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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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롱은 빈주먹으로 태어났다.

빈주먹만도 못했다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15p

 

한 남자가 있다. 그 남자의 이름은 펄롱.

그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비록 미혼모인 엄마에게서 태어났지만 주인 미시즈 윌슨 부인의 친절로 모자는 생계에 대한 큰 걱정은 하지 않을 수 있었다. 미시즈 윌슨 밑에서 함께 일하는 농장 일꾼 네드 또한 펄롱의 엄마와 펄롱에게 친절했다. 물론 순탄한 건 아니다. 아버지가 없고 남의 집에 거하는 식모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학교에서 놀림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 석탄 야적장을 운영하며 살림꾼 아일린과 어여쁜 다섯 딸들과 함께 살아가는 어엿한 가장인 펄롱. 그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 이대로 평범하게 살아가며 딸들이 무사히 학교를 졸업하고 어엿한 사회인이 되는 것 뿐이다.

 

사람들마다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있다. 그 터닝포인트는 기습적으로 찾아온다.

펄롱에게도 그렇다. 그날은 지극히 평범한 날이었다. 단지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갔을 뿐이었다.

배달 예정 시간보다 빨리 도착한 그는 거래명세서를 전달할 수녀님을 찾기 위해 예배당 문을 열다 뜻밖의 광경을 마주한다. 더럽고 초라한 행색을 한 소녀들이 예배당 바닥을 죽어라고 문지르고 있다.

뜻밖의 불청객처럼 나타난 펄롱을 보고 구세주마냥 다가온 아이는 말한다.

 

"아저씨, 우리 좀 도와주시겠어요?"

 

안 된다고 거절하는 그에게 때마침 수녀가 나타나고 일은 마무리되며 허겁지겁 수녀원을 나오는 펄롱. 충격어 너무 커서일까. 그는 익숙한 길이였지만 길을 잃어 길가에 있는 노인에게 길을 묻는다.

 


 

길을 잃은 펄롱에게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노인의 대답은 펄롱에게 진지하게 묻는다.

 

펄롱은 과연 자신이 본 사실을 가지고 어떻게 하길 원하느냐.

 

다른 동네 사람들처럼 이 수녀원의 정체를 애써 무시하며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느냐.

아니면 위험하지만 자신의 양심을 지키며 진실과 싸우느냐.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서 펄롱은 끊임없이 고민한다.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가. 자신의 일상이 평온하고 행복할수록 그 고민은 더욱 깊어져간다.

 

펄롱은 혼자가 아니다.

펄롱에게는 사랑하는 아내와 다섯 딸들이 있다.

펄롱에게는 그의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있다.

펄롱에게는 이 도시의 유일한 명문 여학교 세인트마거릿 학교를 졸업시켜야 할 딸들이 있다.

 

그의 평범한 소원. 버티고 조용히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무사히 이 난간을 통과해야 하는 그는 과연 어느 길로 가길 원하는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어느 길로 가길 원하는가?

 

펄롱의 터닝포인트는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하지만 그가 이 불편한 진실 앞에 답을 찾아가게 하기 위해 작가는 펄롱의 성장 과정을 내내 강조한다. 미혼모의 아들, 미시즈 윌슨 자택에서의 추억, 엄마의 죽음 등등...

 

그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어떻게 운이 좋을 수 있었는가?

 

미혼모인 엄마를 내치지 않고 한 가족처럼 대해준 미시즈 윌슨의 친절이 있었다.

자신에게 신발끈을 묶는 걸 가르쳐주고 면도하는 법을 가르쳐준 네드의 친절이 있었다.

현재 자신의 모습까지 오는데 당연한 건 없었다는 걸 펄롱은 알고 있었다.

그 사소한 친절이 쌓여 현재 자신의 모습이 만들어졌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소설을 읽으면 또 다른 질문에 마주하게 된다.

 

왜 사람들은 이 진실을 용기내지 못하는가?

 

현실에서도 용기를 내는 사람들은 극소수이니 진실에 눈감은 사람들을 비난할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당연한 과정으로만 받아들이는 사람들. 펄롱의 아내 아일린과 같이 타인의 불행을 타인의 이야기로만 결론짓는 사람들에게는 무모한 선택이었다고 말할 것이다.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길.

지금의 일상이 이어질 수 있고 때로는 혹독한 시련이 이어질 수 있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용기를 내어 좁은 길로 선택할 수 있는 건 결코 큰 것들이 아니다.

작은 순간을 아는 사람들이 타인의 작은 순간들을 중요시하게 여길 수 있다. 세상에 사소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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