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챕터
위니 리 지음, 송섬별 옮김 / 한길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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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연극 및 영화계 및 정치계에서 미투 운동으로 인한 파문이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다. 유력한 차기 대권후보가 범죄자가 되고 인정받던 중견 연기자가 연이은 미투 폭로로 인해 자신의 삶을 마감했다. 

이러한 때에 맞추어  저자의 성폭행 경험에 바탕을 둔 소설인 <다크 챕터>가 한국에 번역된 건 어쩌면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크 챕터>는 타이완계 미국인 위니 리가 북아일랜드 여행 중 겪은 자신의 성폭행 경험에 바탕을 둔 소설이다. 
저자는 피해자인 비비안의 시점과 가해자인 조니 스위니의 시점을 교차하며 그들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여 성폭행을 겪은 이후까지의 삶을 교차하여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그 동안 잊고 지냈던 과거의 한 기억, 대학 자취 생활 때 갑자기 괴한이 들어 와 나를 협박하며 성폭행을 당할 뻔한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지만 그 사건은 나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에게 큰 충격을 준 사건이였고 나는 이 <다크 챕터>를 나의 경험과 비추어서 글을 읽게 되었다. 

<다크 챕터>는 미국에서 이민자로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부모 밑에서 자란 비비안과 아일랜드에서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유랑민으로 자란 조니 스위니의 과거로 시작된다. 비비안은 여행을 동경하며 부모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자라난 케이스라면 조니는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항상 다투는 부모님의 모습과 정착민들의 멸시 속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라났다. 

대학 졸업 후 런던으로 자리를 옮겨 방송업계에서 일을 하던 비비안은 중요한 북아일랜드 행사를 위해 가게 되고 하루의 휴가를 벨파스트 트래킹을 가게 된다. 혼자 있는 타이완계 미국 여자, 마약에 취해 있던 조니에게 비비안은 쉬운 먹이감이였으며 길을 묻는 척 다가가 그녀에게 추근대고 거부하며 도망치는 비비안을 붙잡아 폭력을 행사하며 그녀를 강제로 겁탈한다. 
살아남기 위해 성행위에 동조하게 되고 그 이후 친구의 도움으로 경찰에 신고하게 되고 그녀의 사건은 북아일랜드에서 화제가 된다. 

비비안은 경찰에 신고 후 같은 상황을 여러 차례 반복하여 설명하여야 했다. 나의 경우 또한 경찰에게  모든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야 했지만 결코 그 과정은 쉽지 않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지만 그 두려운 순간을 떠올린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고역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치부를 증거 확보를 위해 남 앞에서 옷을 벗어 사진을 찍어야 한다. 

이 사건을 듣게 된 비비안의 친구들과 지인들은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지만 이 큰 사건에 그들은 연민과 동시에 부담스러움을 느낀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곤혹스러워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통해 내가 이 사건을 겪었을 당시 주변의 태도와 다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먼저 가족들부터 놀람과 당혹함 속에서 이 일에 대해 쉬쉬하기를 원했고 내 지인들은 놀라워하면서도 이 사건에 대해 듣기를 곤혹스러워했다. 이 일은 듣기 불편할 뿐더러 그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의 경우 그들의 태도는 외로움을 불러일으켰다. 

가해자인 조쉬가 체포되고 재판이 열렸다. 재판에서 법정 증언을 해야 하는 동안 비비안은 자신의 치부를 다시 드러내게 된다. 가해자의 뻔뻔한 거짓말과 자신의 과거를 들먹이며 공격하는 변호사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는 비비안은 결국 승소하지만 비비안은 알고 있다. 자신은 그 사건 이후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자유롭게 여행하던 젊은 여성이 밖에 나가기를 두려워하고 광장 공포증과 불면증에 시달리게 되었고 어느 누구도 그녀를 책임져주지 못한다. 그녀 잘못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 아니지만 모든 것을 그녀가 감당해내야만 한다. 

 나는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고 경찰은 부모님에게 천만 다행인 줄 알라는 말만 반복했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라 더 이상의 수사는 이루어지지 않고 종결되었고 나는 그 이후 짧게나마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부모님은 나에게 이 일이 내게 흠이 될 수 있으니 절대 말하지 말고 함구하라고 강조하셨다. 내 잘못이 아닌데 그리고 일어난 것도 아닌데 나의 치부라고 생각하셨다. 어쩌면 한국의 정서상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알게 된 건 나와 비슷한 사건을 겪은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대학 자취 방, 또는 빌라, 귀가 길 등등 성폭행 미수로 끝났지만 이러한 경우가 나만 겪은게 아니라는 것에 대해 모두가 놀랐고 서로를 위로해 줄 수 있었다. 

한국의 경우 성폭행 피해자들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가해자보다 숨죽여야 할 때가 많다. 나의 경우도 그랬고 앞서 만났던 다른 피해자들의 경우도 누가 알아봤자 흠만 된다며 조용히 할 것을 주문받는다. 
성폭행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자신을 고발하기 어렵다는 점을 이용해 동일한 범죄를 할 때가 많다.  <다크 챕터>의 가해자 조니 또한 그렇게 생각했지만 비비안은 침묵보다는 자신의 현실을 주변에 알렸고 당당하게 대처해나갔다. 그리고 지금 또 다른 피해자들에게 이건 결코 그들의 잘못이 아니니 숨어 있지 말고 당당히 나와 말하라고 격려한다. 숨어 있고 침묵한다면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고 가해자들은 더욱 활개칠 것이라고. 

  나의 경우도 그랬고 이러한 사건이 일어나면 주변에서는 듣기 거북해하며 피할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성폭행과 성추행 등 성범죄는 줄어들기는 커녕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그건 예전부터 침묵을 택할 것을 종용받던 옛시대의 모순들이 만들어낸 하나의 부작용이었다.
 
최근 한국에서 일어나는 온갖 미투 사례들에 대하여 주위로부터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듣기 싫다, 피곤하다는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 하지만 우리는 이 미투 피해자들의 말을 들어야 하고 끝까지 그들의 편이 되어 주어야 한다. 우리가 다시 그들을 외면한다면, 이 현실을 외면한다면 이 미투운동은 다시 흐지부지되고 우리의 현실은 바뀔 수 없을 것이다. 
아직도 숨어서 울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당신은여전히 소중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해 주며 그들의 손을 잡아주자. 용기를 내어 미투를 말하는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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