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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삼일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10월
평점 :

알라딘 북플 앱에서는 떄때로 내게 "O년 전 읽은 책입니다"라며 내가 쓴 글의 리뷰를 알려오곤 한다.
적게는 1년, 또는 8년 전에 읽었던 글이라고 알려준다. 8년.. 그 사이 내게 무슨 일이 있었나 생각해본다. 그런데 나는 8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직장 생활은 여전히 녹록치 않고 나의 SNS나 내 책 쓰기의 꿈은 이제 불확실해지다 못해 멀어졌다.
어떤 떄는 책 읽는 내 모습마저도 남편에게 보여주기가 부끄럽기까지 한다. 어쩔 수 없는 나이가 아닌가 싶은 때 김연수 작가의 소설집 『눈 내리는 삼일포』를 만났다.
지금 나의 상태는 자책이다. 10년이 되도록 뭐 하나 제대로 해낸 게 없는 나를 자책하게 된다. 주변의 성공 스토리를 들으면 내 자신을 더 몰아부치게 된다.
이 나이 먹도록 너는 뭐했니..
남들은 다 뭐라고 하는데 왜 너는 여전히 그 모양이니...
그 자책의 마음으로 가득할 때 첫 번째 단편 「우리 인생의 목격자」에서는 여자 야구선수 이선희 선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때 잘 나가던 프로 투수였지만 개막전 끝내기 만루 홈런을 던져 '비운의 에이스'라는 쓸쓸한 이름으로 마운드를 내려와야 했던 이선희 선수. 선수로서 불명예스럽게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던 이선희 선수는 훗날 그 심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선희 선수는 자신의 아픔이 한국 야구사 발전에 밑거름이 되었음을 위로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자신의 아픔을 자책하고 애통해하는 것을 넘어 위로하는 데 이르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만약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다른 선택을 했다면 이선희 선수는 본인의 선수 인생에 불명예스러운 선수로만 남을 것이다. 하지만 끝까지 버티어냈기에 야구 역사가 보이고 자신을 위로하는 새로운 시각을 거칠 수 있었다.
나 역시 그런 게 아닐까.. 10년 넘게 나는 여전히 아무 것도 아닌 인생을 산다. 하지만 내가 이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그냥 포기해 버린다면 나는 나를 바라보는 건 패배자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나를 위로하지 못하고 자책하며 탓하는 데 머무를 것이다. 그러므로 소설에서 '그러니 부디 버텨줘'라고 말하는 바램처럼 나 역시 버텨야만 한다. 나를 위로할 수 있을 때까지. 나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찾을 수 있을 때 까지 말이다.
그렇다면 버티는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단편 「조금 뒤의 세계」에서 폭력 아버지 밑에 시달리는 지연의 어린 시절 사진사 아저씨는 앨프리드 스티글리츠라는 사진작가 이야기를 들려준다.
매일매일 찍은 구름사진. 그 구름들은 다 똑같아 보이지만 그 구름들은 구름만 있는 게 아닌 빛의 명암 등 구름만 있는 게 아님을 이야기하며 다양한 사진을 찍었다. 매일매일 똑같은 인생인 것 같아도 인생의 모습은 똑같지 않다라는 걸 말해준다. 그리고 그 똑같은 인생 속에서 다른 무언가에 집중할 때 우리가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모두가 끔찍하다고 말해도 끔찍하기만 한 건 아니라는 걸
분명히 알고 다른 걸 보는 것,
그게 바로 예술이 하는 일이야.
이 현실에는 현실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 다른 것에 집중할 때,
너는 네 인생을 바꿀 수 있어.
그 다른 것이 바로 꿈이야.
꿈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꿈의 내용을 바꿀 수 있어.
그건 표제작 「눈 내리는 삼일포」에서도 동일하게 강조된다. 잘린 나뭇가지에 앉은 매미. 그 매미를 보통의 눈으로 보면 더 이상 오를 데 없는 매미처럼 보이지만 다른 것에 집중할 때 그 매미가 날아오를 수 있다는 걸 보게 된다. 마지막 단편 「그리고 밤과 가을이」에서도 소설 <엘라의 정원>을 인용하며 끔찍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게 가장 아름다운 정원임을 강조한다.
내 현실은 여전히 제자리이다. 직장 생활도 엄마와 딸 역할도 쉬운 게 없다. 떄떄로 벅차다. 하지만 이 현실이 전부가 아님을 아는 것. 그 사이에 바뀌는 다른 것을 바라볼 수 있을 때 나는 다른 인생을 꿈을 꿀 수 있다.
다른 것을 보고 꿈을 꾸면서 나는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가.
김연수 작가는 '소설'을 쓰라고 말한다.
소설가가 옛 이야기를 지우고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직업이라면 우리 모두 자기 인생의 소설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모든 이야기는 미래의 이야기여야만 한다.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면
낡은 이야기는 부서져야만 한다.
나에게 내가 갖고 있는 실패의 이야기들을 부서버리고 나만의 이야기로 만들어가는 게 유일한 내 삶에 할 수 있는 일임을 소설은 이야기한다. 10년이 되도록 아무것도 못 했다는 낡은 이야기는 부수고 그럼에도 해나가서 끝까지 해내 유종의 미를 거두는 내 인생의 새로운 이야기가 쓰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의무일 것이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만난 순간..
김연수 작가의 소설집은 기어이 나를 일으켜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