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글 ㅣ 오늘의 젊은 작가 57
전예진 지음 / 민음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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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예진 작가의 장편소설 《보글》은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57 번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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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보글'이라는 의미와 표지의 장면에서 알 수 있다. 이 제목과 그림에는 심상한 의미가 담겨 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우리는 뭔가를 입에 넣었다.


뭔가를 입에 넣는 우리. 즉, 입에 넣는 건 나만이 아니다. 언니와 나이다. 그런데 뭔가를 넣는 게 단순한 음식이면 좋으련만 이 자매는 모든 것을 산 채로 넣는다. 강아지 꼬리도, 심지어 사람 손가락까지도. 누군가를 먹는데 언니와 나만 필요하다. 서로 뺨을 맞대고 입을 크게 벌려 삼키면 된다.


먹고 나면 몸에 생기는 자국이 바로 '보글'이다. 커졌다가 터지고 난 후 뱉어내는 것. 보글이 터진 후 씨앗을 뱉는 언니. 그 씨앗을 몰래 화단에 심는다. 그들의 행위는 동네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게 되고 둘의 사이는 더욱 굳건해진다. 가장 궁금한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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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글》에서 가장 궁금한 부분은 바로 자매의 돌아가신 엄마의 과거이다.

엄마의 죽음 후 할머니에게 키워졌지만 할머니는 딸이었던 엄마의 옛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한다.

언니는 동생에게 엄마의 옛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할머니는 그마저도 들려주지 못한다. 단지 미워했다는 것만은 부정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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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닮아서 무섭다고 하고

또 자기는 그냥 나왔다고 말했다는 엄마..

​

과연 무엇이 진실인건지 사실을 말해줄 엄마는 이 세상에 없다.



살기 위해 사람까지 먹게 되고 다시는 먹지 말자고 하지만 소설은 이 자매를 가만 두지 않는다.

평범하게 살고자 하지만 이들의 행위는 쉽게 멈추지 못한다.

먹고 난 후 생긴 흉터 같은 '보글'. 이 보글을 묻었을 때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보글'은 다시 자라고 만다.

그리고 그 보글은 가장 상상하기 싫은 형태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렇다면 소설 《보글》은 슬픈 이야기일까? 기묘한 이야기일까?

​

만약 그대로만 끝났다면 이 소설은 그저 그런 이야기에 그쳤을 것이다.

​

마지막 부분 언니가 불러주는 자장가는 이 이야기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나란히 걷자, 

담 넘고 다리 넘고

나란히 걷자.


'보글'을 가진 존재들.

그 존재들은 외로울 수 밖에 없다. 그들은 끝내 외로워져야만 한다.

나란히 걷자고 자장가를 불러주는 언니의 자장가는 끝내 서로를 보듬는다.

어머니가 할머니를 미워했어도,

동생이 떄론 언니를 부담스러워했어도,

같은 보글이기에 이들은 미워하면서도 나란히 걷고 함꼐 하는 걸 택한다.

결국 그 보글의 결말은 쓸쓸할지라도 말이다.


기존의 젊은 작가 시리즈와 결이 다른 듯한 소설 《보글》은 읽는 내내 기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잔인한 듯하면서 기묘한 운명으로 태어난 이들을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건 결국 이들이 외로울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

언니가 동생에게 '난 너밖에 없어'라고 말하는 부분이나

언니가 어린 연에게 '나란히 걷자'라고 말하는 부분 모두 그래도 함께 하자는 아우성으로 들린다.

이 외로운 운명을 끝까지 함께 하자고 말하는 이 소설의 마지막은 끝내 슬퍼지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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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를 찾아서
하나 미쉘 지음, 이윤정 옮김 / 정은문고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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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되지 않는 역사는 결코 끝난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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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를 찾아서
하나 미쉘 지음, 이윤정 옮김 / 정은문고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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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계 외국인들이 쓴 한국에 관한 소설들이 대부분이다. <파친코> 의 이민진 작가처럼 디아스포라 소설을 쓰는 경우도 많고 <작은 땅의 야수들>의 김주혜 작가처럼 한국 역사를 배경으로 쓰는 작가들도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종류의 소설이 등장했다.

이번에는 '삼풍백화점'이라는 역사적 비극 속에 한국의 검은 현대사를 그려낸 재미 외국인 하나 미쉘의 미스터리 소설 『재를 찾아서』이다.



굉음이 크게 한 번 크게 울리더니, 

건물 한가운데가 그대로 주저앉았어요.  


소설은 '대명타워'의 붕괴부터 시작된다.

​

삼풍백화점이라 할 수 있는 대명타워.

남편 재는 그 곳에서 수영장 개축을 위한 공사를 한 후 소식이 없다.

생존소식을 들으면 좋겠지만 적어도 생사여부라도 알면 좋으련만 남편 '재'에게서 아무런 소식도 없다.

두 아이를 이웃에게 맡기고 사고 현장으로도 가보지만 어느 누구도 속 시원히 말해주지 않는다.

과연 아내 '새'는 남편 '재'를 찾을 수 있을까?


『재를 찾아서』 에서 한국 역사의 비극적인 역사의 압축판이라 할 수 있다.

정경유착으로 인한 부정부패, 빨리빨리 성장에 취해 일어난 부실공사, 한국 사회를 이끌어가는 엘리트들의 비리들, 돈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이 모든 비리의 온상들이 '새'와 '재'의 만남의 역사부터 시작해 '명희'의 가려진 역사 그리고 태한그룹 회장이 그려낸 회고록에 차곡차곡 담긴다.




소설을 통해 한국의 검은 역사들을 읽다 보면 한 가지 질문을 할 수 있다.


각각의 역사들이 

삼풍백화점, 대명타워와 같은 붕괴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삼풍백화점 비극과 연결된 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새'와 '재'가 만나게 된 독재 정권 민주화 운동과 삼풍백화점과 과연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해외 입양등이 삼풍백화점과 연관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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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소설은 이 모든 역사들이 하나로 모아져서 '삼풍백화점'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 속 '대명타워'라는 현실적 비극을 만들어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역사들의 비극의 총결합체가 마지막 남편 '재'의 거대한 비밀이라는 걸 이 소설은 말해준다.


소설 마지막,

대명타워 무너지기 직전, 평안한 하루를 보내는 여러 사람들이 나온다.

식구들을 먹일 반찬거리를 사는 주부의 모습,

회사 은퇴 후 무심했던 아내를 위해 선물을 사기 위해 백화점에서 아내를 위한 선물을 고르던 남자,

그리고 아내 '새'와 두 아이들과의 새로운 삶을 꿈꾸던 남편 '재'

​

그들이 바란 건 무엇이었나.



그가 바란 건 단 하루다.

오늘이 지나면

언제나 내일이 있다는 사치를 누릴 하루.


우리에겐 평범한 하루가, 그리고 내일을 꿈꾸는 그저 평범한 사실이 누군가에게는 '사치'가 된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부패한 엘리트들이 만들어가는 역사로 인해서 말이다.

그 역사가 쌓여 삼풍백화점이 되고

그 역사가 치유되지 않아 세월호 참사라는 또 다른 비극이 된다.

그 역사의 쓴뿌리를 없애기엔 악의 뿌리는 '돈'의 힘으로 너무 거대하고 공고하다.

그렇다고 이대로 끝낼 것인가?

그럴 수 없다. 그러니 더욱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해준다.

​소설은 정의를 약속하지 않는다. 

통쾌한 해피엔딩을 바라지만 앞서 말했듯 악의 뿌리는 매우 공고하다. 돈이 없는 서민들은 돈에 의해 쉽게 무너진다.

한국의 모든 역사 부분에서는 다소 지루함이 느껴지지만 이 모든 게 남편 '재'라는 인물의 이야기로 완성되어 가는 과정은 소름이 돋는다.


 해결되지 않는 역사는  결코 끝난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소설이다.  






*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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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듣는 사람들
조던 태너힐 지음, 김산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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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예민함과 아픔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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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듣는 사람들
조던 태너힐 지음, 김산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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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증정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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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보다 예민한 사람들이 있다. 가볍게 부딪혀도 누군가는 가볍게 넘어가는 반면 다른 누군가는 과하게 반응하며 매우 아파한다. 그럴 때 우리의 반응은 무엇인가. 예민한 사람들에게 '그까짓 거 가지고 유난'이라고 핀잔을 하곤 한다. 별 거 아닌 일에 심하게 반응한다며 그들의 예민성을 비웃는다. 일반적이지 않기에 예민함은 보통 잘못된 것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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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드라마 원작소설이기도 한 조던 태너힐의 장편소설 『소리를 듣는 사람들』 또한 그런 예민함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소리'에 대한 예민함을 가진 사람들.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에 그들의 청각적인 예민함은 유난스러움이 되고 그들의 외로움은 광적인 집착으로 매도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간신히 감지할 수 있는, 매우 낮게 반향하는 음조가 있었다.

소리를 듣는 사람들 20p




조용한 밤, 온순한 남편 폴의 사랑스러운 아내이자 축구선수 애슐리의 엄마이자 존경받는 선생님이었던 클레어는 낮게 울리는 소리를 듣는다. 낮게 들리는 소리. 정체를 알 수 없는 곳에서 울리는 낮은 소리는 클레어를 괴롭게 한다. 한밤중에도, 새벽에도 그 소리는 계속된다. 모든 전기를 차단해도 울리는 소리. 그 소리에 남편과 딸은 예민해서 그렇다며 좋게 끝내자고 한다. 하지만 이 소리로 인해 불면증이 생기고 피곤증을 일으키며 수업까지 차질을 일으킨다. 클레어는 혼란스럽다. 오로지 자신만 듣는 이 소리. 과연 자기가 잘못 된 것일까? 왜 분명히 존재하는 이 소리를 다른 사람들은 못 듣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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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 듣는 소리이기에 누군가와 의논할 수 없다. 심리치료도 의학치료도 이 소리를 막을 수 없다. 과연 클레어가 잘못인 것일까? 클레어는 이 혼란 속에서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 카일 또한 똑같은 소음을 듣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처음으로 같은 소리를 듣는 사람을 만난 클레어는 카일과 함께 소리의 근원을 찾아 다니지만 부적절한 관계로 오해받아 해고되고 남편과 딸에게도 외면받는다. 가족과 일 모두를 잃을 사면초가 신세에 빠진 클레어에게 같은 소리를 듣는 모임을 알게 되며 클레어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모임에 합류한다. 과연 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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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함께 모여서 그들만의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하지만 모두의 생각이 다르듯이 모임의 주관자들과 생각이 다르기도 하고 번민하기도 한다.



모임의 사람들은 각자의 고민을 토로한다. 실성했다고, 병들었다고, 또는 망령이 들었다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말한다. 일반 사람들이 쉽게 무시하는 이 작은 소리들이 누군가의 삶을 통째로 흔들 수 있다고. 그러므로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 주는 파괴는 감히 상상도 못할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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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 태너힐의 『소리를 듣는 사람들』에서의 이 모임이 어떤 범죄나 또는 미스테리로 이어가길 바라는 사람들에게라면 사실 이 소설은 실망일 수 있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소음의 정체가 거대한 사회 범죄와 연루되어 있기 바랬던 나의 입장으로서는 모임의 전개 방향이 너무 의외여서 당혹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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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 소설의 미덕이 있다면 소음에 대해 주변의 인정을 억지로 받아내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류에서 이해받지 못한 예민함은 끝까지 이해받지 못한다. 그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기에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공감하기 쉽다. 그리고 클레어 또한 인정받지 못한다고 해서 슬퍼하지 않는다. 그것 또한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인다. 어쩌면 작가는 우리의 한계를 극복하기보다 그저 현실을 담담하게 보여주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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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연대를 꿈꾸고 사회 정의를 쫓는 소설이라기보다 누군가의 예민함과 아픔을 제대로 보아주지 못하는 이 현실을 보여주는 소이라고 이 소설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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