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의 노크
케이시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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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사촌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라는 옛 말이 있다.

이웃사촌이라는 말도 이젠 무색하게 된 지금. 바로 옆 집에 살지만 우리는 옆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얼굴을 마주치는 것도 조심스럽고 서로 피해주는 게 오히려 에티켓처럼 된 지 오래이다. 누군가를 알려고 하지 말 것. 친해지려고 하지 말 것. 그래서 가장 가까이에서 살아도 가장 먼 존재가 된 존재가 바로 이웃이다.

《네 번의 노크》는 바로 그 이웃의 특징을 가장 치열하게 그려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가깝고도 먼 이웃의 존재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곳. 우범지역의 한 빌라촌, 인생의 패배자 또는 가장 초라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이 빌라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알려하지 않는다. 알아봤자 뭐하겠는가. 서로가 패배자이고 불쌍한 사람들인 걸 아는데. 측간으로 들리는 소음만으로 서로의 존재를 아는 곳. 다행이 여성들만 있는 이 빌라 3층에 남성의 시체가 발견되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남자가 죽은 곳은 2층과 3층 사이 계단.

사망자는 303호 거주자의 남자친구.

당연히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여자친구인 303호이다. 하지만 사건 당일, 303호는 지방으로 여행중이라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다. 사건은 점점 미궁에 빠져드며 형사는 301호부터 306호 모두 사건의 용의자상에 세우며 이 3층 사람들을 조사한다.

 

동물들은 영역을 지키기 위해 공격적인 행동을 하고,

서로 바짝 붙어 있을수록 으르렁거리기 마련입니다.

이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가까워지면 추악한 욕망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어지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때에야 비로소 예의를 갖추고

인간다운 모습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거리를 유지하는 나뭇잎과 같지요.

 

첫 사건 조사자로 시작된 301호 거주자의 말은 이 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가깝게 지내는 게 더 안전하다는 현재 우리의 모습을 적확하게 표현해준다. 가까워져봤자 안 좋은 일에 얽히게 된다는 것. 좋을 일이 없으니 있어도 모른 척 하는 게 더 안전하다는 것. 그래서 이들은 서로를 모른 척 해 왔고 심지어 301호가 무속인이라는 사실 자체도 알지 못한다. 서로를 모르니 옆집이 누구인지 측간의 소음만으로 짐작만 할 뿐이다.

이 책의 특징은 주로 301호 무속인 거주자의 말에서 자주 드러난다는 점이다.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방에만 있는 302호나 장애인인 304호와 달리 여러 사람을 만나는 직업의 특징상 301호의 진술 속에서 현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비춰지며 왜 자신들이 사는 지역이 낙후될 수 밖에 없는지를 알려준다.

 

과거 제국주의에는 다른 나라를 침범하는 방식이었지만

지금은 계급을 만들어 나라 안에서

내부 착취하는 식민 구조가 공고해졌습니다.

무엇을 의미할까요?

밑바닥 계층을 형성하는 힘없고 도태된 사람을 태워야

시스템이 굴러간다는 겁니다.

 

힘없고 도태된 사람들. 서로를 태움으로 시스템이 굴러간다는 사실. 이 진술을 들을 때는 이 낙후된 지역에 내몰린 빌라 거주자들 모두 피해자처럼 보인다. 서로를 모른 척해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라니 얼마나 불쌍한가. 옛말처럼 이웃사촌처럼 서로 가까운 존재였다면 살인 사건도 쉽게 해결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런 반전은 2부에서 각 거주자들의 독백이 드러나며 반전의 반전을 선사한다. 까도 까도 계속 나오는 양파처럼 301호부터 306호의 독백까지 진실은 새로운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나오고 나는 놈 위에 하늘을 다스리는 자가 나오며 인간이 어느 정도까지 짐승같아 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어려운 사람이 어려운 사람을 알아본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 말은 『네 번의 노크』 앞에서는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이 같은 형편에 있는 사람들을 더욱 악랄하게 이용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서로의 영역에 다가오는 사람. 그 네 번의 노크에 당하지 말기를. 그리고 자신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음을 경고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소설. 바로 이 소설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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