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데미안 - 1919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헤르만 헤세 지음, 이순학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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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나 행동이 어른스럽지 않고 어린아이 같을 때 '유치幼稚하다'고들 말한다. 아이들 세계에 속한 아이들도 그렇게 느낄까? 그 세계 나름 그 아이들에게는 완벽한 세계다. 그 세계를 지나고 나서 보니 유치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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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두 세계가 얽혀 있었다. 세계의 양쪽 끝에서부터 나온 밤과 낮이. (p. 9)' 열 살 싱클레어가 사는 집에는 '빛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가 아주 가깝게 맞닿아 있었다.

밝은 세계에 살던 싱클레어는 어느 날 크로머를 만난다. 그로 인해 생긴 두려움 때문에 사과를 훔쳤다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지어냄으로써 어둠의 세계를 알게 된다. 괴로워하던 중 데미안을 만나 카인 이야기를 통해 선과 악의 진실을 깨닫고 크로머가 속한 세계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상급학교에 진학해 학교 선배인 알폰스 벡을 만나면서 이번엔 싱클레어 스스로 어둠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 세계가 그 자신 안에 있었던 것이다. 베아트리체를 만난다.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지만, 그녀가 싱클레어에게 미친 영향은 대단했다. 어둠의 세계를 멀게 했고, 독서와 산책을 즐기게 만들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p. 104)'

데미안이 보내온 쪽지 속 '아브락사스', 피스토리우스와 만남으로 아브락사스는 신이자 악마이고, 빛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를 동시에 지니고 있을뿐아니라, 어떤 생각도 어떤 꿈도 제외하지 않는 신임을 알게 된다.

'어머니 사진을 보여주었다. 나는 데미안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었는데, 그 조그마한 사진을 보고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내 꿈속의 모습이었다! 내 꿈에 나오는 얼굴이 바로 데미안의 어머니 얼굴이었다. (p. 152)'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인 끝에 싱클레어 안에 존재하던 여인, 에바 부인을 만났다. 하지만 또 다른 세계가 싱클레어 앞에 놓여있었다. 전쟁이 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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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삶은 자기 자신을 향해 가는 길이다. 시도하는 길이자, 좁고 긴 길이다. 지금껏 누구도 완전하고 온전하게 자기 자신에 이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누구나 그 길의 끝까지 가려고 애쓴다. (p. 8)'

유치했던 나는 삶이 내게 주는 과제를 도저히 피할 수 없었다. 사력을 다해 풀어내려 애쓰면서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 가야 할 길도 여전히 남았다. 싱클레어가 만난 크로머, 데미안, 알폰스 벡, 베아트리체, 피스토리우스 그리고 금욕에 괴로워하는 크나우어, 에바 부인까지... 내게도 깨달음과 도움을 주는 이들 모두는 나의 내면에 존재한다.

칼 융의 언어를 빌려 말하자면 '나(Self)'를 이루는 '자아(Ego)'이다. 에고는 페르소나와 셀프를 분리해서 보게 한다. 그리고 어쩌면 궁극에 아브락사스의 세계로까지 나를 인도하는 존재도 자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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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발버둥 쳤다. 알은 이 세계고, 이 세계는 산산이 부서져야 했다. (p. 191)'

내가 깨뜨려야 할 세계도 있지만, 인생에는 예기치 못한 상황이 내 알을 깨부셔 나를 새로운 세계에 내동댕이치기도 한다. 유럽이 경험한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처럼 말이다.

전쟁은 신이 살아있는지 의심하게 만들었고, 과학이라는 인간의 이성에 대한 기대마저 허물어버렸다. 합리적이라 여겼던 세계관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유치한 세계가 되버렸다. 숙명이 지배했던 세계에서 나의 의지로 살아가야 하는 세계로 발을 옮기게 만든건 누구의 계획에도 없었던 전쟁이었다. 그런 면에서 <데미안>은 개인의 성장 서사이면서 인류 성장의 서사이기도 하다.

내가 원하지 않은 세계라고 거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던져진 상태로 삶을 살아내야 한다. 그 힘은 질문에서 나온다. '카인은 정말 악일까? 다른 관점에서 보는 것 자체가 죄악일까?'

'"... 그래서 카인 자손들을 두려워하는 이유를 정반대로 설명한 거야. '표식을 지닌 자들이 우월해서'가 아니라, '표식을 지닌 자들은 불길해서'라고 말이야. 사실 틀린 말도 아니야. 용기와 개성을 가진 사람은 평범한 사람들을 두렵게 만드니까. 두려움 없는 강한 족속들이 주변을 자유롭게 돌아다닌다니 얼마나 무섭겠어. 그러니까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었던 나날들을 보상받으려고 그럴듯한 별명과 전설을 붙여서 복수한 거야. 내 말, 이해하겠니?" (p.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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