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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사소한 것들의 인문학
조이엘 지음 / 섬타임즈 / 2026년 7월
평점 :
요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단연코 화제다. 이를 모르면 어떤 대화든 낄 수가 없다. 삼성전자는 지난 40년 동안 번 돈보다 올 한 해 더 많은 돈을 벌게 됐다. 게다가 앞으로 얼마를 벌지 삼성전자도 가늠하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그 덕분에 직원들은 억대 성과급을 받았다.
'지배층도 불교 논리가 좋았다. 현세에서 양껏 누리고 있는 부귀영화가, 단순한 아빠 찬스를 넘어 전생 때 '내 노력'의 정당한 대가라니. 말하자면 고대 버전 능력주의다. (p. 87 화무십일홍)'
"삼성전자 직원들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능력대로 보상받는 게 공정한 것 아냐?"
신자유주의가 뿌려놓은 능력주의가 디폴트 값일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법, 한쪽에서 억대의 돈을 챙기는 순간 다른 한쪽에 많은 사람들은 소외를 느낀다.
'온전히 내 것으로 보이는 '능력(자제력, 지능, 노력 등)'엔 이전 세대가 누적해서 쌓아온 삶과 노력이 보이지 않게 녹아 있다. 온갖 마시멜로 실험들이 그 일부를 보여줬다. 능력을 펼칠 수 있는 토대엔 내 기여분이 전혀 없다. 토대에 오를 수 있는 기회도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 내 성공 요인은 내 능력 반, 외부 도움 반이다. (p. 156 능력주의)'
철학과 종교학을 대학에서 공부했고, 과외 강사로 활동하면서 30년 가까이 책과 함께 살아온 이 책의 저자 조이엘은 대중적인 요리사이자 사업가인 백종원 씨를 예로 들면서 능력주의가 왜 위험한 이데올로기인지 설명한다.
'백종원 씨가 1870년대나 21세기 르완다에서 태어났다면... '
백종원 씨나 삼성전자가 엄청난 수익을 거둬들인 건 그간 일궈놓은 산업적 토대가 뒷받침된 결과다. 사소하다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소외받은 사람들도 그 토대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그러니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 수익의 일부를 달라고 말이다.
대부분 성공은 내 능력 반, 외부 도움 반인 셈이다. "노력이 부족해서 그 모양 그 꼴인 거야."라며, 한 사람의 잘못으로 그 탓을 돌리는 것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다. 특히 본격적으로 AI 시대가 되면 더욱 그렇게 될 것이다. 이제 정부는 어느 한 기업이 수익을 독식하는 것을 지켜보지 말고 어떻게 나눌지를 정책으로 풀어가야 한다. 이것만이 다가올 AI 시대를 살아갈 방법이다.
작아서 눈에 띄지 않는 사소한 것들이 있다. '시간에 풍화되어 사라진 것, 아무도 주목하지 않아 슬그머니 인과관계가 뒤집힌 것. 그것들이 진실을 낯설게 만들고 현실을 왜곡해서 악이 더 악해지도록 밑밥을 깐다. 몸통을 흔드는 꼬리처럼. (p. 9)'
그래서 이 책의 저자 조이엘은 <사소한 것들의 인문학>에 이어서 <더 사소한 것들의 인문학>을 통해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들에 주목하고, 기억하고,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그러면 적어도 세상이 이상해지는 걸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성공은 나 혼자 이룬 것이라는 신자유주의에서 공동이 노력한 결과라는 쪽으로 그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듯이 말이다.
이 책 '영아돌연사증후군' 편에 소개된 사례다. 1997년 샐리가 낳은 첫째, 둘째 모두 영아돌연사증후군으로 죽었다. 이를 의심한 영국 검찰을 샐리를 연쇄살인 혐의 기소했다. 확률상 도저히 있을 수 없다는 게 기소 이유였다.
그럴듯하다. 하지만 사소하다고 지나치지 말고 가만히 살펴보면, 이 기소 사유는 말도 안 된다. 확률로 따져보면 영아돌연사증후군으로 죽을 확률이 영아 살해가 일어날 확률이 보다 17배나 크다. 확률로 혐의를 몰아갈 수 없는 문제다.
이번 지방선거 사전 투표에서 전국 12곳의 상위 후보 2명의 득표수가 일치하는 결과가 나와 논란이 됐다. 이 논란은 부정선거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 역시 조금만 더 주목하면 통계적으로 얼마든지 발생 가능한 확률이란 걸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생일 문제'를 떠올리면 된다. 또한 약 800만 분의 1일이라는 로또 당첨자가 매주 여러 명이 나온다는 사실을 생각해도 되고. 투표수가 적고, 특정 후보에 표가 많이 쏠릴수록 득표수가 일치할 가능성은 더 커진다고 한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
<찔레꽃>의 노랫말이다. 이 노래를 철석같이 믿고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찔레꽃이 붉은색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흰색이었다.
사소한 것에 주목할 때, 더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다. 내 생각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힘은 거창한 데 있지 않고 우리가 무시하고 지나쳐버리곤 하는 사소한 것에 있다.
2년 전 <사소한 것들의 인문학>을 읽고 조이엘 작가의 깊고도 넓은 그리고 재미있는 지식의 향연에 반해 팬이 되기로 결심했었다. <더 사소한 것들의 인문학>을 읽고 그 팬심은 더 깊어졌다. <더더 사소한 것들의 인문학>도 출간되려나? '더더더 시리즈'로...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