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행복론 - 97세 경제학 교수가 물질의 시대에 던지는 질문
리처드 이스털린 지음, 안세민 옮김 / 윌북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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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소원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내 집'이라고 말할 것이다.

2년마다 돌아오는 전세 만기, 갈수록 고공행진하는 서울의 집값, 아이가 커갈수록 답답한 집...

집을 생각하면 답답한 현실에 나만 불행한 듯 해 울화통이 터졌다.

『지적행복론』 은 '집'만 있으면 원이 없을 것 같다는 나에게 과연 '집'을 살 만큼의 소득이 있으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묻는 행복경제학이다.

<행복경제학>. 우리에게 낯익은 용어는 아니다. 저자 역시 인정한다. 경제학의 여러 분야에 있어서 행복경제학은 경제학의 주변부라고 말한다. 모두들 수치를 말하고 성장만을 강조하는 경제학에서 인간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가를 논하는 경제학. 이 자본주의 시대에 행복경제학은 어울리지 않다.

『지적 행복론』의 저자 리처드 이스털린은 90대의 노교수로 이 책은 저자가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내용을 담은 글이다. 대학 강당에서 학생들의 질문을 받고 대답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얼마나 부자가 되어야 행복할까?"

"소득이 많으면 행복도 증가할까?"

황당할 정도로 당연한 질문에 저자는 다시 묻는다.

"그렇다면 왜 소득이 높이 올라가도 행복이 정체인 상황이 많아지는가?"

"30대에는 20대에 가지지 못했던 고가품을 소유했음에도 왜 행복을 더 느끼지 못하는가?"

이 질문에서 저자는 '준거 기준' 즉 표준으로 잡는 기준이 무엇인가에 따라 행복이 달라진다고 강조한다.

기준을 무엇으로 잡는가.

예전의 나인가?

아니면 주위 사람들과의 비교인가.

아이러니한 건 소득을 생각할 때는 '준거기준'이 예전의 나가 아닌 '주위 사람'들이다. 내가 동료보다 더 적게 번다면 더 많이 벌어도 불행하다. 타인과의 비교가 행복을 맞는다.

반면 '젊음' '건강'과 같은 부분에서는 준거기준이 '주위 사람' 이 아닌 '예전의 나'가 되어 버린 경우이다.

40대인 나는 20대, 30대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자꾸만 젊었을 때의 나 자신과 비교하기 때문에 주위 사람과 똑같이 노화됨에도 예전의 나만 비교하고 그리워하기에 행복할 수 없다. 이 '준거기준'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과연 행복해지기 위해 뭐가 중요할까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바로 우리의 '기준'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지적행복론』에서는 여러 방식의 행복을 비교한다. 남녀 행복의 차이, 생애주기에 따른 차이, 정치시스템에 따른 차이 등 여러 구조가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그 중에서 남녀 행복의 차이는 저자는 이 사회가 남성보다 여성이 더 살아가기 힘든 구조임에도 여성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사실 공감하지 못했다. 남성보다 결혼을 일찍 해서 배우자를 이른 나이에 만나 가정을 꾸리고 부모가 되는 기쁨이 남성보다 여성이 크다는 사실은 현 시대에 조금 뒤떨어지는 생각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어떻게해야 행복을 찾아갈 수 있을까? 그건 결국 어느 누구도 답을 내려줄 수 없는 게 아닐까?

결국 행복경제학도 행복하기 위한 하나의 가이드라인일 뿐 결정하고 찾아가는 건 자신만의 몫이다.

그럼에도 행복에 대한 연구는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주변부에 있는 행복경제학이 중심으로 와서 소외된 사람들의 행복을 찾아주는 연구가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그래서 저자 역시 비록 주변부라고 인정함에도 끝까지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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