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백년식당에서 배운 것들 - 세월과 내공이 빚은 오리진의 힘
박찬일 지음, 노중훈 사진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나라 속담에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십 년이라는 세월동안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백년식당'은 어떨까? 백년은 강산이 변한다는 십 년을 열 번이나 거쳐온 것이다. 그 사이 경영환경이 변하고 전통 식당 대신 프랜차이즈 식당이 대세가 되었다. 개인 음식점은 일년에 가장 폐업률이 높은 분야이다. 이 변화 속에서도 자리를 지켜낸 식당이 있다. 일명 저자인 박찬일 주방장이 말하는 '노포'들이다. 그는 오랜 세월을 굳건히 이겨낸 그 '노포'들의 비밀을 알기 위해 노포 탐사를 한 여정을 『내가 백년식당에서 배운 것들』에 밝힌다.

『내가 백년식당에서 배운 것들』에서는 저자가 탐사한 노포 중 20곳의 노포 탐사가 기록된다. 직접 가서 음식을 맛보고 식당 사장님과 인터뷰하며 무엇이 지금까지 지켜주었는지 관찰한다. 그리고 그 관찰에는 어김없이 공통점이 있다. 무엇일까.


기본을 지키는 것이지요.

하다못해 소뼈 씻고 피 빼는 일도

항상 똑같이 해야 합니다.

좋은 재료는 손님을 지켜준다.

이 말이 아버지 말씀이었어요.

그게 선순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얕은 수는 손님이 먼저 다 알게 됩니다.

<내가 백년식당에서 배운 것들> 154p


사람들은 안다. 같은 프랜차이즈라 하더라도 주방장에 따라 맛이 다르다는 사실을. 레시피가 똑같다해도 사람에 따라 음식의 맛은 미묘하게 달라진다. 하지만 노포는 다르다. 저자가 탐사한 노포들은 자식이나 또는 타인에게 식당 전권을 넘겨줘도 맛은 동일하다. 왜? 그들은 오리진의 입맛을 지키기 위해 보고 배운 그대로 똑같이 음식을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 할 수 있다. 그게 무슨 대수냐고. 하지만 예전 방식은 손맛이었다. 오랜 시간을 들여 고기를 끓이고 하나의 음식이 들이기까지 어떤 술수도 쓰지 않는다. 그 우직함은 시간이 흘러도 다음 세대가 그대로 이어받는다. 옛 입맛을 그리워하는 고객들이나 새로운 세대들이 같은 맛을 공유하는 건 큰 축복이다.





서소문 잼배옥 사장님의 말을 듣노라면 예전에 보았던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떠오른다. 백종원 대표는 손님들에게 받은 만큼 식당에 투자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 글을 읽으며 백종원 대표의 말이 떠오른 건 재료에 투자하며 손님들에게 좋은 재료를 공급하고자 하는 노포의 특징 때문이다.


예전, 자주 들르던 식당이 있었다. 항상 동일한 반찬이 나오던 그 식당은 반찬 값이 인상되었다며 반찬수를 대폭 축소하고 양도 적어졌다. 손님의 입장에서는 가격을 올릴지언정 동일한 서비스를 기대하고 왔건만 식당의 이윤에 맞춰 손님 서비스가 단번에 달라지니 기분이 불쾌했다. 그리고 그 식당은 더 이상 찾지 않았다.


하지만 노포들은 다르다. '똑같이'라는 원칙이 재료에도 동일하다. 예전보다 더 좋은 재료를 내오면 내왔지 처음보다 못한 재료로 요리하지 않는다. 노포들은 요즘 식당들이 백종원 대표를 통해 아는 것을 온 몸으로 체득했다. 손님에게 투자할 때 그 가게는 사랑받는 가게가 된다는 걸.



취재한 여러 노포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바로 오래 일하는 직원들이 많다는 점이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시대. 직원들은 이 곳에서 끝까지 함께 하는 곳을 당연히 여긴다. 일할 수 있다면 끝까지 가는 곳. 심지어 주방장이 동생에게 물러주어 형제가 한 노포에서 직원으로 근무할 정도이다. 끝까지 함께 하는 직원들의 마음이 이직이 잦은 현대 노동자들과 다를 수 밖에 없다. 직원을 귀히 여기는 곳. 직원을 귀히 여기면 직원은 손님을 귀히 여긴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종신고용의 선순환이 아닐까? 『내가 백년식당에서 배운 것들』에 나오는 노포들에게는 직원과 함께 오래 일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청진옥도, 부민옥도, 문경등심, 우래옥도 모두 끝까지 함께 한다.

'처음처럼', '똑같이'는 결코 쉬운 게 아니다. 특히 사람이 바뀌면 같은 전통을 유지하는 건 상당히 많은 노력이 소요된다. 하지만 이 노포들에게는 원칙이 있었다. 배운대로, 본 대로 우직함을 지켜나갔다. 그 우직함은 손님들에게 인정받았고 백년이 넘는 세월동안 노포를 지켜나갈 수 있었다. 이 노포들을 보며 나를 생각해본다. 이제 백세시대라고 하는 이 때, 나는 이들처럼 오래 가기 위해서 어떤 원칙이 필요하고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내가 백년식당에서 배운 것들』의 노포들은 브랜드라는 의미를 전혀 알지 못했지만 몸으로 경험으로 손수 실천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독자들은 살아 있는 전설이 된 그들을 통해 브랜딩을 배워간다. 브랜딩, 마케팅의 답변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기본에 충실하고 원칙을 지켜나가는 것. 바로 거기에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모든 사람을 위한, 그리고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이진우 옮김 / 휴머니스트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철학자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라도, 철학에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이름은 들어보았을만한 유명한 작품이다. 니체가 자신의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이 거대한 책은 부제조차 찬란하다. '모든 사람을 위한, 그리고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이라니. 사실 나는 니체를 은유 작가를 통해 알았다. 은유 작가의 필명은 바로 니체의 책 속의 많은 은유를 보고 '은유'라는 이름으로 집필 활동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은유 작가의 작품에는 수많은 니체의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래서 궁금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에게 이토록 극찬을 듣는 철학자라니. 같은 작품을 읽고 나눠보고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패였다. 은유 작가는 인터뷰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수많은 은유와 비유가 가득한 책이라고 말했다. 맞다. 사실 신은 죽었다고 말한 니체의 사상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 상황에서 전문가들에게도 난해하기로 유명한 이 작품이 은유 작가와 동일한 감동으로 다가올 리 없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차라투스트라라는 사람이 두 번의 하산과 두 번의 귀향을 가고 다시 동굴을 떠나는 여정이다. 이 여정 속에 차라투스트라는 인생을 논한다. 니체의 철학을 담고 있지만 차라투스트라라는 인간을 통해 삶을 논하는지라 민음사에서는 철학이 아닌 세계문학전집에 포함시켰다. 소설도 철학 이론서도 아닌 독특한 문체로 쓰인 이 책은 나를 몇 번이나 좌절시키킨다. 이 난해함 속에 내게 다가왔던 문장을 꼽는다면 벗에 대하여 부분이다.


그대는 노예인가?

그렇다면 그대는 벗이 될 수 없다.

그대는 폭군인가?

그렇다면 그대는 벗을 가질 수 없다.


이 문장 속에 나는 어느 것에 종속되어 있고 독립적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은 누군가의 벗이 될 수 없다고 받아들였다. 좋은 벗은 누군가로부터 영향을 받거나 따라가는 것이 아닌 인격적으로 독립된 사람만이 좋은 벗이 될 수 있다고 니체는 말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니체는 또한 여인은 우정을 맺을 능력이 없다고 말했다. 왜 니체가 그렇게 말했을까? 아마 그 당시에는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이라고 여겨졌던 시대의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말한 철학자로 유명하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도 신의 죽음을 거론한다. 하지만 신은 조물주, 종교에서 말하는 신이 맞을까?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먼저 니체는 신은 인간들이 필요로 해서 만들어낸 존재라고 말한다. 그리고 인간들이 필요가 없어진 후 신을 죽였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신은 인간들이 의지하는 신이 맞기도 하지만 인간의 필요로 만들어진 모든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신을 죽인 건 인간들이라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영원회귀>는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사상이다. 동일한 삶이 되풀이된다고 말하는 니체의 사상은 사후에 더 나은 곳이 아닌 지금의 삶이 되풀이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이냐고. 니체는 지금 이 순간이 되풀이되므로 이 순간을 충실하게 생활하고 활동할 것을 강조한다.

지금 이렇게 서평을 쓰지만 이 책은 니체의 삶과 사상을 충분히 이해한 후 읽어야 함을 절실하게 느낀다. 무모하게 읽기 시작한 이 책을 다음에는 니체의 사상을 공부하며 병행하며 읽어나가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에 갇히다 - 책과 서점에 관한 SF 앤솔러지
김성일 외 지음 / 구픽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SF를 통해 만나는 책의 이야기가 얼마나 감미로운가. 책이 이 세상에 끝까지 건재하기를 바라는 소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구원의 날 정해연의 날 3부작
정해연 지음 / 시공사 / 202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사회가 아프면 모두를 가해자로 만든다. 사회가 아프면 종착역은 결국 아이들의 아픔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구원의 날 정해연의 날 3부작
정해연 지음 / 시공사 / 202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거대한 비극 앞에서 인간은 무기력해진다. 불행은 인간을 강하게도 하지만 쉽게 파괴하기도 한다. 특히 아이를 잃은, 사망이 아닌 실종의 경우 부부의 일상은 멈춘다. 멈춘 일상은 가정을 파괴시킨다. 만약 잃어버린 아이 외에 다른 자녀가 있다면 그 자녀를 위해서라도 버텨나가겠지만 단 하나뿐인 아이가 사라진다면 온전한 일상을 살아갈 수 없다.

정해연 작가의 장르소설 『구원의 날』은 불꽃놀이에서 아들 선우를 잃어버린 예원과 선준 부부의 이야기다. 그 후 3년이 지났지만 그들의 상처는 회복되지 못한다. 예원은 죄책감과 충격에 자살 시도를 하기도 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 남편 선준은 힘겹게 직장생활을 하지만 아내를 보살피기도 너무 벅차기만 하다. 멈춰버린 일상. 그들에게는 하루 하루가 지옥이다.

예원은 병원에서 아들 선우와 똑같이 '올챙이송' 가사를 바꿔 부르는 아이 로운을 발견한다. 무의식중에 아이 로운을 데리고 집에 들어온 예원. 남편은 예원의 행동에 또 다시 자포자기한다. 그 순간 가족 사진을 보고 있던 로운이 선우를 가리키며 말한다.

"아. 저거……."

"선우다."

"이선우예요."

'울림기도원'에서 아들 선우를 만났다는 로운의 말에 부부는 또 다시 긴장한다. 과연 예원과 선준은 선우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처음 본 아이 로운의 말을 믿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이들 부부는 아들을 찾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아들 선우를 찾아 따라나선다.

『구원의 날』은 부부가 아이 로운과 함께 아이를 찾아 나서며 서로의 숨겨진 상처가 드러난다. 예원과 선준 부부와 함께 로운의 엄마의 모습도 드러나며 상처입은 어른들의 모습이 각각 그려진다. 모두가 피해자이며 가엾은 존재라는 걸 이 소설은 말해준다. 작가의 영리함은 상처입은 어른들 모습 속에 감추어져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비춰줄 때 비로소 작가의 의도를 알게된다. 어른들은 표현할 수 있지만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하고 숨죽여야만 했던 아이들의 모습. 사회가 아프면 어른들도 힘들지만 결국 가장 큰 피해자는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어른들의 행복과 아이들의 행복은 반비례하지 않는다. 어른들이 불행하면 아이들도 불행하다. 나는 그 모습을 예원을 통해서 보았다. 그리고 내 모습을 통해 보았다. 이 책에서 선우의 실종 뒤에 숨겨진 뒷이야기가 밝혀지지만 독자들은 알 수 있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없다고. 이 사건은 모두가 피해자라고. 사회는 모두를 가해자로 만들기도 하고 모두를 피해자로 만들기도 한다. 그 사실이 예원과 로운의 엄마에게 강하게 드리워져 같은 엄마로서 진한 여운을 남긴다.

『구원의 날』의 저자 정해연 작가는 이 소설이 저자의 다른 소설보다 집필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마음이 백분 이해된다. 저자가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의 마음을 매우 심도 있게 표현하였지만 실제 가족의 마음은 예원과 선준보다 더욱 고통스러우리라. 나는 이 책이 단지 아동 학대 또는 실종이라는 키워드로 보지 않기를 바란다. 그보다 사회가 만들어낸 아픔에 집중해서 읽는 소설이기 바란다. 사회의 아픔의 종착역은 결국 아이들의 아픔이니까.

정인이 사건과 이모부부에 의해 죽임당한 아이의 소식이 연달아 들려온다. 코로나로 친구를 빼앗긴 아이들의 외로움이 밀려온다. 아이들이 아프다. 이 시점 꼭 읽어보아야 할 소설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