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를 위한 변론
송시우 지음 / 래빗홀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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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우 작가의 미스테리 소설집 『선녀를 위한 변론』에서는 총 다섯 편의 추리 소설이 소개된다.


그 중 표제작이기도 한 『선녀를 위한 변론』은 위의 이야기와 같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전래동화를 현대 법률적인 시각으로 비틀어 사건을 그려낸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게 좋은 것이다는 식의 전래동화. 하지만 과연 그럴까?

안데르센의 유명한 동화 <인어공주>, 어찌되었든 행복하게 살면 되는 <선녀와 나무꾼> 사이에서 살인이 일어난다. 이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세워진 법정. 이 법정에서 검사와 변호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선한 동기를 부정한다.


어느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되는 법정, 오직 증거로만 가지고 범인을 밝혀내야 하는 곳에서 검사와 변호사는 모든 전래동화에 숨겨진 그들의 동기를 속속들이 밝혀낸다.


"옛날 옛날에 나무꾼이 살고 있었습니다. 나무꾼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를 사모한 나머지 선녀의 날개옷을 숨겨 선녀를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그 후 나무꾼과 선녀는 재회를 하였고 하늘에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전래동화의 눈으로 바라본 <선녀와 나무꾼>에서는 모든 동기가 선하다.

선녀옷을 훔친 나무꾼 이쇠돌의 행위는 잘못되었으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 행위가 미화된다.

그리고 선녀에게 옷을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지켰으니 그는 순박한 사람이다. 그 과정이 어떻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면 모든 게 용서되는 전래동화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자. 자신의 집인 하늘로 돌아가지 못하게 선녀의 옷을 훔치고 자신의 아내로 삼은 나무꾼의 행동은 절도이자 인신매매 행위이다.

선녀 또한 자신을 납치한 나무꾼을 용서할 수 있을까? 영화에서는 간혹 납치범과 사랑에 빠지는 스토리를 볼 수 있지만 그건 사연 있고 잘 생긴 납치범과의 이야기지 가난하고 늙으신 노모를 모시고 사는 이쇠돌이 이뻐 보이겠는가? 자신을 사랑의 대상이라기보다 전리품처럼 여기는 나무꾼에게 콩깎지가 씌울 수 있을까?


옛날에는 용서될 수 있었던 행위들이 현대의 관점에서 재해석되며 그 행위들은 범죄로 변한다.범죄로 변한 이야기에는 사랑이 있을 수 없고 욕심과 질투 미움이 팽배한다.

선녀에게는 나무꾼을 향한 증오가, 나무꾼에게는 선녀를 향한 기만이, 이웃집 김삼둥은 이웃집 아낙네인 선녀를 향한 호감과 이쇠돌에 대한 질투심이 활활 타오른다. 해피엔딩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 숨은 동기를 철저히 파헤쳐내어 아름다운 전래 동화에서 살인 법정으로 이어지게 만든다.


<인어공주>를 변주한 소설 「인어의 소송」 또한 마찬가지다.

인어가 살렸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전제하에 해피엔딩을 기대하게 하지만 현대의 시각에서 볼 때 사랑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 않는 조건이 주는 사랑의 이점을 설명한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옛 광고의 카피처럼 영원한 사랑이 아닌 조건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의 마음이 일으킨 살인사건. 전래동화는 선한 사람이 승리하는 권선징악을 띠지만 현대에서는 꼭 선하지 않더라도 상관없는 우리의 모습에 비추어 새롭게 이야기를 재구성한다

 


<누구의 편도 아닌 타미>와 <모서리의 메리>는 임기숙과 반려견 타미의 이야기이다.

뜬금없는 말을 잘 하지만 임기응변이 강하고 사건 판단력이 빠른 임기숙의 재치가 빛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전래동화를 비튼 앞의 두 단편 「인어의 소송」 과 「선녀를 위한 변론」보다 주는 흥미는 다소 덜하다. 전래동화를 새롭게 재해석한 두 편의 이야기가 주는 강렬함이 너무 커서인지 다소 밋밋하게 느껴진다. 뜬금없는 말을 하는 임기숙의 성격도, 그리고 <모서리의 메리>에서 나오는 임기숙이 사건의 개요를 알게 되는 과정이 친절하지 않아 아쉬웠다.


하지만 실망하지 마시라. 마지막 단편 「알렉산드리아의 겨울」 은 앞의 두 편의 아쉬움을 모두 상쇄하고도 남는다.


가상의 세계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현실에서도 저지르는 살인사건.

텔레그램, 트위터 등 SNS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그들만의 역할극. 그들만의 게임이 존재하고 그들만의 언어가 존재하는 곳. 그리고 계정만 삭제하면 모든 범죄가 한꺼번에 사라지는 외국회사의 SNS 세계. 평범한 경찰이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가상세계에 다가가기까지 끊임없는 반전이 펼쳐지는 게 이 마지막 소설의 백미이다. 그 반전앞에 소름이 돋고 소설 속의 이야기라기엔 현실 가능한 이야기라서 소름 돋게 한다.

 

마지막 단편 「알렉산드리아의 겨울」 에서 범인은 동기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

그거 알아요 형사님?

아무리 해도 행복해지지 않으면,

정말 별짓을 다해도 행복해지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면 돼요.

 

이 다섯 편의 소설 이야기 속에 벌어진 살인 사건의 동기를 나는 이 한 마디에 모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행복하지 못하면 너도 행복할 수 없다. 그러니 너를 불행하게 만들어야 한다.

타인을 불행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살인을 저지른다.

나만 죽을 수 없다는 생각, 나만 불행할 수 없다는 생각이 결국 살인을 일으킨다.


이 소설을 덮으며 생각해본다.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전래동화를 현대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면 얼마나 많은 죄명이 생길까?

<춘향전>의 이몽룡은 혼인빙자죄이고 <홍길동전> 또한 일급 도둑일 뿐이다.

다음에 송시우 작가가 차기작에 이런 이야기들을 연이어 써 준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전래동화부터 SNS까지 종횡무진하니 잠시도 쉴 틈이 없는 소설이다.

두 편의 이야기는 다소 아쉽지만 세 편의 이야기는 충분히 매력이 넘치는 재미있는 추리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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