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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멜로디
조해진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평점 :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 뭔지 알아?
누군가 이런 말을 했어.
사람을 살리는 일이야말로 아무나 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일이라고.
조해진 작가를 애정한다.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 조해진 작가가 5년 만에 장편 소설을 발표했다. 5년이라는 의미도 크지만 새 장편소설 『빛과 멜로디』 의 의미가 특별한 건 2017년 쓴 단편소설 <빛의 호위>의 긴 버전이자 후속작이기 때문이다.
『빛과 멜로디』는 단편 <빛의 호위>의 장편버전이기 떄문에 첫 부분은 전작과 내용이 많이 겹친다.
분쟁 지역의 사진을 찍다가 폭발로 다리를 절단하게 된 사진작가 권은.
인터뷰 전문기자로 권은을 인터뷰했던 승준.
이 둘은 오래 전 깊은 인연이 있다. 부모님이 모두 떠나고 허름한 공간에 있던 권은을 찾아가 챙겨주고 아버지의 카메라를 갖다 주었던 승준. 외롭던 권은에게 사진으로 새로운 생명을 주었던 승준.
권은은 승준이 준 카메라로 빛을 보게 된다. 어둠에 갇혀 있던 은에게 카메라는 빛이 모여드는 세계.
그 빛의 경이로움에 은은 삶의 희망을 잃은 내전 지역의 사람들을 찾아가 사진을 찍는 작가가 된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권은을 비켜가고 권은은 다리를 절단하게 된다.


『빛과 멜로디』 에는 <빛의 호위>에 이어 승준과 권은을 중심으로 인연이 맺어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어달리기처럼 이어진다.
아직도 전쟁이 한참인 우크라이나에서 임산부로 삶을 살아가는 나스차를 인터뷰하는 승준.
권은이 전쟁터에서 만난 난민 살마를 영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초청장을 보내주며 도와준 애나.
그리고 애나의 도움 아래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살마..
이 모두는 각자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서로를 향한 선의가 각자 서로를 살린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알마 마이어>의 미국계 유대인으로 사람을 살리기 위해 구호 트럭을 만들고 가자 지구로 가다 이스라엘 폭격으로 목숨을 잃은 노먼의 죽음이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고민한다.
내전 지역의 사진을 찍으며 현실을 언론에 고발하지만 자신의 작품이 정작 그들의 고통을 구경하게 만드는 게 아닌지 고민하는 콜린과 권은.
그들의 사진이 현실을 바꾸지 못하는 데 과연 이 행위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는 고민은 결국 승준이 아버지의 카메라를 몰래 훔쳐 권은에게 갖다 준 카메라로 돌아간다.
작은 카메라지만 그 작은 선의가 권은에게 빛이 되었음을.
그러므로 권은은 승준에게 말한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사람을 살린 적이 있는 위대한 일을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과연 이 행위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는 질문에 권은이 도왔던 살마가 난민 나스차를 조건 없이 영국의 비좁은 자기 집에 오도록 해 주는 결단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의 작은 선의가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하지만 그 작은 선의가 또 다른 사람을 작은 선의로 이끌어주게 한다.
평범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의는 카메라를 주고 먹을 것을 가져다주거나
아니면 택시를 기다리는 아이 엄마에게 택시를 양보하는 작은 선의밖에 할 수 없지만
그 작은 행위는 한 사람을 꿈꾸게 하고
그 작은 행위는 열이 40도 가까이 되는 아이가 제때 치료받아 고비를 넘기게 한다.
그러므로 그 작은 행위는 가장 위대한 행위가 될 수 있음을 소설은 말한다.
『빛과 멜로디』 를 읽으며 나는 자신있게 말한다.
그 따스함이 더깊어졌다.
그 따스한 연대가 더욱 진해져 전쟁으로 물든 이 시린 현실 속에 아직도 빛이 존재함을 말해준다.
조해진이 조해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