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생각법 -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시대의 물음표 사용법
정철 지음, 김파카 그림 / 블랙피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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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픈AI CEO 샘 알트먼이 직접 챗GPT의 새로운 모델 'GPT-5'를 공개했다. 프랑스어를 배울 수 있는 웹 프로그램 개발을 명령하자 300줄 이상의 코드를 2분여 만에 작성하는 놀라운 수준의 성능을 보여줬다. 할루시네이션 오류도 줄였다며 박사급 전문가를 언제든 활용할 수 있게 됐다고 샘 알트먼은 말했다.


절반은 카피라이터 절반은 작가 정철의 '물음표 사용법'에 관한 '질문 에세이' <사람의 생각법>은 아래 글귀로 시작한다.

'누가 물었다.
문명이 나를 침범하는 걸 어느 선까지 용인해야 할까요?
기억력과 계산력은 문명에게 양보한다.
상상력은 양보하지 않는다.'
박사급 전문가 'GPT-5'에게 상상력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

저자는 카피라이터 또는 작가가 뭐 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고 한다. 그의 대답은 '질문하는 사람입니다.'이다. 또한 AI가 우리 인간을 대체하는 시대가 성큼성큼 다가서고 있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냐는 질문에도 같은 맥락의 대답을 한다. '옳은 질문이 아닌 다른 질문'을 하라.

질문은 생각을 자극한다. 상상력을 깨운다. 그런가 하면 AI가 내놓는 답을 받아먹는 것에 익숙해지면 질문을 건너뛴다. 생각을 생략한다.
'질문과 사유가 안겨 주는 통찰의 순간과도 영영 멀어지게 된다. (p. 14)'


인상 깊었던,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던 정철의 '다른 질문'을 살펴보면... 무릎을 탁 치게 하는, AI가 아무리 똑똑하다 한들 전혀 생각해낼 수 없는 대답을 '절반은 카피라이터 절반은 작가' 정철이 내놓는다.

상상력 백화점을 순례하며 떠오른 질문, "'같다'의 동의어는?"
같은 표정은 무표정과 같은 말이다. 그러므로 내 표정이 남들과 같다면, 도시의 풍경이 다른 도시와 같다면, 같다면... '같다는 건 없다는 것. 내 표정이 없으면 내 존재도 없다. (p. 25)'

엉뚱한 질문, "1%와 99%는 어떻게 다를까?"
1%는 0%에 99%는 100%에 가깝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둘 다 100%도 0%도 아니다.
'둘 다 저지를 수 있는 확률이고, 저질러도 되는 확률이고, 저지르기를 무수히 시도한 확률이다. 우리 조상이 확률 99% 이상일 때만 일을 저질렀다면, 너와 나는 오늘도 팬티 하나 입고 정글에서 나무를 타고 있을 것이다. (p. 73)'

무허가 철학관에 가서 한 질문, "손금은 왜 손바닥에 붙어 있을까?"
'운명을 좌우한다는 손금이 요 손바닥에 붙어 있는 건, 내가 만지는 것이 내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이야. (p. 105)'

위험한 질문, "꼬리가 길면 누구에게 밟힐까?"
아무도 모르게 반칙을 저질렀다 해도 나는 안다. 꼬리가 길면 나에게 밟힌다. 들킬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초조하다. '동물은 꼬리가 꼬리지만 사람은 초조가 꼬리다. 초조가 길면 밟힌다. (p. 151)'

한여름 퇴근길에 생각난 질문, "지능이 영리할까 본능이 영리할까?"
지능은 숫자에 매달리지만 본능은 수치보다 감각을 믿는다. 비과학적인 느낌과 경험을 믿는 본능은 과학의 한계 정도는 우습게 뛰어넘는다.

고요한 질문, "가장 깊은 상처는 누가 줄까?"
바로 '나'다. 내게 신경을 가장 덜 쓴다. 하물며 내게는 용서나 이해를 구할 생각조차 안 한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고, 받은 상처를 모를뿐더러 내 깊은 곳에서 그 상처가 곪는 것도 '나'는 모른다.

비공인 선생님을 만나 한 질문, "죽는 날까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죽음, 나는 죽는다는 사실! '왜냐면, 우리가 하는 걱정 대부분은 내가 영원히 살 거라는 착각이 저지르는 걱정이기 때문입니다. (p. 252)'

'절반은 카피라이터 절반은 작가' 정철의 마지막 질문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하라는 샘플이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 주인공 히라야마가 출근길에 카세트테이프로 듣는 노래는?"
이 질문은 낯선 질문이다. 날선 질문, 추억이 하는 질문, 이야기가 듣고 싶어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어떤 질문을 받고 싶은가. 그런 질문을 하고 있는가. 좋은 질문은 대답을 넘어 대화를 낳는다. (p. 259)'


주입식 교육을 받은 나의 학창 시절은 간혹 질문거리가 생각 나도 질문할 수 없는 근엄한 분위기였다. 그런 교육은 직장 상사에게 하는 질문은 권위에 맞서는 것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질문을 하지 않는다. 꼭 물어봐야 하는 상황에서도 아내가 물어보자고 졸라대도 절대 물어보지 않는다. 물어보는 걸 자존심과 연결 짓는다. 그리고 개고생한다.

무엇을 먹을 건지 질문하고 무얼 먹겠다고 대답해야 한다. 머리는 어떻게 자를 건지 질문받고, 결혼하자는 용기가 필요한 질문도 해야 하고. 질문이나 대답이 때론 인생의 전환점이 된다는 것도 안다. 인생 자체가 질문과 대답으로 채워진다는 걸 알면서도 질문하기를 주저한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AI 시대는 '당신은 뭐 하는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절반은 카피라이터 절반은 작가' 정철처럼 "질문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살아남는 시대다. '옳은 질문'을 생각하느라 질문하기를 주저할 틈이 없다. 남들과 '다른 질문'으로 삶을 꽉 채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AI에게 상상력을 빼앗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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