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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6월
평점 :

작년 출간된 <이중 하나는 거짓말> 장편소설에 이어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된 8년만에 출간한 소설집이다.
총 일곱 편의 단편 중 2022년 김승옥문항상 우수상 수상작인 <홈 파티> 와 2022년 오영수 문학상 수상작인 <좋은 이웃> 등을 포함해 총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있는 이 소설은 코로나 시절을 배경으로 진한 한국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명인들의 갑질을 볼 때가 있다. 돈이 있다는 이유로, 또는 사용자라는 입장으로 타인을 함부로 대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는 한 소리를 하곤 한다. '내가 돈이 있다면 저러지 않을 텐데.' '돈이 있으면 다 저러는 건가.'
부자들의 갑질에 분노하며 나는 절대 갑질을 하지 않겠노라고 비유하지만 과연 우리는 얼마나 장담할 수 있을까?
김애란 소설집에서는 그런 우리들의 질문에 직격타를 날린다.
'당신은 정말 돈이 있어도, 또는 '갑'의 입장에서 '을'에게 친절할 수 있습니까?'
누군가는 '예'라고 대답할 지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묻는다. 과연 그 말에 책임질 수 있느냐고 말이다.
두 번째 단편소설 <숲속 작은 집> 에서 은주는 프리랜서 디자이너이다. 의도치 않았던 프리랜서. 인건비를 줄이려는 사장의 치사한 해고 작전에 사직서를 써야 했다. 기분전환으로 여행을 떠난 부부.
그들은 숙소에서 매일 청소해주는 여성을 만난다. 늘 상냥하게 웃으며 열심히 청소해 주던 여성이 어느 날부터 청소에 소홀히한다. '돈'의 문제라고 자각한 부부는 팁을 놓아주기 시작하며 다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한다. 팁이야 당연한 것으로 치지만 본격적인 문제는 은주가 애지중지했던 기념품 '집' 의 모형이 사라진 것이었다. 그 의심은 당연히 청소일을 해준 여성에게 쏠린다. 사정을 알아볼 이유도 없다. 집을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은 청소해주는 분 밖에 없으니. 주저하지 않고 의심하는 은주 부부는 마지막 떠나는 날 청소하는 분의 딸이 실수로 깨뜨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동안 우리가 나눈 인사와 미소가 눈빛과 호의가 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게.
은주는 여성의 행동이 모두 '돈'에 의해 좌지우지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소설 말미에 은주는 비로소 알게 된다. 모든 걸 '돈'으로 생각했던 사람은 그 여성이 아닌 바로 은주였음을.
여성의 행동 원인을 '팁'으로 생각하고 그에 섭섭함을 느낀다. 그리고 기념품이 사라졌을 때에도 조금의 의심도 없이 여성이라고 생각한다. 사람과의 관계를 '돈'으로 생각한 은주는 비로소 자신 또한 잠시나마 '갑'이 되었을 때 '갑질'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다. 자본주의의 계급 사회에서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은주'를 통해 보여준다.
이 질문은 <좋은 이웃>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자신은 세입자로 그것도 곧 이사를 가야 하는 세입자이다. 윗층에서 집을 구매해 들어와 공사를 시작하는 윗층 부부.
그들은 공사 안내문을 붙이며 한 마디를 남긴다.
"좋은 이웃이 되겠습니다."
과연 좋은 이웃이란 뭘까? 주희는 비슷한 나이에 집을 구매한 또래 부부들을 부러워한다. 한편 장애로 학교를 다니지 못하며 시장에서 정육점을 하는 시우를 가엾이 여겨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가정방문으로 공부를 가르쳐준다. 정도 들었고 시우의 가족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주희의 선의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가난한 줄로만 알았던 시우네가 새 아파트로 이사간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주희는 가정 방문을 더 할 수 없음을 느낀다. 나보다 못한 환경인 줄 알았던 시우네가 더 잘 사는 환경으로 나가는 데서 비춰지는 자괴감이 드러나며 주희는 생각한다.

'을'의 입장에서 진실을 모른 척 해야 하는 아파트 경비원, 평점을 위해 거친 비바람을 뚫고 서비스까지 주며 평점을 부탁하는 가게 주인, 좋은 이웃이 되겠다고 했지만 공사에 컴플레인을 하는 주희의 전화를 피하는 윗집 주인, 그리고 시우의 상황을 알면서 가정 방문을 더 이상 못 해주는 주희의 모습.
그 모습 속에 우리는 '좋은 이웃'을 잃고 있고 나 조차도 완벽한 '좋은 이웃'이 되어 줄 수 없다는 현실이 보인다. '좋은 이웃'은 돈과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소설은 보여준다.
슬프게도 '좋은 이웃'은 이웃과의 관계에서만 국한되지 않는다. 돈의 문제는 이웃과의 관계를 지나 '가족'관계에서도 좌우된다.
<레몬케이크>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엄마 선주보다 당장 자신의 책방 행사에 엄마와의 만남에 집중하지 못한다. 빨리 엄마를 보내고 이벤트 준비를 해야 하는 기진. 좋은 레몬케이크와 샴페인은 엄마와의 만남이 아닌 책방 행사에 올인하지만 의도치 않은 일로 행사 일은 틀어진다. 모든 게 빠르게 디지털화 되어 가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우울해지는 엄마 세대. 자녀에게 의존해야만 하는 이 시대에 노인들의 우울증은 깊어지고 자녀들은 먹고 사는 생계의 문제에 헤어나오지 못한다. 돈의 문제는 자녀에게도 좋은 자녀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감당해야 할 짐이라는 것이 슬프게 비춰진다.

책을 읽다보면 신형철 평론가가 왜 김애란 작가를 '사회학자'라고 부르겠다고 말했는지 이유를 알 수 있다. 어느 사회학자보다 문학으로 한국 사회의 자본주의 모습을 적확하게 그려낸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이 책의 표제작을 <안녕이라 그랬어>로 정한 이유를 생각해 본다.
그럼에도 이 시대에 '안녕' 평안하시라는 안부 인사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생각된다. 경제가 더 힘들어지며 좋은 이웃이 되기 힘든 시대, 그래도 조금이나마 평안하라고, 안녕하다고 말하고 싶은 작가의 바램이라고 생각된다.
자본에 따라 계급이 나뉘는 이 시대, 우리 모두 평안하느냐고 묻고 싶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