속에 함께 있을 수는 없었다. (p. 170, <이사>)'

김사과의 <전기도시에서는 홍차향이 난다>에서는 미래도시에 가득한 향을 말한다. 홍차향만 남고 모든 향이 사라진다면, 낙엽의 달고 씁쓸한 향, 냉기 서린 죽음의 냄새 등등... 하나씩 사라진다는 건 사랑하는 연인도 이웃도 사라지는 것을 뜻한다. 존재했다는 기억조차 사라질지 모르기에 '어떤 것은 사라지면 안 된다. 아니 사라질 수가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p. 250, <전기도시에서는 홍차향이 난다>)'


똥 냄새도 향기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냄새 향'을 정답 처리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누구에게는 무지개 색깔이 6가지, 5가지다. 누군가는 아는 냄새를 누군가는 모른다. 각각 추억에 따라 냄새도 색깔도 제각각이기 때문에 그렇다.

"무슨 냄새가 난다고 그래?"
후각이 아내보다 덜 예민한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이런 내 후각이 어떤 때 유리하고 어떤 때는 불리하다. 하지만 어떤 때 유리했는지 어떤 때 불리했는지 나는 모른다. 경험이 없어 인식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기억에 남아있지도 않다.

어떤 색깔을 좋아하나. 보라색? 어떤 사람은 그 색깔을 싫어한다.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내가 좋아하는 색깔이니 보라색이 내게 장애물로 작용할리 없다. 그저 언제나 내겐 행운의 색깔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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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석산의 서양 철학사 - 더 크고 온전한 지혜를 향한 철학의 모든 길
탁석산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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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철학은 언제나 넘사벽이다. 이번만큼은 철학에 입문하도록 쉽게 가이드 해 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매일 공부하는 철학자 탁석산의 <탁석산의 서양 철학사>에 기대를 걸었다. 철학은 역시 어려웠다.

철학은 사유의 결과이다. 그 사유하기가 낯설다면 철학은 쉬울 수가 없다. 꼭 이해하고 말겠다는 결심을 일찌감치 버렸다. 저자의 충고대로 '일단 소설 읽듯이 한 번 편하게 읽고 틈틈이 정독하기'로 맘먹었다.


'철학사 없이, 철학은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철학에서 옛날은 없기 때문입니다. 과학 기술은 최신이 최고이고 가장 새롭지만, 철학은 다릅니다. 서양 고대 철학이 현대 철학보다 많이 낡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p. 8, 머리말)'

이 책은 탈레스부터 현대 분석철학자 콰인(처음 들어보는 인물이다)까지, 고대 신비주의부터 20세기 에소테리시즘까지 2500년 서양 철학사를 담았다. 철학자 위주로 소개하는 것도 이 책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철학은 철학사를 통해 시작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또한 지도를 보고 내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듯이, 철학사를 앎으로서 내 생각이 어디쯤 있는지를 알 수 있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서양 철학은 주로 신, 자연 그리고 인간에 대해 질문한다. 이 질문이 이성에만 의존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철학자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을 의미하지만, 그 뜻과 함께 신비 전문가, 연금술사, 마술사, 꿈 해석가라는 뜻도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와 마술사란 조합이 이상해 보인다. 하지만 19세기까지도 신비를 다루는 책 이름에 '철학'이 종종 등장한다.

러셀도 철학을 신학과 과학 중간쯤에 있다고 말하면서 신비주의를 철학의 보조 삼는다.
'철학은 신학과 과학의 중간이 아니라 신학, 과학, 에소테리시즘과 뒤엉켜 있어 보입니다. 어느 하나가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고, 서로 얽혀 있어 보입니다. (p. 22)'


소크라테스의 인생을 바꾼 건 신탁이었다. 카이레폰이 신에게 물었다. '누가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가?' 소크라테스가 가장 지혜롭다는 답을 들었다. 이렇듯 고대 철학은 신비주의와 공존했다.

헬레니즘 및 로마 시대에 철학은 쇠퇴하면서 종교, 철학, 신비주의가 각각 독자 영역을 구축한 다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중세는 신의 시대였다. 신학자와 철학자는 계시를 해명하기 위해 애를 쓴다. 이성으로 되지 않을 때 신비주의가 등장해 이를 해결한다.

그리스, 로마 인문학이 부활하는 르네상스 시대에 고대 이교도도 같이 부활한다. 연금술은 자연과학 발전의 디딤돌이 되고, 과학은 신과 인간 그리고 자연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한다.

계몽주의는 지식 중심으로 과학을 높이 평가했다. 신비주의도 과학 중시 시대 흐름에 맞춰 신비체험을 개인 단위로 바꾼다. 19세기 미국에서 부흥회가 인기를 끌었고, 동양의 신비가 전설로 등장했다.

현대에 들어서 철학은 삶 대신 언어를 말하고, 신비주의는 에소테리시즘이란 이름을 얻어 과학을 적극 활용하며 성공적으로 변신했다.


철학을 사유는 방법이란 철학사에 등장하는 사상가들의 질문에 따라 내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닐까? 철학에 옛날이란 없다. 2500년 전 고대부터 중세, 르네상스, 계몽주의를 거쳐 현대까지 계속 이어진 질문은 시대에 상관없이 유효하다. 그 질문을 비판하고 나의 주장을 펼칠 때 또 누군가 나타나서 내 주장을 비판한다. 그렇게 철학은 존재하며 존재할 것이다.

'헤겔의 개념이 보통의 개념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신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신과는 달리, 그의 개념은 성장합니다. 가장 빈약한 내용에서 절대정신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주관 정신에서, 객관 정신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절대정신으로 되어 갑니다. (p.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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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 펭귄클래식 135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은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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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으로 왕정 체제가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섰다. 이 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 정신은 시민사회를 싹트게 했다. <두 도시 이야기>를 읽고 나서 이런 프랑스 혁명에 대한 나의 생각이 너무 낭만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
영국의 왕좌에는 턱이 큰 왕과 못생긴 왕비가 앉아 있었고, 프랑스의 왕좌에는 턱이 큰 왕과 아름다운 왕비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빵과 생선을 쟁여 놓고 사는 두 나라 모두의 귀족들은 당시의 전반적 상황이 영원하리라 확신했다. ( p. 13, 첫 문장)'

런던 텔슨 은행 직원 자비스 로리는 파리로 가는 중이다. 에브레몽드 가문에 의해 억울하게 18년 동안 옥살이했던 프랑스 의사 마네뜨 박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마네뜨 박사의 외동딸 루시와 함께 했는데, 로리는 마네뜨가 감옥에 있는 동안 루시를 갓난아기일 때부터 돌봤다.

이들은 파리에서 석방된 마네뜨 박사를 돌보고 있던 드파르주 부부를 찾아간다. 런던으로 돌아온 마네뜨 박사는 딸과 행복하게 지내던 중 스파이 혐의로 재판 중인 찰스 다네이의 증인으로 나선다. 다네이는 무혐의 풀려나고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던 루시와 결혼한다.

파리에서는 대혁명이 시작된다. 드파르주 부부는 혁명의 주도세력으로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고 마네뜨 박사가 갇혀있던 방에서 드파르두 부인 가족이 에브레몽드 가문에 의해 얼마나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는지를 기록한 쪽지를 발견한다.

에브레몽드 가문의 다네이는 귀족에 부역했다는 죄로 위험에 빠진 가문의 집사 가벨을 구하기 위해 성난 파도처럼 모든 것을 파괴하고 죽이는 광기로 가득 찬 파리로 다시 돌아온다. 루시와 마네뜨 박사도 다네이를 구하러 파리로 쫓아오고, 루시를 사랑하는 변호사 시드니 카턴도 이들을 구하려고 파리로 온다.


프랑스 혁명에 대해 낭만적 생각을 내려놓게 된 이유는 비판적 시각이 생겼기 때문이다. 혁명으로 권력을 쥔 민중은 단순히 귀족이거나 귀족의 일을 봐줬다는 사실만으로 이들 모두를 사형에 처한다.

'매일 자갈 깔린 거리로 사형수를 태운 호송 마차가 힘겹게 덜컹거리며 지나갔다. 아름다운 소녀, 갈색 머리, 검은 머리, 잿빛 머리의 매력적인 부인, 젊은이, 정정한 노인, 귀족 출신, 농부 가릴 것 없이 모두가 기요틴에게 붉은 포도주를 부어주었다. 역겨운 감옥의 어두침침한 감방에서 햇빛 비치는 곳으로 나와 거리를 지나 기요틴의 끝없는 갈증을 채워주었다. (p. 395)'

다네이는 가문의 악행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귀족 신분을 버렸다. 드파르주 부인은 그것과 상관없이 가족의 원수인 에브레몽드 가문의 다네이는 물론 그의 가족을 몰살하려고 끝까지 쫓아가 복수를 시도하지만 그녀의 과거 상처가 치유되지는 않는다. 권력이 귀족에서 민중으로 옮겨가는 식의 시스템이 바뀌었다고 해서 사회가 변할까. 그런 의구심이 혁명에 대한 나의 낭만을 지워버렸다.

그렇다면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은 무엇일까. 찰스 디킨스는 사랑을 말하는듯싶다. 사랑에는 선택이 따른다. 사랑이 공허한 이유는 선택이 뒤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을 위한 가장 숭고한 선택은 희생이다. 예수님이 인류를 사랑해 십자가를 선택하는 희생으로 인류를 구했듯이 말이다.

로마시대 유대인들은 혁명가 예수를 기다렸다. 로마를 끝장내고 핍박받던 유대인에게 자유를 가져다줄 왕인 줄 알았는데, 예수는 이웃을 사랑하라고 전파하며 사회를 변화시킬 힘으로 혁명이 아닌 사랑을 선택했다. 유대인들은 실망했고 급기야 예수를 버렸다.

다네이는 가문의 집사 가벨을 구하려고 사랑하는 가족을 등지고 어쩌면 죽을지도 모르는 지옥 같은 파리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시드니 카턴 역시 사랑하는 루시와 그의 가족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선택을 했다.

역사의 흐름에 개인을 개입시키면 역사는 훨씬 복잡해진다. 억압자와 피억압자로 쉽게 구별되지 않는다. 억압자 속의 어떤 개인, 피억압자 속에 어떤 개인은 억압자 또는 피억압자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의 사정을 어쩔 수 없이 생략하고 순식간에 일괄적으로 처리할 필요가 있는 혁명으로 사회를 변화시키기가 어렵다.

답답하더라고 유대인처럼 실망하면 안 된다. 한사람 한 사람 변하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런 개인의 변화만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고? 찰스 디킨스의 또 다른 작품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사람들을 멀리하던 그토록 완고한 스크루지 영감의 마음도 변했는데?

어떤 선택이든 희생이 뒤따르는 사랑이 있다면 사람의 마음도 변하고 사회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런던과 파리, 두 도시의 왕좌에 앉아있던 턱이 큰 왕과 못생긴 왕비, 턱이 큰 왕과 아름다운 왕비는 자신들이 영원할 줄 알고 민중을 사랑한다고 말만 할 뿐, 선택을 뒷받침하는 어떤 희생도 하지 않았다. 그러한 공허한 사랑은 어떤 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

사랑은 사회를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루시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시드니 카턴의 고백처럼 사랑은 숭고하고 영원하기까지 하다.

'"... 나는 알고 있다. 그녀의 품에 안긴 내 이름을 딴 사내아이가 한때 나의 길이기도 했던 인생길을 훌륭히 걸어가리라는 것을. (...) 리고 들린다, 감격에 겨워 떨리는 목소리로 내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리가.
내가 지금 하려는 일은 지금까지 했던 그 어떤 행위보다 훨씬 더 숭고하다. 그리고 지금 내가 가려고 하는 곳은 내가 알고 있는 어떤 곳보다 더없이 편안한 곳이리라." (p. 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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