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45세, 새로운 무엇인가를 시작하기보다는 이제 안정을 추구할 나이다. 도전보다는 은퇴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저자인 안드라 왓킨스가 뒤늦게 시작한 자신의 소설 홍보를 위해 34일간 714킬로미터의 나체즈 트레이스 파크웨이(Natchez Trace Parkway)를 아버지와 함께 여행한 여행기이다.
나체즈 트레이스 파크웨이는 미국남동부의 미시시피주, 앨라베마주, 테네시 주에 걸쳐있는 길로 나체즈족 인디언의 역사적인 자취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길로 거리는 약 714km이다. 저자는 45세의 나이에 자신의 소설을 홍보할 목적으로 이 714km의 먼 거리를 도보횡단을 결정한다.
매일 24km를 걸어 5주안에 도보 여행을 마무리 하는 일정을 세운 저자에게 여행 기간동안 자신을 숙소까지 데려다 줄 여행 동행자가 필요했다.
하지만 직장과 가정으로 인해 5주동안 자신과 함께 할 사람을 찾기는 어려웠다. 시간이 많은 유일한 사람. 바로 여든 살의 아버지 로이 리 왓킨스였다. 고집불통에 천둥 같이 울리는 아빠의 고약한 코고는 소리, 거대한 배로 인해 변기에 제대로 조준하지 못하는 아빠와의 여행.
저자에게 아빠와의 여행은 설렘이 아니라 걱정과 근심으로 시작된 여행이었다.
아빠와의 여행은 예상대로 순탄치 않았다.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들다며 숙소를 마음대로 바꿔버리기도 하고 욕조에 있는 동안 갑자기 문을 열고 와서 소변을 누는 등 아빠의 제멋대로 행보는 저자를 기겁하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또는 하루 이틀 잠깐 함께하는 것만으로는 서로를 알기에 충분하지 못하다. 하지만 5주간 아빠와 매일 같은 방을 쓰고 함께 이동하는 과정에서 아빠와 딸은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딸은 어느새 노쇠해지고 대변을 제대로 가리지 못해 실수하는 아빠의 약함을 보게 되고 아빠는 어느 새 훌쩍 커버린 딸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도보여행을 계획하며 실행하는 딸을 보게 된다.
이 책의 여행기도 흥미롭지만 아빠의 이야기는 나의 아빠를 떠올리게 한다. 술을 좋아하고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아빠 밑에서 자라서 좋은 아빠가 되는 법을 몰랐던 저자의 아버지.. 나의 아빠 또한 고아로 자라서 홀로 모든 것을 감당하셨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표현에도 많이 인색하셨고 무뚝뚝한 아빠를 떠오르게 했다. 사랑하지만 단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던 이 시대의 아버지들.. 자신들의 꿈이 있었지만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아둥바둥 살다 보니 남는 건 어느 새 노쇠해져버린 몸뚱이 뿐...
그 속에서 느끼던 좌절감... 아빠도 연약한 인간이었음을 우리는 너무 늦게 알았다.
딸이 도보를 걷는 동안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향해 자랑스레 딸의 책을 홍보하며 책을 판매하는 아빠. 피곤한 딸에게 사인을 해야 책이 더 잘 팔린다며 끝까지 사인을 하게 하는 딸.. 아빠는 자신이 딸이 쓴 책의 판매원이 되어 줌으로서 여든이 된 나이에도 딸에게 도움이 되어 줄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부끄러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아직도 자신이 할 일이 있고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힘이 나는 부모님, 도와준다는 것만으로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되찾고 기뻐하시는 부모님. 바로 우리의 부모님 이야기이기도 했다.
파킨슨병 진단 이후에도 일을 하는 나를 위해 나의 아이들을 돌보아 주시는 친정 엄마가 떠올랐고 손주에게 용돈을 주기 위해 버스 운전대를 잡고 계시는 아빠가 떠올랐다. 그것만으로 기뻐하시는 부모님.... 이 세상의 많은 부모들은 다르지 않았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저자가 714km까지 먼 여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혼자가 아니였기 때문이었다. 가장 든든한 조력자이자 책 판매원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던 저자의 아버지, 함께 걸어주며 먹여주고 챙겨주었던 어머니, 특별한 일을 한다고 끝까지 격려해주던 남편 마이클과 친구 앨리스, 그 외에도 이 여행을 응원하며 남 모르게 도움을 준 공원관리원들,마지막 여행을 함께 해 준 리사와 토리..
많은 사람들이 저자와 동행자가 되어 주었기에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 또한 결코 혼자 갈 수 없다. 때때로 만나는 긴 고비마다 우리는 서로에게 기대고 의지하기에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내일을 꿈꿀 수 있고 미래를 기약한다. 다음이라는 이름으로 약속을 미룰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있다. 우리에겐 당연한 내일이미지만 부모님들에게는 내일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추억을 쌓기 위해 시간이 중요하지 않다. 지금 이 시간 오늘 한 시간이라도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우리에겐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은 많지 않다. 그리고 우리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할시간도 많지 않다. 우리의 인생은 바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생이지 않던가.
부모님께 원망이 많던 사춘기 시절과 대학 시절, 엄마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넌 다른 사람한테 하는 것처럼 나한테도 해 봐!"
너무 당연하게 여겼기에 부모님과 내 가족에게는 소홀하게 대했다.
그리고 지금... 나의 부모님은 힘든 투병 생활을 하고 계신다. 나에겐 더 이상 시간이 많이 있지 않다. 하루 하루가 부모님과 그리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다. 슬프게도 나는 이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
<왜 아빠와 여행을 떠났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다음은 없으니까...
다음은 없으므로 지금 함께 하기 위해서 여행을 떠났노라고..
" 소중한 가족과 추억을 만들어야 하는 순간에도 다음이라는 말로 미루기 일쑤다.
그러나 다음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예측할 수 없는 삶이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가버리기 때문이다."
(p.11)
" 때로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저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야." (p.82)
" 아빠는 내 책을 읽어보지 않았으면서도 좋은 책이라고 확신했다.
왜 나는 아빠가 나를 믿듯이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걸까?" (p.239)
"아빠는 숨을 쉬는 한 나를 걱정할 테지. 어쩌면 돌아가신 뒤에도 계속." (p.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