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반대를 무릅쓰고 집 계약을 했다. 그 이후 남편과 냉전이 2달째이다.

말이 많던 남편이 무뚝뚝해졌고 우리는 아이들 일 이외에는 말을 하지 않는다. 가정에서 삶이 지옥같으니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졌다. 차라리 헤어지는 게 낫겠다 싶었다. 혼자서 계약금을 마련하는 것도 버거웠고 그냥 이대로 가정과 일 모두 손을 놓고 싶었다. 글쓰기도 되지 않았고 공부도 되지 않았다. 함께 잘 살기 위해서 집 계약을 한 건데 이런 냉전 상태라면 다 소용없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에 회의감이 들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지만 최근 창비 출판사에서 <세라 핀스커 독서모임 지원 이벤트> 에 당첨되어 받은 책이 있고 내가 리더이기에 그건 놓을 수가 없어서 간신히 해 나갔다.

우연히 한 지인의 안부가 궁금해 그 분의 블로그를 방문했다.

그 분은 최근 종영한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라는 드라마의 한 대사를 응용한 글을 쓰셨다.


동만의 형 진만이 변은아에게 꿈이 뭐냐고 묻는다.

변은아의 대답은 의외였다.


힘 있는 엄마가 될 거예요.

돈 있고 빽 있어서 힘 있는 거 말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고요한 중심에 서 있는 그래서 옆에 있는 사람도 안심하게 해 주는

그런 엄마, 그런 여자가 될 거예요.



상황이 좋았을 때 이 드라마의 대사가 멋있게만 느껴졌는데

막상 어려울 때 이 드라마의 대사를 음미하니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 있는 삶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님을 깨닫는다.

그러면서 꺠닫는다... 나는 도망 못 가겠구나... 끝까지 밀고 가야겠구나...

아이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내 중심을 단단히 붙들고 나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겠구나...

그리고 남편에게도 시간을 주자.. 이것도 내 책임이니까...


최근 민음사에서 60주년 기념으로 기획된 《아무것도 간절하지 않는 날의 기술 》 의 책을 읽고 있다.



세계문학전집 표지와 책 내용을 연계하여 쓰여진 책이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표지가 프랑시스 피카비아의 「열대」라는 작품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한 번 밖에 살 수 없는 삶. 우리는 선택 이후 그게 좋은 선택이었는지 나빴는지 미리 알 수 없다.

벌어지고 난 후 원인과 결과 인과관계에 몰두할 뿐이다.

그렇지만 '인과 관계'에만 집중한다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그 이후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 힘이 스스로에게 있음을 믿어 주는 것'이라는 것이다.




인과관계를 말끔히 설명할 수 없고, 결말 역시 알 수 없고, 갈팡질팡하기 일쑤이지만,

선택 이후 펼쳐지는 상황을 자기 서사로 통합하는 권능은

오직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간절하지 않은 날의 기술 160p


지금 내 상황도 갈팔질팡이다. 내 고집으로 밀고 나간 내 잘못을 탓하며 나를 원망해 본다.

하지만 지금 내게 중요한 건 이 상황을 통합하는 능력과 책임 또한 나 자신에게 있고 나 자신을 믿어주라는 것이다.

그래야 드라마 <모자무싸>에서 말한 힘있는 엄마, 주변 사람들마저 안심하게 해 주는 엄마가 될 테니까.

물론 쉽지 않다. 쉬웠다면 모두가 힘 있는 엄마가 되었으니까..

이 것도 결국 내가 넘어야 할 안전지대가 되겠지..

이 상황에서 끝까지 내 책임을 피하지 말자..

지금 내가 할 일은 나를 믿어주는 것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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