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토끼 (리커버)
정보라 지음 / 아작 / 202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저주토끼』는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에 후보작으로 올라 단숨에 화제가 된 정보라 작가의 소설집이다. 검색해보니 한국인 영한번역가인 얀톤 허님이 도서전에서  『저주토끼』를 알게 되고 흥미를 느껴 마침 자리에 있던 정보라 작가님께 번역을 하고 싶다고 요청해서 영어 번역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부커상 인터내셔널 특성 상 외국인 번역가가 번역한 작품들이 많이 채택되는데 한국인 번역가가 번역한 작품이 후보작으로 선정되는 건 이례적이라고 한다.

 

나 역시 고백한다. 공포 소설을 그리 좋아하지 않고 단편보다 장편을 선호하는 내 취향상 이 소설이 부커상 후보작에 오르지 않았더라면   『저주토끼』를 만나지 못했으리라는 걸. 부커상 후보작이라는 명성은 내 취향을 극복할 정도로 힘이 세다. 

 

소설에는표제작인 <저주토끼>을 포함하여 <머리>, <즐거운 나의 집> <재회>, <차가운 손가락>등   9편의 단편이 수록되어있다. 

 

개인적인 용도로 저주 용품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가업으로 만든 물건을 개인적인 저주에 사용해서도 안 된다. 

불문율에는 이유가 있다. 

'남을 저주하면 무덤이 두 개'라는 일본 속담이 있다고 한다. 

타인을 저주하면 결국 자신도 무덤에 들어가게 된다는 뜻이다. 

 

<저주토끼>는 읽으면 알 수 있다. 왜 이 단편이 표제작으로 선정되었는지를.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저주토끼 이야기. 유일하게 자신에게 친구가 되어주었던 친구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저주토끼를 만들어 친구의 원수를 몰락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저주토끼가 서서히 그리고 급격하게 어떻게 한 가문을 파괴시켜나가는지 그려지는데 이 소설의 특징은 글의 묘사가 너무 담담하여 더욱 오싹함을 자아내게 한다. 소설에서 왜 저주에 쓰이는 물건이 이쁘게 만들어야 하는지 그리고 왜 함부로 만들어서는 안 되는 물건인지 책 곳곳에 나와 있는 암시는 이야기 결말의 복선이었음을 알게 되어 등골을 더 오싹하게 만든다. 여러 단편도 좋았지만 다른 단편들보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매우 강하다. 

 

두 번째 단편 <머리> 또한 평이한 이야기 속에 반전이 매우 강렬한 작품 중의 하나이다. 주인공의 배설물로 만들어진  존재인 '머리' 배설물로 만들어졌기에 배설물의 주인인 주인공에게 "어머니"라고 부르는 이 '머리'의 존재를 주인공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건 당연하다. 매번 화장실에 갈 때마다 나타나는 '머리' 가 끔찍해 가족에게 말하지만 반응은 미지근하다. 

 

" 알을 스는 것도 아니고 무는 것도 아니면 그냥 두지 그러니." 

 

이 심드렁한 반응은 후에 결혼한 남편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뭐 별거 아니네. 그냥 내버려둬요. 기어 나와서 집안을 돌아다니는 것도 아니고, 알을 까는 것도 아니잖아?" 

 

주인공의 고통에 무관심한 가족들. 주인공에게는 별 일인데 주변에서는 그냥 내버려둬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후에 깨닫게 된다. '그냥 내버려 둬요.'와 같은 무관심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그리고 이야기 결말 후에도 이 무관심으로 인해 주인공은 더 외로워지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슬프게 만든다. 

 

표제작인 <저주 토끼>도 좋았지만 내게 가장 좋았던 작품은 <즐거운 나의 집>이었다. 솔직히 표현한다면 답답하지만 모든 이야기들 중 가장 반전이 무서웠던 작품이면서 한국형 호러 소설다운 작품이라고나 할까. 가장 즐거워야 할 집이 어떻게 가장 무서운 집이 되는지 알게 되는데 이 강력한 반전 앞에서 나는 뒤통수를 치는 강렬한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 밖에도 AI의 공격을 그린 <안녕, 내 사랑>, 옛날 이야기를 듣는 듯한 <흉터>와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 피임약의 부작용으로 임신하게 된 여성이 어떻게 파멸되어 가는지 보여주는 <몸하다> 등 다양한 소재 속에 이야기들은 다채로운 매력을 빛낸다. 

 

이 책에 대한 호불호가 강하지만 내게는 요즘 인기있는 SF소설과 다른 한국형 호러 소설을 보는 듯한  이 소설집 또한 매우 재미있었다. 그리고 작가의 다른 소설집 <여자들의 왕> 또한 읽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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