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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마치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2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이마치. 3월 March 의 이름을 그대로 붙인 부모님에 의해 마치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진 여배우. 사실 그녀의 삶은 모순투성이다. 멀리서 본 그녀의 삶은 화려했지만 가까이에서 본 그녀의 삶은 처참했다. 무능력했던 남편과의 결혼 생활, 실종된 아들, 자연스레 멀어진 딸과의 관계. 화려한 배우의 삶 이면의 이마치의 삶은 허울만 화려한 빈 껍데기 인생이었다. 빈 껍데기 인생을 버티게 해 주었던 건 배우의 삶이었다.
애써 그녀를 버티게 한 배우로서의 이마치. 늘 체중 55kg을 유지하고 드라마 대본도 완벽하게 외우곤 했던 이마치는 몸무게가 59kg이나 늘고 대본도 기억하지 못해 강제 하차하게 된다. 지갑을 두고 택시에 타는가 하면 전에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병원에서 받은 알츠하이머 전 단계라는 말에 그녀는 알츠하이머를 치료하기 위한 VR 치료를 시작한다.
60층의 아파트에 하나씩 내려가다보면 층수에 맞는 과거의 이마치를 만나게 되는 VR치료를 통해 이마치는 과거의 자신을 만난다. 갇힌 아파트 안에서 자신을 인도하는 '노아'라는 청년과 함께 아파트를 내려가며 그 나이에 맞는 자신을 만난다.
그 곳에서는 자신의 모든 삶이 하나의 세트장으로 꾸며져 이마치의 인생을 담고 있는 자신의 삶과 마주하게 된다. 그 속에서 파헤치는 그녀의 삶은 과연 축복일까 지옥일까.
매 순간 층에서 바라본 이마치의 지난 시절은 행복한 순간보다 불행한 순간들이 많다. 불행한 순간들을 애써 잊고 지내왔던 순간만큼 이마치가 더 어린 과정의 나를 만날수록 그녀가 피하고 싶었던 진실은 그녀에게 생생히 모습을 드러낸다. 너무 일찍 시작된 불행.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일까.
이마치는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만나며 알게 된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행복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행복한 방법을 꿈 꿀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의지와 다른 선택을 해야했다. 행복할 수 있다라는 것도 믿지 못했고 자신은 으레 불행해야만 하는 존재로만 생각되었기에 남의 인생을 연기하는 배우의 역할은 잘 감당하면서 자신의 인생은 제대로 연기하지 못했다.

알츠하이머는 두려운 질병이다. 그래서 우리는 끝까지 기억을 유지하는 게 최선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과연 그럴까 라는 의문 앞에 서게 된다. 정한아 작가는 현실을 기억하기 위해 또 다른 고통을 주입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기억해야만 한다는 것 또한 지금의 행복을 빼앗아갈 수 있음을. 오히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기억을 잃어가는 중에도 삶을 즐기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라는 걸 소설은 이마치를 통해 보여준다.
당신이 원한다고 언제까지나 이 안에서 살아갈 수는 없어요.
생명이 다하면 끝이죠. 죽음으로 모든 게 끝이에요.
알츠하이머는 그전에 당신을 놓아주라는 신호예요.
그냥 놔버려요. 당신이 가진 모든 기억. 당신이 인생이라고 붙들고 있는 것들.
별 대단치 않은 실패들, 성공들, 전부 다요.
소설 《3월의 마치》에는 알츠하이머를 앓기 전의 불행했던 이마치의 삶이 있고 기억을 잃은 후의 이마치의 삶이 있다. 그리고 죽음 이후의 3인칭의 삶을 보여줌으로우리의 삶은 계속된다라는 걸 소설은 보여준다. 계속되는 삶 속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과거의 나를 놓고 현재의 나를 살아가는 것 뿐이다. 이마치는 그 역할을 충실히 해 냄으로 자신의 삶이라는 연극을 마침내 완벽하게 해낸다.
자신의 인생이 세트장으로 꾸며진 사이코드라마 장편소설 《3월의 마치》를 읽으면서 내 인생의 연극에 대해 생각해본다.
과연 나는 내 인생을 훌륭하게 연기하고 있나?
과연 나는 내 인생을 연기하는 훌륭한 배우인가? 20대의 나, 30대의 나. 그리고 지금의 나의 연기는 훌륭한가?
겹겹이 쌓여가는 페이스트리와 같은 삶의 겹 속에서 나는 내 삶을 껴안고 싶어진다. 내 인생의 연기를 진심으로 훌륭하게 마무리하고 싶어진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배역을 훌륭하게 소화한 이마치처럼 나 역시 멋지게 그리고 최선을 다해 나의 삶을 마무리하게 만들고 싶어지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