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푸라기 왕관을 쓴 여자
박상영 지음 / 래빗홀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엄마가 죽었다. 누군가의 방화로 엄마는 온 몸에 화상을 입고 수술실에 들어갔지만 끝내 다시 눈을 뜨지 못했다.

딸 하나에게 남긴 한 마디. 세일백화점의 윤동주 회장을 찾아가라는 말 한마디만 남긴 채.


윤동주 회장을 찾기 위해 한국에서 엄마의 흔적을 찾는 하나. 하지만 까면 깔수록 드러나는 건 세일 그룹이라는 대기업의 역사와 함께 한 엄마의 새로운 모습이다. 한국 현대사에 맞추어 세일 그룹이 성장한 것과 나란히 음지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엄마의 모습이다. 하나가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은 공기처럼 숨죽이듯 은신한 엄마의 모습이었는데 음지에서 윤동주 회장을 서포트하며 활동하는 엄마의 모습은 어색하기만 하다. 과연 어떤게 엄마의 본 모습일까?


《지푸라기 왕관을 쓴 여자》의 저자 박상영 작가는 한국 문학의 퀴어 문학가이다. 따라서 소설 초반만 해도 세일그룹의 장녀이자 회장이었던 윤동주 회장과 하나의 엄마 마츠노 사치코, 송행자의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깨달았다.

이건 사랑 이야기가 맞다. 하지만 서로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치명적인 사랑이야기다.

대기업의 장녀로 형제 누구보다 명석하지만 가부장제도로 인해 늘 소외되었던 존재 윤동주,

재일교포로 태어나서 가난과 쓸쓸히 싸워야만 했던 마츠코 사치코.

어둠이 어둠을 알아보고 불행이 불행을 알아본다.

피할 수 없는 서로의 존재는 파국 속에서도 서로를 놓지 못하고 붙든다. 설령 그 길이 파멸의 길이더라도.



《지푸라기 왕관을 쓴 여자》 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그룹의 왕관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쟁탈전,

그 뒤에서 도청 및 살인 등을 서슴치 않고 서포트하는 음지의 인물들..

배신이 또 다른 배신을 몰고 오며 서로를 잡기 위해 아우성을 친다.

그 와중에도 진실된 것이 있다면 그건 하나. 윤동주와 사치코의 마음이었다.



마음이 아무리 진실하다한들 악행이 선의가 될 수 없다.

그 사랑은 결국 다른 누군가를 파멸시킬 뿐이다. 의도하지 않았다 한들 악행은 끝내 누군가를 겨눈다.

배우 심은경은 이 소설의 추천사에 '이 사랑은 망해도 너무 망했다'라는 글을 썼다.

왜 이 표현을 썼을까. 그건 그들의 존재 자체가 망할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기 떄문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사랑받지 못한 존재 윤동주,

아버지의 짧은 사랑을 받고 '행복을 만들어가라'는 행자라는 이름을 받았지만 행복을 거머쥘 수 없었던 존재 사치코.

어둠의 그림자에서 시작된 사랑은 끝내 서로를 구원하지 못했다.

하지만 구원받지 못했다해서 끝이 아니다. 그 밑바닥에 구원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다시 돌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며 소설은 끝을 맺는다.

결국 모든 게 한순간에 부서져버리는 지푸라기 왕관이었던 삶.

하지만 무너지지 않은 게 있었다.

죽기까지 서로를 기억하고 간직했으니 지푸라기 속에서도 마음은 남았으니 결코 헛된 건 아니었노라고 말해주고 싶다.

망할 수 밖에 없는 사랑. 그래도 서로는 남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