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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 수록,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ㅣ 문지 에크리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4월
평점 :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함께 글공부하는 벗들과 함께 한강 작가 독서모임을 했다.
초기작인 <여수의 사랑> 부터 시작하여 10권의 책을 함께 읽어나갔다. 한강 작가의 글은 쉽지 않았다. 고통과 불행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인물들. 그 고통 속을 통과하면서도 끝까지 한 줄기 바람을 찾으며 파란 돌을 찾는 걸 보며 우리의 인생이란 고통 속에 피어나는 희망을 보곤 했다.
그래서일까.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소감이 함께 수록된 에세이 《빛과 실》의 결도 다르지 않다.
먼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소감 중 우리는 작가의 질문 중 하나를 뺴놓을 수 없다.
<소년이 온다> 에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참혹한 현실을 쓰면서 한강 작가에게 떠나지 않았던 질문.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이 인간을 쉽게 죽일 수 있다는 사실. 이토록 쉽게 폭력적일 수 있고 그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어떻게 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지구 건너편에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다.
어떻게 이토록 쉽게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지, 그토록 수많은 민간인들을 죽여놓고 큰 소리 칠 수 있는가. 어떻게 우리는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그리고 과연 인간의 역사는 전쟁이 비극을 초래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전쟁을 멈추지 않는 현재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우리는 과거로부터 배우기는 하는 걸까라는 탄식이 나오곤 한다. 정말 인간의 역사는 희망이 없는 것일까? 그 질문 속에 한강 작가는 말한다.
이 세계에서 우리가 끝끝내 인간으로 남는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인간으로 남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정말 희망이 없는 것일까? 그럴 수 없다. 한강 작가의 인물들은 그 고통 속에서도 파란 돌을 찾아내지 않았던가. 죽고 싶지만 파란 돌을 잡기 위해 눈물을 흘려야 했던 <바람이 분다, 가라>의 삼촌처럼 고통 속에서도 끝내 파란 돌을 줍지 않았던가. 한강 작가에겐 파란 돌은 무엇이었을까.
아마 김광석의 노래 「나의 노래」 였던 것 같다.

마지막 한 방울의 물이 있는 한 마시고 노래하리란 김광석의 노래 가사처럼 살아 있는 한 희망을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한강 작가의 여러 인물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그래서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에서도, <채식주의자>에서도 <노랑무늬 영원>에서도 인물들은 모두 희망을 선택한다. 이게 뭐 희망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희망이라고 부른다면 희망이 되지 못할 게 없다는 작가의 글을 보며 한강 작가의 작품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빛과 실》의 표지와 본문 사진들이 한강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들이다.

글을 읽기 전에는 무심코 지나치기 쉽지만 책을 읽고 난 이후 이 사진들을 다시 보게 된다.
거울로 식물을 비추고 있는 모습. 집을 이사하고 햇빛이 들지 않는 북향에 위치한 화단을 키우면서 조경사님은 힌트를 준다. 해가 잘 들지 않으니 거울로 빛을 반사시켜 빛을 주면 도움이 될 거라고. 그래서 여러 거울을 사서 빛을 비춘다.
해의 움직임에 따라 거울의 각도를 바꾼다. 북향에서도 끝까지 빛을 비추는 일. 그것도 역시 하나의 희망이 아닐까. 햇볕이 잘 닿지 않는 북향에서도 끝까지 거울의 각도를 시시각각으로 바꾸며 빛을 비추는 건 한강 작가의 인물들과 닮아 있다. 빛을 포기하지 않음으로 작가 역시 빛의 리듬으로 바뀌어간다. 식물들도 끝내 꽃을 피운다.

한강 작가는 질문한다.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 주는 금실이지.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 주는 금실이란 무엇일까. 나는 한강 작가가 화단에 빛을 연결해주는 거울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햇볕이 잘 안 드는 북향 화단에 빛을 반사해주듯, 고통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인간의 인생길에서, 인간으로 태어났음에도 인간으로 살아가는 게 이토록 어려운 인생길에서 서로에게 빛을 반사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
북향의 화단의 식물들은 스스로 햇볕을 받지 못한다. 작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거울이란 도구가 필요하다.
그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우리 스스로 빛을 비추기보다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되어 빛을 반사해주는 거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가냘프고 연약한 나무가 끝내 울창해지듯 우리도 비로소 희망을 피워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