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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디 할머니 - 소설가가 사랑하는 박완서 단편 베스트 10
박완서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1월
평점 :

소설가들이 사랑하는 박완서 작가의 단편 베스트 10편을 모은 <쥬디 할머니>를 진작 읽었지만 이제서야 작성한다. 못 했다기 보다는 이제껏 알지 못했던 박완서 작가의 단편에 대한 소회가 아직도 내게 벅차 오르기 때문이다.
먼저 표제작인 <쥬디 할머니>를 읽는다. <쥬디 할머니>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했다. 왜 출판사에서는 이 소설을 표제작으로 정했을까? 그 부분은 소설 말미 반전 부분을 읽고 나서야 무릎을 치게 된다. 1981년에 발표된 시절을 봐야 한다. 여성에 대한 인권은 전혀 없던 시기. 여성은 무조건 희생되어야만 했던, 남성의 전유물이라고만 여겨졌던 80년대 쥬디 할머니는 그야말로 혁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말이란 건 좋은 거였다. 말을 하니까 한결 기운이 났다.
그래, 난 다시 울타리를 칠 수 있을 거야. 새로운 울타리를.
나는 다시 울타리를 칠 수 있을 거야. 할머니는 오로지 그 생각만 했다.
희생양이 되기보다 자신의 서사를 멋있게 포장하는 쥬디 할머니의 당당함은 오히려 주변을 더 초라하게 만든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기 위해 시대의 한계를 타개하기 위해 비록 거짓으로 쌓아올린 쥬디할머니의 울타리를 누가 욕할 수 있을까.
이러한 모습은 <쥬디 할머니>에서뿐만 아니라 <공항에서 만난 사라>에서의 무대소 아줌마에게서도 드러난다. PX에서 물건을 뺴 돌리는 일에도 능하면서도 당당했던 무대소 아줌마.
아부도 하지 않고 양키와 살림 차린 점원들에게 '쌍노메 베치'를 날리며 비웃는가 하면 영어 한 마디 못 해도 당당하고 과부가 되어서도 아이 셋을 데리고 미국에 가서 내 나라 말로 실컷 내 나라 욕하면서 살 거라는 무대소 아줌마의 모습은 쥬디 할머니의 당당함과 겹쳐진다.
삼천만이 양키 덕을 입는 입장이거늘 그녀 혼자 그것을 거슬러 홀로 양키에게 덕을 베풀려 들다니, 그것은 얼마나 고독하고 얼토당토않은 짓인가. 그렇지만 그녀라면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두 인물들을 보며 마흔까지 평범한 가정 주부로 있다 비로소 글을 쓰기 시작한 박완서 작가가 쓴 여성들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멋있고 당찬 여성들이다. 어찌 이들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박완서 작가의 인터뷰를 모은 <박완서의 말>에서 박완서 작가는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말하면서 중산층의 허위의식과 안이한 태도, 속물근성과 기회주의적 속성 등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 글을 보았다.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속한 계급에 대해서도 비판 의식을 가지고 있던 작가의 신념은 <도둑맞은 가난>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집안이 망하고 망한 현실을 인정할 수 없어 스스로 생을 마감해버린 가족들의 죽음 앞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은 나는 그 와중에도 공장에서 만난 상훈과 사랑을 하며 삶을 이어간다. 상훈과의 미래를 꿈꾸고 포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상훈의 실체를 알게 되었을 때는 자신의 가난마저도 있는 자들의 장난감같은 것이라는 걸 알게 되는 장면은 우리가 우스개 소리로 말하는 '개천에서 용이 말라버렸다'라는 희망 멸종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부자들이 가난을 탐내리라고는 꿈에도 못 생각해본 일이었다.
그들의 빛나는 학력, 경력만 갖고는 성이 안 차 가난까지를 훔쳐다가 그들의 다채로운 삶을 한층 다채롭게 할 에피소드로 삼고 싶어한다는 건 미처 몰랐다. 나는 우리가 부자한테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깜깜한 절망을 가난을 도둑맞고 나서 비로소 느꼈다.
가난이란 무엇인가. 결국 마지막 단편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틀니>가 아닐까.
월북해버린 오빠로 인해 공무원인 남편의 출세길이 막혀 남편의 구박을 받고 있는 나.
자신만을 바라보는 친정엄마, 언제 북에 있는 오빠가 와서 위험해 질 지 모르는 살얼음판과도 같은 현실. 이 모든 것들이 결국 가장 무거운 틀니가 되어 괴롭히는 게 아니던가.
시대가 지났어도 우리의 틀니는 또 다른 형태로 둔갑하여 우리를 무겁게 하고 있다. 누군가는 실직으로 누군가는 질병으로.. 그 틀니는 불안의 형태만 바뀔 뿐 틀니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박완서 작가의 단편집 <쥬디 할머니>를 읽으며 시대를 뛰어 넘은 여성들의 모습을 보고 시대가 지났어도 또 다른 모습으로 변주한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을 본다. 좋은 작품이란 이런 것이리라. 고전이 시대가 지나도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게 해 주는 것처럼 한국의 고전을 만들어낸 박완서 작가의 작품 또한 7-80년대에 쓰여진 작가의 작품은 지금 우리의 모습을 비춰보기에 결코 손색이 없다. 이 단편들을 통해 나는 다시 고전의 의미를 되새긴다. 박완서 작가는 분명 한국의 고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