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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 - 미군정기 윤박 교수 살해 사건에 얽힌 세 명의 여성 용의자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1
한정현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6월
평점 :
마고(麻姑)는 한국 신화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유일한 여성 천지창조신이었다. 남성 신들이 파괴하며 세상을 창조할 때 여성 신은 자신의 옷자락을 찢어 세상을 만든 여성 신 마고. 그들의 존재는 조선 시대와 일제 강점기를 지나 여성 신인 마고에서 마녀, 마귀할멈이 되었다. 역사는 그렇게 여성 신의 존재를 쫓아내었다. 일제가 조선의 역사를 왜곡하려고 한 것처럼 여성 신 마고도 마귀할멈으로 바뀌어갔다.
그냥 이제 여성 신은 필요 없는 거야.
남자가 지배하는 세상을 여성이 만들었다고 하면 말이 안 되니까.
한정현의 소설 《마고》는 역사에 의해, 시대에 의해 마귀할멈으로 취급받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일제가 물러가고 미군정의 치하에 있는 남한. 미군정에 눈 밖에 나면 좌익으로 분류되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시대,
독립은 했다지만, 여성도 선거에 참여할 수 있다지만 여전히 여성은 천대받고 불법은 판을 친다.
이 살얼음판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여성 검안의로 살아가는 연가성.
책상 위에 수북히 쌓여 있는 사건들 속에서 수상한 살인 사건을 접한다. 친미 세력을 등에 업고 귀국한 윤박 교수의 살해 사건. 범인은 미군. 하지만 미군정은 이 살인 사건의 진짜 범인을 몰래 미국으로 내빼고 윤박 교수에게 원한이 있는 여성 세 명을 용의자로 내세우며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덮어씌우려고 한다.
미군이 주목한 용의자 세 명은 <모던조선>의 편집장 선주혜, 윤박 교수의 식모였다가 기생집에서 성매매 일을 한 전력이 있던 윤선자, 그리고 윤박 교수의 조수였던 한초의. 이 세 명은 모두 한 날 호텔 포엠에서 윤박 교수와 실랑이를 벌인 알리바이가 있다. 모두 윤박 교수에게 원한을 품을 일이 있다. 과연 이 중에 범인은 누구일까?
연가성과 함께 사는 룸메이트이자 오랜 지기인 곽운서와 함께 이 사건을 조사해가며 이들이 알게 되는 진실은 여성과 사회적 소수자에게 드리워진 억압의 굴레이다. 시대는 변했지만 여전히 여성 및 약자에게 가혹한 시대. 마고 신이 마귀할멈이 되었듯 여성들의 존재는 남성들에 의해 철저히 유린되고 짓밟히는 모습이 목격된다.
사람들은,
협박을 받는 여성들에게
왜 반항하거나 신고하지 않았냐고 묻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만약 소설이 여성들이 시대에 의해 마귀할멈으로 짓밞히는 모습만을 그려냈다면 이 소설은 타 소설과 차별성이 없다. 한정현의 소설은 남성주의 역사에 맞서 여성들, 소수자들이 그려내는 사랑의 방식을 맞서 보여주는 데 있다.
서로를 짓밟고 죽이는 대신 연가성을 포함한 모든 여성들은 자신을 낮추더라도 함께 하는 방식을 택한다.
호텔 포엠의 사장이자 목격자인 에리카.
이 소설의 중심축인 연가성과 연가성을 끝까지 사랑하는 곽운서.
자신을 도와준 은혜를 잊지 않으며 끝까지 함께 하는 삶을 택한 카페 주인 송화.
그리고 윤박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여성 신주혜까지... 이들은 알고 있다. 남성들의 방식으로 남을 짓밟고 파괴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남을 구할 수 없음을. 마고신이 자신의 옷자락을 찢어 세상을 창조했듯, 자신의 것을 나누고 함께 할 때 모두가 살 수 있는 길임을 알고 함께 하는 길을 택한다. 태양처럼 강한 빛이 아니지만 태양의 빛을 나누는 은은한 달빛이 되는 삶을 택한다.
태양도 그냥 무수한 별 중에 하나래.
너무 밝아서 주변 별들의 빛을 다 가져가버리지만 말이야.
태양이 너무 빛나면 오히려 아무것도 안 보이잖아?
천지를 뜨겁게 태우는 태양의 존재는 강렬하지만 달빛에게는 그런 강렬함이 없다. 태양은 홀로 빛나지만 달빛은 별과 함께 빛난다.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들이 모두 그러하다. 함께 빛나는 존재로 살아가길 택한다. 그래서 더 강한 태양의 존재에 죽임을 당하거나 사라져 가거나 마귀할멈으로 추락하기도 한다. 이렇게 사는 게 의미가 있을까 라고 묻는 연가성에게 스승은 답한다.
우리 모두 안나를 기억하고 지금까지 말하고 있어.
이게 바로 낙관이야.
우리는 낙관할 수 있어.
우리가 잊지 않고 있으니까.
비록 이 순간 우리가 지고 있는 것 같다 하더라도 잊지 않고 기억한다면 낙관할 수 있다는 것.
계속해서 말하고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희망이 있다.
지금은 아무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가 기억하는 한 희망의 불씨는 살아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말하고 기억하고 함께 해야 한다. 그게 마고의 신을 다시 복원할 수 있는 길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 격동의 시기를 통과해 낸 많은 여성들과 소수자들의 삶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비록 지금까지 차별금지법은 통과되지않고 제자리걸음인 것 처럼 보여도 결국엔 서로의 연대가 우리의 끝없는 기억과 말들이 희망의 불씨가 되어 또 다른 불씨를 키워나갈 수 있음을 말해준다. 태양처럼 단번에 빛을 내진 못해도 느려도 함께 빛나는 삶을 택하는 마고들의 빛이 더 오래 은은하게 모두에게 비출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