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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피플 존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0월
평점 :

페이스트리는 뜻밖에 정치적인 빵이다. 겹겹이 쌓인 층과 층 사이, 선처럼 얇은 틈이 숨어 있다.
겹겹으로 이루어져 페이스트리라는 하나의 빵을 만들어낸다. 먹기 전까지는 그 겹들이 똑같은 겹일 뿐이다. 하지만 먹는 순간 느끼게 된다. 안의 겹은 버터 향이 풍기지만 바깥의 겹들은 부스러기로 쏟아진다는 것을. 페이스트리처럼 우리 또한 자본주의 관계를 살아가는 우리들 또한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지만 장소와 신분에 따라 그 겹들이 드러난다. 누군가는 은은한 향을 내지만 누군가는 부스러기 같이 떨어져나간다는 것을 말이다. 정이현 작가의 소설 『노 피플 존』이 바로 관계 속의 페이스트리를 드러내는 소설집이다.


첫 번째 단편 「실패담크루」 에서 나는 인턴으로 일했던 로펌 대표의 연인이었던 성지연의 초대로 '실패담크루'에 함께 하게 된다. 서로의 실패담을 발표하며 나누는 모임. 하지만 이 곳에서 성공과 실패라는 개념조차도 신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라는 사실을 나는 알지 못했다. 가진 게 없는 나는 실패란 치명적이며 아픈 상처이지만 이들에게는 친목회 정도로 소비된다. 그래서 그들은 실패를 담백한 공유라고 말하고 조언이나 피드백을 주지 않는다. 실패조차도 취미로 소비되는 부유한 이들의 모임에 나는 동화될 수 없고 떨어져 나갈 수 밖에 없다.
현대 사회는 많은 플랫폼을 만들어냈다. 배달 플랫폼은 기본이고 각종 다양한 플랫폼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다. 「단 하나의 아이」 에서는 놀이 가정교사 플랫폼인 '케이 파라디소' 가 소개된다. 아이들과 놀아주는 놀이선생님. 사진과 학력을 올리고 채용된 한나는 담당실장으로부터 절대 인간적인 교류를 하면 안 된다고 교육받는다.
하지만 어디 그게 쉬운가. 선을 지키고자 하지만 너무 쉽게 선을 넘으며 한나에 대한 정보를 묻는 할머니. 한나의 부모님이 이혼한 사실을 알자마자 조용히 칼같이 교체된다. 다시 하유라는 아이의 선생님으로 채용되며 긴 시간을 함께 한다. 테리라는 친구와 자주 통화한다는 하유의 문제점을 알게 되며 순수한 감정으로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부모에게 어렵게 말을 꺼내지만 돌아온 건 조용한 차단이었다.
플랫폼 채용에서의 관계는 존재하지 않아도 존재하고 존재함에도 존재하지 않는 듯 보이는 그런 관계임을 소설은 말한다. 그저 필요에 따라 존재할 뿐 어딘가에 남아 있는 흔적만을 남길 뿐이다.

『노 피플 존』은 제목 그대로 사람들이 함부로 다가오지 않도록 테두리를 치는 관계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사는 사람」에서 김다미는 유명 입시학원에서 일한다. 김다미를 아는 사람들은 학원이름만 가지고 김다미를 평가한다. 남자친구 우재 또한 '어디에 살고' '어디에 근무하는지'로 김다미를 마음에 들어한다. 함께 부유한 동네 임장을 다니며 있어보이려 하는 우재. 뻔지르르하게 옷을 입지만 김다미는 우재의 구두를 바라본다. 그리고 끝내 숨길 수 없는 게 있음을 드러낸다. 똑같은 척하지만 다를 수 밖에 없는 관계. 그게 바로 자본주의 사이에서의 관게의 차이였다.

이 소설집에서 가장 이상적인 관계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언니」에서의 인회 언니다.
늘 이름으로 기억하며 이름으로 불러주는 사람. 일을 도와주는 1학년생들에게 사비로 음식을 사 주면서 늘 분위기가 아닌 원하는 음식을 선택하도록 도와주는 사람. 인회언니에게는 신분이나 위치가 중요하지 않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 겹을 만들어놓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사람임에도 자본주의 관계에서는 사람의 선한 성품을 이용하고 내팽개쳐질 뿐이다.
상황에 따라 쉽게 바뀔 수 있는 여러 관계들. 그 관계들을 누군가는 수동적으로 끌려가고 누군가는 끝까지 변화를 시도하기 위해 용기를 낸다. 인회 언니도 피해자로 전락하지만 단순한 피해자의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래도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사람들이 바로 우리의 희망이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노 피플 존』 을 읽으면 지금 나의 위치에서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를 다시 만나게 된다. 부부관계에서도 우리는 같은 겹을 이루나 아니면 한 쪽이 희생하는 부스러기 같은 겹인가. 직장 및 공동체 관계에서 그 틈을 다시 보게 하는 소설이다. 이왕이면 똑같은 관계이길 원하지만 다른 그 미묘한 차이를 알아내는 쌉싸르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