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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치매 어르신을 돌보며 인생을 만납니다 - 10년 동안 치매 어르신들과 함께하며 얻은 삶의 지혜
서은경 지음 / 설렘(SEOLREM) / 2025년 3월
평점 :

지구에 살고 있는 수십 억 명의 사람들 중 같은 나라 대한민국에 살고 대한민국의 수천 명의 사람들 중 인연이 닿을 확률은 어떻게 될까? 더구나 그 인연이 다른 모임에서의 만남도 아닌 순수한 온라인에서 인연이 되기 위해서의 확률은 더 낮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타인과 인연을 맺는다는 건 낮은 확률을 뚫고 찾아온 기적이라 할 수 있다. 그 기적 중 하나가 바로 에세이 《오늘도 치매 어르신을 돌보며 인생을 만납니다》의 작가 서은경 간호사님이다. 블로그 인연 3600명의 인연 중 한 명이니 3600 대 1의 확률을 뚫고 찾아 온 기적이다.
블로그에서는 '치와와'님이라는 닉네임으로 이 분을 알게 된 건 단순히 '경로당'이라는 한 글자였다. 그 글자가 아니였다면 나는 이 분과의 인연을 설명할 수 밖에 없다. 온 가족 호주 여행을 계획하며 남편이 투덜거린 '경로당 투어' 한 단어를 그 분의 어르신에 대한 관심의 촉이 발동하여 기적을 뚫고 찾아왔으니 말이다.
하나의 글이 계기가 되어 서로를 알게 되며 내가 서은경 작가님의 블로그를 보며 처음에는 '어라?' 했던 마음이 점점 탄성으로 변하게 하는 데는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음을 발견한다. 이 분은 찐이다라는 생각과 함께 출간 준비부터 출간 소식까지 기다리며 보게 된 나를 설레게 하는 분이다.
사심이 담긴 저자 설명이 너무 길었다.
에세이 《오늘도 치매 어르신을 돌보며 인생을 만납니다》 는 서은경 작가의 10년간 요양병원에서 치매 어르신과 함께 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작가의 이야기이다.

누구에게나 치매란 무섭다. 이름만 들어도 치솟는 두려움과 함께 우리는 치매에 대한 배척 또는 편견에 둘러싸이게 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건만 하늘을 탓하게 되고 애써 부인하고자 한다. 어디 그게 당사자나 또는 보호자의 일일 뿐일까?
쉬운 일반 업무를 해도 되건만 치매 어르신을 돌보는 돌봄 간병사나 간호사 일을 하는 경우에도 왜 굳이 이 힘든 길을 택했느냐는 주위의 나무람이 돌아온다. 남들이 가지 않으려고 하는 길 왜 굳이 고생길을 자처하느냐며 나무라기 일쑤다.
서은경 작가 또한 마찬가지다. 좀 더 쉬운 일로 갈 수 있을지언정 어르신들과 함께 하는 일상에서 작가는 어르신들의 선의를 끄집어낸다. 행동심리이상 증상으로 예상치 못한 불상사가 돌발하는 경우가 많은 상황이 다반사다. 실습하는 학생들마저 묻는다.
"선생님은 왜 여기 계세요?"
왜 나는 여기 있는가? 작가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답해간다.
거부 반응이 심한 이화 어르신이 '내 딸 하자'라며 생긴 특별한 라포를 시작으로 서은경 작가는 어르신들과의 관계를 쌓아간다.
이 곳에서는 돌려줄 것도 받을 것도 단 하나밖에 없다. 바로 '사랑'.
현상 유지가 최선인 현대 기술의 한계인 이 질병 앞에 사회는 이 병을 '물리쳐야 할' 대상으로 보지만 작가는 '더 사랑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본다. '더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 일을 위해 저자는 어르신들의 안에 숨겨져 있는 사랑을 발견하여 끄집어낸다.
그 사랑을 발견함으로 어르신을 좀 더 건강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저자가 어르신과 함께 하며 느끼는 일의 가치였다.

이 책은 치매 어르신의 '돌봄'에 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나는 이 '돌봄'이라는 의미를 곰곰히 생각해본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돌봄을 받거나 돌보는 일을 하지 않은가?
나 역시 엄마로서 아이들을 돌본다. 그리고 이제 노쇠해져가는 부모님의 돌봄을 걱정한다. 직장에서도 상사의 돌봄을 받고 동료들을 돌보기도 한다. 책 속에서 저자가 말한 간병사의 마음과 태도가 어르신의 상태에 반영이 된다는 글을 보면서 나는 자문해본다.
"나는 내 돌봄의 대상을 잘 돌보고 있는가?"
나는 내 아이들에게, 또는 내 일을 잘 돌보고 있는가?
부끄럽지만 그 질문에 자신있게 답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저자가 설명하는 한국 돌봄의 현실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까 생각한다. 그건 우리가 일상의 돌봄에서부터 가치를 적게 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돈을 벌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그 노동이 평가절하되는 육아와 가사 노동과 같은 일반 돌봄부터 이 사회는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일상에서부터 인정하지 않는 돌봄의 현실이 치매 어르신들을 향한 돌봄의 현장은 가야 할 길이 더욱 멀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길을 가야 하는가?
저자를 보면 넷플릭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의 천장미 간호사가 한 말이 떠오른다.
알아주지도 않는데 환자를 돌봐야 하느냐는 재원샘의 한탄을 들으며 천장미 간호사는 말한다.
"할 수 있으니까요. 할 수 있는데 안 할 이유가 없잖아요."
비록 고된 일상이지만 어르신들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데 안 할 수가 없다는 저자.
목적지는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곳이어야 하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꿈 어르신을 위한 센터를 향해 달려나간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부끄러워진다. 과연 나는 내 길에 자신있게 답하고 있는가.
내 일상 돌봄의 의미부터 내가 가고자 하는 일에 그리고 지금의 일에 진심으로 임하고 있는가를 계속 질문하게 된다.
평소에도 이웃으로 작가님을 응원해왔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작가님의 말을 인용해 말해본다.
"어떻게 응원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작가님과 함께 세워질 센터 건립을 진심으로 응원하며 깊은 존경심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