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옆 동네에 폭우가 내려 논이 물에 잠기고 난리라는 기사가 나왔다.
그동안 폭염에 시달리더니 난데없는 폭우로 일년동안 지은 쌀농사가 엎어지게 생겼다고 한다. 걱정이 되어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다행이 친정은 최악의 상태는 피했다고 하신다.
다시 신문구독을 시작했다. 인터넷에 나오는 단발성 기사로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어제 자 신문기사의 하이라이트는 '이상기후 비용 청구서'였다.


전라도와 경상도 기록적인 폭우로 수해 복구 작업이 한참인 현장.
네팔의 히말라야 빙하가 녹으며 산사태로 사상자가 이미 800명을 넘어서고 있는 현실을 보며 기후학자들이 그토록 경고한 사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며 소름이 끼쳤다.
내게 기후위기의 가장 큰 경고등을 준 책들을 떠올린다.
<최종 경고: 6도의 멸종>을 읽으며 소름돋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지구 온도 1도가 상승할 때마다 달라지는 변화를 실감나게 그려주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최종 경고한다.
네팔의 산사태를 보며 가장 먼저 떠오른 책. 우리는 최종 경고를 받고도 돌이키지 못했다는 사실에 슬퍼지는 책이었다.
이 책을 쓰기 시작했을 무렵,
나는 우리가 기후변화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없다.
뜨거워지는 지구를 보며 미쳐간다고 고백하는 NASA 기후학자.
원제는 "우리가 변해가는 행성을 보며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가" 이지만 한국판에서는 <나는 미쳐가고 있는 기후학자입니다>라는 제목이 기후학자의 외침을 더욱 실감나게 한다.
나는 화가 난다.
저들의 냉소주의가, 거짓말이, 탐욕이 노엽다.
기후 위기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어야 할 정치인이나 기업가들이 멍청한 것도 아니면서 모르는 척 내뱉는 허위 사실들 때문에, 심지어 그 똑같은 헛소리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걸 볼 때마다 분노가 이글이글 타오른다.
몇 번을 반복하든 가뭄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서구 세계의 오염은 매번 바다를 뒤덮을 것이고, 북대서양은 매번 차가워질 것이고,
사헬의 사람들은 매번 가뭄을 겪을 것이다.
결국 가뭄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잘못한 건 우리였다.
뭐라고 해야 하는 판에 기후위기에 냉소주의로 답하며 탐욕에 기후위기를 차후의 문제로 미루는 정치권과 기업인들을 보며 탄식한다. 어차피 망할텐데.. 라고 탄식하지만 그래도 함께해야만 이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저자는 절박하게 함께 하자고 손을 내민다. 그 외침을 이제 우리가 다급히 화답해야 할 때이다.
마지막 책은 아직 읽지 못했다. (구매했지만 무서워서 아직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극한기후 속에서 맞닥뜨리게 될 세계가 어떻게 변할지 보여주는 책이라고 한다.
저자는 첫 1장에서 나제르 아가데즈 인근의 농민의 말을 인용한다.
사 마르셰 플뤼
더는 안 돼요.
더는 안 돼요라는 절박함이 이젠 우리 입에서 나올 차례다.
먼 나제르의 외침이 이제 우리의 외침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그 외침을 더 늦기 전에 멈춰야 한다.
안타깝게도 기후 위기에 대한 책들의 출판이 늘어간다. 그리고 그들의 경고는 더욱 살벌하고 강력해진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아직 인생의 절반도 살아보지 못한 아이들의 미래들이, 이제 갓 태어난 아기들을 보며 안타까움이 드는 건 나만의 감정일까?
전에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했을 때 학생들의 팻말이 떠오른다.

기후위기로 인한 재앙보다
늙어서 죽는 게 소원이 되어버린 세대.
우리가 그들의 가장 간단한 소망마저 말살시키고 있다.
어른으로서 이제 읽는 것을 그쳐 다시 나의 행동을 동여맨다.
더 늦기 전에
우리 아이들이 한 살이라도 더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